어린이집 차에 치여 죽은 아이의 명복을 빌며....

김경희2004.02.11
조회422

아래는 우리 이모가 쓴 글입니다...

작년에 있었던 우리 이모의 소중한 아기... ㄴ ㅐ 귀여운 사촌동생의 끔찍한 교통사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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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또 우울한 뉴스를 접했다.
5세난 어린이가 다니던 어린이 집차에 치여 사망했다는....
도대체 몇번 되풀이 되는 똑같은 뉴스인지 모르겠다.

우리 딸도 똑같은 사고를 당했었다.(다니던 어린이 집은 아니었지만)
생각하기도 싫은 지난해 4월18일.
큰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나갔다가 미친듯이 아파트내에서 커브를 튼 용인멜로디어린이집 원장이 모는 차에 내 2년 6개월난 보석같은 딸을 뒷바퀴가 머리를 밟고 지나간 것이다.
그때 난 셋째를 임신한 8개월의 만삭의 몸이었다.

불행은 갑자기 정말 갑자기 미사일처럼 나에게 떨어졌다.
그날 아침에 따라 애교를 떨며 웃어대던 내 딸을 보며 난 하늘에 감사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품을 내게 주시다니...."
그게 불과 몇분 전의 현실이었는데....
난 오열하며 아파트 주차장을 굴렀다.
내 눈앞에 피를 흘리며 머리 껍질이 훌렁 벗겨져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내 아이를 보면서 꿈이기를 바랬다.
악몽이면 제발 깨어나길...........

오열하는 나를 태우고 내딸 친구 엄마가 내 아일 안고 병원으로 갔다.
용인 영문리란 시골 마을에 산 난 어디로 가야 할지도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도 모르고 무작정 출근 길에 사고를 보고 태워주시는 애버랜드에 근무하시는 어느 고마우신 주민분의 도움으로 무작정 병원을 향했다.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애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전화번호 조차 기억 할수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용인 시내엔 (당시 우리 집은 애버랜드 근처 영문리) 제대로 된 큰 병원도 없다고 생각했다.
부산에서 용인으로 이사 온지 2년도 안된 나에겐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타지인 이었던 것이다.
겨우 생각해 낸 애들 아빠 전화 번호...
사실 우리 애들 아빠는 정형외과 전문의로 당시 인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평소에 의학지식이 있다고 믿어왔지만...
그 순간엔 정말 아무것도 내 머리 속엔 없었다.

너무 위급하니 가까운 용인 서울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실려간 내 조그만 딸......
난 정신을 추스려가며 울었다.
내 딸은 왼쪽으로넘어진 상태에서 15인승 어린이집 버스에 아이들이 가득탄 상태에서 뒷 타이어가 얼굴과 머리를 지나갔다.
얼굴반쪽은 타이어가 지나간 자리로 새까맣게 탔고 타이어가 지나가면서 머리는 마치 회뜨듯이 벗겨져 반대쪽에 붙은 상태였다.
그리고 목뒷뼈는 부서지고....
차마 눈뜨고는 볼수없는 ...........
내가 할수있는 일은 그저 머리를 쥐어뜯고 우는것 뿐....

얼마후 남편이 왔고 함께 수술실에 들어간 후 몇시간을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다.
수술실에서 나온 남편은 오열을 했다.
큰소리로...
얼굴 한뺨 덕지 덕지 붙은 모래며 이물질 하나 하나를 물로 씻어 내고 시커멑게 딴 얼굴을 식염수로 칫솔질하듯 씻었단다.
얼굴에 붙은 이물질과 그을음은 24시간 이내에 제거하지 않음 문신처럼 남아버리기에 필사의 힘을 다해.....
벗겨져 나간 머리는 끌어내려 일단 봉합했단다.
머리속에 피가 고여 있지만 일단 아이가 너무 어리므로 지켜 보고 다시 큰 병원을 옮길지는 고민하기로 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난 그래도 소리내어 울수나 있어지만.......
수술실 내내 흘려내릴려는 눈물을 참으려 온 얼굴이 빨갛게 타 올라 있었다.

그로부터 우리 부부는 꼬박 열흘을 중환자실에서 내 딸 곁을 지켰다.
가장 겁나는 건 수술후 오는 합병증이기에 우리 딸의 숨소리 하나에도 온갖 촉각을 세웠다.
폐에서 넘어오는 이물질을 셕션하며 꼬박 열흘을 눈하나 안떼고 지켰다.잠도 잘수 없었고 먹지도 못한채...
목숨이 그렇게 덧 없던가?
한순간...정말 한순간인데...
내 눈 앞에서 내 자식을 그렇게 만들다니.........
손을 잡지 못했던 내가 얼마나 미웠는지 손목을 잘르고 싶었다.
........
죽음의 갈림길에서 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후 우리 가족은 정말 지옥같은 몇달을 보냈다.
다행히 하루만에 내 작은 딸은 날 알아 보았다.
온몸엔 전기줄로 칭칭 매어졌다.
링거줄...심장 .맥박 산소호흡줄등으로..
아이는 한시, 아니 몇분도 날 놓아주지않았다.
의식을 찾으며 하는 한마디"엄마 좋아!""엄마 엄마! 우리 엄마!"
아~마음 아파 더 쓰질 못하겠다. 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

그래도 우린 기적을 맛봤다.
내 작은 딸이 그 엄청난 고난을 이기고 내 품에 돌아 온 것이다.
그동안의 고통 어찌 말로 다 표현할수 있을까?
시도 때도 없이 오열하는 내딸
머리에 피를 뽑아낼때 마다 붙잡고 울었던 많은 시간들.......
정말 악몽같은 시간들었다.
그많은 사연을 다 쓸수가 없다.

자식의 죽음은 곧 그 집안의 파탄을 뜻한다.
우리도 그랬다.
행복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부부 사이도 정말 소원해졌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
뱃속에 아인 아이대로 몇번의 유산 위험을 넘겼는지 모른다.
일이 그리되고 보니 원수같은 이가 한두명이 아니었다.
이 나라는 어찌 그리 법이 너그러운지......

내가 그렇게 고통 받는데도 가해자는 별점 받고 면허 정지 얼마간 먹는것으로 끝났다. 병원에 쥬스 몇병 ,아이 장난감(그것도 사고 낸차랑 비슷한 노란 스쿨버스)가져오고는 ...
말로만 온갖치료 다 받으시라고 자기가 도리를 다하겠노라고 하더니 정작 그이후로 얼굴도 한번 내밀지 않고 아주 황당한 소문만 흘리고 돌아 다닌다고 했다.

우린 정신적인 물질적인 금전적인 많은 손해를 보았다.
출산이 겹쳐 병원에 오래 있을수 없었고 난 아이를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첫날 부터 아이를 한침대에 발로 차여가며 누워있어야했다. 그때 내 딸은 심하게 빠져버린 머리와 한꺼풀 벗겨져 뻘겋게 화상자국이 남아있는 정말 우스광스럽고도 협오스러운 외모로 온 병원을 돌아다녀야 했다.
이런 지옥이 또 있을까?
산후 조리는 꿈도 못꾸었다.
아무 지인도 없이 병실에 홀로 아픈 아이를 보며 움질일수도 없는 난 수술 3일만에 일어나 아픈 내 아이를 돌봐야 했다.
정말 난 다친 내 아이만 아니었음 병실을 뛰어내려 죽고싶었다.
태어난 아이도 거의 퇴원때 처음 보았다.

7박8일 동안 난 내내 울었다.
적막..........어둠........우울........그자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난 어느 누구에게도 산후 조리를 부탁할수 없었다. 친정어머니도 우리 큰애를 돌보느라 힘에 부쳐 했었고 누구에게도 손을 벌릴수가 없었다.
오한이 났다.
계절은 이미 6월 중순이었지만 난 너무 너무 추웠다.
게다가 우린 딸아이 얼굴 흉터자국을 걱정해서 몇달째 집을 커튼 치고 병풍치고 암흑같이 지냈다.
작년 여름은 그렇게 삼복더위속에 굴처럼하고 지냈다.
원망스러웠다 .

내 눈앞에 버젓이 영업하고 잘도 살고있는 가해자가 죽이고 싶었다. 그런 엄청난 사고를 내었음에도 전화한통하지않는 뻔뻔스런 인간이 치가 떨리도록 원망스러웠다.
날 지옥에 떨어뜨리고.........
지금도 버젓이 영업하고 잘도 돌아다니고 있다.
멀쩡한 아이를 장애자를 만들어 놓고도.........
이나라 법은 그렇다.
어린이를 태우고 안전을 제일로 해야하는 차임에도
단순히 면허증 하나 달랑 있음 운전해도 되는 모양이다.
죽지만 않으면 어떤 장애자를 만들어도 보험만 들어 놓으면 그만이랜다.더군다나 아파트 단지내의 사고는 도로가 아니라서 큰 죄도 없댄다.
그 자가 정말로 얼마만큼의 연수를 받은 자인지......
남의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태우고 다녀도 되는 자인지 검증도 거치지 않고

난 적어도 어린이를 태우고 다니는 차는 일반 면허증과는 구분된 면허를 소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떻게 땄는지도 모르는 면허 달랑 하나 믿고 내아이들을 태워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그녀는 아마 안전은 생각않고 딴생각을 하며 운전했으리라.
그러니 멀쩡하게 엄마 따라오고있는 내딸을 치였지.....

제발 더이상 우리 아이들이 차에 치여 어처구니없이 운명을 달리하는 일이 없었음한다. 언젠가 내 홈피를 만들어 내 아픈 경험을 글로써 쓸것이다.
많은 말들이 가슴에 응어리 처럼 남아있다.
내딸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그 과정은 정말 눈물겹다.
온갖의료 지식으로 최선을 다했었다.
언젠가 내딸을 치료하면서 얻은 경험과 내 삶이야기를
내 홈피에 적어갈것이다.
사고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난 어떤 심정으로 병상을 지켰는지를...
나의 기적이 그냥 얻어진것이 아님을 많은 사람에게 알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