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상적인 가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은 평균정도 하겠거니 생각해 왔고, 저보다 더 불행하게 잘한 분들도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득 저희 가정은 평균인지 평균 이상인지 이하인지 궁금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저희 가족은 저, 남동생, 엄마, 아빠입니다.
이것은 제가 기억나지 않는 얘기들입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약 23년쯤 전에 아빠가 친구를 믿고 투자를 600만원 했는데 다 잃어서 엄마가 동생을 밴 채로 쫓아가서 절반 다시 받아왔습니다. 또 제가 어릴 때 약 20년 전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가 주식투자를 해서 3000만원 정도 잃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신혼이실 때, 아빠가 산 지 얼마 안된 차를 엄마와 상의없이 여동생(고모)의 오래된 차와 바꿔서 부모님이 함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차가 갑자기 멈춘 적이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 인사드리러 갔을 때 할머니께서 눈에 흙이 들어가도 결혼은 절대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자기 집에 가자고 하더니 어떻게 하다 보니까 결혼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결혼한 후에, 고모들까지 식구들이 다 모여서 백숙을 막 먹으려고 할 때, 할머니께서 엄마만 부엌에 가서 일을 하라고 시켜서 혼자 가서 일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할머니는 충분히 이럴 사람입니다.) 그밖에도 아빠가 외아들이라 시댁에 가면 할머니가 시키는 일을 혼자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졸이시지만 그때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무시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기억하는 이야기입니다.
유치원때 친구가 가져온 귀찌가 너무 예뻐서 그날 제가 그 친구몰래 가져왔습니다. 집에 갔는데 엄마가 보더니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셔서 친구것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빗자루였나 파리채였나 이 두개의 손잡이쪽이 매였는데 벽을 잡고 서라고 30대를 세라고 했습니다. 15대 정도 맞고 다음날 친구에게 돌려줬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책상을 놓고 엄마는 매를 옆에 놓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나무 빗자루 손잡이었습니다. 묵직해서 상당히 아팠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국어 공부였는데 지문 위에 [보기]다음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이것을 말로 읽지 않고 바로 지문을 읽으면 매를 때렸습니다. 몇 번 맞고난 후에는 엄마가 문제를 가리키려 손을 들 때마다 움찔거렸습니다.
초등학교 때 기억은 잘 안나는데 제가 뭔가를 잘못해서 바닥에서 시킨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남동생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엄마는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로 계속 혼내며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바닥에서 시킨 일을 계속하고 있었고, 엄마는 화를 내며 쇠숟가락을 제게 던지셨습니다. 그 숟가락은 제 눈밑을 지나갔고, 찢어져서 피가 났습니다. 바로 저를 성형외과로 데리고 가셨고, 다행히 흉터는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컵을 떨어뜨려 깨서 치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피아노 대회에 나간 날이 있었는데, 제가 준특상을 받았습니다. 특상 다음으로 높은 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번 실수해서 준특상을 받았다고 집에 오는 길에 차에서의 그 싸늘한 공기가 기억이 납니다.
피아노 연습할 때도 엄마가 뒤에서 봤습니다. 술을 마시거나 매를 가지고 봤습니다. 사실 억지로라도 그렇게 연습 시켜준 것에 감사합니다. 학원도 보내주셔서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써먹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제가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어서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그때 밥을 조금 더 적게 주시기도 하고 관리를 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혼자 걷기운동을 하는 새벽에 저도 데리고 나가셨는데 지금도 못하는데 그 나이에 새벽 5시~6시에 일어나서 빨리걷기를 40분, 1시간동안 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안일어나서 같이 안가면 화낼까봐 억지로 갔던 이유가 컸습니다.
그리고 군것질을 하다가 걸릴 때마다 야단을 치셨습니다. 모델이 된다면서 이런 걸 먹고 어떻게 되려고 그려냐. 정신상태가 썩었다, 때려쳐라 니가 무슨 모델이냐 등의 말로 혼을 내셨습니다. 그러다 뻥튀기를 먹다가 걸린 날이 있었는데 그 날은 맞았습니다. 뻥튀기 먹었다고 맞은 것이 억울한 마음에 기억에 확실히 남아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매주 함께 놀러를 갔습니다. 저와 동생의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서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부모님께서는 싸우지 않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점점 더 갈수록 어떤 지경이 됐냐면 일단 출발은 했는데 목적지에 가는 도중에 싸우고 엄마가 '차 돌려' 라고 하시면 돌려서 집에 왔습니다. 이럴거면 왜 출발을 할까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여러 곳에 데리고 가주신 것은 지금도 감사합니다.
조금 더 후에는 아빠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싸우다가 운전대를 마음대로 양옆으로 돌렸습니다. 차가 흔들거렸고 저는 그때마다 생명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 일 이후로는 저는 가족이 다 함께 차를 타는 것을 꺼려합니다.
어릴 때는 때릴 때 벽을 잡으라고 하고 엉덩이를 때렸는데, 조금 큰 후에는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위에서 아래로 엉덩이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때리기만 한 게 아니고 종종 밥을 큰 그릇에 퍼서 젓갈을 비빈 다음(제가 젓갈을 무척 싫어해서 한 입도 못먹었습니다. 지금도 싫어합니다.) 먹으라고 시키기도 했습니다.
집을 나가라고 쫓아내기도 하셨는데 그럴 때는 꼭 먼저 한참 때리고 화가 안풀려서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나가면 더 맞는다는 것을 알아서 큰 소리로 나가라고 고함을 질러도 움찔움찔하며 안나가거나, 나갈 수밖에 없을 때는 나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진짜 너무 싫어서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하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바람을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피웠는데 채팅으로 만난 사람 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과 사이가 안좋아지면 저와 동생에게 그 사람 집에 가서 우편물을 가져와라, 초인종을 누르고 와라, 전화를 바꿔주며 욕을 해라 등의 일을 시켰던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중학생인가 고등학생때는 엄마와 같이 외출을 하면 저는 밖에 있으라고 하고 엄마 혼자 약국에 들어갔던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임신테스트기를 사려고 했던 것이었고, 통화로 다행히 임신이 아니었다고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중 3때, 엄마와 아빠가 아침에 유난히 크게 싸운 날이었습니다. 저와 동생을 부르더니 갑자기 저희의 잘못을 말하며 매를 때리고는 팬티만 남기고 벗게 하고 무릎을 꿇고 손을 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놔두고 저에게만 제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가서 엄마의 통장으로 잔액을 모두 입금시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학교에 늦을까봐 울면서, 다른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은행에 가서 입금시키고 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늦게 갔는데 울고있는 저를 보고 담임선생님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엄마가 혼내서 무섭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중학교 말쯤이었나 저와 동생에게 또 팬티만 입히고 문밖으로 쫓아냈었습니다. 저는 말도 안된다고 화가 났지만 일단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해야되나 생각해서 차라리 옷을 몰래 밖에 먼저 내놓아서 나가자 마자 갈아입었습니다. 동생은 팬티만 입고 있었고 저는 밖에 내놓은 옷을 입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층에서 계단으로 누군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제 친구의 아빠였습니다.
발걸음 소리를 듣고 엄마가 문을 열고 빨리 들어오라고 했는데 이미 늦어서 그분은 저와 동생을 본 상태였습니다. 저도 옷을 안입고 있었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그런데 들여보내주더니 엄마가 '너만 옷 갖고나갔냐, 동생것도 가지고 나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제게 동생 옷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고 1때 정말 아직도 기억에 확실히 남아있는 사건입니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놀러를 가자고 엄마가 저희에게 통보를 하시고 내일 아침 5시에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동생은 같이 자고 있었는데 새벽 5시에 엄마가 깨웠는데 일어났으면 좋으련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엄마가 혼자 도시락을 싸다가 혼자만 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났는지 화가 나서 저희들을 다시 깨웠습니다.
그리고 저와 동생을 식탁에 앉히고 큰 그릇에 밥을 프고 젓갈에 비벼서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눈치보며 먹는데 너무 비위에 안맞아서 헛구역질도 나왔습니다. 엄마도 그걸 보시더니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밥을 다른 큰 그릇에 프더니 김치를 꺼내서 김치와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김치는 다행히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먹었습니다.
얼마간 먹다가 저희를 엎드려 뻗쳐를 시켜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10댄가 20댄가 맞다가 제가 화가 나서 이때 처음으로 큰 소리로 대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몸싸움을 하며 제 두 손을 등 뒤로 잡은채로 저를 침대에 머리를 박게 힘으로 눌렀고, 한 손으로는 아령을 들고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 때 머리에 혹이 몇 개 생겨서 몇 주 동안인가 아무튼 한참동안 혹에 손을 대면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저에게 집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5시에 못일어난게 이렇게 혼낼 일인가 싶어서 대꾸하지 않고 나와서 집앞 도서관에 가서 엎드려 있다가 집앞 놀이터를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멀리서 저를 발견하여 와서 엄마가 저를 찾아오라 했다고 했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어디 있었냐고 물어서 도서관이랑 놀이터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식탁 의자를 꺼내서 앉으라고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미용을 대학에서 전공했지만 가위를 손에서 놓은지 오래 된 상태였고, 머리를 강제로 자르겠단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머리가 쇄골에 겨우 닿거나 안닿는 단발 상태였습니다. 아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앉으라고 엄마가 머리 잘라준려고 그런가보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진심이었고 생각해보면 이런 면에서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제 편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앉았고 엄마가 가위를 댔는데 귀 중간 정도로 한웅큼을 잘랐습니다.
저는 계속 울고 있었고 엄마도 화가 나서 가위를 한 번 댔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바로 저를 미용실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울면서 미용사분께 머리를 잘랐습니다. 미용사분께서 울지 말라고 휴지도 주셨습니다. 지금도 이게 머리를 아령으로 때리고 길지 않았던 머리카락을 자를 일인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동생은 놔두고 저만 이렇게 때린 것도요.
고 2때부터는 맞는 일이 없어졌는데 성인이 되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엄마가 차를 타고 가는데 무덤이 작은 곳에 어른들이 있는 곳을 보고 아이의 무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희 자식들이 먼저 죽으면 얼마나 슬플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안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3때 부모님께서 싸우셔서 저도 예민해서 조용히 하라고 화내고 방에 들어왔던 적이 있습니다. 엄마랑 아빠가 싸울 때 중학생 때부터 식칼을 꺼내서 서로 죽여버리네 했었습니다. 이 날 엄마가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고 제 방 앞에 서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문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3 수능 전날까지 저녁에 싸움은 계속되었고, 저는 이미 예전부터 옆으로 누워서 한쪽 귀는 베개에 최대한 파묻고, 한쪽 손으로는 나머지 귀를 막아서 최대한 소음이 안들리게 하여 잠을 청하는 방법에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수능 전날에는 '오늘까지 이러다니...'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뭐 때릴 때든 안때릴 때든 화가 났을 때 혼내는 말로는 공장에나 쳐 취직해라. 나가서 몸팔아서 돈이나 벌어와라. 뭐 이런 말들이었습니다.
아빠에게는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습니다. 엄마한테만 맞았었습니다. 뭐 부모가 둘 다 악역을 하면 안 돼서 한 명이 맡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자기는 한 번도 부모님에게 맞아본 적이 없다. 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때면...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 궁금했습니다.
혹시 예전에 티비 광고에 '집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것 기억나시나요? 그것을 함께 볼 때마다 집나가면 개고생이다. 나는 니가 집나가면 문 잠글거다. 이런 말을 해서 절대 혼자 살 수 있을 때까지 집을 나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이런 말을 해주셔서 제가 가출하거나 하지 않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지거국 문과 탑인 학과에 진학을 했고, 대학교를 가자마자 집을 나왔고, 국장도 몇 번 받았지만 모든 학비와 기숙사비, 용돈을 집에서 지원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한 달 용돈이 차비제외 3만원이었습니다. 집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 5년동안 엄마는 하루에 몇 번씩도 전화를 했었습니다. 매일 술을 마셔서 거의 전화하면 언제 집에 오냐, 아빠 욕, 할머니 욕, 똑같은 얘기 계속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옛날 생각이 난다고 웃으면서 제가 아주 어릴때 '나가!' 하고 쫓아내면 내가 문 밖에 서있었다고, 자기는 그 동그랗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곳으로 혹시 내가 어디로 갈까 보고 있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제 자신이 기억도 안날 때 쫓겨난 얘기를 왜 제 앞에서 몇번씩이나 웃으면서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일까요?
제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떨때는 5, 6통씩 부재중 전화가 와있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하면 화를 내거나, 자신이 전화를 계속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할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음성 메시지가 와있기도 했는데 백퍼센트 저한테 욕을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음성 메시지는 더 필터 없이 욕을 해서인지 들을 때마다 상처가 되었습니다.
집을 나와 사는 5년 동안 '이제 내 얼굴 볼 생각 하지 마라', '꺼져라. 니 아빠 따라가서 잘 살아라.', '니 할머니가 그렇게 좋으면 그 집 식구들이랑 잘 살아라' 등 인연을 끊자고 하는 말을 수십번을 들었습니다.
최근에 시험이 끝나 아르바이트를 꽤 좋은 조건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도 엄마의 전화를 받아서 아빠욕, 할머니 욕, 화가 났던 일 등을 계속 들었습니다. 약 3분정도 넘게 엄마가 말을 하다가 오늘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라고(이번주에 두 번 이미 갔습니다) 오늘 뭐하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멀어서 가기 귀찮다. 오늘 이따가 나갈 일이 있다.(아르바이트를 구체적으로 얼마나 하는지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하니, 엄마가 '무슨 일인데?' 라고 물어보았고 저는 '뭔일인지 왜 알려고 하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알았다. 끊자. 라고 하고 끊었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가 와서 '너 진짜 말 싸가지 없게 한다. 이제 연락하지 말자.' 해서 알겠다고 대답하고 끊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 구속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제가 알바를 시작하고 나니 조금 더 하고 싶은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엄마와 싸운 것이 고1때 아령으로 머리 맞을 때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들은 제가 툭툭 신경질적으로 말해서 엄마가 화를 낸 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마와 싸웠다고 하는 얘들이 신기했습니다. 저는 싸운 기억이 없고 한번 화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일방적으로 맞았었거든요.
지금 마지막 통화 이후로 부재중이 3통정도 와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계약이 끝나면 근처 다른 집으로 이사하고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 할머니와의 트러블도 네이트판에 올렸는데 엄마도 차단하고 살고 싶습니다.
이정도면 평균 정도의 가정이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연락을 끊고 싶은 마음이 왜 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지원도 받고 남들보다 환경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정도면 평균 정도 환경에서 자란 것이 맞나요? 이 정도 키워주시고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셨는데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건가요?
이정도면 평균적인 가정환경인가요?
안녕하세요 24살 여대생입니다.
저는 이상적인 가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은 평균정도 하겠거니 생각해 왔고, 저보다 더 불행하게 잘한 분들도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득 저희 가정은 평균인지 평균 이상인지 이하인지 궁금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저희 가족은 저, 남동생, 엄마, 아빠입니다.
이것은 제가 기억나지 않는 얘기들입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약 23년쯤 전에 아빠가 친구를 믿고 투자를 600만원 했는데 다 잃어서 엄마가 동생을 밴 채로 쫓아가서 절반 다시 받아왔습니다.
또 제가 어릴 때 약 20년 전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가 주식투자를 해서 3000만원 정도 잃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신혼이실 때, 아빠가 산 지 얼마 안된 차를 엄마와 상의없이 여동생(고모)의 오래된 차와 바꿔서 부모님이 함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차가 갑자기 멈춘 적이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 인사드리러 갔을 때 할머니께서 눈에 흙이 들어가도 결혼은 절대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자기 집에 가자고 하더니 어떻게 하다 보니까 결혼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결혼한 후에, 고모들까지 식구들이 다 모여서 백숙을 막 먹으려고 할 때, 할머니께서 엄마만 부엌에 가서 일을 하라고 시켜서 혼자 가서 일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할머니는 충분히 이럴 사람입니다.)
그밖에도 아빠가 외아들이라 시댁에 가면 할머니가 시키는 일을 혼자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졸이시지만 그때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무시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기억하는 이야기입니다.
유치원때 친구가 가져온 귀찌가 너무 예뻐서 그날 제가 그 친구몰래 가져왔습니다.
집에 갔는데 엄마가 보더니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셔서 친구것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빗자루였나 파리채였나 이 두개의 손잡이쪽이 매였는데 벽을 잡고 서라고 30대를 세라고 했습니다.
15대 정도 맞고 다음날 친구에게 돌려줬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책상을 놓고 엄마는 매를 옆에 놓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나무 빗자루 손잡이었습니다. 묵직해서 상당히 아팠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국어 공부였는데 지문 위에 [보기]다음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이것을 말로 읽지 않고 바로 지문을 읽으면 매를 때렸습니다.
몇 번 맞고난 후에는 엄마가 문제를 가리키려 손을 들 때마다 움찔거렸습니다.
초등학교 때 기억은 잘 안나는데 제가 뭔가를 잘못해서 바닥에서 시킨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남동생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엄마는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로 계속 혼내며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바닥에서 시킨 일을 계속하고 있었고, 엄마는 화를 내며 쇠숟가락을 제게 던지셨습니다.
그 숟가락은 제 눈밑을 지나갔고, 찢어져서 피가 났습니다.
바로 저를 성형외과로 데리고 가셨고, 다행히 흉터는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컵을 떨어뜨려 깨서 치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피아노 대회에 나간 날이 있었는데, 제가 준특상을 받았습니다. 특상 다음으로 높은 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번 실수해서 준특상을 받았다고 집에 오는 길에 차에서의 그 싸늘한 공기가 기억이 납니다.
피아노 연습할 때도 엄마가 뒤에서 봤습니다. 술을 마시거나 매를 가지고 봤습니다.
사실 억지로라도 그렇게 연습 시켜준 것에 감사합니다. 학원도 보내주셔서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써먹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제가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어서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그때 밥을 조금 더 적게 주시기도 하고 관리를 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혼자 걷기운동을 하는 새벽에 저도 데리고 나가셨는데 지금도 못하는데 그 나이에 새벽 5시~6시에 일어나서 빨리걷기를 40분, 1시간동안 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안일어나서 같이 안가면 화낼까봐 억지로 갔던 이유가 컸습니다.
그리고 군것질을 하다가 걸릴 때마다 야단을 치셨습니다.
모델이 된다면서 이런 걸 먹고 어떻게 되려고 그려냐. 정신상태가 썩었다, 때려쳐라 니가 무슨 모델이냐 등의 말로 혼을 내셨습니다.
그러다 뻥튀기를 먹다가 걸린 날이 있었는데 그 날은 맞았습니다.
뻥튀기 먹었다고 맞은 것이 억울한 마음에 기억에 확실히 남아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매주 함께 놀러를 갔습니다. 저와 동생의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서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부모님께서는 싸우지 않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점점 더 갈수록 어떤 지경이 됐냐면 일단 출발은 했는데 목적지에 가는 도중에 싸우고 엄마가 '차 돌려' 라고 하시면 돌려서 집에 왔습니다.
이럴거면 왜 출발을 할까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여러 곳에 데리고 가주신 것은 지금도 감사합니다.
조금 더 후에는 아빠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싸우다가 운전대를 마음대로 양옆으로 돌렸습니다. 차가 흔들거렸고 저는 그때마다 생명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 일 이후로는 저는 가족이 다 함께 차를 타는 것을 꺼려합니다.
어릴 때는 때릴 때 벽을 잡으라고 하고 엉덩이를 때렸는데, 조금 큰 후에는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위에서 아래로 엉덩이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때리기만 한 게 아니고 종종 밥을 큰 그릇에 퍼서 젓갈을 비빈 다음(제가 젓갈을 무척 싫어해서 한 입도 못먹었습니다. 지금도 싫어합니다.) 먹으라고 시키기도 했습니다.
집을 나가라고 쫓아내기도 하셨는데 그럴 때는 꼭 먼저 한참 때리고 화가 안풀려서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나가면 더 맞는다는 것을 알아서 큰 소리로 나가라고 고함을 질러도 움찔움찔하며 안나가거나, 나갈 수밖에 없을 때는 나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진짜 너무 싫어서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하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바람을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피웠는데 채팅으로 만난 사람 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과 사이가 안좋아지면 저와 동생에게 그 사람 집에 가서 우편물을 가져와라, 초인종을 누르고 와라, 전화를 바꿔주며 욕을 해라 등의 일을 시켰던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중학생인가 고등학생때는 엄마와 같이 외출을 하면 저는 밖에 있으라고 하고 엄마 혼자 약국에 들어갔던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임신테스트기를 사려고 했던 것이었고, 통화로 다행히 임신이 아니었다고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중 3때, 엄마와 아빠가 아침에 유난히 크게 싸운 날이었습니다.
저와 동생을 부르더니 갑자기 저희의 잘못을 말하며 매를 때리고는 팬티만 남기고 벗게 하고 무릎을 꿇고 손을 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놔두고 저에게만 제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가서 엄마의 통장으로 잔액을 모두 입금시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학교에 늦을까봐 울면서, 다른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은행에 가서 입금시키고 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늦게 갔는데 울고있는 저를 보고 담임선생님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엄마가 혼내서 무섭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중학교 말쯤이었나 저와 동생에게 또 팬티만 입히고 문밖으로 쫓아냈었습니다.
저는 말도 안된다고 화가 났지만 일단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해야되나 생각해서 차라리 옷을 몰래 밖에 먼저 내놓아서 나가자 마자 갈아입었습니다.
동생은 팬티만 입고 있었고 저는 밖에 내놓은 옷을 입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층에서 계단으로 누군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제 친구의 아빠였습니다.
발걸음 소리를 듣고 엄마가 문을 열고 빨리 들어오라고 했는데 이미 늦어서 그분은 저와 동생을 본 상태였습니다.
저도 옷을 안입고 있었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그런데 들여보내주더니 엄마가 '너만 옷 갖고나갔냐, 동생것도 가지고 나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제게 동생 옷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고 1때 정말 아직도 기억에 확실히 남아있는 사건입니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놀러를 가자고 엄마가 저희에게 통보를 하시고 내일 아침 5시에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동생은 같이 자고 있었는데 새벽 5시에 엄마가 깨웠는데 일어났으면 좋으련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엄마가 혼자 도시락을 싸다가 혼자만 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났는지 화가 나서 저희들을 다시 깨웠습니다.
그리고 저와 동생을 식탁에 앉히고 큰 그릇에 밥을 프고 젓갈에 비벼서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눈치보며 먹는데 너무 비위에 안맞아서 헛구역질도 나왔습니다.
엄마도 그걸 보시더니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밥을 다른 큰 그릇에 프더니 김치를 꺼내서 김치와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김치는 다행히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먹었습니다.
얼마간 먹다가 저희를 엎드려 뻗쳐를 시켜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10댄가 20댄가 맞다가 제가 화가 나서 이때 처음으로 큰 소리로 대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몸싸움을 하며 제 두 손을 등 뒤로 잡은채로 저를 침대에 머리를 박게 힘으로 눌렀고, 한 손으로는 아령을 들고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 때 머리에 혹이 몇 개 생겨서 몇 주 동안인가 아무튼 한참동안 혹에 손을 대면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저에게 집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5시에 못일어난게 이렇게 혼낼 일인가 싶어서 대꾸하지 않고 나와서 집앞 도서관에 가서 엎드려 있다가 집앞 놀이터를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멀리서 저를 발견하여 와서 엄마가 저를 찾아오라 했다고 했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어디 있었냐고 물어서 도서관이랑 놀이터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식탁 의자를 꺼내서 앉으라고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미용을 대학에서 전공했지만 가위를 손에서 놓은지 오래 된 상태였고, 머리를 강제로 자르겠단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머리가 쇄골에 겨우 닿거나 안닿는 단발 상태였습니다.
아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앉으라고 엄마가 머리 잘라준려고 그런가보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진심이었고 생각해보면 이런 면에서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제 편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앉았고 엄마가 가위를 댔는데 귀 중간 정도로 한웅큼을 잘랐습니다.
저는 계속 울고 있었고 엄마도 화가 나서 가위를 한 번 댔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바로 저를 미용실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울면서 미용사분께 머리를 잘랐습니다. 미용사분께서 울지 말라고 휴지도 주셨습니다.
지금도 이게 머리를 아령으로 때리고 길지 않았던 머리카락을 자를 일인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동생은 놔두고 저만 이렇게 때린 것도요.
고 2때부터는 맞는 일이 없어졌는데 성인이 되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엄마가 차를 타고 가는데 무덤이 작은 곳에 어른들이 있는 곳을 보고 아이의 무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희 자식들이 먼저 죽으면 얼마나 슬플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안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3때 부모님께서 싸우셔서 저도 예민해서 조용히 하라고 화내고 방에 들어왔던 적이 있습니다.
엄마랑 아빠가 싸울 때 중학생 때부터 식칼을 꺼내서 서로 죽여버리네 했었습니다.
이 날 엄마가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고 제 방 앞에 서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문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3 수능 전날까지 저녁에 싸움은 계속되었고, 저는 이미 예전부터 옆으로 누워서 한쪽 귀는 베개에 최대한 파묻고, 한쪽 손으로는 나머지 귀를 막아서 최대한 소음이 안들리게 하여 잠을 청하는 방법에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수능 전날에는 '오늘까지 이러다니...'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뭐 때릴 때든 안때릴 때든 화가 났을 때 혼내는 말로는 공장에나 쳐 취직해라. 나가서 몸팔아서 돈이나 벌어와라. 뭐 이런 말들이었습니다.
아빠에게는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습니다. 엄마한테만 맞았었습니다.
뭐 부모가 둘 다 악역을 하면 안 돼서 한 명이 맡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자기는 한 번도 부모님에게 맞아본 적이 없다. 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때면...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 궁금했습니다.
혹시 예전에 티비 광고에 '집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것 기억나시나요?
그것을 함께 볼 때마다 집나가면 개고생이다. 나는 니가 집나가면 문 잠글거다.
이런 말을 해서 절대 혼자 살 수 있을 때까지 집을 나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이런 말을 해주셔서 제가 가출하거나 하지 않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지거국 문과 탑인 학과에 진학을 했고, 대학교를 가자마자 집을 나왔고, 국장도 몇 번 받았지만 모든 학비와 기숙사비, 용돈을 집에서 지원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한 달 용돈이 차비제외 3만원이었습니다.
집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 5년동안 엄마는 하루에 몇 번씩도 전화를 했었습니다.
매일 술을 마셔서 거의 전화하면 언제 집에 오냐, 아빠 욕, 할머니 욕, 똑같은 얘기 계속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옛날 생각이 난다고 웃으면서 제가 아주 어릴때 '나가!' 하고 쫓아내면 내가 문 밖에 서있었다고, 자기는 그 동그랗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곳으로 혹시 내가 어디로 갈까 보고 있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제 자신이 기억도 안날 때 쫓겨난 얘기를 왜 제 앞에서 몇번씩이나 웃으면서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일까요?
제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떨때는 5, 6통씩 부재중 전화가 와있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하면 화를 내거나, 자신이 전화를 계속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할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음성 메시지가 와있기도 했는데 백퍼센트 저한테 욕을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음성 메시지는 더 필터 없이 욕을 해서인지 들을 때마다 상처가 되었습니다.
집을 나와 사는 5년 동안 '이제 내 얼굴 볼 생각 하지 마라', '꺼져라. 니 아빠 따라가서 잘 살아라.', '니 할머니가 그렇게 좋으면 그 집 식구들이랑 잘 살아라' 등 인연을 끊자고 하는 말을 수십번을 들었습니다.
최근에 시험이 끝나 아르바이트를 꽤 좋은 조건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도 엄마의 전화를 받아서 아빠욕, 할머니 욕, 화가 났던 일 등을 계속 들었습니다.
약 3분정도 넘게 엄마가 말을 하다가 오늘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라고(이번주에 두 번 이미 갔습니다) 오늘 뭐하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멀어서 가기 귀찮다. 오늘 이따가 나갈 일이 있다.(아르바이트를 구체적으로 얼마나 하는지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하니, 엄마가 '무슨 일인데?' 라고 물어보았고
저는 '뭔일인지 왜 알려고 하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알았다. 끊자. 라고 하고 끊었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가 와서
'너 진짜 말 싸가지 없게 한다. 이제 연락하지 말자.'
해서 알겠다고 대답하고 끊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 구속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제가 알바를 시작하고 나니 조금 더 하고 싶은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엄마와 싸운 것이 고1때 아령으로 머리 맞을 때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들은 제가 툭툭 신경질적으로 말해서 엄마가 화를 낸 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마와 싸웠다고 하는 얘들이 신기했습니다. 저는 싸운 기억이 없고 한번 화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일방적으로 맞았었거든요.
지금 마지막 통화 이후로 부재중이 3통정도 와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계약이 끝나면 근처 다른 집으로 이사하고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 할머니와의 트러블도 네이트판에 올렸는데 엄마도 차단하고 살고 싶습니다.
이정도면 평균 정도의 가정이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연락을 끊고 싶은 마음이 왜 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지원도 받고 남들보다 환경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정도면 평균 정도 환경에서 자란 것이 맞나요?
이 정도 키워주시고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셨는데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