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로 인한 헤어짐을 앞두고

무교20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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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나는 너를 외모가 아닌 사람을 보고 사랑한 첫 번째 여자라고 했다. 너는 이 말을 듣고서 내가 외모가 부족하냐고 되물으며 기분 나빠 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네 됨됨이를 사랑했었다. 생각하는 모습을 좋아했고 다른 사람에게 큰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도 않는 선한 모습이 그렇게도 좋았다. 외모는 주관적인 영역이었지만 누구에게 물어봐도 절대 부족하지 않은 외모였다. 나는 너라는 사람을 정말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네게는 나보다 소중한 교회가 있었다. 신앙심이 투철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던 네게 교회란 곳은 일주일에 세 번이나 갈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고, 신의 규율은 절대 어기면 안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나와의 사랑과 관계는 즐거운 추억이 아니라 어느새 선을 넘어버린 죄책감과 죄의식이 되어 너의 양심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나보다.

 

언젠가 나에게 ‘오빠가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우리는 언젠가 헤어지게 될거야’라고 말한적이 있었다. 나는 네가 ‘오빠가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우리는 큰 문제를 겪게 되겠지만 같이 잘 고민해서 해결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너는 끝내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다른 면에서 언제나 나를 배려해주고 생각해주던 너는 절대 교회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조금도 움직여주지 않았다. 언제나 정답이 정해져있었다. 나중에 답을 주겠다는 너는 몇 달째 답을 주지 않았고 나는 마음속으로 답을 알고 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지쳐가고 있었다. 2년 가까이 만나며 세 번이나 관계를 그만 하자는 너의 말에 이제는 나도 그만하자고 말한 이유는 어느새 내가 너에게 죄책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너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했지만 항상 결과적으로 그랬었고, 너의 죄책감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너를 악으로 유혹하는 사람이었고 에덴동산의 사과이자 마귀의 꾀임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과 시험이 있었다면 바로 이런 것이었으리라. 교회를 다니지 않고 신앙심은 전혀 없는 나도 내가 이런 모습이 되니 참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너와 관계는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증명해야했다. 마귀가 되어 오래 네 곁에 남거나, 선이 되어 네 곁을 떠나거나.

 

우린 헤어지는게 맞을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교리의 가르침대로 행동하는 너는, 몇 번이나 결국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행동하게 될 너는 교인과 만나게 될 테고, 결국은 나와 헤어지게 될테다. 혹여나 나와 계속 만나게 되더라도 너는 불행하게 될테지. 계속해서 시험에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나는 내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걸, 우리의 관계를 내가 끊어서 내 스스로 증명하고 싶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네 곁에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손을 잡고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너를 안아준다는 것이 너무나 견디기 힘든 상상이었다. 하지만 원래 그 행복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별을 할 때 팔 하나를 잘라내는 느낌이라고 했으나 나는 심장의 일부를 도려내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내 자리가 아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내 욕심이 지금 나를 더 마귀로 만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아직 아픔을 느끼고 아직 쓰라림을 느낀다면 내가 사탄이나 악마가 아닌 사람이라는 증거일거다.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거다. 오래간다면 네가 헤어짐을 말할 것이고, 오래가지 않는다면 근래에 내가 헤어짐을 말할 것이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 카페에 너를 만나러 가겠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겠다. 나는 너를 만나는 나날이 매우 행복했지만 매우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나날이었으니까. 너와 만나던 날씨는 찬란하게 햇살이 비치지만 저 멀리 먹구름이 보이는 날씨였다. 사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은 나에게도 시련을 주셨던 것 같다. 시련이 내가 어떻게 해볼만한 시련이라면 온몸으로 부딪치고 깨가며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텐데, 이놈의 시련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콘크리트 벽이었다. 부딪칠수록 정신적으로 상처받았고 내 스스로가 아파하는걸 나도 보았다.

 

사실 나도 하고 싶은게 있었다.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내 여자친구를 자랑하고 다녔지만 나도 정말 하루씩은, 정말 하루씩은 주말 낮 데이트가 하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정말 한번쯤은 1박2일 여행이 가고 싶은 날이 있었고 정말 너와 통영을, 정말 너와 외국의 어딘가를 정말로, 정말로 가고 싶었다. 거기서 내 카메라로 그 순간의 네 웃음을, 네가 정말로 싫어하던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을’,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을’그대로 가지고 오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모습을 가지고 오고 싶었다. 그리고 한번쯤은 너희 부모님이 나를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번쯤은 술에 취해 빨개진 서로의 얼굴을 보고 깔깔 웃고 싶었고, 그 상태로 바다를 보며 숙소 근처를 살짝 취한채로 거닐고 싶었다. 정말 한번쯤은, 그렇게 한번쯤은 이라고 절실하게 생각하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내게도 절실함이 있었던 만큼 너에게도 내가 따라주지 못해 생긴 절실함이 있었을테니까 내 ‘한번쯤을’ 말하지 못했다. 매번 너는 부모님 눈치를 봐가면서 나를 만났고, 날 만난다는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만날 때는 전화통화도 매우 조심스럽게 했었다. 아마 나에게 말은 그렇게 했어도 부모님이 얼마나 싫어하셨을지 눈에 보였다. 사실 나도 눈치 엄청 보였다. 어느 순간 나도 정말 죄인이 되어있었다. 정말 한번쯤은 눈감고 교회를 나가볼까 생각했었다. 정말 그것만 해결되면 많은게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안들었을 리가 없지 않겠어. 그런데 하나님 말씀이 그렇다며. 믿지 않는 자보다 더 못된 자가 거짓 믿음이라고. 나 역시도 너와 너희 어머니의 환심을 사고자 연기하고 싶진 않았다. 진짜 악마가 되고 싶진 않았다. 악마가 되어 오래 네 곁에 남느니, 사람이 되어 네 곁을 떠나겠다.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찬란하고 멋진 햇살이 언제까지 나를 비춰줄진 모르겠다. 오래 될수록 끝이 아플거고, 오래 될수록 나는 더 아플거다. 이제 나는 30대다. 내 가장 중요한 순간에 널 만나기로 마음먹은건 다름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람’인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교인으로서 뭐 다른게 아닌 그 자체로서의 너를 사랑했었다. 가장 네가 빛나는 순간이 오고 내 빛이 사라졌을 때 네가 나를 떠나더라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겠다. 사실 그걸 각오하고 있고 그때 이별의 핑계가 교회라면 그걸 이유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끝이 정해져있는 연애를 내가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오직 사랑이었으나, 내 사랑이 유혹이 되었다면 나는 이제 이게 잘못됨을 알고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추억이라는 포장지로 너와의 기억을 다시 감쌀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그럴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