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는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교인으로 등록하지는 않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되지 교회는 왜 꼭 다녀야 하냐고 말하고, 후자의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 되지 왜 꼭 등록 교인으로 다녀야 하냐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문맥이 달리 요구하지 않는 한, 이 글에서 “교회”는 ‘지역 교회’(‘local church’)를 의미합니다.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면 자동적으로 속하게 되는 우주적인 교회인 반면, ‘지역 교회’는 그렇게 거듭난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 또는 성도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공동체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말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의 “교회”는 ‘보편 교회’를 뜻하고, 예수님의 말씀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의 “교회”는 지역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입니다”(엡 1:22-23, 우리말성경).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위 말씀에서 “교회”는 보편 교회를 가리킵니다.
“13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됐고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됐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또한 그 몸의 지체입니다”(고전 12:13, 27, 우리말성경).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위 27절에서 “여러분” 즉 고린도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보편 교회뿐 아니라 지역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임을 말합니다. 보편 교회는 포괄적 의미의 그리스도의 몸이고 지역 교회는 그 몸의 지역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27절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라고 한 후 이어서 “또한 그 몸의 지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보편 교회에 속할 뿐 아니라 각각 지역 교회의 일원 즉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지역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누가는 성령께서 강림하신 오순절 날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고 그날 믿는 사람의 숫자가 약 3,000명이나 더 늘었”(행 2:41, 우리말성경)다고 한 다음 몇 구절 뒤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44 믿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함께 쓰며 45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눠 주었습니다. 46 그리고 날마다 성전에서 한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집집마다 빵을 떼면서 기쁨과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47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게 하셨습니다”(행 2:44-47, 우리말성경). 누가에 의하면,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모”였고 “날마다 성전에서 한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47절의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지역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볼로의 경우에서 보듯이(행 18:27), 어떤 지역 교회를 섬기는 성도가 타 지방으로 이주할 때 그 지역 교회는 타 지방의 지역 교회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가 이주 후 타 지방의 지역 교회를 섬기는 것을 당연시했던 것입니다.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일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지체들을 각각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몸에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하거나 머리가 발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12:14-16, 18, 21, 우리말성경).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체들을 각각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몸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성도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성령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눠 주”십니다(고전 12:7, 11, 우리말성경).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각 그리스도의 몸인 지역 교회의 지체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지키고 그가 받은 은사를 활용하여 지체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몸에 속하지 않거나 필요하지 않은 지체는 없습니다. 따라서 어느 지체도 다른 지체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19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낯선 사람들이거나 나그네들이 아니라 성도들과 동등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사람들이요,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습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돼 주 안에서 함께 자라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22 여러분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엡 2:19-22, 우리말성경).
위 말씀에서 “여러분”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엡 2:11). 19절에 의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빌 3:20)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신 “하나님의 건물”(고전 3:9, 우리말성경)입니다. 벽돌과 벽돌이 서로 맞춰지고 연결되어 건물이 세워지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서로 연결되어 “거룩한 성전”이 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또한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딤전 3: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은, 앞서 본 대로, “하나님의 가족”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히 3:6)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고(히 3:6), 베드로도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벧전 2:5)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고 “하나님의 가족”이며 함께 신령한 “하나님의 건물”, 하나님의 “집”을 이루는 “산 돌”들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잠시 교회에 가지 못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원하면 교회를 다닐 수 있는데도 계속해서 교회를 안 다닐 수는 없습니다. 집이나 직장에서 성경을 읽고 주일날 집에서 TV나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는 것으로 교회 출석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물론, 등록할 교회를 정할 때까지 잠시 비등록 교인으로 교회를 다니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주된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 문제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아서, 그리고 둘째, 구속 받기 싫어서입니다. 이 두 가지를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남에게 사기쳤거나 기타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교회의 직분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탐욕이나 음행으로 인해 손가락질을 당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계속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요?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판단하는 그것으로 그대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그대가 똑같은 일들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진리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내린다는 것을 압니다. 3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면서 똑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4 아니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대를 회개로 이끄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합니까? 5 그대의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그대는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날 그날에 그대에게 임할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롬 2:1-5, 우리말성경).
바울은 3절에서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면서 똑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라는 수사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2절과 3절의 “그런 일”은 바로 몇 구절 전 로마서 1장 29절, 30절 및 31절에 열거된 다음 일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질투와 살인과 다툼과 사기와 악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수군거리기를 좋아하고, 서로 헐뜯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건방지고, 교만하고, 자랑하기 좋아하고, 악한 일을 궁리해 내고, 부모를 거역하고, 어리석고, 신의가 없고, 인정도 없고, 무자비한 자들입니다”(우리말성경). 문제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다는 이유로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계속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사람은 위에 열거된 것들 중 어느 것도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바울은 “서로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빌 2:3하, 우리말성경)기라고 했습니다.
구속 받기 싫어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계속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다음 성경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합니다. “각자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섬기십시오”(벧전 4:10, 우리말성경); “각자 자기 자신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십시오”(빌 2:4, 우리말성경); “여러분은 서로 짐을 나눠 지십시오. 그렇게 함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법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갈 6:2, 우리말성경).
“23 그러고는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4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은 구하게 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눅 9:23-25, 우리말성경).
앞서 봤듯이, 하나님의 뜻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각 지체로서 지역 교회를 섬기고 “성도 공동의 유익을 위”해 그가 받은 은사를 활용하면서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계속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자기 편한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말씀을 보면, 문맥상 23절 중 “자기를 부인하고”의 “자기”와 25절의 “자기” 및 24절의 “자기 생명”은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생명”의 “생명”은 헬라어 명사 ‘psuche’의 번역인데 이 명사는 ‘생명’이라는 의미 외에 ‘혼’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에서 “영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바로 이 ‘psuche’입니다(‘psuche’는 영과 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혼만을 뜻합니다). 혼의 세 가지 기능 또는 능력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줄여서 지·정·의)이고 혼 안에 자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23절의 “자기를 부인하고”는 혼과 자아가 주도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생각, 자기의 느낌, 자기의 욕구와 선택을 내려놓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계속 비등록 교인으로 다닌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 느낌, 욕구, 선택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면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요 3:36; 히 3:18-19).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것은 당신께 계속 순종하는 사람들에게입니다(히 5:9).
“24 또한 우리는 사랑과 선한 일들을 격려하기 위해 서로 돌아봅시다. 25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들 스스로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 권면합시다. 또한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렇게 합시다”(히 10:24-25, 우리말성경).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내주셨”던 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딛 2:14, 우리말성경)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선한 일들을 격려하기 위해 서로 돌아”봐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들 스스로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 권면”하자고 했습니다. 당시에도 모이는 일을 습관적으로 소홀히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나 봅니다. 25절 후반부의 “그날”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를 말합니다(고전 3:13). 우리는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면 “사랑과 선한 일들을 격려하기 위해 서로 돌아”보는 것이나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 권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에 순복하며 지체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교회 성도들과 교제하지 않고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나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다른 성도들과 떨어져 혼자 있는 그리스도인은 사탄의 공격에 몹시 취약합니다. 무리와 떨어져 혼자 있는 양은 살아남기 힘듭니다
'꼭 교회에 다녀야 하나요'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는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교인으로 등록하지는 않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되지 교회는 왜 꼭 다녀야 하냐고 말하고, 후자의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 되지 왜 꼭 등록 교인으로 다녀야 하냐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문맥이 달리 요구하지 않는 한, 이 글에서 “교회”는 ‘지역 교회’(‘local church’)를 의미합니다.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면 자동적으로 속하게 되는 우주적인 교회인 반면, ‘지역 교회’는 그렇게 거듭난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 또는 성도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공동체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말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의 “교회”는 ‘보편 교회’를 뜻하고, 예수님의 말씀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의 “교회”는 지역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입니다”(엡 1:22-23, 우리말성경).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위 말씀에서 “교회”는 보편 교회를 가리킵니다.
“13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됐고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됐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또한 그 몸의 지체입니다”(고전 12:13, 27, 우리말성경).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위 27절에서 “여러분” 즉 고린도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보편 교회뿐 아니라 지역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임을 말합니다. 보편 교회는 포괄적 의미의 그리스도의 몸이고 지역 교회는 그 몸의 지역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27절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라고 한 후 이어서 “또한 그 몸의 지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보편 교회에 속할 뿐 아니라 각각 지역 교회의 일원 즉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지역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누가는 성령께서 강림하신 오순절 날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고 그날 믿는 사람의 숫자가 약 3,000명이나 더 늘었”(행 2:41, 우리말성경)다고 한 다음 몇 구절 뒤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44 믿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함께 쓰며 45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눠 주었습니다. 46 그리고 날마다 성전에서 한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집집마다 빵을 떼면서 기쁨과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47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게 하셨습니다”(행 2:44-47, 우리말성경). 누가에 의하면,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모”였고 “날마다 성전에서 한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47절의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지역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볼로의 경우에서 보듯이(행 18:27), 어떤 지역 교회를 섬기는 성도가 타 지방으로 이주할 때 그 지역 교회는 타 지방의 지역 교회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가 이주 후 타 지방의 지역 교회를 섬기는 것을 당연시했던 것입니다.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일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지체들을 각각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몸에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하거나 머리가 발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12:14-16, 18, 21, 우리말성경).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체들을 각각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몸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성도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성령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눠 주”십니다(고전 12:7, 11, 우리말성경).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각 그리스도의 몸인 지역 교회의 지체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지키고 그가 받은 은사를 활용하여 지체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몸에 속하지 않거나 필요하지 않은 지체는 없습니다. 따라서 어느 지체도 다른 지체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19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낯선 사람들이거나 나그네들이 아니라 성도들과 동등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사람들이요,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습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돼 주 안에서 함께 자라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22 여러분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엡 2:19-22, 우리말성경).
위 말씀에서 “여러분”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엡 2:11). 19절에 의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빌 3:20)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신 “하나님의 건물”(고전 3:9, 우리말성경)입니다. 벽돌과 벽돌이 서로 맞춰지고 연결되어 건물이 세워지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서로 연결되어 “거룩한 성전”이 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또한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딤전 3: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은, 앞서 본 대로, “하나님의 가족”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히 3:6)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고(히 3:6), 베드로도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벧전 2:5)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고 “하나님의 가족”이며 함께 신령한 “하나님의 건물”, 하나님의 “집”을 이루는 “산 돌”들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잠시 교회에 가지 못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원하면 교회를 다닐 수 있는데도 계속해서 교회를 안 다닐 수는 없습니다. 집이나 직장에서 성경을 읽고 주일날 집에서 TV나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는 것으로 교회 출석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물론, 등록할 교회를 정할 때까지 잠시 비등록 교인으로 교회를 다니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주된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 문제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아서, 그리고 둘째, 구속 받기 싫어서입니다. 이 두 가지를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남에게 사기쳤거나 기타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교회의 직분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탐욕이나 음행으로 인해 손가락질을 당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계속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요?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판단하는 그것으로 그대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그대가 똑같은 일들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진리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내린다는 것을 압니다. 3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면서 똑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4 아니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대를 회개로 이끄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합니까? 5 그대의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그대는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날 그날에 그대에게 임할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롬 2:1-5, 우리말성경).
바울은 3절에서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면서 똑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라는 수사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2절과 3절의 “그런 일”은 바로 몇 구절 전 로마서 1장 29절, 30절 및 31절에 열거된 다음 일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질투와 살인과 다툼과 사기와 악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수군거리기를 좋아하고, 서로 헐뜯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건방지고, 교만하고, 자랑하기 좋아하고, 악한 일을 궁리해 내고, 부모를 거역하고, 어리석고, 신의가 없고, 인정도 없고, 무자비한 자들입니다”(우리말성경). 문제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다는 이유로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계속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사람은 위에 열거된 것들 중 어느 것도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바울은 “서로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빌 2:3하, 우리말성경)기라고 했습니다.
구속 받기 싫어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계속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다음 성경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합니다. “각자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섬기십시오”(벧전 4:10, 우리말성경); “각자 자기 자신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십시오”(빌 2:4, 우리말성경); “여러분은 서로 짐을 나눠 지십시오. 그렇게 함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법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갈 6:2, 우리말성경).
“23 그러고는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4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은 구하게 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눅 9:23-25, 우리말성경).
앞서 봤듯이, 하나님의 뜻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각 지체로서 지역 교회를 섬기고 “성도 공동의 유익을 위”해 그가 받은 은사를 활용하면서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계속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자기 편한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말씀을 보면, 문맥상 23절 중 “자기를 부인하고”의 “자기”와 25절의 “자기” 및 24절의 “자기 생명”은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생명”의 “생명”은 헬라어 명사 ‘psuche’의 번역인데 이 명사는 ‘생명’이라는 의미 외에 ‘혼’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에서 “영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바로 이 ‘psuche’입니다(‘psuche’는 영과 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혼만을 뜻합니다). 혼의 세 가지 기능 또는 능력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줄여서 지·정·의)이고 혼 안에 자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23절의 “자기를 부인하고”는 혼과 자아가 주도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생각, 자기의 느낌, 자기의 욕구와 선택을 내려놓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아예 다니지 않거나 계속 비등록 교인으로 다닌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 느낌, 욕구, 선택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면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요 3:36; 히 3:18-19).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것은 당신께 계속 순종하는 사람들에게입니다(히 5:9).
“24 또한 우리는 사랑과 선한 일들을 격려하기 위해 서로 돌아봅시다. 25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들 스스로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 권면합시다. 또한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렇게 합시다”(히 10:24-25, 우리말성경).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내주셨”던 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딛 2:14, 우리말성경)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선한 일들을 격려하기 위해 서로 돌아”봐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들 스스로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 권면”하자고 했습니다. 당시에도 모이는 일을 습관적으로 소홀히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나 봅니다. 25절 후반부의 “그날”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를 말합니다(고전 3:13). 우리는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비등록 교인으로 다니면 “사랑과 선한 일들을 격려하기 위해 서로 돌아”보는 것이나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 권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에 순복하며 지체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교회 성도들과 교제하지 않고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나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다른 성도들과 떨어져 혼자 있는 그리스도인은 사탄의 공격에 몹시 취약합니다. 무리와 떨어져 혼자 있는 양은 살아남기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