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평양에서 공연을 펼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클래식200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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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평양에서 공연을 펼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어제 평양에서 공연을 펼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842년 창립된 뉴욕필은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미국 역사의 70% 가까운 세월의 기간 동안 지속적인 활동을 하면서 미국인들의 음악적 삶을 이끌며 발전시켜왔다. 베를린필, 비엔나필과 함께 세계 3대 교향악단의 하나다. 구스타프 말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레너드 번스타인, 주빈메타등이 음악감독겸 지휘자를 거쳐갔고 2002년부터 지금까지 로린 마젤이 바통을 이어받아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어제 평양에서 공연을 펼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로린 마젤]   2002년부터 이 교향악단을 지휘하고 있는 로린 마젤은 원래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에서 교육받고 자란 뉴요커다. 7살에 지휘 레슨을 받기 시작해 8세 때 아이다호대학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지휘자로 데뷔하면서 ‘음악신동’으로 불렸다. 배우였던 아버지는 2차 대전 당시 피츠버그의 탄약공장에서 일했다. 그 인연으로 마젤도 피츠버그 심포니 활동을 3년간 했다. 바이올린을 들고 현악 4중주를 연주했고 개인연주회도 가졌다.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며 경제학과 문학,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천재도 한두 번은 자신의 재능에 회의를 품는 법이다. 마젤도 마찬가지였다. 20세가 되면서 그는 자신의 음악재능에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 배우기 위해 1951년에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베를린과 런던에서 지휘자로 활동한 뒤 미국으로 돌아와 클리블랜드와 피츠버그 오케스트라에서 정확한 연주로 명성을 얻었다. 1982년에는 비엔나에서 오페라단을 이끌기도 했으나 1990년대 초반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이어 베를린필 지휘자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의 연봉은 발표되지 않았으나 연간 200만달러(19억원)로 추정된다         [어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던 동평양대극장]
어제 평양에서 공연을 펼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로비가 웅장하다.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듯.
어제 평양에서 공연을 펼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관객석은 원래 2000석이었으나 1500석으로 여유있게 개조했다고 한다.
어제 평양에서 공연을 펼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로비에 걸려있는 '울림폭포의 가을'. 높이만 24m라고 한다.
어제 평양에서 공연을 펼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2층에 걸린 33m회벽화. '삼지연못가'       로린 마젤은 평양공연을 앞두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우리는 왜 평양에서 공연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는데 (월스트리트 저널은 뉴욕필의 평양공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북한측이 초청 의사를 밝혔을 때부터 보통의 북한 시민들이 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면서 “이번 공연은 미국 음악의 생명력과 뉴욕필하모닉의 독창적인 세계를 소개하는 전기”라고 말했다.
그는 “음악은 본질적으로 정치와 무관한 것이지만 뉴욕필이 평양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 미국의 존재를 일깨우고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지난 수십년간의 음악 인생에서 정치적 상황을 여러번 겪었다. 소련의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실각한 1964년 10월 모스크바의 호텔에 있다가 텅빈 거리에 진주한 탱크들을 뚫고 리허설 장소에 와서 러시아 국영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했고 도이치 오페라 음악감독(1965-71년) 시절 공산치하의 동베를린에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도이치 오페라의 가수 4분의 1은 과거 그들의 적이었던 미국인이이었지만 음악으로 화합했고 소련에서도 미국의 연주자들은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독재체제와 인권 유린에 따른 비판을 의식한듯 “인권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다. 특히 자유의 표현을 열정적으로 해야 하는 예술가로서 전체주의의 공포와 무자비한 고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훼손과 같은 문제를 음악적 텍스트로 확립하는데 힘써 왔다. 그로부터 내린 결론은 예술과 예술가는 연주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어제 평양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공연이 끝났음에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기립박수를 쳤다고 한다. 나도 방송을 보면서 마지막에 아리랑이 울려퍼질땐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방북공연을 위해 큰 결심을 했을 관계자들은 아마도 음악의 힘, 문화와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딱딱하고 삭막한 대치상황 속에 놓인 서로의 관계가 조금은 부드러워졌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