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본 일기-21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200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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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내가 오늘은 그 면상 좀 봐야겠네. 아무래도 수상하단말이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처음 계획과 달리 디데이를 따로 잡지 않고  바로 처들어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의 하교시간에 맞추려면 수업을 한시간 정도 빼먹는건 불가피했다.

마침 월요일이라 마지막 수업은 HR이었다.

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배째란 식으로 월담을 하느냐 아니면, 담팅(- 주 : 담임 선생님을 일컬으는 은어입니다. 이런 은어는 사용하지 맙시다. ㅡ.ㅡ; )에게 거짓말을 하고 조퇴를 하느냐.

그 당시 우리 학교는 수업시간에는 교문을 걸어두고 수위아저씨께서 지키고 계셨는데, 그 수위아저씨가 보통분은 아니셨다.

우락부락한 외모도 무섭고 덩치는 우리들 세배는 돼 보였으며,  혹자는 프랑케슈타인이라고도 불렀다. 

어른인 남자선생님들조차 그 분 옆에서면 아이처럼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예전에 깡패였다, 시골에서 씨름장사였다, 소도둑질하다가 걸렸다, 교도소를 두세번 드나들었다는 등등  무성한 소문의 주인공이셨다.

만약 월담을 하다가 아저씨께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 것은 물론 정학까지 감수해야 될지 모르는데, 고작 얼굴도 모르는 창수란 놈 땜에 그러기엔 위험부담이 매우 컸다.

일단 점심시간에 친구 녀석들과 축구를 하다 교문 근처로 공을 몰아가며 동정을 살폈다. 

아저씨는 가뜩이나 큰 눈을 부라리며 나를 쳐다봤다.

'젠장, 역시 무리군. 작전상 후퇴, 아니 작전 불가다.'

나의 빠른 상황 판단력으로는 월담은 무리라 판단됐다. 

역시 수업시간에 아저씨가 지키고 계신 교문을 무사히 통과하는 방법은 담팅의 조퇴증이나 외출 허가증 말고는 거의 불가능했다.

이제 담팅을 노리는 수 밖에 없었다.

불행히도 우리 담팅은 체육이었고, 역시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니었다.

암호명은 날으는 돈까스.

주 체벌도구인 하키스틱을 항상 왼손에 쥐고 흔들고 다니며 우리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셨다.

맘에 안드는 학생을 보면 무조건 팬 다음  훈계를 하신다는 독특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계셨으며,  늘 손에 들고 있던 하키스틱이 없으면 교실 뒷편에서 굴러다니던 마대걸레자루를 분질러서 대용하시기도 했다.

가끔 이마저 여의치 못하면 아무거나 눈에 띄는데로 잡고 휘두르셨다.

이에 우리는 때때로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담팅 손에 잡히는 체벌도구 때문이었다.

담팅 머리로 박치기를 당하는 행운(?)을 맞는 녀석도 있는가 하면, 출석부로 머리를 맞기도 하고 의자에 맞거나, 기마자세 한시간, 원폭자세 30분, 운동장 오십바퀴 등 우리 입맛(?)에 맞춰 매우 다양했다.  

그렇게 별명만큼이나 존재감있는 성품으로, 한창 반항기 넘치는 우리를 꽉 잡고 흔드실 정도였다. 

마지막 국어시간 내내 국어 샘의 눈을 피해 담팅에게 할 거짓말 시나리오를 열심히 써내려갔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왠지 불안함 마음에 옆에 앉은 짝에게 조용히 물었다. 

"야! 나 이따 조퇴할건데..."

"뭐, 임마? 왜?"

"급한 일 생겨서. 담팅한테 거짓말좀해야 되는데 니가 좀 들어봐 주라."

"미친 놈. 너 걸리면 죽어." 

"일단 들어봐."

연습장에 쓰인 내 시나리오를 읽은 녀석은 비웃음을 날렸다.

"너, 이거 어떻게 뒷수습하려고 하냐?"

"몰라, 나중가서 생각하지, 뭐." 

친구녀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끝나고 책가방을 챙겨들고 체육 준비실에 있는 담팅을 찾아갔다.

"저, 선생님."

"어? 그래, 반장. 들어오너라. 무슨 일이냐?"

"저, 상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무슨 일인데?"

반장이라는 어설픈 직책을 맡고 있는데다, 상위권 성적이었던 내게 담팅은 비교적 호의적이었다.

"선생님, 저 운동하고 싶습니다."

"뭐? 갑자기 무슨 운동?"

"저도 하키부에 들고싶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제가 하키에 자질이 있는지 판단해주십시오. 비록 지금 제가 부족해도 선생님께서 지도해주시면, 열심히 해서 훗날 뛰어난 하키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학교 운동부로는 그 당시 중학교엔 거의 없는 필드하키부가 있었다.

화려한 전적에도 불구하고 필드하키가 점점 인기가 하락하자 존폐의 위기까지 몇번 맞이한 적도 있는 필드하키를 시작하겠다고 하니 담팅은 당황해했다.  

"음. 어린 놈이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이군. 니 결심이 확고하다면, 난 찬성이다. 넌 운동신경도 뛰어나니 금새 일취월장할 것이다." 

내 긴 연설에 만족했는지, 담팅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했다.

"그런데...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뭐? 문제라니?"

"부모님께서 반대하십니다.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싶은데..."

"그래? 네가 설득하기 어려우면 내가 도와주랴?"

"네. 하지만, 먼저 부모님께 진지하게 의논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당장 조퇴라도 하고 부모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 그렇게 까지......??"

"아닙니다. 지금 당장 말씀드리고 하키스틱을 잡고 싶습니다. 선생님, 도와주십시오."

"어... 그래. 그러렴."

담팅은 뭔가 석연찮아 하면서도 내게 조퇴증을 써줫다.

조퇴증을 받아든 난 멋지게 담팅을 속였다는 성취감에 잽싸게 교문을 향해 돌진했다.

"야! 너 뭐야?"

"여기요!"

프랑케슈타인에게 조퇴증을 보여주고는 나는듯이 달렸다.

 

우리 학교에서 버스로 30 분 정도 떨어진 그녀 학교에 도착하니, 벌써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저기, 혹시 2학년 7반 끝났어요?"

혹시나 그녀 반이 일찍 끝난건 아닌가 싶어 막 교문을 빠져나오는 여학생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아뇨, 7반 아직 종례중인데..

플라타너스 아래 털썩 주저 앉아 교문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얼굴을 빠뜨리지 않고 살폈다.

얼마 지나지않아 뭐에 신났는지, 친구와 재잘거리며 나오는 그녀 모습도 보였다.

"야! 임마!"

근처를 지나가던 애들 몇명이 돌아봤지만 그녀는 정말 못들었는지, 아니면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생각됐는지 고개 한번 돌아보질 않았다.

"야!!! 죽을래?"

큰소리로 부르자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그제서야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어? 정경민! 너 학교 일찍끝났어? 우리 집으로 가있지 왜 학교까지 왔어?" 

"임마! 너보려 온거 아니야. 친구가 이 동네 산다길래 왔다가 지나가는 길이었어."

"아~. 그래? 가자."

"잠깐. 가다니? 어딜?"

"어? 우리집 안가? 마왕보구 가."

"음. 참, 너 전에 말한 애 있잖아. 걔 벌써 집에 갔냐?"

"전에? 누구?"

"창수. 너 맨날 노래부른 애."

"아, 아니. 곧 나오겠지. 왜?"

"그냥, 여기까지 왔는데 누군지 면상이나 한번 보고갈까?"

"뭐? 니가 왜... 앗!!"

그녀의 놀란 시선이 멈춘 곳을 바라보니 왠 어리숙한 놈이 혼자 엉기적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왜? 혹시 쟤냐?"

"어..."

황당 그자체다.

평범하다 못해 이름만큼 촌스러워 보이는 녀석이라니.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면 안된다고 배웠지만, 솔직히 우리 나이 또래에 외모 말고 무얼보고 반하겠는가.

160cm도 안되보이는 짤막한 키에, 빡빡 깎은 스포츠 머리, 그녀만큼이나 작아보이는 새우눈, 뒤룩뒤룩 살찐 허리, 그 작은 키에 비해서도 유난히 짧아보이는 다리까지.

너무 허탈했다.

고작 저정도라니.

"하하하. 야, 집에 가자!"

실소를 자아내게하는 그 외모에 안심하고는 그녀를 끌고 집을 향했다. 

"갑자기 왜 웃어?"    

내 웃음에 그녀는 못 마땅한듯 입을 샐쭉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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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글을 못올린 관계루다... 오늘 두편 올렸습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