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그게 너무 힘드네요..

부모가되면서2020.02.07
조회166
안녕하세요 올해 30이 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사람입니다. 일단 밤중에 핸드폰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보니 오타 부분 이랑은 이해부탁드립니다..

저는 이혼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이혼가정이라고 평범하지 않냐 그렇기보다는 저 때에는 이혼이 흠이었는지 저희 엄마는 항상 함부로 아빠 없다는 이야기 이혼했다는 이야기 자체를 언급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특히 엄마는 제 외갓집이 되게 종친이니 뭐니 잘 모르겠지만 워낙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 더욱이 이혼에 대한 생각은 실패. 부끄러움. 여자 인생을 망친길 그렇게 인식하고 사셨습니다. 또한 그 집에서 가장 사랑받지 못한 자식으로 애정이 결핍이 되어있던 분이었지요..

그렇다보니 항상 그 애정을 제게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커서 너 엄마 모실꺼냐 안모실꺼냐. 너 결혼할꺼냐 안할꺼냐 등으로 어린 저에게 항상 확인했었고. 애정을 받지 못하고 사셔서인지 자신의 자식에게도 사랑을 주지 못해 조그마한 실수에도 두들겨 맞고 살았죠. 머리끄댕이는 기본이고 얼굴 싸대기ㅡ 삼색 빗자루라고 하면 아시려나요?? 그것가지고 온몸을 두둘겨 맞았으며. 가장 심했을 땐 식칼가지고 등을 계속 맞았죠. 손으로 등을 맞았을 땐 숨을 못쉬어서 컥컥 대다가 겨우 숨쉬어서 살았고요. 항상 __년 뭔년 ____ 너는 니애비닮아서 그따위로 산다. 등등 성적이라도 좀 안나오면 미친년 니기 애비 닮아서 성적이 그따위냐. 라던가 중학교때는 인문계 실업계 조사하는데 실업계 체크란이 앞에 있다고 너가 머리가 멍청하니까 학교에서 너 실업계 가라고 실업계를 앞에 놓은거라는 말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던 적도 있죠..
하도 맞아서 한번은 학교 가는 날에 얼굴 눈두덩이에 커다랗게 피멍이 들어서 가야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저 혼자 넘어져서 그랬다고 선생님한테 말하라고 했는데 가서는 제가 훌쩍거리면서 말하니 담임선생님이 엄마에게 연락했다가 집에 전화오게 만들었다고 또 두들겨맞았어요. 그게 8살때였네요.
그냥 어릴 때 기억을 돌아보면 그냥 맞은 기억밖에 없어요. 물 가득 들은 주전자 가져가다가 엎어서 맞고. 엄마가 장난치길래 장난 그만치세요~ 라고 했는데 장난 그만 하세요~ 라고 말 안했다고 싸가지없는년이라고 맞고 밥 하고 취사버튼 실수로 안눌러서 밥 설익게 만들었다고 맞고 이런걸로 맞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때 한번은 친구 하나가 알바를 해서 그말을 하니 걔는 돈도 알아서 버는데 너는 돈만 축게고 사냐고 너도 알바라도 하던가 너는 쓰잘데가 없는 년이라더군요. 그래서 알바 찾아서 한다고 하니 그거한다고 성적떨어졌다는 핑계 대지말라고 공부나 하라고 해서 다시 안한적도 있죠..ㅎㅎ

아빠랑은 거의 연락도 안하고 지냈습니다. 엄마가 극도로 싫어했거든요. 7살때까지만 해도 아빠 없는줄알고 친구들이 아빠에 대해 물어보면 "응? 우리아빠 죽었는데~~"하고 말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기억부터는 한번씩 아빠를 만나 양육비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아빠한테 돈 받으라고 해서 받으러 간거거든요..ㅎㅎ 나중에 이부분은 물어보니 아빠가 절 보고싶어서 저 다니던 어린이집에 찾아왔는데 제가 "아저씨는 누구세요?"라고 했다더군요..ㅋㅋ
그렇게 23살까지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는 인문계로 대학교는 사회복지학과를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어차피 돈 벌어야할거 실업계 가겠다고 했다가 진짜 두들겨맞고는 인문계 갔습니다. 대학교 갈쯤에 대학교 등록금 못내주니 니가 알아서 가라 하더군요.. 그럴거면 실업계 보내지 왜 인문계를 보낸걸까요? ㅎㅎ 다행히 저희집이 수급자여서 장학금 지원받아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모자른 부분은 학교 장학금으로 충당해 다닐수있었어요. 수능 보자마자 한 말은 돈 벌어오라고. 그래서 수능 끝나고 일주일뒤에 바로 콜센터 알바를 시작했죠. 하루도 쉬지말고 꽉꽉 채워서 일하래가지고 아침 10시반부터 저녁 10시반 점심 1시간 제외하고 11시간을 일했습니다. 알바비요? 너같은 년은 돈 받으면 싹 써버린다고 다 가져갔습니다. 다행히 그걸로 저 용돈 주시더군요. 딴데다는 안쓰신것같습니다. 대학교 다니면서는 계속 근로 알바를 하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돈은 엄마가 가져가셨고요
성인이 됐다고 달라지는건 없었어요.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시험기간에 수틀리면 전화와서 뭔년뭔년. 같이 기숙사 쓰는 친구들한테도 너무 창피했어요. 왜냐면 저 잘때 핸드폰에서 애들 번호 가져가서 제가 안받으면 수십번을 애들한테까지 전화해서 그년 바꾸라고 했거든요.
성인이 되서도 맞고 살았어요. 성인되면 좀 반항 좀 하지 라고 생각할수있는데 제가 진짜 뼈가 얇아요. 그에 반해 엄마는 통뼈중에서도 통뼈에요. 지금도 저는 힘으로 엄마를 못이겨요. 한번은 반항한다고 힘썼다가 나뒹굴고 뒤지게 맞았어요 ㅋㅋㅋ
그렇게 23살까지 살다가 11월경 조기취업해서 다른지역으로 자취하면서 나가살게 되었죠.
그때 처음 받았던 월급이 세후 153만원.. 거기서 월세 34만원 매주 집을 갔으니까 교통비 15만원 생활비 40만원 통신비 7만원 적금 40만원 나머지 여비비로 나갔는데 무슨 제가 돈을 겁나게 버는 마냥 가면 족족 저보고 다 긁으라해서 적금도 제대로 못내게 되더군요..
나중가서는 제가 왜 이러고 사나 싶어 엄마한테 맞을때 벽에 머리박고 소리지르고 죽겠다고 난리치니 절 쳐다보면서 미친년 저거 진짜 미쳤네 또라이같은년 저거 정신병원에 가둬야한다고 ㅋㅋ
그걸 1년동안 반복하니 때리는게 멈추더군요.

그리고 술에 대해서도 처음 20살 된날 마지막 콜센터 알바가 끝나고 알바친구들이랑 3월 1일에 처음으로 술을 마시러 간날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가겠다고 엄마한테 허락맡고 친구들과 술집을 갔는데 10시반에 일끝나고 10시 50분에 자리 앉으니 11시 10분부터 전화오더군요 언제 올꺼냐고..ㅋㅋㅋ 계속 전화가 와서 결국 12시 20분에 집 들어가니 알콜중독자라고 디지게 또 맞고.
술에 대해서도 한동안 멀리하다가 직장 다니며 술자리를 자주 참석했고 제가 그렇게 술을 잘먹는지는 처음알았습니다.ㅋㅋㅋ
익산와서도 친구들과 술을 먹기 시작하면 맨날 연락오고 그러길래 25살쯤부터는 그냥 잠수를 타버렸지요. 욕하면 잠수 때리면 잠수 ㅋㅋ 그러더니 그것도 1년 지나니 술먹고 들어온다고 말만하면 크게 신경 안쓰시더라고요..

이 긴글이 서론에 가까운데.. 본론으로 들어가면 저는 2017년에 지금 신랑과 사귀게 되었고. 직장에서 만나 3년 가까운 시간을 알던 사이로 지내다가 사귀었고 2018년에 결혼을 하고 2019년에는 임신으로 한 아이를 출산 했지요. 너무 예쁘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의 마음을 계속 느낄수있었어요
엄마와의 관계는 거의 신랑으로 인해 계속 좋게 이어 나갈수있었어요. 신랑이 저희집 사정 다 알고도 저 하나로도 좋다고 결혼한 사람이었고. 저희 엄마는 폭력적이었던 것은 다 사라진 대신 자기 연민만 남아있었어요. 저 임신했을 때도 신랑이 저 알뜰살뜰 챙겨주면 난 누가 챙겨주지도 않았는데.. 이러시고 저 아프다고 하면 나도 아픈데 내가 더 아픈데 그러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신랑은 어머님~ 하면서 저희 엄마까지도 그렇게 잘 챙기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가를 가면 외삼촌과 사촌오빠들은 저희 엄마만을 안쓰럽게 여기며 만날때마다 저희 엄만 불쌍한 사람이니 자네가 잘 챙겨야한다고 압박을 주고. 저보고도 니가 엄마 모셔야된다고 .. 엄마는 엄마가 혼자 너 그래도 안버리고 키운거 대단하거라고..아이를 키우면서 그런생각이 들었어요. 왜 아이는 자기들이 원해서 거기서 태어난게 아닌데. 왜 내가 감사해야하는 걸까?
맞아요. 아이를 키우다보니 정말 힘들더군요. 엄마 혼자 고생했을 것이란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폭력이 정당화 되는것도 아닌데. 왜 그게 대단한걸까. 아기를 낳은것도 부모의 의지였고 아이를 키우는것은 당연한 의무가 아닌것이었나. 그런 불만들이 쌓여갔죠.

아빠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사실 한번씩 연락하고만 지내다가 오빠가 그래도 아버님 인사드리고 해야한다 우겨서 결혼하고나서는 종종 술자리도 갖게되고 하더군요. 아빠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갖고있기보다는 하루벌어 일용직으로 일하셨어요. 일없으면 한달 넘게도 쉬고요.
최근에는 전화와서 아빠가 금융거래제한이 걸려있는데 제 앞으로 자동차보험하나 들어서 수혜자는 아빠로 하자더군요. 그래서 통장이 하나 필요한데 저보고 하나 만들으라고요.

참 지긋지긋해요. 제인생이 지긋지긋한데 그럼에도 저와 함께 해주는 신랑이 고맙고 미안해요. 전 제 부모에게 질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신랑이 붙들고 있어요. 그래도 저를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이고 장인어른 장모님이니 자긴 감사하다고요. 제가 그렇게라도 태어나서 자기랑 결혼할수있었고. 우리 사이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만날수있게 됐는데 이렇게 감사할일이 또 어딨겠녜요..
저희 시부모님 너무 좋은 분들이세요. 결혼할때도 제 가정사 어느정도 알고는 계시는 상태에서 시할머님 시할아버님 세대는 부모님이 다 계시는지가 중요한데 할머님 할아버님이 저희 신랑 결혼얘기하면서 제 부모 뭐하시는지 물어보시는데 "그러게요 어머님 며느리될 애가 너무 싹싹하고 야무져서 제가 그걸 안물어봤네요. 그런데요 저는 00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바로 허락해버렸어요ㅡ 부모님에 대해 안물어볼정도로요. 어머님 다음에 한번 물어볼게요^^ "이렇게 대답하셨다더군요.
그럼에도 못사는 사람들이 더하다고 저희 아빠는 집 3년안에 니가 해와라 이러질 않나 엄마는 손주 태어날때 기저귀 몇개 사주는게 애기용품 사주는거라고 하면서(결국 대판 싸우고 50만원 주시기는 했어요..그것도 싫은소리란 싫은 소리 다 듣긴했지만..) 저희 시부모님이 조리원 비용 안주냐 하질않나 제 부모지만 너무 싫어요. 지긋지긋한것뿐인데 그래도 부모라고 놓아지지가 않는 제가 가장 지긋지긋해요. 그럼에도 또 다 감싸안아주는 신랑한테 너무 미안하고요..
그런생각이 들어요. 참 평범하게 살아간다는게 정말 이렇게도 힘들구나 싶고. 그럼에도 저를 항상 잡아주는 제 신랑에게 고맙고. 제 아이는 정말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싶다는 마음이 더 드는 것 같아요.
긴글 ..그리고 두서없이 써내린 글에 대해서 감사해요..

추가적으로 혹시 저렇게 운전자 보험에 대해서 해도 문제가 없는건지.. 아니면 거절하고 싶은데 방법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