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놓아준다는 말

ㅇㅇ2020.02.16
조회2,257

사랑해서 놓아준다는 네 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받아들일 수는 없었어.


그런 건 드라마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


대체 그런 짓을 왜 하는 거야, 늘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지금 놓는 중이야. 우습게도 널 사랑해서


그동안 봐온 너는 나한테 아흔 아홉개를 주고도 


해주지 못한 하나를 생각하면서 한없이 미안해하던 사람이니까


남들이 보면 아마 웃을 거야 둘 다 사랑한다면서 그래서 서로 놓아준다고 말하니까


놓치면 후회할 걸 안다고 항상 신기했다고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지 


너 같은 사람이 왜 그동안 누군가와 이별을 했을까, 궁금했다고 


그래서 더더욱 네 가시밭길 인생에 끌고 들어갈 수 없다고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근데 내가 너한테 다시 없을 좋은 사람이란 건 너 또한 나에게 그만큼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야


날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현실이, 지금 처한 상황이,


무게가 쌓일 때로 쌓였고 넌 지칠대로 지쳤구나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나라는 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점점 사라져간다고 느꼈을 때 


넌 그걸 견디기 힘들었을 거야.


돌이켜보면 기다린다고 말하던 나는, 마지막까지 너에게 이기적이었구나 싶어.


이런 건 나를 위한 게 아니라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지금 네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조르고 몰아붙이는 건 


결국 너를 위한 게 아닌데


끝까지 나는 너한테 부담만 줘버렸다.


더 일찍 보내줬어야 하는데 그럴 용기가 없었어. 내가 널 어떻게 잊겠어.


사실 지금도 자신 없어 그래도


그래도 널 보내주는 게 내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걸 아니까 버티려고 해.


네가 날 정리하는 게 아니라 안고 간다고 말한 것처럼 나도 널 안고 갈게


나라도 네 무게 덜어줄 수 있다면 해야지.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힘이 아닌 짐이라면


내 사랑이 부담이라면 서로한테 너무 슬픈 일이잖아. 못할 짓이지. 널 사랑한다면서 말이야.


지난밤에 널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그 짧은 길을 걸으면서 뒤돌아보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 


돌아보면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릴 거 같았거든.


끝까지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결국 못 참고 봐버렸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날 보고 있는 너를 말이야.


어두워서 네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보지 않아도 어떤 얼굴이었을지 알아


그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서 자꾸 날 따라다녀 너무 아프다.


아직 집안 곳곳 다 네 흔적들이야. 처음부터 너랑 같이한 공간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해. 


집이라는 공간이 이렇게 불편하면 안 되지 싶어서 이제 정리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아


빨리 정리를 해야 집이 좀 편해질 텐데 정리하다가 내가 얼마나 무너질지 몰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


우리에서 너와 나로 분리되는 날이 아마도 오겠지.


하루라도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그런 날이 최대한 늦어지길 바라기도 해


하루에도 열 두번 왔다 갔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중이야.


앞으로 살면서 비빔면을 보면, 빵빠레를 보면, 엘리스를 보면, 네 회사 로고가 박힌 포스터를 보면, 지나가는 검은색 투싼을 보면, 길을 걷다 노을 노래가 들리면, 놀이공원에 가면 네가 생각나겠지? 


고작 1년 반인데 세상에 네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헤어진 다음 날은 출근하지 말고 차라리 병가를 낼 걸 그랬나 봐. 


하루 절반을 밖에서 보냈거든 얼굴이 엉망이라 사무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 


이렇게 온종일 울 수도 있는 거구나 알았지


이것도 너를 만나 해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라 생각해


있잖아.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그리워하는 중이야. 너는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모르겠어.


잘 지내길 바라면서도 그래도 순간순간 내가 떠올라 아파했으면 하고 생각해 나 진짜 못됐지.


그러다가는 자꾸 못 해주고 상처 준 일만 떠올라 분명 널 행복하게 했던 순간이 더 많을 텐데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 걸 그때 그러지 말 걸 하고 되돌릴 수도 없는데 후회만 자꾸 늘어서 미안함도 같이 커져만 간다.


네가 배경 사진으로 쓴 원태연의 시 말이야. 수십 번 읽고 또 읽었어.


읽을 때마다 코끝이 찡해지는 게 문제긴 했지 너무 슬픈 글인데 한편으론 위로가 되는 거야


그래서 눈물 나도 계속 봤어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네가 이 배경 사진을 내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보고 또 봤어.


같이 했던 지난 1년 반, 너한테 사랑받던 그 시간이 단언컨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어


그래서 우리가 같이 인생의 끝을 맞이할 수 있길


우리가 마지막까지 함께이길 얼마나 바라고 바랐는지 몰라


앞으론 누군가를 바라지 않으려고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이 행복했고 고마웠어.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자꾸 말이 늘어지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웃으면서 그동안 잘 지냈냐고 난 이렇게 살고 있다고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사랑해

처음부터 그랬었고

지금도 그래

앞으로도 그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