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생 라반다씨

Bunnzzi202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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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생 9월에 태어난 라반다씨는 필자인 제 누나입니다.
라반다씨는 꿈 많았고,천진했고,사랑스러웠고,
호기심이 많고, 때론 자신의 생각을 작고 귀여운 다이어리에 펼쳐놓기도 동경하던 가수의 사진을 온통 방에 오려붙혀 놓기도 좋아하던 소녀였습니다.

그런 라반다씨에겐 언니가 한명 쌍둥이 남동생이 두명있었습니다.언니와는 두살터울이었지만, 두 남동생은 열 세살 어렸습니다.

80년의 여성분들이 모두 그렇게 느꼈듯이 두 동생들과 자신그리고 언니는 달랐습니다.

늦게 나온 동생이 신기해 열세살의 라반다씨가 동생 주변에 얼씬하면 엄마는 라반씨를 밀어내며 "동생 콧김간다"는 말을 하곤 했고,닭 백숙을 먹을때면 동생들은 커다란 닭다리를 쩍 뜯어서 하나씩 놓아두곤 했습니다.아버지는 그렇게 비싸서 가져오지 않던 '로마텐텐'캐러멜을 동생들이 장난감처럼 바닥에 문대어 거멓게 질퍽거리는 꼴이 되어도 바닥난다 싶으면 사왔습니다.

라반다씨가 열다섯이 될 무렵

아이엠에프 아버지의 실업이후 라반다씨 가족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에겐 너무도 친숙한 '아주커 치킨'이라는 치킨사업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게를 운영하느라 아버지는 오전 잠시 일하는 둥 가게를 보다가 저녁쯔음에 집에 귀가했고, 어머니는 이른 저녁에 일을 시작해 새벽에서야 집으로 귀가하곤 했습니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고스란히 라반다씨의 몫이었습니다.

라반다씨의 언니는 당시 아버지와의 불화 엄마와의 갈등 원치않고 귀찮기만한 동생 의 존재 덕택에 라반다씨를 절대로 돕진 않았습니다.

라반다씨는 종일유치원의 동생들을 하원하여 밀린 집안일, 동생들의 뒤치덕 거리 따위를 하고 늦은 저녁이면 책을 폈습니다.

라반다씨가 공부할때 쯔음이면 늘상 검은봉지에 소주두병, 아버지는 그것을 털어넣으며, 계집이 빨래 하나 제대로 할줄 모르냐느니,설거지 참에 고춧가루가 붙어있다곤 잔소리가 일쑤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주커 치킨집이 장사가 되지 않자,라반다씨의 아버지는 슬쩍 발을빼고, 전적으로 일을 어머니에게만 맡기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곤 해결하기만 방관할 뿐 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는 사방을 뛰어다니며,인수를 위해 발품 팔았고,간절한 어머니의 소망대로 좋은 조건에 인수해주게 됩니다.
이후 라반다씨의 어머니는 영업일로 종사하기 시작했습니다.처음엔 우물쭈물하던 그녀였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내고,몰두해서 아버지와 비교되지 못할만큼의 엄청난 벌이를 하곤했습니다.

5년뒤 라반씨는 대학교 새내기가 되었습니다.

라반다씨는 그렇게 빼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치열한 명문여고에서 나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지방대지만 간호학을 선택했습니다.



집안은 좀 수월 해졌지만, 라반다씨에겐 어린동생 둘과 대학 진학을 포기한 체 실업을 택한 언니가 걸려 어머니에게 손 벌릴수만 없었습니다.

라반다씨는 주변에서 독하다는 소릴 들어도 아랑곳 하지않고 죽어라 공부만 하기 시작했습니다. 라반씨는 수석자리를 내어주기도 다시받기도 하면서 수려한 성적으로 모든학기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해선,조건을 맞춰 서울대병원에 취업하게됩니다.

라반다의 상경은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졸면서 써서 종결어미가 좀...양해부탁드립니다//////

라반다씨는 지방에서 와서 냄새가 난다는,인사를 하면 뒤 돌아 쟤는 내가 잘 지내든 말든 무슨상관이냐는,이렇게 모르는 아이를 뽑았다는, 웃으며 다가갔지만 그저 지방에서 올라온 아이라고 텃세부리며 쳐내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았다.
뿐 아니라 자잘한 문제는 많았다. 새벽 출근하던 그녀는 괴한에게 납치를 당할 뻔하기도, 늦은저녁 혼자 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려기도 했다.

그녀는 가족이 그리웠고, 지방에 놓고온 애인 그리웠다.
라반다씨는 서울상경 이후, 일방적으로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지만 그는 주말마다 8시간 가량 시외버스를 타고 그녀를 보러오곤 했다.

그녀는 2년반 그렇게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간호사란 직업은 재취업이 어렵지 않았다. 라반다씨는 보름만에 지방 대형병원에 취업해 다시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역시 근무테이블은 삼교대로 빡빡했지만, 라반다씨에겐 애인이 있었다. 그녀는 사랑을 했다. 라반다씨에게 자잘한 감정은 늘 있었지만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 진지한 사랑이었다.

문제가 있다면,가족들은 그를 탐탁치 않았다.그는 부유한 가정의 막내아들이었다.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고, 공익근무 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라반다씨의 아버지 역시 방위,즉 군대를 다녀오지도 국민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입장이었다.하지만 요구하는 자질은 대단했다.

라반다씨는 스물여덟,결국 아이를 베어버린다.
처녀에 아이를 베어버려, 도망치듯 결혼식을 올리고 집을 구해 작은 주공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라반다씨는 간호일을 그만두고, 남편의 독서실 사업만으로 독박육아를 시작하게된다.

라반다씨는 당시 저체중의 여리한 여성이었고 아이를 낳고 기르자 탈모증상과 산후 우울증까지 겪게된다.

그것들이 잠잠해 질때쯤 또다시 둘째를 베었고,라반다씨는 또 아이를 낳는 것이 무서워 남편에게 묶길 권했다.

평시 라반다씨의 몰골을 보고 가엾던 남편은 정관수술을 하고 더이상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두 남자아이의 엄마로 지내던 라반다씨는 그저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에게 조차 두근거림을 느낄 수없는,자신이 소녀일 수없는 처지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한동안 자신이 가엾던 라반다씨는 결국 모든 걸 놓아버리고 아줌마가 되어버린다.

라반다씨가 서른 다섯쯔음 남편의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두 부부는 일자리를 찾아 남편은 아버지를 도와 현장일을 시작했고 라반다씨는 국밥집 아르바이트와 가정일을 맡게되었다.

그라반다씨는 다시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하혈을 하거나 쓰러지는 일이 빈번해졌다.

상황을 모른체 속 없는 둘째 남동생은 군입대를 하여 라반다씨에게 부담스러운 요구들을 시작했다.

라반다씨는 동생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었지만 통장잔고가 부족해 도와주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슬펐다.

그 마음을 알고 있던 첫째 남동생인 필자는 밤을 지세우며 울고 나가곤 했다.

그러던 그녀는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동네 종합병원에 다시한번 서류를 넣어보았다.

서류를 넣고 라반다씨는 말했다. "누나 취미는 독서라고 대답했는데 무슨 책을 최근에 읽었냐길래 공인중계사 관련된 책 읽었다고 했어. 누나 엄청 뻔뻔하지? 키득"

상병휴가인 나는 라반다씨랑 선술집에서 키득거리며
그 이야기를 했다.

그로부터 몇일뒤 라반다씨는 다시 복직했고
지금은 강인한 여성으로 라반다씨의 욕심껏 당당한
이 시대의 신여성으로 다시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