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아빠와 죄책감

괴롭다202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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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0대중반,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유부녀에요

 

그냥 누구라도 제 얘기를 들어주고, 봐주고, 객관적인 얘기를 해주셨으면 해서 장문이 될것 같은 제 얘기를 꺼내봐요..

 

사연없는 가족 없을 것이고 힘들지 않은 개인 또한 없겠지만

 

제 인생을 유년기때부터 찬찬히 떠올려보면

 

그 무엇보다 아빠와의 관계가 너무나 저를 힘들게 했고 제일 어려운 문제이기도 했어요

 

두살아래 남동생과 고생모르고 자라 결혼하셨던 엄마까지 우리 네가족은

 

그저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적도 서로의 애로사항이나 삶을 보듬어줄 여유도 없이 앞만보며 살아왔습니다

 

내 가족인 저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어떤 힘든점이 있는지 이야기 할 줄도 모르고, 아픔을 보듬어 줄줄도 모르는 채 30여년을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무능력, 무책임, 무기력 그 세글자로 표현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은 3개월을 넘기기가 어려웠고 저희가 어려서 일으킨 사업이 한차례 망한 이후로 아빠는 재기하지 못하셨고 점점 망가져갔습니다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렇게 살았어야했는지

 

아빠는 돈벌이다운 돈벌이를 하신적이 딱히 없으셨고 이것저것 손을 대기는 하셨으나 인복이 없으셨던건지 의지가 부족하셨던 건지 꾸준한게 없었습니다

 

덕분에 곱게 자란 엄마는 제가 중학생이 되자마자 안해보신 일이 없을정도로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습니다

 

아빠는 믿는구석(?)이 생겨서인지 더더욱 아무것도 안하시고 그저 안방에서 게임하거나 흡연하거나 잠자거나 음악듣거나 티비보거나 가끔 술먹고와서 신세한탄하며 울거나 이유없이 저희두남매 종아리를 때리거나..? 솔직히 좋은 기억이 많이는 없습니다

 

늘 아빠는 두려운 존재였고 무서웠고 엄마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까지 들곤 했었죠

 

저는 초등학교때는 반장도 하고 공부욕심도 많아 중학교때까지는 1등을 놓쳐본적없이 엄마말을 참 잘듣는 아이었습니다

 

그래야 엄마한테 좋은딸이고 착한딸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엄마를 기쁘게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럭저럭 초등학생때까지는 살만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때부터 엄마는 늦게까지 일하시고 일찍 출근하시느라 얼굴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았고 그때부터 저는 처절한 애정결핍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집에있는 아빠는 너무 어려운 상대였고 그나마 의지할 수 있던 엄마마저도 집에 없으니

 

아마 우울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던것 같습니다

 

저또한 아빠처럼 혼자 제방에 틀어박혀 어둠을 즐기게 되었으니까요..

 

아빠는 돈벌이도 거의 하지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가정적인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이젠 고인이 되신 아빠에겐 죄송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하셨어요

 

집에서 저희 남매를 돌본것도 아니었고 엄마에게 좋은 남편도 아니었으니까요

 

고등학생때는 그렇게 열심히 하던 공부를 놓아버렸습니다

 

아빠가 외도하는 모습도 직접 목격을 했었고 그사실을 알면서도 같이 사는 엄마가 이해안되고 미웠습니다

 

더이상 좋은딸 착한딸이 되고 싶지 않아 고등학생때부터 방황하고 제 마음에 두터운 벽을 쌓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서로 말못할 마음의 병이 켜켜히 쌓여가는데도 서로의 마음이 어떤지 단 한번도 말해보지 못했던게 참 후회가 됩니다..

 

어찌저찌 간호대를 나와 간호사로 일하자마자 아빠와 처음으로 별거 아닌 일로 크게 싸우게 되었고 그길로 집을 나와 갈곳 없던 저는 외갓집에서 3년정도를 따로 살았습니다

 

중간에 한번 아빠를 찾아간적이 있었지만, (그당시 교제하던 남자친구를 결혼목적으로 소개하려던 자리에서 아빠에게 무시를 당한적이 있습니다. 결혼할때되니까 찾아온거냐며..) 너무큰 실망을 했고 다시는 아빠를 보지 않으리란 다짐을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충격이 커서 불면증약에 우울증약도 복용하기도 했었구요..

 

정말 너무나 미웠습니다

 

글로는 표현이 안될정도로..

 

평생 나에게 해준것도 없는 사람인데 결혼까지 책잡혀야하는 제 인생이 너무 우울했습니다

 

죽고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구요

 

친할머니 돌아가셨을때도 개인적인감정(돈필요한데 안줬다는..)때문에 어머니장례식장도 가지않았던 아빠였기에 저또한 아빠 장례식장 안갈거다라며 이를 갈았습니다

 

내가 받은게 없으니 나또한 아빠한테 해주지 않으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이혼하지 않고 아빠와 함께 사는 엄마 또한 미치도록 미웠습니다

 

이혼좀해달라고 까지 빌었고, 엄마와 둘이 가족상담도 해봤지만 진척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엄마의 반응은 뭐가 그렇게까지 힘든지 모르겠다, 너가 이렇게 힘들어한다는건 처음알았다, 하지만 너희들 결혼때문에 이혼은 못하겠다 였습니다

 

결국 제가 포기했었죠...

 

엄마도 정말 많이 고생하셨고 많이 힘드셨다는거 알아요

 

어쩌면 제 고통은 엄마의 고통에 비하면 손톱에 때만큼도 못할 수 있습니다

 

양가감정이라고 해야할까요? 그것도 아주 극심한 양가감정이요..

 

아빠가 너무 미운데 아빠라서 다 미워할 수만은 없는 고통스러운 날들로 제 마음은 멍들어만 갔습니다

 

나때문에 엄마가 저런 인생을 산다는 생각이 들었고 죄책감으로 괴로웠습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도 아빠와 같이 살지 않았겠지? 나도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겠지?

 

하면서요..

 

가난해서 힘들거나 불편하거나 챙피한적은 없었습니다..

 

그저 아빠가 우리가족의 생계를 위해 뭐라도 닥치는대로 일하지 않고 돈을 벌어오지 않고

 

무능력, 무책임, 무기력하게 집구석에만 허송세월하며 한량처럼 본인 하고싶은대로만 하며 사는게

 

한심했고, 원망스러웠고, 그로인해 엄마가 고통받는게 마치 내 고통인 것만 같았습니다

 

아빠가 우리를 정말 사랑한다면 어찌 저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 있을까..

 

진심으로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었어요

 

사는날동안 한번이라도 그걸 느끼게 해주셨다면

 

지금도 여전히, 제마음이 이렇게나 공허하고 아프고 그리울 수 있을까요...

 

아빠가 일방적으로 구남친과의 만남을 거부하시는 바람에 결국 그친구와는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또한 너무나 고통스러웠죠..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화목한 가정의 그는 저의 이런 환경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더더욱 아빠와 연락도 없이 단절하며 살게되었습니다

 

거의 8년 동안을요..

 

그 흔한 카톡, 문자, 전화 한번 한적없이 그렇게요..

 

그러다 남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때 마지막으로 아빠를 만나게 되었어요

 

많이 늙으셨더라구요

 

그래도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은 잊혀지지 않네요

 

저도 그날만큼은 왜인지 데면데면 하고싶지 않아 생전처음이다 싶을정도로 살갑게 인사도 하고

 

같이 셀카도 찍고, 다음에 보자 얘기까지 했었네요..

 

물론 아빠도 내가 밉기도하고 어색하기도 했겠죠.. 시종일관 무표정이셨으니까요

 

한번 경험해본적이 있어 그랬는지 제 결혼식에 아빠를 부르기가 쉽지 않았어요

 

또 거절당할까봐 너무 두려웠거든요..

 

다행히 현 남편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이런 제 환경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런 것까지 보듬어주며 결혼하자 해준 사람이에요..

 

아빠와의 관계때문에 사실 결혼도 포기하다시피 했었고 그 당시엔 아빠가 너무 미워서 빨리 돌아가셨음 좋겠다고까지 생각했었거든요..

 

그래도 남편만나 결국 아빠없이 상견례도 진행하고 남동생결혼한지 5개월도 안되서 저또한 결혼을 서둘러 하게됐어요..

 

그렇게 결혼하고 만1년만에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네요..

 

워낙 당뇨혈압고지혈증 성인병 다 있으셨는데 본인이 관리도 안하시고 담배못끊으시고

 

약도 임의로 안드시고 병원도 고집피시며 안가시더니 응급실 실려가 하루만에 홀연히 가셨네요..

 

그것도 작년 엄마 생신에 갑자기 가셨어요.. 악연도 그런 악연이 있을까요..

 

아빠가 돌아가시면 제 모든 갈등이 다 풀릴 줄 알았어요

 

속시원할거라고 후련할거라고 생각했고 후회는 절대 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벌써 1년되가는데도 여전히 힘들어요..

 

다시 우울증약을 먹어보기도 하고 개인상담도 받아보기도 하고 울고싶을땐 실컷 울어도보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넋두리도 하고

 

자주는 아니지만 남편한테 티를 좀 내보기도 하고

 

엄마랑 여행도 다녀보고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건 해보지만

 

병원에 일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몰라도 아빠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살아생전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해드린게 없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찢어질듯 괴로운 나날들이에요..

 

시간이 약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제 두번 다시 아빠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또다시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참 간사해요

 

볼 수 있을땐 눈앞에 하찮은 미움때문에 한번을 안 찾아가더니(이제와선 하찮음이라 하지만 그때는 온마음을 다해 증오했었죠..) 이제와선 그 한번을 못봄에 이렇게 땅을 치며 후회하네요

 

이제와서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아빠도 저처럼 우울증이 있었겠죠?

 

왜 마지막엔 병원도 안가시고 그렇게 마치 죽고싶었던 사람마냥 그랬는지..

 

죽음을 기다렸던건지.. 치료할 의지가 전혀 없었던건지..

 

아빠의 상태가 예전같지 않다는 가족에 말에 한번만이라도 아빠를 찾아가

 

이유라도 들어보고 병원에 가자고 설득한번 해볼껄 하는 의미없는 후회로

 

남은 제 인생이 참 괴롭네요..

 

이런 후회만큼 부질없는 후회가 또 있을까요..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끄적여보면 또 나을까 싶어 긴 넋두리를 해봅니다..

 

혹시라도 긴글 읽어주신분이 계신다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