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덥던 여름, 그때 나는 미국에 가족 여행을 가있었다. 친한 친구들이 많았던 수학학원을 오래 빠지게 되어 밀린 진도와 숙제를 걱정하던 나는 수시로 제일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았다. "반에 신입생 왔어" "남자?" "ㅇㅇ잘생겼음" "너가 보면 좋아할수도ㅋㅋㅋㅋㅋㅋ" 그때는 수준별로 반을 나눴었고 제일 높은 반이라는 이유로 쉽게 우리반으로 오지 못했는데 남학생이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한국에 오고 학원을 간 날, 내가 본 너의 모습은 기대 이하였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끼고 있던너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공부만 할 것같은 모범생 느낌이었다. 기대를 심어줬던 친구들을 흘겨보고 아무생각 없이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약 한달 뒤쯤, 중간고사 기간이었고 나는 이유도 모른채 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 약 반년을 같은 친구들과 지내고 있을 때 너가 와서 그런가, 넌 친구가 없었고 나는 그런 너와 친해지고 싶었으며, 그냥 '새로운 남학생'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그러려니 싶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후, 나는 같은 반 단톡에서 너의 프로필을 찾아 카톡을 했다. 무슨 용기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부터 너를 좋아한다고 확신했다. "시험 잘 봤어?" 그렇게 대화를 몇마디 하면서 너의 답을 기다렸지만, 생각보다 너의 답은 너무 늦었다. 하루는 너가 몇시간만에 보나 계속 너와의 대화방에서 폰만 두시간을 쳐다보고 있었던 날도 있다. 그때 너는 '카톡보다 페메'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엄격한 집안 때문에 SNS가 자유롭지 못했고, 엄마는 터무니 없는 평균을 내놓으며 이 점수가 되면 카톡이며 페북과 페메, 인스타를 모두 허락해주겠다고 하더라. 애초에 카톡도 반회장이라는 이유로 어쩔수없이 허락한거라 학기가 지나면 지워야할 위기였다. 그때부터 그냥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기말고사만을 노리고 정말 열심히. 내가 지금 고등학생이지만, 그때 더 열심히 했다는건 사실이다. 난 너가 자주한다는 페메를 하고 싶어서, 아니 너랑 페메를 하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 남들에게는 한심하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게 이유였다. 난 그 평균이 되었다. 엄마도 적잖이 놀랐고, 기말고사가 끝난 그 당일,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SNS 활동을 했다. 너에게 친구신청을 하고, 너가 받아주자마자 페메를 했다. 확실히 카톡보다는 잘보는 너가 너무 좋았다. 너가 왜 좋은지, 정말 이유도 모른채 너는 갑자기 나한테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사교성이 좋고 친화력이 좋은 나로써는 너에게 부담이 될 정도로 다가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너와 친해지는건 어려웠다. 카톡 할때는 자존심도 모르고 너가 안보고 있으면 망설임 없이 한번 더 보내던 나였는데도 불구하고, 인사하려고 손 한번 흔드는게 그렇게 겁이 나더라.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데 용기 내야지 싶어서 인사를 했고, 당황한 나머지 너는 지나쳤지. 그래도 난 꾸준했고, 어떤날은 내가 느끼기에 너가 내 인사를 기다렸다가 가는거처럼 보였다. 그래도 거리를 좁히기는 힘들더라. 그렇게 그냥저냥 난 너한테 '학원 같은반 여자애' 라고만 느껴진거지.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선생님이 바뀌었다. 한 선생님 아래서 오랫동안 함께해온터라 낯선 선생님과의 수업이 어색하고, 조금은 경계했기 때문에, 애들끼리 뭉치고 더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너랑 친해지게 된게 이때부터였다. 나는 항상 10분씩 지각하는 너가 앉을 자리를 가방으로 맡아놓고, 너가 들어오면 가방을 치워서 너가 앉게해줬다. 꼭 내 뒷자리거나, 앞자리였다. 페메로는 장난스러운 말투나 서로 단답도 쓰고, 욕도 조금씩 하고 점점 편해지는게 난 좋았다. 너도 편하게 느끼는게 보였거든. 그러다가 너는 연락이 뜸해지더라. 학원에서 자주보니까 연락에는 너무 신경쓰지 말아야지 했다.
그리고 너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때 나는 '뭐 끝이네 이제 안 좋아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잠깐 속상하고 끝이었다. 깊게 좋아한게 아님을 깨달은 때였다. 그리고 나도 남자친구가 생겼다. 생각 없이 고백을 그냥 받았다. 단지 너를 좋아했던 마음을 깔끔히 없애기 위해서였다. 딱히 너 생각은 안 났다. 아니, 안 했다는 표현이 맞는거겠지. 그런데 얼마안가서 나는 헤어졌다. 그러니까 너 생각이 나더라. 학원에서 다시 말도 걸고 친한 척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너도 헤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너랑 페메가 끊이지 않고 됐다. 난 너한테 "나 너 좋아했었어 넌 몰랐겠지만~" 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과거형이었다.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말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너가 알고있었던 것 같기도하다. 걱정과는 다르게 전혀 어색해지지 않고 서로 연애 얘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그랬다. 너무 졸렸던 새벽에 눈을 비비면서도 너와 연락을 계속 하고 싶었다.
우린 점점 더 친해졌다. 이제 난 너한테 '학원에서 제일 친한 여자애'가 되었더라.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친구들은 너한테 말을 해야될 때 나한테 부탁했고, 나는 그게 좋았다. 너를 처음 본지 1년이 지난 그 때쯤, 난 또 남자친구가 생겼다. 내가 많이 좋아한 남자애였다. 친한 남자애랑은 연락을 해도 된다는 그 애의 말에 나는 너와 연락을 끊지 않았다. 그런데 넌 항상 늦게 보던 연락을, 내가 그 남자애랑 사귈때는 너무 잘보더라. 솔직히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그때는 시험기간이었고, 연락이 잘 안되던 남자친구와는 달리 너는 내 연락을 너무 잘봤다. 그래서인지 나는 흔들렸다. 내가 쓰레기 같고 나쁜년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이라서 인정하고 항상 반성한다. 나는 그 애와 헤어지고 싶었고, 헤어지고 싶은 여자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난 차였다. 그때는 후련하고, 너와 잘해볼 생각을 다시 하게되었다. 그런데 마법처럼 너는 내가 헤어지니까 연락을 다시 안보더라. 허탈했다. 너 하나 때문에 그 애가 아닌 너와 잘해보고 싶어서 헤어진거였는데. 그리고 나는 그 애에게 미련이 생기더라. 괜히 너한테 흔들린 것 같아서 너가 너무 밉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로 지내야지' 하는 마음 때문에 화가 난 마음도 티내지 못하고 그렇게 또 너랑 난 그냥저냥 지냈다.
그때 까지도 나는 너를 '좋아했던 애'로만 생각하려했다. 단지 그게 끝이었고, 맨 처음에는 너와 나를 엮던 친구들도 그때 쯤에는 '친구' 라는 걸 확신하더라. 내가 너무 좋아했던 그 애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채 하루하루 힘들게 지내던 중, 나를 너무 좋아해주는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때쯤 너랑 나는 정말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거에도, 거리낌이 없었고 어색하지 않은 그냥 친구가 되었다.
나는 참 이상했다. 집도 가깝고 매일매일 만나던 남자친구와 사귈 때, 자꾸 너 생각이 나더라. 이유는 몰랐다. 난 항상 너에 대한 이유는 모르더라. 결국 또 헤어졌다. 내가 너를 좋아한건 아니었어도, 헤어짐에 대한 이유에 '너' 는 빠지질 않았다. 학원에 가서 헤어졌다는 얘기를 하면 너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나한테 "와 넌 또 헤어졌냐" 며 놀리곤 했다. 나를 너무 좋아해주던 남자친구에게 너무 매정하게 대하고, 못되게 행동했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건지, 한동안 아무런 남자와의 접점이 생기질 않았다. 그리고 우린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남녀공학인 나와는 다르게 너는 남고였다. 무슨 감정이었는지 너가 고민하던 고등학교에 공학이 있지도 않다는거에 혼자 좋아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거의 지나갈 때 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나이가 어려도 연애를 장난처럼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고, 이제 사귀게 될 남자한테는 정말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다 친구의 권유로 소개받은 남자애와 사귀게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잘해줬음에 자신한다. 친한 남자애들이건, 일절 연락 하나 하지않았으며, 오로지 걔한테만 집중하기위해 너와의 연락도 끊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연애를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나한테 "차갑고 무서워 그게 너 성격이여도 나한테 이러는건 이해가 안돼 그게 좋아하는 사람한테 할 소리야?" 라고 하더라. 작은 다툼이 잦았다. 나는 그냥 내 생각을 말 했을 뿐인데, 저런 답이 들렸고, 그 때 연애 도중 처음으로 너 생각이 났다. '너였으면 내 성격 때문에 화내지않았을텐데' 하고. 너는 내가 짜증을 내고 화풀이를 해도 다 받아줬었으니까. 짜증 좀 그만 내라고 구박을 하면서도 내가 화났던 일을 다 들어주던 너였다. 그래서 확신했다. 나는 너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게 틀림없다고.
어김없이 "몇번을 헤어지냐?" "또 남친 있었냐?" 고 장난을 걸어왔다. 난 이제 너를 꾸준히 좋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티를 냈다. 평소에도 장난처럼 "아 내가 너 엄청 좋아했었잖아~"라고 자주 해왔던 터라 당황하거나 사이가 어색해지진 않더라. 친구들에게는 이미 말했고, 학원 사람들 사이가 워낙 편하고 친했기 때문에 선생님들 마저 내가 널 좋아한다는걸 다 알게되었다. 그리고 너는 친구를 데려왔다. 같은 반에서 함께하게 되어서 너도 그 때쯤 생기가 돌고, 다른 친구들과도 많이 어울리더라. 여전히 내가 여자 중에서는 제일 친했지. 학원에서 너가 말이 많아지고, 반 분위기는 더 좋아졌다. 난 그 학원이 좋았다. 그 분위기가 좋았고, 너가 있어서 좋았다. 그 친구에게도 말했다. "야 내가 걔 엄청 좋아해ㅋㅋㅋㅋㅋㅋ" 친구는 알고있다고 했다. 너가 학교에서 말했다고. 나는 너가 학교에서 내 얘기를 했다는거 자체에 또 기분이 좋았다.
대놓고 티를 내는건 어렵지 않았다. 좋아한다고 볼 때 마다 얘기했고, 사귀자고도 계속 얘기했다. 너는 허탈한 듯 자연스럽게 흘려들었고, 나도 익숙해졌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생각했다. '너는 내 진심을 알까' 친구들은 하나같이 얘기했다. 진지하게 고백을 하라고. 그건 죽어도 못하겠더라. 넌 거절을 할거같았고, 그럼 아무렇지 않게 학원에서 널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진심을 장난처럼 표현했다.
나는 진하고 무거운 향의 향수를 좋아한다. 화장도 진하고 세게 하는걸 좋아하고, 그건 나에게 어울리는 화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내 화장을 좋아했고, 난 그게 익숙했다. 그런데 넌 아니더라. 내가 향수를 뿌리고 간 날이면, "아 뭐야 향수 누구야 이거 냄새 별로야" 라며 아무렇지 않게 싫은 티를 냈고, 나는 무안해져서 너를 흘겨보고 말았다. 넌 나한테 내가 쓰는 향수가 싫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향수를 안 뿌렸다. 너가 싫어하는 건 하기 싫었다. 그럼 너가 나를 좋아해줄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가까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문제를 풀 수있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있을 만큼 우린 친하기만 했다. 정말 친한거 그게 다였다. 너랑 나 둘만 자습실에 있을 때였다. "너는 내가 왜 좋냐" 라고 넌 물어봤다. 당황한 나머지 그냥 "잘생겨서ㅋㅋㅋㅋㅋㅋ 아니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하고 넘겼지만 너는 "화장 진한거 싫어해 남자 많은애도 안 좋아하고" 라며 잘라 말했다. 심장이 쿵 했다. 나에게 하는 소리가 맞았다. 나는 그날 이후로 친한 남자애들이랑도 연락을 안했다. 화장도 연하게 하고 다녔다. 오직 너가 나한테 한 말 때문에. 그리고 몇주 뒤에 난 채팅 목록을 보여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나 너 때문에 남자랑 연락 다 안해~ 봐봐 화장도 엄청 연하지?" 넌 심드렁하더라. 딱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화가났다. 다시 진한 향수를 뿌리고, 화장도 내가 하고싶은대로 했다. 널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말만 그랬다. 사실 전혀 포기하지 못했고, 엄청 많이,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좋아하고있었지만, 말로만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래야 내 자존심이 그나마 남아있는거 같았으니까.
넌 나한테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여자 안 사귈꺼라고, 여자한테 관심이 없다고 했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너가 남자를 좋아하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고 그게 사실이라면 얘기해주길 바랬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 별 생각을 다 한거였지.
그래서 널 포기했다. 너한테도 말했다. "여자 안 사귈꺼야? 그럼 어쩔 수 없네... 포기~"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많이 슬펐다. 사실 그때까지도 너 때문에 슬펐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만, 그날은 많이 슬펐다. 진작에 얘기해주지. 널 원망했다. 이렇게까지 너에 대한 마음이 커지기 전에 조금만 더 빨리 얘기해주지.
몇주는 아무렇지 않았다. 항상 하던 좋아한다는 말, 사귀자는 말. 그것만 안하면 됐다. 그러지 않고서도 너와 할 말은 많았고, 장난 칠 거리는 너무나도 많았다. 오히려 내가 그런 말을 안 하게 된 이후로 넌 부담이 없어진건지, 내가 그때서야 편해진건지 더 장난을 걸어오더라. 나로써는 싫을 이유가 없지. 조금 쓰리긴 해도 좋았다. 계속 끊임없이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게 맞는 말이겠지. 학원 사람들한테는 이제 안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널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닌건지, 내가 말한 적이 없는거 같은 애들도 다 알더라. 너한테는 기분 나쁠 수도 있었을텐데, 아무렇지 않게 "넌 진짜 대단한 아이구나?" "미치겠다 진짜" 하고 넘겨준 너가 참 고맙더라.
내가 너한테 전화를 건 적은 많았다. 심심해서, 생각나서, 그냥 목소리가 듣고싶어서 전화를 했지만 넌 항상 안 받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너가 무슨일이 있는거 같더라. 난 이야기가 듣고싶었고, 또 전화를 했다. 역시나 안 받았는데 "이따가" 라고 연락이 왔다. 엄마 때문에 집에서 전화가 안되기 때문에 독서실 간다는 핑계로 나와서 너의 전화를 기다렸고, 전화가 왔다. 너가 무슨일이 있는지 캐물었다. 넌 알려주기 싫어했고, 난 집요했다. 결국 너도 입을 열더라. 그날은 진지했다. 너도, 나도 평소같은 장난은 중간중간 주고받는거 뿐이었고 난 너의 고민을 들었다. 난 그때도 이렇게 얘기를 잘 들어주면서 너한테 점수 딸 생각이었다. 넌 갑자기 물었다. "너 아직도 나 좋아하냐?" 당황했다. 예상치 못했고, 마음 접으려던 그 때 상황에서는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었다. "음...아니 몰라 아 사실 아니 솔직히 좋아한 기간이 얼만데 900일이다 900일 와 이걸 어떻게 갑자기 포기해" 하고 생각나는 말 다 뱉었다. 그때 넌 그랬다. "나 왜 좋아하냐?" 데자뷰였다. 들어본 적 있는 이 질문. "너 나한테 이거 물어봤었잖아 기억도 안나냐" "아니 그때 그냥 형식적인거였고" 라길래 생각했다. 나는 널 왜 좋아하는건지. 모르겠다. 이유도 모른채, 이유는 모른채, 난 정말 이유가 없었다. 너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다. 내 이상형과는 전혀 다르다고 하면서 장난을 쳤다. 그래서 넌 더 특별한거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모범생같은 스타일. 질색인데, 왜 내가 널 이렇게 까지 좋아하는건지.
그 때 물어봤다.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 좀 별로야? 너무 친구같나" 돌아오는 너의 대답은 날 슬프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너 되게 괜찮아"
처음 들었다. 항상 나한테 예쁜 말 한번 안하던 너였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또 물어봤다. "왜 내가 너 좋아하던거 자꾸 모른 척하고 넘겼냐 진심이었는데" "모른 척 한게 아니고 미안해서" "그럼 좀 받아주지 왜 그랬냐" "아니 그냥...내가 마음이 없어" 듣자마자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처음 듣는 너의 진심이었으니까. 눈물이 막 났다. 그래도 티는 낼 수 없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야 좀 일찍 말하지 그럼 바로 포기했을 거 아냐~" 멋쩍은 웃음이었다. "20살 되면 무조건 사귀는거야 이건 약속해라" "너 어떻게 변했는지 좀 보고" "야 나 정도면 남자들 다 뻑가지~" 라며 나는 20살에 대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기전에 마지막으로 물어봤다. "근데 내가 너 진심으로 많이 오랫동안 좋아했어 그건 알아?" 항상 진심이라고 하면 더 부정했던 너였다. 너의 대답이 너무 궁금했다. "어 알아" 전화를 끊었다. 다리 힘이 풀렸다. 차디찼던 독서실 옥상 바닥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다. 우는 것 말고는 내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화도 아니었고, 원망도 아니었다. 그냥 너무 슬펐다. 너의 진심이 너무 크게 와닿았다. 그래도 친구라서 세게 내치진 못한거였겠지. 아직도 그 때 너의 목소리와 말투는 잊혀지지가 않는다. 얼마동안 운건지 모르겠다.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숨이 안쉬어졌고, 집을 들어가서 자기전에 또 울었다. 사실 내가 울고 싶었던 건 전혀 아니었다. 눈물이 끝을 모르더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심하게 울었던 때라 기억 못 할리가 없었다. 그 날 이후로도 우린 달라진게 없었다. 달라진거라면 내가 너한테 마음을 버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거 뿐? 그래봤자 생각이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걸어간 날이 있었다. 20살 되서는 꼭 사귀자는 나의 말에 너는 처음으로 이상형을 만날거라는 말을 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가 좋아 넌 날 몇년을 봤는데 그것도 모르냐" 또 가슴이 아렸다. 난 널 몇년을 봤고, 너가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거 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너가 나를 좋아해주면, 너한테나 나한테나 특별하니까, 그래서 더 바랬던 것도 있었다. 난 조용하고 차분하지 못한다. 정반대다. 그래서 너는 나를 안 좋아하나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말에도 타격을 받지 않더라. 내가 그냥 혼자 너를 좋아하니까. 익숙하니까.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났고, 너랑 난 그만큼 자랐다. 넌 두꺼운 뿔테 안경을 바꾼지 오래고, 나는 중학생 티 나는 화장을 안하게 된지 오래며, 너는 키가 많이 컸고, 나는 성숙해졌다.
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다닌 이 학원을 다녀야 되는 필요성을 차차 못느끼고있더라. 이과를 택한 나로써는 수학을 열심히 해야 했지만, 숙제를 안해가는건 부지기수고, 학원에 놀러간다고 밖에 안 느껴졌다. 되짚어보니 내가 공부에 신경 안 쓴지도 꽤 됐더라. 이 학원은 너와 친구들, 편한 선생님이 아니면 다닐 이유가 없었으며, 난 이제 공부를 해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을 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면서도 지금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학원을 끊기로 했다. 사실 엄마는 이 학원을 끊길 오래전부터 바랬다. 내가 생각해도 오래 다녔다고 생각하고, 이미 얻을 수 있는 건 얻었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 학원을 계속 다니는 한, 공부에 집중하지 않을거라는건 너무나도 확실했다. 극도로 우울해졌다. 학원에는 삽시간에 내가 끊는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아쉬워하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넌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아 학원 드디어 조용해지겠네" "근데 어디로 가냐?" 그렇게 물어보는 너를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기에는 내가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운명도 아니고 내가 가려는 학원은 너가 다니는 독서실의 바로 옆이더라. 물론 너가 말해서 알게된 사실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이었다. 정말 행복했다. "내가 일주일에 한번은 부르면 나와 바로 옆이잖아~" "아 귀찮게 공부하는데 왜 부른대" 안 나올 수도 있겠지. 연락이 안 될수도 있겠지. 그래도 난 널 꼭 다시 만날꺼야. 부탁을 했었다. 내가 학원을 끊으면 너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는 연락을 봐달라고. 넌 생각 해보겠다고 했다.
난 이 학원을 자주 놀러갈 셈이다. 선생님 보러, 친구들 보러, 널 보러. 내가 학원을 끊기까지 딱 한번의 수업이 남았다. 그날은 너와 내가 이 학원에서 보는 마지막 날이다. 이미 새 학원은 등록한 상태고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 요새 난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난 널 햇수로 4년을 좋아했고, 일주일에 세, 네번을 같이 수업을 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떠나서 정이 너무나도 들었는데,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는데, 내가 너랑 이제 같은 학원을 안 다닌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널 좋아하는게 하나도 특별해보이지 않겠지만, 나에게 넌 정말 특별했다. 진득하게 한 사람을 못 좋아하는 나인데, 너 하나는 꾸준히 계속 좋아한 걸 보면, 넌 정말 내 첫사랑이 맞나보다. 첫사랑은 처음으로 가장 많이 좋아한 사람이라는데 누가봐도 나한텐 너겠지. 너 하나 때문에 울고 웃은 날이 참 많았다. 솔직히 내가 새 학원을 잘 다닐 수 있을지 참 걱정이다. 아니 너가 없는 학원을 잘 다닐 수 있을지. 다른 친구들은 말하더라. 새 학원에서도 너 같은 애를 찾아서 좋아하라고. 그게 말이 쉽지. 나한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별 주접을 다 떨었다. 난 너한테 뭐였을까, 참 의미 없지만 끝까지 궁금하긴하다. 넌 날 조금이라도 좋아하지 않았던 건가, 혹시 다른 여자애를 좋아하는건가, 궁금한게 정말 많지만, 자꾸 너 생각을 하면 나한테 좋을게 없다는 걸 아니까 그만하겠다. 4년동안 너 때문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한거, 너 때문에 힘들어 했던거, 후회는 없다. 전혀 후회하고 싶지도 않고. 그만큼 넌 나한테 소중했던 기억이다. 앞으로도 내가 널 잊을리는 없을거고. 딱 한가지, 날 위해서는 '내가 널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덜 좋아할껄' 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이제와서의 생각이지. 그때의 난 정말 그 감정의 충실했고, 그건 맞는 행동이었다. 내가 널 좋아했던 기간은 나한텐 짧게 느껴졌는데, 그 기간의 반도 안되는 시간이 지나면 우린 20살이다. 내가 너랑 한 약속이 진짜 현실이 될 수 있겠지. 우리 정말 다시 만날 수 있는 거겠지. 참 보고싶을꺼야. 잘 지내야돼. 가끔 내가 널 부를 때 꼭 나와줘야돼. 공부에 방해가 안 될 정도로 아주 가끔, 너가 너무 보고싶을 때, 그때 부를게. 그러니까 너도 내 생각 가끔은 해줘야돼. 학원에서 시끄럽고 맨날 너 좋다고 붙어대던 애가 없으니까 너도 허전할거잖아 그치? 한번이라도 그냥 나 보고싶다고 생각만 해주면 참 좋겠다. 언제까지 널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널 좋아하는걸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래도 난 너를 그만 좋아하고 싶다. 내가 혼자 힘들기에는 4년도 충분했기에 난 널 4년 짝사랑이자 첫사랑으로 마무리 하고싶다.
너가 나한테 반하도록, 내가 멋진 여자가 될거다.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는, 생각해봐야할 문제지만.
꼭 다시 만나자. 넌 내가 정말 진심으로 좋아했던 첫사랑이다.
4년 짝사랑이자 첫사랑 끝냈다
사교성이 좋고 친화력이 좋은 나로써는 너에게 부담이 될 정도로 다가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너와 친해지는건 어려웠다. 카톡 할때는 자존심도 모르고 너가 안보고 있으면 망설임 없이 한번 더 보내던 나였는데도 불구하고, 인사하려고 손 한번 흔드는게 그렇게 겁이 나더라.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데 용기 내야지 싶어서 인사를 했고, 당황한 나머지 너는 지나쳤지. 그래도 난 꾸준했고, 어떤날은 내가 느끼기에 너가 내 인사를 기다렸다가 가는거처럼 보였다. 그래도 거리를 좁히기는 힘들더라. 그렇게 그냥저냥 난 너한테 '학원 같은반 여자애' 라고만 느껴진거지.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선생님이 바뀌었다. 한 선생님 아래서 오랫동안 함께해온터라 낯선 선생님과의 수업이 어색하고, 조금은 경계했기 때문에, 애들끼리 뭉치고 더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너랑 친해지게 된게 이때부터였다. 나는 항상 10분씩 지각하는 너가 앉을 자리를 가방으로 맡아놓고, 너가 들어오면 가방을 치워서 너가 앉게해줬다. 꼭 내 뒷자리거나, 앞자리였다. 페메로는 장난스러운 말투나 서로 단답도 쓰고, 욕도 조금씩 하고 점점 편해지는게 난 좋았다. 너도 편하게 느끼는게 보였거든. 그러다가 너는 연락이 뜸해지더라. 학원에서 자주보니까 연락에는 너무 신경쓰지 말아야지 했다.
그리고 너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때 나는 '뭐 끝이네 이제 안 좋아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잠깐 속상하고 끝이었다. 깊게 좋아한게 아님을 깨달은 때였다. 그리고 나도 남자친구가 생겼다. 생각 없이 고백을 그냥 받았다. 단지 너를 좋아했던 마음을 깔끔히 없애기 위해서였다. 딱히 너 생각은 안 났다. 아니, 안 했다는 표현이 맞는거겠지. 그런데 얼마안가서 나는 헤어졌다. 그러니까 너 생각이 나더라. 학원에서 다시 말도 걸고 친한 척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너도 헤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너랑 페메가 끊이지 않고 됐다. 난 너한테 "나 너 좋아했었어 넌 몰랐겠지만~" 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과거형이었다.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말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너가 알고있었던 것 같기도하다. 걱정과는 다르게 전혀 어색해지지 않고 서로 연애 얘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그랬다. 너무 졸렸던 새벽에 눈을 비비면서도 너와 연락을 계속 하고 싶었다.
우린 점점 더 친해졌다. 이제 난 너한테 '학원에서 제일 친한 여자애'가 되었더라.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친구들은 너한테 말을 해야될 때 나한테 부탁했고, 나는 그게 좋았다. 너를 처음 본지 1년이 지난 그 때쯤, 난 또 남자친구가 생겼다. 내가 많이 좋아한 남자애였다. 친한 남자애랑은 연락을 해도 된다는 그 애의 말에 나는 너와 연락을 끊지 않았다. 그런데 넌 항상 늦게 보던 연락을, 내가 그 남자애랑 사귈때는 너무 잘보더라. 솔직히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그때는 시험기간이었고, 연락이 잘 안되던 남자친구와는 달리 너는 내 연락을 너무 잘봤다. 그래서인지 나는 흔들렸다. 내가 쓰레기 같고 나쁜년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이라서 인정하고 항상 반성한다. 나는 그 애와 헤어지고 싶었고, 헤어지고 싶은 여자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난 차였다. 그때는 후련하고, 너와 잘해볼 생각을 다시 하게되었다. 그런데 마법처럼 너는 내가 헤어지니까 연락을 다시 안보더라. 허탈했다. 너 하나 때문에 그 애가 아닌 너와 잘해보고 싶어서 헤어진거였는데. 그리고 나는 그 애에게 미련이 생기더라. 괜히 너한테 흔들린 것 같아서 너가 너무 밉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로 지내야지' 하는 마음 때문에 화가 난 마음도 티내지 못하고 그렇게 또 너랑 난 그냥저냥 지냈다.
그때 까지도 나는 너를 '좋아했던 애'로만 생각하려했다. 단지 그게 끝이었고, 맨 처음에는 너와 나를 엮던 친구들도 그때 쯤에는 '친구' 라는 걸 확신하더라. 내가 너무 좋아했던 그 애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채 하루하루 힘들게 지내던 중, 나를 너무 좋아해주는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때쯤 너랑 나는 정말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거에도, 거리낌이 없었고 어색하지 않은 그냥 친구가 되었다.
나는 참 이상했다. 집도 가깝고 매일매일 만나던 남자친구와 사귈 때, 자꾸 너 생각이 나더라. 이유는 몰랐다. 난 항상 너에 대한 이유는 모르더라. 결국 또 헤어졌다. 내가 너를 좋아한건 아니었어도, 헤어짐에 대한 이유에 '너' 는 빠지질 않았다. 학원에 가서 헤어졌다는 얘기를 하면 너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나한테 "와 넌 또 헤어졌냐" 며 놀리곤 했다. 나를 너무 좋아해주던 남자친구에게 너무 매정하게 대하고, 못되게 행동했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건지, 한동안 아무런 남자와의 접점이 생기질 않았다. 그리고 우린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남녀공학인 나와는 다르게 너는 남고였다. 무슨 감정이었는지 너가 고민하던 고등학교에 공학이 있지도 않다는거에 혼자 좋아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거의 지나갈 때 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나이가 어려도 연애를 장난처럼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고, 이제 사귀게 될 남자한테는 정말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다 친구의 권유로 소개받은 남자애와 사귀게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잘해줬음에 자신한다. 친한 남자애들이건, 일절 연락 하나 하지않았으며, 오로지 걔한테만 집중하기위해 너와의 연락도 끊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연애를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나한테 "차갑고 무서워 그게 너 성격이여도 나한테 이러는건 이해가 안돼 그게 좋아하는 사람한테 할 소리야?" 라고 하더라. 작은 다툼이 잦았다. 나는 그냥 내 생각을 말 했을 뿐인데, 저런 답이 들렸고, 그 때 연애 도중 처음으로 너 생각이 났다. '너였으면 내 성격 때문에 화내지않았을텐데' 하고. 너는 내가 짜증을 내고 화풀이를 해도 다 받아줬었으니까. 짜증 좀 그만 내라고 구박을 하면서도 내가 화났던 일을 다 들어주던 너였다. 그래서 확신했다. 나는 너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게 틀림없다고.
어김없이 "몇번을 헤어지냐?" "또 남친 있었냐?" 고 장난을 걸어왔다. 난 이제 너를 꾸준히 좋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티를 냈다. 평소에도 장난처럼 "아 내가 너 엄청 좋아했었잖아~"라고 자주 해왔던 터라 당황하거나 사이가 어색해지진 않더라. 친구들에게는 이미 말했고, 학원 사람들 사이가 워낙 편하고 친했기 때문에 선생님들 마저 내가 널 좋아한다는걸 다 알게되었다. 그리고 너는 친구를 데려왔다. 같은 반에서 함께하게 되어서 너도 그 때쯤 생기가 돌고, 다른 친구들과도 많이 어울리더라. 여전히 내가 여자 중에서는 제일 친했지. 학원에서 너가 말이 많아지고, 반 분위기는 더 좋아졌다. 난 그 학원이 좋았다. 그 분위기가 좋았고, 너가 있어서 좋았다. 그 친구에게도 말했다. "야 내가 걔 엄청 좋아해ㅋㅋㅋㅋㅋㅋ" 친구는 알고있다고 했다. 너가 학교에서 말했다고. 나는 너가 학교에서 내 얘기를 했다는거 자체에 또 기분이 좋았다.
대놓고 티를 내는건 어렵지 않았다. 좋아한다고 볼 때 마다 얘기했고, 사귀자고도 계속 얘기했다. 너는 허탈한 듯 자연스럽게 흘려들었고, 나도 익숙해졌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생각했다. '너는 내 진심을 알까' 친구들은 하나같이 얘기했다. 진지하게 고백을 하라고. 그건 죽어도 못하겠더라. 넌 거절을 할거같았고, 그럼 아무렇지 않게 학원에서 널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진심을 장난처럼 표현했다.
나는 진하고 무거운 향의 향수를 좋아한다. 화장도 진하고 세게 하는걸 좋아하고, 그건 나에게 어울리는 화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내 화장을 좋아했고, 난 그게 익숙했다. 그런데 넌 아니더라. 내가 향수를 뿌리고 간 날이면, "아 뭐야 향수 누구야 이거 냄새 별로야" 라며 아무렇지 않게 싫은 티를 냈고, 나는 무안해져서 너를 흘겨보고 말았다. 넌 나한테 내가 쓰는 향수가 싫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향수를 안 뿌렸다. 너가 싫어하는 건 하기 싫었다. 그럼 너가 나를 좋아해줄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가까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문제를 풀 수있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있을 만큼 우린 친하기만 했다. 정말 친한거 그게 다였다. 너랑 나 둘만 자습실에 있을 때였다. "너는 내가 왜 좋냐" 라고 넌 물어봤다. 당황한 나머지 그냥 "잘생겨서ㅋㅋㅋㅋㅋㅋ 아니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하고 넘겼지만 너는 "화장 진한거 싫어해 남자 많은애도 안 좋아하고" 라며 잘라 말했다. 심장이 쿵 했다. 나에게 하는 소리가 맞았다. 나는 그날 이후로 친한 남자애들이랑도 연락을 안했다. 화장도 연하게 하고 다녔다. 오직 너가 나한테 한 말 때문에. 그리고 몇주 뒤에 난 채팅 목록을 보여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나 너 때문에 남자랑 연락 다 안해~ 봐봐 화장도 엄청 연하지?" 넌 심드렁하더라. 딱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화가났다. 다시 진한 향수를 뿌리고, 화장도 내가 하고싶은대로 했다. 널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말만 그랬다. 사실 전혀 포기하지 못했고, 엄청 많이,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좋아하고있었지만, 말로만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래야 내 자존심이 그나마 남아있는거 같았으니까.
넌 나한테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여자 안 사귈꺼라고, 여자한테 관심이 없다고 했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너가 남자를 좋아하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고 그게 사실이라면 얘기해주길 바랬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 별 생각을 다 한거였지.
그래서 널 포기했다. 너한테도 말했다. "여자 안 사귈꺼야? 그럼 어쩔 수 없네... 포기~"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많이 슬펐다. 사실 그때까지도 너 때문에 슬펐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만, 그날은 많이 슬펐다. 진작에 얘기해주지. 널 원망했다. 이렇게까지 너에 대한 마음이 커지기 전에 조금만 더 빨리 얘기해주지.
몇주는 아무렇지 않았다. 항상 하던 좋아한다는 말, 사귀자는 말. 그것만 안하면 됐다. 그러지 않고서도 너와 할 말은 많았고, 장난 칠 거리는 너무나도 많았다. 오히려 내가 그런 말을 안 하게 된 이후로 넌 부담이 없어진건지, 내가 그때서야 편해진건지 더 장난을 걸어오더라. 나로써는 싫을 이유가 없지. 조금 쓰리긴 해도 좋았다. 계속 끊임없이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게 맞는 말이겠지. 학원 사람들한테는 이제 안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널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닌건지, 내가 말한 적이 없는거 같은 애들도 다 알더라. 너한테는 기분 나쁠 수도 있었을텐데, 아무렇지 않게 "넌 진짜 대단한 아이구나?" "미치겠다 진짜" 하고 넘겨준 너가 참 고맙더라.
내가 너한테 전화를 건 적은 많았다. 심심해서, 생각나서, 그냥 목소리가 듣고싶어서 전화를 했지만 넌 항상 안 받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너가 무슨일이 있는거 같더라. 난 이야기가 듣고싶었고, 또 전화를 했다. 역시나 안 받았는데 "이따가" 라고 연락이 왔다. 엄마 때문에 집에서 전화가 안되기 때문에 독서실 간다는 핑계로 나와서 너의 전화를 기다렸고, 전화가 왔다. 너가 무슨일이 있는지 캐물었다. 넌 알려주기 싫어했고, 난 집요했다. 결국 너도 입을 열더라. 그날은 진지했다. 너도, 나도 평소같은 장난은 중간중간 주고받는거 뿐이었고 난 너의 고민을 들었다. 난 그때도 이렇게 얘기를 잘 들어주면서 너한테 점수 딸 생각이었다. 넌 갑자기 물었다. "너 아직도 나 좋아하냐?" 당황했다. 예상치 못했고, 마음 접으려던 그 때 상황에서는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었다. "음...아니 몰라 아 사실 아니 솔직히 좋아한 기간이 얼만데 900일이다 900일 와 이걸 어떻게 갑자기 포기해" 하고 생각나는 말 다 뱉었다. 그때 넌 그랬다. "나 왜 좋아하냐?" 데자뷰였다. 들어본 적 있는 이 질문. "너 나한테 이거 물어봤었잖아 기억도 안나냐" "아니 그때 그냥 형식적인거였고" 라길래 생각했다. 나는 널 왜 좋아하는건지. 모르겠다. 이유도 모른채, 이유는 모른채, 난 정말 이유가 없었다. 너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다. 내 이상형과는 전혀 다르다고 하면서 장난을 쳤다. 그래서 넌 더 특별한거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모범생같은 스타일. 질색인데, 왜 내가 널 이렇게 까지 좋아하는건지.
그 때 물어봤다.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 좀 별로야? 너무 친구같나" 돌아오는 너의 대답은 날 슬프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너 되게 괜찮아"
처음 들었다. 항상 나한테 예쁜 말 한번 안하던 너였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또 물어봤다. "왜 내가 너 좋아하던거 자꾸 모른 척하고 넘겼냐 진심이었는데" "모른 척 한게 아니고 미안해서" "그럼 좀 받아주지 왜 그랬냐" "아니 그냥...내가 마음이 없어" 듣자마자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처음 듣는 너의 진심이었으니까. 눈물이 막 났다. 그래도 티는 낼 수 없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야 좀 일찍 말하지 그럼 바로 포기했을 거 아냐~" 멋쩍은 웃음이었다. "20살 되면 무조건 사귀는거야 이건 약속해라" "너 어떻게 변했는지 좀 보고" "야 나 정도면 남자들 다 뻑가지~" 라며 나는 20살에 대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기전에 마지막으로 물어봤다. "근데 내가 너 진심으로 많이 오랫동안 좋아했어 그건 알아?" 항상 진심이라고 하면 더 부정했던 너였다. 너의 대답이 너무 궁금했다. "어 알아" 전화를 끊었다. 다리 힘이 풀렸다. 차디찼던 독서실 옥상 바닥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다. 우는 것 말고는 내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화도 아니었고, 원망도 아니었다. 그냥 너무 슬펐다. 너의 진심이 너무 크게 와닿았다. 그래도 친구라서 세게 내치진 못한거였겠지. 아직도 그 때 너의 목소리와 말투는 잊혀지지가 않는다. 얼마동안 운건지 모르겠다.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숨이 안쉬어졌고, 집을 들어가서 자기전에 또 울었다. 사실 내가 울고 싶었던 건 전혀 아니었다. 눈물이 끝을 모르더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심하게 울었던 때라 기억 못 할리가 없었다. 그 날 이후로도 우린 달라진게 없었다. 달라진거라면 내가 너한테 마음을 버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거 뿐? 그래봤자 생각이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걸어간 날이 있었다. 20살 되서는 꼭 사귀자는 나의 말에 너는 처음으로 이상형을 만날거라는 말을 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가 좋아 넌 날 몇년을 봤는데 그것도 모르냐" 또 가슴이 아렸다. 난 널 몇년을 봤고, 너가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거 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너가 나를 좋아해주면, 너한테나 나한테나 특별하니까, 그래서 더 바랬던 것도 있었다. 난 조용하고 차분하지 못한다. 정반대다. 그래서 너는 나를 안 좋아하나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말에도 타격을 받지 않더라. 내가 그냥 혼자 너를 좋아하니까. 익숙하니까.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났고, 너랑 난 그만큼 자랐다. 넌 두꺼운 뿔테 안경을 바꾼지 오래고, 나는 중학생 티 나는 화장을 안하게 된지 오래며, 너는 키가 많이 컸고, 나는 성숙해졌다.
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다닌 이 학원을 다녀야 되는 필요성을 차차 못느끼고있더라. 이과를 택한 나로써는 수학을 열심히 해야 했지만, 숙제를 안해가는건 부지기수고, 학원에 놀러간다고 밖에 안 느껴졌다. 되짚어보니 내가 공부에 신경 안 쓴지도 꽤 됐더라. 이 학원은 너와 친구들, 편한 선생님이 아니면 다닐 이유가 없었으며, 난 이제 공부를 해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을 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면서도 지금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학원을 끊기로 했다. 사실 엄마는 이 학원을 끊길 오래전부터 바랬다. 내가 생각해도 오래 다녔다고 생각하고, 이미 얻을 수 있는 건 얻었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 학원을 계속 다니는 한, 공부에 집중하지 않을거라는건 너무나도 확실했다. 극도로 우울해졌다. 학원에는 삽시간에 내가 끊는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아쉬워하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넌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아 학원 드디어 조용해지겠네" "근데 어디로 가냐?" 그렇게 물어보는 너를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기에는 내가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운명도 아니고 내가 가려는 학원은 너가 다니는 독서실의 바로 옆이더라. 물론 너가 말해서 알게된 사실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이었다. 정말 행복했다. "내가 일주일에 한번은 부르면 나와 바로 옆이잖아~" "아 귀찮게 공부하는데 왜 부른대" 안 나올 수도 있겠지. 연락이 안 될수도 있겠지. 그래도 난 널 꼭 다시 만날꺼야. 부탁을 했었다. 내가 학원을 끊으면 너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는 연락을 봐달라고. 넌 생각 해보겠다고 했다.
난 이 학원을 자주 놀러갈 셈이다. 선생님 보러, 친구들 보러, 널 보러. 내가 학원을 끊기까지 딱 한번의 수업이 남았다. 그날은 너와 내가 이 학원에서 보는 마지막 날이다. 이미 새 학원은 등록한 상태고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 요새 난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난 널 햇수로 4년을 좋아했고, 일주일에 세, 네번을 같이 수업을 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떠나서 정이 너무나도 들었는데,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는데, 내가 너랑 이제 같은 학원을 안 다닌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널 좋아하는게 하나도 특별해보이지 않겠지만, 나에게 넌 정말 특별했다. 진득하게 한 사람을 못 좋아하는 나인데, 너 하나는 꾸준히 계속 좋아한 걸 보면, 넌 정말 내 첫사랑이 맞나보다. 첫사랑은 처음으로 가장 많이 좋아한 사람이라는데 누가봐도 나한텐 너겠지. 너 하나 때문에 울고 웃은 날이 참 많았다. 솔직히 내가 새 학원을 잘 다닐 수 있을지 참 걱정이다. 아니 너가 없는 학원을 잘 다닐 수 있을지. 다른 친구들은 말하더라. 새 학원에서도 너 같은 애를 찾아서 좋아하라고. 그게 말이 쉽지. 나한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별 주접을 다 떨었다. 난 너한테 뭐였을까, 참 의미 없지만 끝까지 궁금하긴하다. 넌 날 조금이라도 좋아하지 않았던 건가, 혹시 다른 여자애를 좋아하는건가, 궁금한게 정말 많지만, 자꾸 너 생각을 하면 나한테 좋을게 없다는 걸 아니까 그만하겠다. 4년동안 너 때문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한거, 너 때문에 힘들어 했던거, 후회는 없다. 전혀 후회하고 싶지도 않고. 그만큼 넌 나한테 소중했던 기억이다. 앞으로도 내가 널 잊을리는 없을거고. 딱 한가지, 날 위해서는 '내가 널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덜 좋아할껄' 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이제와서의 생각이지. 그때의 난 정말 그 감정의 충실했고, 그건 맞는 행동이었다. 내가 널 좋아했던 기간은 나한텐 짧게 느껴졌는데, 그 기간의 반도 안되는 시간이 지나면 우린 20살이다. 내가 너랑 한 약속이 진짜 현실이 될 수 있겠지. 우리 정말 다시 만날 수 있는 거겠지. 참 보고싶을꺼야. 잘 지내야돼. 가끔 내가 널 부를 때 꼭 나와줘야돼. 공부에 방해가 안 될 정도로 아주 가끔, 너가 너무 보고싶을 때, 그때 부를게. 그러니까 너도 내 생각 가끔은 해줘야돼. 학원에서 시끄럽고 맨날 너 좋다고 붙어대던 애가 없으니까 너도 허전할거잖아 그치? 한번이라도 그냥 나 보고싶다고 생각만 해주면 참 좋겠다. 언제까지 널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널 좋아하는걸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래도 난 너를 그만 좋아하고 싶다. 내가 혼자 힘들기에는 4년도 충분했기에 난 널 4년 짝사랑이자 첫사랑으로 마무리 하고싶다.
너가 나한테 반하도록, 내가 멋진 여자가 될거다.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는, 생각해봐야할 문제지만.
꼭 다시 만나자. 넌 내가 정말 진심으로 좋아했던 첫사랑이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쓰니들 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