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면 하는 스탈이지만 누구보다 더 자식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서 손주 케어에 최선을 다 해 주셨다.
그런 엄니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금전적이든 엄니 모임활동이든 위신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튀어 나가서 딸랑이 해줬다. 그게 효도에 첩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PD수첩 방영전 몇 달 전부터 갑자기 엄니가 무슨 공부를 한다고 저녁 늦게 들어온다고 와이프가 주말에 집에 오면 전해주고 또 내가 주말에 오면 엄니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열등감때문에 늘 괴로워했던 엄니라 그려러니 했다.
그런데 아이들도 잠에 들고 고단했던 와이프도 주무시고
조용히 캔맥주 한 캔을 따고 TV를 켰는데 평소 자주 보던 PD수첩을 시청하는데 대충 30분 정도 시청했던 것 같다. 느낌이 아주 쎄하다. 엄니는 아직까지 집에 안들어오시고 방송 내용을 보니 신자들에 활동 시간과 교육시간 6개월이 어짜고 저짜고가 필림처럼 엄니가 평상시 했던 말과 거의 일치하는 면이 너무 많아 등꼴이 오싹해졌다.
일단 한템포 늦추고 다음 날 아침에 교회를 가신다는 엄니를 붙잡고 전후내용을 전달했다.
떳떳하게 신천지 교인이라고 밝히시는 것이 역시 울엄니 답다 싶더라.
울엄니는 직진이지. 우회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도 직진형이라 선교자가 누구냐고 했다. 둘째 이모란다.
참 기가막힌 악연이다.
울 둘째 이모는 모든 문제에 근원이다. 1999년 9월 9일 지구종말론이라는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 하고 계시던 한복집과 이숙은 양장점을 하고 계셨는데 같이 가게를 팔고 자식 둘과 함께 사라졌던 사람이다. 원래 시골에 살때 나를 업고 키웠던 이모시기도 하다.
원래 둘째 이모가 미모로 보자면 외할머니가 낳은 네 딸중에 가장 미모가 특출했다.
키고 크시고 딱봐도 벤츠 사모님 외모를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정신은 가진 것이 없다.
둘째 이모를 불렀다. 지금은 치킨집 하고 계신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절에 잘 다니시던 분을 하고 많은 종교 중에 이만희라는 인간을 섬기는 종교로 개종을 시킬 수 있냐.
뭐 기대도 않했지만 오히려 엄니와 이모에 설파를 한 시간 넘게 들어야만 했고
못 참아서 목소리로 제압하고 그냥 그 대질신문 같은 자리를 마무리 했다.
엄니와 이모님에 대한 종교선택 자유를 인정하고 대신 조건을 붙였다. 내 와이프를 포함 아이들과 내 위로 형님, 아래로 동생네 모든 식구들 절대로 포교활동 금지령을 내렸다.
혹여 포교활동을 감지 되는 날로부터 가족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욕으로 상대해 주겠다고 했다.
이들 신천지는 아무나 포섭하지 않는다. 이미 언론과 기사를 통해서 봤겠지만...,
가정 형편이 여유롭고 소위 가진 자를 타겟으로 한다.
형님은 중소기업 사장이고 형수는 교사다. 동생은 회사원이며 제수씨는 프리랜서다.
대체로 헐벗지는 않는다. 이걸 신천지는 은밀한 팀(아파트 위에서 그 무리들을 봤다)을 구성해서 차로 이동하면서 실제 사는 집을 몰래 왔다간다.
성깔이 있어서 이모도 엄니도 결계를 쳐 놓은 우리집 근처를 오지 못했다.
대신 포교활동에 대한 무슨 성과가 있나보다. 갑자기 엄니가 아부지하고 이혼을 하겠단다.
그때가 대충 PD수첩 방영 이후 1~2년이 지난 시기다.
말이 길 필요가 없다. 포교에 대한 성과가 맞다. 아부지에게 나 포함 아들들이 사정을 했다.
가정 평화를 위해 아부지 한명 희생해달라고 말이다. 그때 이미 울아부지 70을 넘겼었다.
자식들에 부탁으로 6개월을 가서 교육받고 거기 출입증을 받았단다.
6개월 동안 노친네가 뭘 알아듣고 뭘 안다고 그들은 울아부지를 포섭했을까 싶다. 미친놈들.
재밋는 얘기는 이제부터다.
그렇게 신천지는 10년동안 폭발적으로 교인이 증가했다. 그게 눈에 띄일 정도다.
주위에도 보이고 또 본인이 밝히기도 한다. 어쭈구리.. 이제는 대놓고 씨부린다.
그 사이 이만희 집단 교육이나 포섭이 굉장히 진보해졌다.
더 치밀해지고 더 광신도를 만들기 좋은 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작년 4월에 내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이국종 교수님을 실제로 만났다.
빠른 대처와 수술로 지금은 95% 원복이 됐다. 다행이 장애는 없지만 항상 고통을 동반한다.
이쯤이야 휠체어 생활에 비하자면 더할나위 없는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 행복하다.
집으로 내려가 재활병원에 생활 중인데
새로운 포교활동 교육을 받으셨는지 엄니와 둘째이모가 당당한 모습으로 병문안을 오셨다.
사사로운 얘기를 오가고 몇 분이 지났을까 역시 발톱을 드러냈다.
자 여기서 신천지라고 믿는 자들은 꼭 내 글을 봐라.
너희는 영생을 구원하는 것이 결국 목적이다.
절대 인간은 영생하지 않음을 내가 증언해 주마.
똑같이 둘째 이모도 이 광경을 직접 지켜본 이여서 이 설명을 다시 해드렸다.
나 초등(국민) 4학년때 한참 모내기 시즌이였다.
동생과 시냇가 바위에서 놀다가 동생이 물기 있는 바위에 미끄러져서 깊은 물에 빠졌다.
나는 당시 수영에 꽤 자신이 있었다.
물에 빠진 동생은 한번 물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그 다음부터는 동생 눈이 이미 풀렸다. 위험을 감지하고 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물 밑에서 밀어줄려고 가까이 갔는데 동생이 살려고 나를 누르고 뛰쳐 나간다.
숨을 참는 것이 한계가 넘어 몇 모금을 마셨는지 기억이 없다.
일단 동생이 바위 근처고 간 것을 확인하고 물 밖으로 나오려는데 아무리 허우적 대도 수면위로 올라가질 않는다. 이게 어른 되서 깨달은 게 폐에 물이 차면 부력이 없어져서 물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단계인 것이였다.
그렇다. 지금부터 삶과 죽음에 경계 이야기다.
물밖 수면에 내리쬐이는 햇볕이 얼마나 영롱한지 한참을 쳐보니 내가 시냇물 깊은 바닥에 힘이 하나도 없이 누워있다. 꽤 따뜻하고 조용하기 그지 없다. 입에서 더이상 기포는 안생기고 얼굴도 이제 굳어진다. 이제 깜깜해진다.
내 기억이 여기까지다.
그러고 눈을 떴는데 돌돌 말린 멍석에 옷 한올도 없이 벗겨진 체로 깼다.
소리를 질러도 답이 없고 깜깜하다. 답답하고 팔다리를 움직일때마다 까칠한 멍석에 아프기만 하다.
한참 후 울엄니가 울면서 멍석에서 날 꺼내줬다.
나중에 엄니와 사촌 형님한테 전후 사정을 들었다.
사고 시냇가가 보이는 먼 산 위에서 한 어른이 벌목하다 냇가에 울고 있는 한 아이를 보고 근처 논에서 모내기 하던 사람들에게 소리를 쳤다고 한다.
그때 당시 사촌형님은 군대를 제대한 20대 중반이셨고 이 형님이 그 고함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냇가에 내려가보니 동생은 울고 있고 내 행방은 묻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참 세꺼리를 하다가 내가 없어짐을 알고 부랴부랴 동생에 물으니 물에 들어갔다고 듣고 울엄니랑 울며 냇가를 갔을땐 이미 물바닥에는 내 시체가 없었다고 한다.
물에 깊이가 깊어 발과 삽 종류로 바닥을 뒤졌는데 그 덕에 사촌형님이 깨진 유리병에 새끼발가락이 잘려 나갔다고 한다.
냇가에 하류로 모내기 하던 모든 동네 어른들이 찾아 나섰지만 익사한지 2시간이 넘어 결국 걸어서 40분이 넘는 물하류 바위에 걸쳐진 나를 찾았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이 오셔서 인공호흡도 하고 침쟁이가 와서 혈을 집어보고 사망을 인지했다고 해서 다음 날 묻기로 하고 멍석에 말아뒀다고 한다.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깨어났고 이렇게 잘 성장해서 이 글도 쓰고 있다.
20대 초반에 술 안주 삼아 얘기 했던 내 얘기를 듣고 난 후 반응이 이랬다.
영화처럼 다음 생이 있냐. 죽음 후 어떤 것을 본 것이 있냐 둥
영혼이 몸 밖으로 나가는 걸 느꼈냐는 둥.
전혀 없다. 죽으면 끝이다. 암흑이다.
다만 죽기 전에 단 몇 분인지 몇 초인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평안하고 따뜻했다.
이 얘기를 이모한테 상기 시켰다.
신천지 이만희를 데리고 와라. 내가 개종시켜 줄테다.
이 말과 함께 울엄니와 둘째 이모는 더이상 전화가 오지 않는다.
난 무신론자다. 종교에 대한 허무맹랑한 얘기는 그만해라.
종교 의존도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이 지극히 결핍돼서 남을 의지하게 되는 굉장히 정신적으로 부족한 사람에 믿음 정도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지켜라.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이 사회를 옳바르게 판단하는 기준인 것이다.
늘 당당해라. 그 당당함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상황,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인정함부터 시작이다.
신천지와의 13년간 진중일기
나 올해 50.
울아부지 83/울엄니 73
2007년 PD수첩에서 첫 신천지 관련 보도가 있었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 그때 둘째 아들이 이제 겨우 돌을 막 지날때다.
와이프는 공무원이고 난 타지역에서 주말부부로 가정을 이끄는 회사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울엄니를 아파트에 모셔서 아이들을 돌보게 하는 못된 아들이였다.
환갑이 되기 전 상태였던 엄니는 나름 여장부다.
한다면 하는 스탈이지만 누구보다 더 자식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서 손주 케어에 최선을 다 해 주셨다.
그런 엄니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금전적이든 엄니 모임활동이든 위신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튀어 나가서 딸랑이 해줬다. 그게 효도에 첩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PD수첩 방영전 몇 달 전부터 갑자기 엄니가 무슨 공부를 한다고 저녁 늦게 들어온다고 와이프가 주말에 집에 오면 전해주고 또 내가 주말에 오면 엄니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열등감때문에 늘 괴로워했던 엄니라 그려러니 했다.
그런데 아이들도 잠에 들고 고단했던 와이프도 주무시고
조용히 캔맥주 한 캔을 따고 TV를 켰는데 평소 자주 보던 PD수첩을 시청하는데 대충 30분 정도 시청했던 것 같다. 느낌이 아주 쎄하다. 엄니는 아직까지 집에 안들어오시고 방송 내용을 보니 신자들에 활동 시간과 교육시간 6개월이 어짜고 저짜고가 필림처럼 엄니가 평상시 했던 말과 거의 일치하는 면이 너무 많아 등꼴이 오싹해졌다.
일단 한템포 늦추고 다음 날 아침에 교회를 가신다는 엄니를 붙잡고 전후내용을 전달했다.
떳떳하게 신천지 교인이라고 밝히시는 것이 역시 울엄니 답다 싶더라.
울엄니는 직진이지. 우회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도 직진형이라 선교자가 누구냐고 했다. 둘째 이모란다.
참 기가막힌 악연이다.
울 둘째 이모는 모든 문제에 근원이다. 1999년 9월 9일 지구종말론이라는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 하고 계시던 한복집과 이숙은 양장점을 하고 계셨는데 같이 가게를 팔고 자식 둘과 함께 사라졌던 사람이다. 원래 시골에 살때 나를 업고 키웠던 이모시기도 하다.
원래 둘째 이모가 미모로 보자면 외할머니가 낳은 네 딸중에 가장 미모가 특출했다.
키고 크시고 딱봐도 벤츠 사모님 외모를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정신은 가진 것이 없다.
둘째 이모를 불렀다. 지금은 치킨집 하고 계신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절에 잘 다니시던 분을 하고 많은 종교 중에 이만희라는 인간을 섬기는 종교로 개종을 시킬 수 있냐.
뭐 기대도 않했지만 오히려 엄니와 이모에 설파를 한 시간 넘게 들어야만 했고
못 참아서 목소리로 제압하고 그냥 그 대질신문 같은 자리를 마무리 했다.
엄니와 이모님에 대한 종교선택 자유를 인정하고 대신 조건을 붙였다. 내 와이프를 포함 아이들과 내 위로 형님, 아래로 동생네 모든 식구들 절대로 포교활동 금지령을 내렸다.
혹여 포교활동을 감지 되는 날로부터 가족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욕으로 상대해 주겠다고 했다.
이들 신천지는 아무나 포섭하지 않는다. 이미 언론과 기사를 통해서 봤겠지만...,
가정 형편이 여유롭고 소위 가진 자를 타겟으로 한다.
형님은 중소기업 사장이고 형수는 교사다. 동생은 회사원이며 제수씨는 프리랜서다.
대체로 헐벗지는 않는다. 이걸 신천지는 은밀한 팀(아파트 위에서 그 무리들을 봤다)을 구성해서 차로 이동하면서 실제 사는 집을 몰래 왔다간다.
성깔이 있어서 이모도 엄니도 결계를 쳐 놓은 우리집 근처를 오지 못했다.
대신 포교활동에 대한 무슨 성과가 있나보다. 갑자기 엄니가 아부지하고 이혼을 하겠단다.
그때가 대충 PD수첩 방영 이후 1~2년이 지난 시기다.
말이 길 필요가 없다. 포교에 대한 성과가 맞다. 아부지에게 나 포함 아들들이 사정을 했다.
가정 평화를 위해 아부지 한명 희생해달라고 말이다. 그때 이미 울아부지 70을 넘겼었다.
자식들에 부탁으로 6개월을 가서 교육받고 거기 출입증을 받았단다.
6개월 동안 노친네가 뭘 알아듣고 뭘 안다고 그들은 울아부지를 포섭했을까 싶다. 미친놈들.
재밋는 얘기는 이제부터다.
그렇게 신천지는 10년동안 폭발적으로 교인이 증가했다. 그게 눈에 띄일 정도다.
주위에도 보이고 또 본인이 밝히기도 한다. 어쭈구리.. 이제는 대놓고 씨부린다.
그 사이 이만희 집단 교육이나 포섭이 굉장히 진보해졌다.
더 치밀해지고 더 광신도를 만들기 좋은 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작년 4월에 내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이국종 교수님을 실제로 만났다.
빠른 대처와 수술로 지금은 95% 원복이 됐다. 다행이 장애는 없지만 항상 고통을 동반한다.
이쯤이야 휠체어 생활에 비하자면 더할나위 없는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 행복하다.
집으로 내려가 재활병원에 생활 중인데
새로운 포교활동 교육을 받으셨는지 엄니와 둘째이모가 당당한 모습으로 병문안을 오셨다.
사사로운 얘기를 오가고 몇 분이 지났을까 역시 발톱을 드러냈다.
자 여기서 신천지라고 믿는 자들은 꼭 내 글을 봐라.
너희는 영생을 구원하는 것이 결국 목적이다.
절대 인간은 영생하지 않음을 내가 증언해 주마.
똑같이 둘째 이모도 이 광경을 직접 지켜본 이여서 이 설명을 다시 해드렸다.
나 초등(국민) 4학년때 한참 모내기 시즌이였다.
동생과 시냇가 바위에서 놀다가 동생이 물기 있는 바위에 미끄러져서 깊은 물에 빠졌다.
나는 당시 수영에 꽤 자신이 있었다.
물에 빠진 동생은 한번 물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그 다음부터는 동생 눈이 이미 풀렸다. 위험을 감지하고 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물 밑에서 밀어줄려고 가까이 갔는데 동생이 살려고 나를 누르고 뛰쳐 나간다.
숨을 참는 것이 한계가 넘어 몇 모금을 마셨는지 기억이 없다.
일단 동생이 바위 근처고 간 것을 확인하고 물 밖으로 나오려는데 아무리 허우적 대도 수면위로 올라가질 않는다. 이게 어른 되서 깨달은 게 폐에 물이 차면 부력이 없어져서 물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단계인 것이였다.
그렇다. 지금부터 삶과 죽음에 경계 이야기다.
물밖 수면에 내리쬐이는 햇볕이 얼마나 영롱한지 한참을 쳐보니 내가 시냇물 깊은 바닥에 힘이 하나도 없이 누워있다. 꽤 따뜻하고 조용하기 그지 없다. 입에서 더이상 기포는 안생기고 얼굴도 이제 굳어진다. 이제 깜깜해진다.
내 기억이 여기까지다.
그러고 눈을 떴는데 돌돌 말린 멍석에 옷 한올도 없이 벗겨진 체로 깼다.
소리를 질러도 답이 없고 깜깜하다. 답답하고 팔다리를 움직일때마다 까칠한 멍석에 아프기만 하다.
한참 후 울엄니가 울면서 멍석에서 날 꺼내줬다.
나중에 엄니와 사촌 형님한테 전후 사정을 들었다.
사고 시냇가가 보이는 먼 산 위에서 한 어른이 벌목하다 냇가에 울고 있는 한 아이를 보고 근처 논에서 모내기 하던 사람들에게 소리를 쳤다고 한다.
그때 당시 사촌형님은 군대를 제대한 20대 중반이셨고 이 형님이 그 고함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냇가에 내려가보니 동생은 울고 있고 내 행방은 묻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참 세꺼리를 하다가 내가 없어짐을 알고 부랴부랴 동생에 물으니 물에 들어갔다고 듣고 울엄니랑 울며 냇가를 갔을땐 이미 물바닥에는 내 시체가 없었다고 한다.
물에 깊이가 깊어 발과 삽 종류로 바닥을 뒤졌는데 그 덕에 사촌형님이 깨진 유리병에 새끼발가락이 잘려 나갔다고 한다.
냇가에 하류로 모내기 하던 모든 동네 어른들이 찾아 나섰지만 익사한지 2시간이 넘어 결국 걸어서 40분이 넘는 물하류 바위에 걸쳐진 나를 찾았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이 오셔서 인공호흡도 하고 침쟁이가 와서 혈을 집어보고 사망을 인지했다고 해서 다음 날 묻기로 하고 멍석에 말아뒀다고 한다.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깨어났고 이렇게 잘 성장해서 이 글도 쓰고 있다.
20대 초반에 술 안주 삼아 얘기 했던 내 얘기를 듣고 난 후 반응이 이랬다.
영화처럼 다음 생이 있냐. 죽음 후 어떤 것을 본 것이 있냐 둥
영혼이 몸 밖으로 나가는 걸 느꼈냐는 둥.
전혀 없다. 죽으면 끝이다. 암흑이다.
다만 죽기 전에 단 몇 분인지 몇 초인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평안하고 따뜻했다.
이 얘기를 이모한테 상기 시켰다.
신천지 이만희를 데리고 와라. 내가 개종시켜 줄테다.
이 말과 함께 울엄니와 둘째 이모는 더이상 전화가 오지 않는다.
난 무신론자다. 종교에 대한 허무맹랑한 얘기는 그만해라.
종교 의존도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이 지극히 결핍돼서 남을 의지하게 되는 굉장히 정신적으로 부족한 사람에 믿음 정도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지켜라.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이 사회를 옳바르게 판단하는 기준인 것이다.
늘 당당해라. 그 당당함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상황,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인정함부터 시작이다.
니들이 말하는 재림이나 하나님 앞에 설때 난 한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