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이트판이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고백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판단했다. 완전히 새로운 곳. 나는 어쩌면 두번 다시 이 계정으로 로그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곳의 규칙을 몰라서 욕을 먹으며 쫓겨날 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의 멍청하고 소심한 고백의 장소로 여기를 택한거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을 안다. 그 어떤 피드백도 확인할 수 없다. 이 긴 고백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지도 않을거면서 인터넷에 공개하는 이유는 사실 나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동정받을 리가 없는 이야기이고, 나는 내가 굉장한 악인인 것을 안다. 이 글을 써두면, 조금이나마 더 이성적인 미래의 내가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어서? 메모장에 적거나 일기장에 적으면 다 들켜버릴까봐? 그런가. 보통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핑계라고 부르던데. 나는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나쁜 사람인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 집의 장녀다. 동생이 하나 있고 부모님이 계신다. 너무나 완벽한 가족이다. 너무 완벽해. 나도 그런건 안다. 내가 복에 겨워서 이딴 소리를 짓껄이는 것을. 하지만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빠를, 엄마를, 내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 역겨운 사람이 딸이고 언니라니, 내 가족은 정말 불쌍하다.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 머리로는 나 자체를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감정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끔은 감정이 내 이성을 속인다. 아빠는 완벽한 딸을 사랑해, 아빠는 완벽한 나만을 사랑해, 아빠는 멍청하고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미친 딸은 사랑하지 않아. 그런가? 그런건가? 나는 내 온몸을 칼로 긋고 난 밤에 아빠 품에 안겨서 그런 생각을 했다. 다정한 아빠는 그날 소리를 치고 화를 내며 울었다. 나는 마치 재미없는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실감나지 않았다. 내 손목과 팔과 다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아빠의 눈물과 분노가 연기 같았다. 그래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솔직히 웃기기까지 했다. 히히히. 다친 것은 난데 꼭 아빠가 다친 것 같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밤을 샜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3살에 한글을 떼고 책 읽는 것을 즐겼던 어린 나는 곧 집 안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었다. 책은 바닥났고 내가 듣는 이야기는 주로 우리 집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 집은 돈이 많이 없다, 동생도 챙겨야 한다, 할머니 수술비, 너무 고되고 힘들다, 우리 생활은 비참하다, 엄마는 비참하다. 나는 모든 것을 꽤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다. 기념일마다 선물을 사준다는 것을 모두 거절했었다. 동생은 나를 이해하지 못 했다. 왜 언니는 선물 안 사? 언니는 왜 선물 안 사? 물음에 대답하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때가 9살이었다.
엄마는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책도 열심히 읽고, 공부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혼자서 잘 한다고. 무엇보다 자기를 생각해준다고, 그렇게 자랑했다. 기특하게도 선물도 필요없다고 하고, 동생도 돌봐주고, 무엇보다 시험에서 100점을 놓친 적이 없다고, 가르친 적 없는 영어책도 혼자 어떻게 술술 읽는지. 나는 그 칭찬을 귀에 새겼다. 나는 마냥 좋았던 것 같다. 엄마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 같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나는 엄마가 생각한 기대치를 항상 뛰어넘었다. 엄마가 어릴 적에는 하고 싶은 공부를 못 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이것저것 가르치면 잘 따라배웠던 어린 내가 엄마도 좋았을까? 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나서도 한글을 다 떼지 못 했기에 엄마는 온전히 나를 위해서 교육을 했다. 이것도, 저것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으면 좋겠고. 나는 버거웠지만 기뻤다. 엄마가 기쁜 것 같아서... 정말 행복한 것 같아서 기뻤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단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매일 매일 손을 귀 옆에 붙이고 답을 하게 해주세요! 하며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어찌 이리 똑똑하고 착실하냐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지는 않았지만 난 그래도 좋았다. 어른들이 날 좋아했으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 와서도 나는 여전히 수업시간에 성실히 참여하는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 나는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손을 들고 발표를 했다. 남학생들과 두루두루 친했던 나는 눈치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친구의 친구였던 여학생 두명은 여학생들과 나를 떨어뜨려 놓았다. 내 앞에서, 내 뒤에서 나를 욕하고 말을 걸면 무시했다. 복도를 지나가면 항상 어깨를 부딪혔다. 분했지만 나는 괜찮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상관이 없었다. 나는 남학생들과 더 친했기에 반의 여학생들 모두가 나를 싫어해도 그럼 남자애들이랑 놀면 되겠지, 같은 생각을 했다. 2학기가 되자 남학생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내가 말을 걸면 멀리 있는 친구를 불러 달아나버리고, 내 앞에서 나의 약점을 이용해 공격했다. 조금이라도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그 친구들까지 같이 따돌렸다. 나는 혼자 남았다. 나는 우울했던 것 같다. 커터칼으로 팔을 긁어댔다. 칼로 팔을 긋기 시작했을 때, 부모님에게 들켰다. 아빠와 엄마는 내 상처를 보고 친구들이랑 장난을 쳤냐며 혼냈다. 나는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장난을 친 적이 없었다.
6학년, 학교에서 했던 심리 검사에서 결과가 최악으로 나왔다. 우울 점수가 독보적으로 높았고, 자살 고위험군으로 나왔던 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욕을 내뱉으며 나를 때렸다. 갑자기 모든게 아득해졌다. 그런것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냐며 나를 몇번 더 때렸다. 회초리를 들고 나에게 모든 것을 잊으라고 다그쳤다. 나는 정말 그렇게 하려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4~5학년은 정말 두리뭉술하다. 엄마가 잊으라고 해서 최대한 기억에서 지웠다. 그 파편들은 완전히 지워지지도, 그렇다고 온전한 기억이지도 않다. 나는 애매한 기억들만 손아귀에 쥐고 아파했다. 엄마에게는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엄마와 아빠의 착한 장녀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그동안 타이레놀 100정을 모았다. 무서웠다. 손이 덜덜 떨렸다. 머리가 아팠고 입술이 파랬으며 눈물이 흘렀다. 36정 정도를 복용했고 나는 학원에 갈 시간이었다. 학원 버스에 타고 식은 땀을 흘리며 수업을 듣다가 정신을 잃었다. 원어민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며 거의 울기 직전이셨다. 응급실에 가서 피 검사를 하고 간수치가 900까지 올랐다는 것을 들었다. 스트레스성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의문을 가졌다. 보통 스트레스성이라도 이만큼 치솟지는 않는데, ... 약을 많이 먹으면 오를 수 있거든요, ... ... 안 먹으면 이렇게까지는 힘든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중학교에 가서는 하루종일 화장실에 틀어박혀서 커터칼로 손목과 팔과 다리를 그었다. 피냄새가 진동하는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죽여 울었다. 7교시 내내 옆자리에서 나에게 욕을 퍼붓는 것도 내가 엎드려 울때 온 몸이 떨리자 놀이기구라고 말하며 웃는 것도 1학기 내내 들으니 익숙했다. 2학기에 가서는 내 이름을 입에 담지도 않았다. 웃겼다. 내 이름이 사탄의 이름이라도 되는 것마냥, 나를 입에 담으면 저주받는 것마냥. 저 과정에서 엄마와 선생님에게 많이 상담했다.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야 하는가. 열지 않는다면 저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더이상 괴롭힘 받지 않을 수 있는가? 엄마는 정색했다. 선생님은 내 눈을 피했다. 네가 학폭위를 열어서 뭐하게.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엄마는 경찰에 신고라도 해보라고 말했다. 웃고 있었다. 엄마는 내 상처들을 보고 날 더욱 세게 때렸다. 나를 혼냈다. 맨발로 나를 밖으로 내보내고, 현관 밖까지였지만 나를 알몸으로도 내보냈다.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잘못을 빌었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엄마도 그때 정신적으로 내몰려있었다고, 그래서 그런거라고. 나는 그걸 아는데도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가 정말 미웠다. 정말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더이상 엄마의 완벽한 딸이 아닌 나 자신도 미웠고 다 싫었다. 정말 다 싫었다. 나는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빌었다. 한달 정도 잘못을 속죄하자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고. 드디어 우리 사랑하는 딸이 돌아왔다고. 나는 그날 새벽에 이유모를 웃음을 참아가며 허벅지를 그었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던 나에 대한 비웃음이었을까?
엄마는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괴로웠다. 이 멍청하고 이기적인 인간은 자신이 나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가 착하고, 아빠가 착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면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다. 잘못한 것은, 진짜 못되먹은 나쁜 인간은 다름아니라, 나라고. 나였던거라고. 그 사실 하나를 완벽히 인정하는데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정말 멍청하고 추악한 사람이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맞았다. 내가 나쁜 사람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는 엄마와 아빠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했다. 근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왜? 나는 정말 궁금했다. 엄마와 아빠가 잘못이 없는 것은 이미 아는데, 이기적인 사람은 나였고 그걸 받아준 사람이 엄마랑 아빠인 것도 아는데, 왜 나는 사랑할 수 없는걸까. 왜? 사랑할 수 없는 걸까, 사랑하지 않으려 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이상하다. 나는 아빠가 날 껴안고 울때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엄마가 울고 화낼때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내가... 내가 엄마랑 아빠를 용서했다는 것이 아닌가? 용서했다면 왜 사랑할 수 없는가. 왜? 나는 억울했다. 나도 평범하게 부모와 동생을, 가족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난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사랑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또 완벽한 딸에서 한 발짝 멀어졌다.
엄마가 불쌍했다. 하필이면 나를 낳아서 불쌍했다. 아빠가 불쌍했다. 하필이면 나를 딸로 둬서 불쌍했다. 동생이 불쌍했다. 이 모든 것을 간접적으로 겪어야만 해서 불쌍했다. 너무 가여웠다. 너무 미안했다. 왜 하필 나에게 얽힌걸까. 나만 아니었으면 더 행복할 수 있었을 사람들인데, 왜 나에게 얽혀서. 미안했다. 미안하다. 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정말, 아직도 모르겠다. 정말로 아직도... 모르겠다.
내 고백은 이걸로 끝이다. 횡설수설 적었지만 미래의 나는 이해할 수 있겠지.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게 잘못된거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왜 나를 만났을까. 미안해,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아. 그것조차 미안해, 사랑하지 않아서.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이런 사람이라서. 미안해. 사랑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않아서 미안해
나는 네이트판이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고백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판단했다. 완전히 새로운 곳. 나는 어쩌면 두번 다시 이 계정으로 로그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곳의 규칙을 몰라서 욕을 먹으며 쫓겨날 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의 멍청하고 소심한 고백의 장소로 여기를 택한거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을 안다. 그 어떤 피드백도 확인할 수 없다. 이 긴 고백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지도 않을거면서 인터넷에 공개하는 이유는 사실 나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동정받을 리가 없는 이야기이고, 나는 내가 굉장한 악인인 것을 안다. 이 글을 써두면, 조금이나마 더 이성적인 미래의 내가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어서? 메모장에 적거나 일기장에 적으면 다 들켜버릴까봐? 그런가. 보통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핑계라고 부르던데. 나는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나쁜 사람인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 집의 장녀다. 동생이 하나 있고 부모님이 계신다. 너무나 완벽한 가족이다. 너무 완벽해. 나도 그런건 안다. 내가 복에 겨워서 이딴 소리를 짓껄이는 것을. 하지만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빠를, 엄마를, 내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 역겨운 사람이 딸이고 언니라니, 내 가족은 정말 불쌍하다.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 머리로는 나 자체를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감정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끔은 감정이 내 이성을 속인다. 아빠는 완벽한 딸을 사랑해, 아빠는 완벽한 나만을 사랑해, 아빠는 멍청하고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미친 딸은 사랑하지 않아. 그런가? 그런건가? 나는 내 온몸을 칼로 긋고 난 밤에 아빠 품에 안겨서 그런 생각을 했다. 다정한 아빠는 그날 소리를 치고 화를 내며 울었다. 나는 마치 재미없는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실감나지 않았다. 내 손목과 팔과 다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아빠의 눈물과 분노가 연기 같았다. 그래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솔직히 웃기기까지 했다. 히히히. 다친 것은 난데 꼭 아빠가 다친 것 같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밤을 샜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3살에 한글을 떼고 책 읽는 것을 즐겼던 어린 나는 곧 집 안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었다. 책은 바닥났고 내가 듣는 이야기는 주로 우리 집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 집은 돈이 많이 없다, 동생도 챙겨야 한다, 할머니 수술비, 너무 고되고 힘들다, 우리 생활은 비참하다, 엄마는 비참하다. 나는 모든 것을 꽤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다. 기념일마다 선물을 사준다는 것을 모두 거절했었다. 동생은 나를 이해하지 못 했다. 왜 언니는 선물 안 사? 언니는 왜 선물 안 사? 물음에 대답하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때가 9살이었다.
엄마는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책도 열심히 읽고, 공부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혼자서 잘 한다고. 무엇보다 자기를 생각해준다고, 그렇게 자랑했다. 기특하게도 선물도 필요없다고 하고, 동생도 돌봐주고, 무엇보다 시험에서 100점을 놓친 적이 없다고, 가르친 적 없는 영어책도 혼자 어떻게 술술 읽는지. 나는 그 칭찬을 귀에 새겼다. 나는 마냥 좋았던 것 같다. 엄마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 같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나는 엄마가 생각한 기대치를 항상 뛰어넘었다. 엄마가 어릴 적에는 하고 싶은 공부를 못 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이것저것 가르치면 잘 따라배웠던 어린 내가 엄마도 좋았을까? 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나서도 한글을 다 떼지 못 했기에 엄마는 온전히 나를 위해서 교육을 했다. 이것도, 저것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으면 좋겠고. 나는 버거웠지만 기뻤다. 엄마가 기쁜 것 같아서... 정말 행복한 것 같아서 기뻤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단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매일 매일 손을 귀 옆에 붙이고 답을 하게 해주세요! 하며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어찌 이리 똑똑하고 착실하냐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지는 않았지만 난 그래도 좋았다. 어른들이 날 좋아했으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 와서도 나는 여전히 수업시간에 성실히 참여하는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 나는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손을 들고 발표를 했다. 남학생들과 두루두루 친했던 나는 눈치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친구의 친구였던 여학생 두명은 여학생들과 나를 떨어뜨려 놓았다. 내 앞에서, 내 뒤에서 나를 욕하고 말을 걸면 무시했다. 복도를 지나가면 항상 어깨를 부딪혔다. 분했지만 나는 괜찮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상관이 없었다. 나는 남학생들과 더 친했기에 반의 여학생들 모두가 나를 싫어해도 그럼 남자애들이랑 놀면 되겠지, 같은 생각을 했다. 2학기가 되자 남학생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내가 말을 걸면 멀리 있는 친구를 불러 달아나버리고, 내 앞에서 나의 약점을 이용해 공격했다. 조금이라도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그 친구들까지 같이 따돌렸다. 나는 혼자 남았다. 나는 우울했던 것 같다. 커터칼으로 팔을 긁어댔다. 칼로 팔을 긋기 시작했을 때, 부모님에게 들켰다. 아빠와 엄마는 내 상처를 보고 친구들이랑 장난을 쳤냐며 혼냈다. 나는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장난을 친 적이 없었다.
6학년, 학교에서 했던 심리 검사에서 결과가 최악으로 나왔다. 우울 점수가 독보적으로 높았고, 자살 고위험군으로 나왔던 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욕을 내뱉으며 나를 때렸다. 갑자기 모든게 아득해졌다. 그런것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냐며 나를 몇번 더 때렸다. 회초리를 들고 나에게 모든 것을 잊으라고 다그쳤다. 나는 정말 그렇게 하려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4~5학년은 정말 두리뭉술하다. 엄마가 잊으라고 해서 최대한 기억에서 지웠다. 그 파편들은 완전히 지워지지도, 그렇다고 온전한 기억이지도 않다. 나는 애매한 기억들만 손아귀에 쥐고 아파했다. 엄마에게는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엄마와 아빠의 착한 장녀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그동안 타이레놀 100정을 모았다. 무서웠다. 손이 덜덜 떨렸다. 머리가 아팠고 입술이 파랬으며 눈물이 흘렀다. 36정 정도를 복용했고 나는 학원에 갈 시간이었다. 학원 버스에 타고 식은 땀을 흘리며 수업을 듣다가 정신을 잃었다. 원어민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며 거의 울기 직전이셨다. 응급실에 가서 피 검사를 하고 간수치가 900까지 올랐다는 것을 들었다. 스트레스성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의문을 가졌다. 보통 스트레스성이라도 이만큼 치솟지는 않는데, ... 약을 많이 먹으면 오를 수 있거든요, ... ... 안 먹으면 이렇게까지는 힘든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중학교에 가서는 하루종일 화장실에 틀어박혀서 커터칼로 손목과 팔과 다리를 그었다. 피냄새가 진동하는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죽여 울었다. 7교시 내내 옆자리에서 나에게 욕을 퍼붓는 것도 내가 엎드려 울때 온 몸이 떨리자 놀이기구라고 말하며 웃는 것도 1학기 내내 들으니 익숙했다. 2학기에 가서는 내 이름을 입에 담지도 않았다. 웃겼다. 내 이름이 사탄의 이름이라도 되는 것마냥, 나를 입에 담으면 저주받는 것마냥. 저 과정에서 엄마와 선생님에게 많이 상담했다.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야 하는가. 열지 않는다면 저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더이상 괴롭힘 받지 않을 수 있는가? 엄마는 정색했다. 선생님은 내 눈을 피했다. 네가 학폭위를 열어서 뭐하게.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엄마는 경찰에 신고라도 해보라고 말했다. 웃고 있었다. 엄마는 내 상처들을 보고 날 더욱 세게 때렸다. 나를 혼냈다. 맨발로 나를 밖으로 내보내고, 현관 밖까지였지만 나를 알몸으로도 내보냈다.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잘못을 빌었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엄마도 그때 정신적으로 내몰려있었다고, 그래서 그런거라고. 나는 그걸 아는데도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가 정말 미웠다. 정말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더이상 엄마의 완벽한 딸이 아닌 나 자신도 미웠고 다 싫었다. 정말 다 싫었다. 나는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빌었다. 한달 정도 잘못을 속죄하자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고. 드디어 우리 사랑하는 딸이 돌아왔다고. 나는 그날 새벽에 이유모를 웃음을 참아가며 허벅지를 그었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던 나에 대한 비웃음이었을까?
엄마는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괴로웠다. 이 멍청하고 이기적인 인간은 자신이 나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가 착하고, 아빠가 착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면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다. 잘못한 것은, 진짜 못되먹은 나쁜 인간은 다름아니라, 나라고. 나였던거라고. 그 사실 하나를 완벽히 인정하는데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정말 멍청하고 추악한 사람이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맞았다. 내가 나쁜 사람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는 엄마와 아빠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했다. 근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왜? 나는 정말 궁금했다. 엄마와 아빠가 잘못이 없는 것은 이미 아는데, 이기적인 사람은 나였고 그걸 받아준 사람이 엄마랑 아빠인 것도 아는데, 왜 나는 사랑할 수 없는걸까. 왜? 사랑할 수 없는 걸까, 사랑하지 않으려 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이상하다. 나는 아빠가 날 껴안고 울때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엄마가 울고 화낼때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내가... 내가 엄마랑 아빠를 용서했다는 것이 아닌가? 용서했다면 왜 사랑할 수 없는가. 왜? 나는 억울했다. 나도 평범하게 부모와 동생을, 가족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난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사랑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또 완벽한 딸에서 한 발짝 멀어졌다.
엄마가 불쌍했다. 하필이면 나를 낳아서 불쌍했다. 아빠가 불쌍했다. 하필이면 나를 딸로 둬서 불쌍했다. 동생이 불쌍했다. 이 모든 것을 간접적으로 겪어야만 해서 불쌍했다. 너무 가여웠다. 너무 미안했다. 왜 하필 나에게 얽힌걸까. 나만 아니었으면 더 행복할 수 있었을 사람들인데, 왜 나에게 얽혀서. 미안했다. 미안하다. 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정말, 아직도 모르겠다. 정말로 아직도... 모르겠다.
내 고백은 이걸로 끝이다. 횡설수설 적었지만 미래의 나는 이해할 수 있겠지.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게 잘못된거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왜 나를 만났을까. 미안해,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아. 그것조차 미안해, 사랑하지 않아서.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이런 사람이라서. 미안해. 사랑하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