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건국기 1부-4편: 동카스

사반200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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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건국기 1부-4편: 동카스

 

동카스는 돌아오는 내내 안절부절 어찔 줄 몰랐다

아이리스를 다시 보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기억하시는가?

아이리스에게 청혼했다던 백발이 성성한 이웃성의 성주. 그가 바로 동카스였다

재작년 이맘때던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출중한 미모의 소녀가 베란두르에 산다는 소문에 호기심에 한번 슬쩍 보러 간  것이 화근이 되어 끓는 애가슴 부여잡고 있다가 냅다 고백해 버린 것이 그만 보기좋게 거절당해버렸다

그 이후로 동카스는 자신의 성 '곤두와나'로 돌아가 동물들이나 조련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심심하던 차 훈련시키던 개들을 데리고 새벽일찍부터 '큰쥐' 사냥을 하던 참에 뜻밖에도 아이리스를 만나게 된 것이다

 

동카스는 아이리스와 레오르도를 자신이 타고 온 큰 코끼리에 태우고 자신은 말로 갈아탔다

조금이라도 아이리스를 더 편하게 하려는 배려였다

동카스는 코끼리안장 위에 앉은 아이리스를 올려다보았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헝클어진 머리에 옷은 더러워져 있었지만 여전히 아이리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왔다

이런 생각에 동카스는 귀밑까지 벌개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유를 아는 수졸들이 킥킥거린다

 

곤두와나 성은 그 모양이 독특했다

비교적 작은 뾰족하게 깍아지른 듯한 바위산 봉우리 중턱에 정상을 뒤로 벽을 삼고 절벽위에 지어졌는데 바깥으로 통하는 통로는 전방의 성문하나 뿐이어서 날짐승이 아닌한 감히 접근조차 할수 없었다

 

성문 앞에 다다른 동카스가 손짓을 하자 성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성주를 맞이하였다

 

동카스는 성궁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리스를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하도록 하고 의사를 불러 레오르도를 보게 했다

사실 레오르도는 되도록  베란두르에서 멀리 도망가길 원했으므로 탐탁치 않아했으나 상처를 봐야 한다며 아이리스가 하도 바가지를 긁어서 어쩔 수 없이 곤두와나 성까지 오게 된 것이다

 

레오르도는 상처를 돋보고 아이리스는 목욕까지 한후 둘은 그대로 곪아떨어져버렸다

동카스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들이 깨지않도록 각별히 조심시키곤 특별히 잡아온 큰쥐와 창고에 깊숙히 넣어둔 온갖 진귀한 식재료들을 꺼내 연회준비를 하도록 명령했다

 

레오르도와 아이리스는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슬금슬금 일어났다

한나절이나 세상 모르고 잠든 것이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아이리스는 머리를 묶고 침대 맡에 준비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후 레오르도의 방으로 왔다

 

"아버지 상처는 좀 괜찮으세요?"

 

"좀 낫구나"

 

원체 무뚝뚝한 레오르도라 대답이 짧다

심부름꾼 하나가 들어오더니 전갈을 알린다

 

옷을 갈아입으시고 연회석으로 나오시라는 동카스님의 분부입니다"

 

아이리스는 심부름꾼이 내미는 옷을 받아 레오르도에게 한벌 건네주고 자신도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돌아갔다

 

연회석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이리스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깜짝 놀라 주눅이 들었다

휘황찬란한 촛불이 수백개며 테이블 위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길다란 테이블 끌엔 성주 동카스가 앉았고 그 바로 오른쪽 옆으로 레오르도와 아이리스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성내의 귀족들과 어릿광대 무희들까지 모두 모여있어 연회석은 시끌벅적했다

 

레오르도는 워낙 성격이 진중한 탓인지 이 시끌벅적한 분위기에도 동요하지 않고 마치 자기집인양 자연스레 행동했다

 

무희와 어릿광대들의 여흥이 몇차례 반복되고

동카스는 레오르도와 아이리스에게 계속 음식을 권하며 갖가지 재미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해박한 그의 견문에 모두들 혀를 내두르며 칭찬해 마지 않았다

 

아이리스는 수많은 음식에 포크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포크가 맑은 선홍색으로 버무려진 한 사발의 야채에 멈추자 동카스가 말한다

 

"오호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건 꼭 드셔봐야 됩니다."

 

의기 양양하게 웃음을 지으며 동카스가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그 음식은 멀리 바다건너 동쪽 대륙에서 넘어온 것을 어렵사리 구한 것인데 야채에 동쪽 대륙 신비의 소스를 넣고 버무린 아주 귀한 음식으로서 이름은 김치라고 하지요. 특이한 것은 묵혀두면 묵혀둘수록 음식이 상하지 않고 더욱 맛있어진다는 것이지요.

아이리스님도 한번 드셔보시면 아마 홀딱 반하실 겁니다."

 

아이리스가 한입 먹어보니 과연 그 맛이 맵기도 하고 시기도 하며 짜기도 하고 달기까지 한것이 뭐라 형언할 수 없었다

 

곧이어 오늘의 메인 요리가 들어왔다

흔히 큰쥐라고 불리우며 학명으로는 '카피바'라고 하는 이 동물은 멧돼지 크기의 대형 쥐인데 그 고기가 부드럽고 기름져 아스가르드 왕국에서는 최고의 요리재료로 분류된다.

지금 나온 것은 동카스가 아침에 사냥한 녀석을 특제 소스를 발라 통으로 구워 바베큐를 만든 것이었는데 큰쥐는 그 뇌와 눈깔이 가장 맛있는 부위라 하여 머리째 구워져 아이리스는 보자마자 기겁을 했다.

길게 혀를 내밀고 눈을 부릅뜬 모습이 영락없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 아닌가?

성주 동카스가 포크를 큰쥐의 오른쪽 눈알에 콱 박더니만 쑤~욱 뽑아 아이리스의 접시에 듬뿍 담았다. 노랗게 익어 김이 풀풀나는 시신경이 뇌수와 함께 딸려 나왔다.

 

"좀 드셔보시오"

 

동카스가 이렇게 말하는 데 아이리스는 대경실색하여 '꺄악'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허헛~! 아이리스양이 왜 그러지? 내가 뭔가 실수했는가?'

 

동카스는 갑작스런 사태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아이리스는 정신 없는 연회석을 나와 전망이 좋은 탑루에 자리잡았다.

고요한 밤의 적막이 주위를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 경황이 없었으나 이제 이렇게나마 한숨 돌리고 나니 갑자기 자신의 처지가 안쓰러워졌다.

 

아이리스는 엄마 생각을 했다.

한 번도 본적은 없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분이셨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어머니를 정말로 사랑하셨었는가 보다.

어머니에 대해 여쭐 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눈시울이 붉어지셨더랬다.

 

하이얀 달빛이 내리 비친다.

아이리스의 눈엔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이리스양~"

 

등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아이리스는 황급히 눈물을 훔쳤다

작달만한 키의 성주 동카스였다

 

"아~! 동카스님"

 

"밤공기도 차가운데 안에 머무르시지 않고 왜 여기 계십니까?"

 

"예~! 다..달이 너무 밝아서..."

 

아이리스는 슬그머니 얘기를 돌렸다.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하고 계시는가 보군요.."

 

말꼬리를 흐리며 동카스는 휘엉청 밝은 달을 올려다보며 뒷짐을 한 채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아이리스의 가슴팍까지 밖에 안오는 작달만한 체구였지만 그의 뒷모습이 어쩐지 아주 커 보인다.

 

"저도 이런 밝은 달이 뜨는 밤이면 그리운 그 사람이 생각난답니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 . 전 저 멀리 남쪽 대륙 끝 사비나 마을 태생의 모험을 좋아하던 난쟁이였답니다. 사비나 마을은 아시죠? 난쟁이들의 마을..."

 

동카스가 씽긋 웃어보인다.

 

"용맹하고 의협심 강한 둘도 없는 친구들과 함께 대륙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저는 어느날 정말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를  만나게 되었지요."

 

동카스가 감상에 젖는다.

아이리스는 무슨 얘기인가 하고 귀를 기울였다.

 

"전 그녀를 정말 사랑했고 그녀도 저를 사랑해주었답니다. 천대받는 난쟁이족인 저에겐 정말 과분한 사랑이었지요.

그렇게 친구들과 떨어져 저는 이 산골에 정착하게 되었고 아스가르드 왕국의 사람이 됐습니다. 또 전쟁에서의 공로도 인정받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 곤두와나 성의 성주도 되었답니다."

 

아이리스는 자신에게 청혼했던 이 할아버지의 아내 얘기라 내심 궁금해졌다.

 

"하지만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주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치의 병에 걸려 버린 그녀는 저만 놔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에게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랑을 받았던 저는 그 사랑을 깊이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가리라 마음 먹고 또 그렇게 살아왔지요."

 

"그렇게 믿으며 동물이나 키우며 소일거리하며 살아가던 제가 어느날 우연한 기회로 아이리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리스는 '아아! 성주님의 아내는 병에 걸려 일찍 돌아가셨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자신의 얘기가 나오자 머쓱해졌다.

 

 

"그리고 그만 한눈에 아이리스님을 사랑하게 되버렸습니다. 물론 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없어진 건 아닙니다. 다만 아이리스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새로 생겨났을 뿐이지요. 사랑의 감정이란 정말 미묘하여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이었고 전 용감하게 고백하기로 했었지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비록 아이리스님의 마음을 얻진 못했지만 전 제가 다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행복하답니다."

 

말을 마친 동카스가 우스개소리까지 덧붙인다.

 

"물론 제 아내에겐 좀 미안하지만 말이에요.하하~!!"

 

달빛 아래서 난쟁이 할아범이 나이차가 반세기 넘게 나는 젊은 처자에게 이런 낯간지러운 얘기를 과감하게 해대다니 아이리스는 정말정말 머쓱해졌다.

닭살스럽다고 하던가? 하여간 아이리스는 어찌나 머쓱하던지 머리칼이 쭈삣쭈삣 섰다.

 

'흐흠~!' 저쪽 담 모퉁이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아버지~!"

 

아이리스는 레오르도를 발견하곤 쪼르르 달려갔다. 레오르도가 언제부터 거기 서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레오르도는 동카스를 탐탁치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속으로 '이놈의 늙은이가 주책이야~!'라고 생각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레오르도도 동카스가 예전에 아이리스에게 청혼했던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세 사람가운데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데 갑자기 동카스의 참모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성주님... 한참 찾았습니다."

 

"무슨 일인가?"

 

"방금 왕궁 기사단이 입성했습니다."

 

레오르도와 아이리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로 마주 보았다. 동카스는 자초지정을 자세히 들은 건 아니었지만 이 둘이 왕궁 기사단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레오르도가 다급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이만 가야겠소."

 

아이리스의 손을 잡고 황급히 떠나려는 레오르도의 팔뚝을 움켜쥐고 동카스가 말했다.

 

"이 성에는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소. 지금 그리로 나가려고 하다가는 들키고 말거외다."

 

레오르도가 동카스를 노려봤다. 난쟁이 성주 동카스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주의를 끌테니 기회를 보아 달아나시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