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푸념

ㅇㅇ2020.03.21
조회105

나는 그야말로 범생이 중에 범생이로 자랐어.

공부하라면 하라는대로 온갖 것 하지 말라면 하지말라는 대로

꾹꾹 참으면서 본받을 만한 첫째, 자랑스러운 딸이 되려고 여태껏 최선을 다했어.

부모님 학구열이 굉장히 높았던지라 기대도 높았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잔소리는 그냥 잔소리가 아니라 자존감을 정말 바닥까지 긁는 말들이었어.

아빠 성격이 가부장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자신 말에 반박하는 말들은 듣지조차 않았고

대부분은 내가 말을 꺼낼 수조차 없게 위협적으로, 일방적으로 말을 하다가 나는 울고 뭐 그런 반복이었지. 내 성격이 억울한 일에 따지지 못하고 반박하지 못하는 성격이 절대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너무 두려움에 떨어서 그런가 아빠랑 얘기할 땐 정말 가벼운 얘기가 아니면 뭔 말만 해도 눈물부터 나더라. 엄마랑 얘기했을 문제면 조리있게 얘기하고 넘어갈 얘기도 아빠랑만 얘기를 시작하면 그냥 결말이 뻔하기 때문에 말하기도 전에 답답하고 그냥 대답을 포기하고 끝날때까지 온갖 얘기를 듣고 넘겨. 학생 때 부모님의 말씀은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되고 반박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내 속마음을 부모님한테 털어놓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부모님의 기대는 크지, 그 기대를 충족시켜야겠다는 불안감에 수험생활 내내 죽고싶을만큼 정말 힘들었지만 정작 힘들다는 말은 부모님께 못 하겠더라. 그렇게 3년을 최선을 다해 보내고 대학 입시 끝에 온가족이 바랐던 1지망 대학은 떨어지고 2지망 정도로 생각했던 대학에 합격했어. 부모님은 당연히 재수하라고 난리였고 나는 지난 내 노력들이 아까워서 재수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 온갖 잡념 다 빼고 지난 내 고등학교 3년을 되돌아봤을 때 노력이 부족했다는 후회가 하나도 들지 않아서 재수를 포기하고 애초에 부모님한테도 재수 안 할거라고 못을 박았어. 그렇게 얘기한 이후에도 부모님은 뭐만 하면 재수얘기였고 뉴스나 다른 티비프로에서 대학얘기만 나오면 한숨쉬고 별 눈치란 눈치는 혼자 다 먹었어. 동생은 나랑 4살 차이가 나서 아직 대입에 대해 잘 모르지만 부모님이 내가 당연히 가야 할 대학에 떨어졌다는 식으로 얘기하니 자기도 그런 줄 알고 나한테 장난을 칠 때면 재수얘기만 하더라. 근데 재수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텐데 이게 심리적 압박감이 아무리 재수에 대한 미련을 비웠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아쉬움과 미련은 절대 비워지지 않거든. 내가 그 대학에 가기 위해서 공부한건 나 자신이지 부모님이나 동생이 아니잖아. 누구보다도 속상한 건 누가 뭐래도 난데, 주변에서 겨우 정리해가고 있는 마음을 들쑤시니까 참 힘들더라. 어찌됐건 난 재수는 안 할거라는 의지가 너무 확고했고 정말 번아웃 그 자체였기 때문에 입시가 끝나고는 그토록 갈망했던 20살의 자유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참 미련했지. 내가 말하는 20살의 자유는 맨날 술먹고 담배피고 뭐 이런 유흥적인 것만이 아니라 내 삶을 내 선택에 따라 살아가고, 하고싶은 일들을 하고, 잘 때 자고 일어날 때 일어나고 그런 소박한 것들이었어. 입시 끝나고의 나는 정말 휴식과 자유 그 자체가 너무 필요했거든. 원래 꾸미는거에 정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염색,렌즈,네일,다이어트 등 원하는 것을 미친듯이 했고, 면허도 따고 운동이랑 도서관도 꾸준히 다니면서 나름대로 자기계발도 해나갔어, 물론 이 모든 비용은 입시 끝나고 학원과 과외 알바로 내가 직접 번 돈으로 해결했고. 근데 한 두달 지나서 재수 얘기가 좀 들어갈 때 쯤 되니까 또 다시 부모님의 잔소리와 다른 기대가 시작되더라. 엄마는 아빠의 불같은 성격에 지쳤는지 나한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얘기를 전부 들어야 했어. 나와는 성격이 전혀 반대인 동생에 대한 책임도 나한테 주기 시작했고 동생이 일탈(?)의 행위를 할 때마다 나한테 언니니까 가서 좀 바로잡아 달라고 부탁하시더라. 이게 참,, 엄마도 못하는 것을 내가 무슨 수로 해. 엄마는 동생이 엄마보다 나를 더 따른다면서 내가 모범이 되야 한다는 말만 되뇌이고 동생은 나를 전혀 언니 취급도 안 하고 나는 중간에서 또 다른 첫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되는 입장이 되어 있더라. 또 아빠는 내가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꼴이라도 보면 책 좀 읽어라, 문과는 책이랑 상식이 필수라면서 가만히 두질 않았어.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시기 시작한 뒤로는 더 가관이었고 이젠 아침 9시에 아침을 먹지도 않는 나를 깨워서 뭐라도 하라고 하시더라. 방금은 친구들이랑 한 잔 하고 오셔서는 또 똑같은 얘기를 하면서 책 읽어라, 자기계발을 좀 해라, 핸드폰을 몇시간 할거냐부터 시작해서 이젠 핸드폰도 뻇을 기세야,, 난 이게 대학에 들어가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내가 독립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니 결혼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는 생각에 답답하기만 하더라. 고3때까지 조금이라도 공부에 방해될 듯 싶으면 수능끝나고 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으면서 막상 지금와보니 그건 또 보기가 싫으셨나봐. 대학 온라인 강의도 들으면서, 나름대로 할 거 하면서 살고 있는데 말이지^^,, 부모님은 나에 대한 관심이고 다 내가 잘 되라고 하시는 말씀이라는데 난 언제쯤 이 지나친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모님이니까'라는 말로 그냥 넘겼던 모든 것들이 요새 다르게 다가오니까 어떻게 해야될지를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