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중2 겨울방학이었는데 건강이 좀 심하게 나빠져서 (무슨 병인지는 얘기하지 않을게) 대형 병원을 몇번이나 왔다갔다 하고 생전 처음으로 수술까지 했던 적이 있었어. 수술은 잘 끝나고 몸은 엄청 빨리 회복되었는데, 우울증이 심하게 온거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병원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데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병원이 멀어서 잘 못오니까 어린 마음에 너무 외로웠던 것 같아.
병원은 퇴원 후에 일상으로 돌아가 매주, 매달 들리다가 이젠 몸이 좋아졌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때가 작년 여름이었어. 근데 우울증은 날이 갈수록 나아지질 않는거야. 새학기에 몸이 안좋아서 자주 학교를 빠지다보니 친구들을 사귀지 못해서 학교생활이 무지막지하게 지루했었어. 현장체험학습 같은 것도 안가고, 성적은 또 바닥이고.
부모님도 내가 심상치 않다는건 알고 계셨는데, 담임 선생님이랑 상담을 한 이후에는 심각한 걸 깨달으셨는지 어쩌면 좋을까 고민을 좀 하던 찰나에, 원래 서울에 계시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시골로 이사를 가셨다는 걸 듣고 거기에서 잠깐 생활하는 게 어떠냐고 했어. 부모님이 맞벌이시라 나를 케어해줄 사람이 필요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시골로 내려간 게 작년 여름 중순 쯤 될거야.
처음엔 시골 생활이 영 내키지 않았어. 물론 아주 시골까지는 아니었어. 10분 정도 걸으면 편의점도 있었고, 동네에 낡은 주택이 꽤 있었지. 자전거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아주 작은 초등, 중등, 고등학교도 있었어.
그치만 제일 좋았던 건, 화실이였어. 동네에 딱 하나 있는 화실. 어쩌다보니 외할아버지랑 친해진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무슨 디자이너를 하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데, 난 디자인을 잘 모르지만 꽤 유명한 사람 같더라고. 주택도 자기가 직접 디자인해서 지은거라고 했어. 물론 내가 디자인을 잘 몰라서 이상해보이긴 했지만.. 그 옆집 아저씨가 특히 성격이 엄청 개방적이고 좋았어. 자기는 혼자 작업하는게 싫어서 항상 자기가 마당에 세운 컨테이너 작업실을 오픈해두는데, 마을 사람들이랑 친분을 쌓다 보니 작업실이 결국 마을 다방처럼 되어버린거야. 사람들이 와서 차도 마시고, 어르신들은 화투도 하고 그러니까 차 내리는 기계도 사고 음식도 두고. 결국 작업실이 없어진 것 같아서 뒷마당에 화실을 하나 만들었대.
그래서 가봤더니 모양새가 좀 조촐했어. 화실이라기엔 엄청 초라했는데, 바닥에 깔판 깔고 나무기둥 세워서 천막이랑 블라인드로 임시벽을 만든 곳이였어. 약간 엄청 큰 텐트 느낌? 그래도 꽤나 튼튼하긴 하더라고. 바람 불어도 벽이 끄떡 없었어.
근데 나는 사람 많은 걸 싫어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컨테이너 작업실을 갈 때, 나는 화실을 자주 갔던 것 같아. 화실에는 사람이 거의 안왔거든.
사실 그때만 해도, 그냥 집에만 있으면 무기력하니까 뭐라도 나와야지 하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갔다가 30분도 되지 않아서 다시 집에 돌아갔었는데, 내가 매일마다 화실을 찾아가게 된 계기가 있었지.
외할머니가 식혜를 만들었으니까 옆집 아저씨한테 식혜 갖다주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옆집 아저씨가 컨테이너 작업실에 있는거야. 그래서 식혜 두고 집 가려던 찰나에, 옆집 아저씨가 나한테 컨테이너에 페인트로 벽화를 그릴건데, 페인트 칠 좀 도와줄 수 있녜서 어쩔 수 없이 돕게 됐지. 아저씨가 그림 테두리를 그리면, 내가 그 안에 색칠을 하는 거였는데 하다보니 시간이 금방금방 가더라고. 근데 생각보다 정말 재밌었어. 원래 학교에서 집에 오면 무기력하게 잠만 자면서 시간을 겨우겨우 보내던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에 열중을 하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낸거야. 그 이후로 학교만 끝나면 아저씨네에 가서 색칠을 도왔지. 어느 날에는, 내가 맨날 학교에 끌고 다니던 낡은 자전거를 옆집 아저씨가 예쁘게 페인트칠 해줬었던 적도 있었어. 그 기세로 결국 화실까지 예쁘게 칠했지.
작년 겨울이 될 즈음에 색칠이 다 됐는데, 진짜 너무 뿌듯해서 눈물이 다 났어. 너무 예쁘기도 예뻤지만 내가 이렇게 무언가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나, 얼마만에 이렇게 열정적인 기분을 느껴보는거지 하면서.
결국 페인트칠이 끝난 이후에도 학교만 끝나면 계속 찾아가 옆집 아저씨의 화실에서 놀았지. 옆집 아저씨한테 처음 배운 그림이 유화였는데, 내 몸만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어. 그러다 옆집 아저씨의 아들을 만나게 된 때가 아마 작년 12월 초.
여느 때랑 같이 그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옆집 아저씨가 오늘 자기 집에 중요한 손님이 오는데 요리 하는 걸 조금 도와달라 하더라구. 당연히 가서 열심히 요리를 돕고 있는데, 요리가 완성되갈 즈음에 누군가가 집에 왔어. 근데 딱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야. 그리고 옆집 아저씨 표정을 보고 딱 알 수 있었지. 가족이구나.
옆집 아저씨는 약간 놀라면서 그 남자애한테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하는데, 남자애는 되게 차갑게 그냥요. 잘 부탁할게요. 이러면서 쌩 하고 방에 들어가더라고. 밥 먹으라는데도 이미 먹었다고 하고. 옆집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면서 결국 준비해둔 요리는 컨테이너 작업실에 들고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이랑 다 같이 먹었어. 나는 눈치보여서 일찍 집에 가고, 다음 날에 화실을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그냥 컨테이너 작업실이나 가려던 찰나에, 옆집 아저씨가 잠깐 시간 있냐고 하는거야.
화실에서 옆집 아저씨랑 단 둘이 얘기를 하는데, 어제 있던 일에 대해 말해주더라고. 사실 그 남자애는 나보다 한살 많은 고1인데, 자기 아들이고 (내용이 좀 긴데 자세한건 생략할게) 어찌저찌해서 아들이 원치 않게 여기로 오게 됐다고 했어. 근데 그럴 법도 하더라고.
근데 얘기를 하고 있자니, 갑자기 아들이 들어와서는 자기 방에 걸려있는 그림 좀 치워달라고 하는거야. 근데 그게 옆집 아저씨가 그린 그림이거든.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저씨는 아 그래 알겠어 하면서 분주하게 그림을 치워주러 가더라고. 나는 또 가시방석이 되어서 어쩌지 하는데 아들이 갑자기 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화실에 들어오더니 "집 어디세요?" 이러길래 쭈뼛쭈뼛 옆집이라 했더니 바람 빠진 웃음? 지으면서 "아ㅎ 그럼 눈에 띄지 좀 말아주세요. 남의 집에서." 이러고 홱 가버려서 순간 울컥하긴 하지만 남의 집인건 맞으니까 뭐라 할 수가 없는거야. 그래서 결국 옆집 아저씨한테 인사하고 급하게 집 왔지.
시골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오빠 얘기해줄게 길어도 양해해줘..
시작은 제작년 겨울이었어.
그 때 중2 겨울방학이었는데 건강이 좀 심하게 나빠져서 (무슨 병인지는 얘기하지 않을게) 대형 병원을 몇번이나 왔다갔다 하고 생전 처음으로 수술까지 했던 적이 있었어. 수술은 잘 끝나고 몸은 엄청 빨리 회복되었는데, 우울증이 심하게 온거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병원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데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병원이 멀어서 잘 못오니까 어린 마음에 너무 외로웠던 것 같아.
병원은 퇴원 후에 일상으로 돌아가 매주, 매달 들리다가 이젠 몸이 좋아졌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때가 작년 여름이었어. 근데 우울증은 날이 갈수록 나아지질 않는거야. 새학기에 몸이 안좋아서 자주 학교를 빠지다보니 친구들을 사귀지 못해서 학교생활이 무지막지하게 지루했었어. 현장체험학습 같은 것도 안가고, 성적은 또 바닥이고.
부모님도 내가 심상치 않다는건 알고 계셨는데, 담임 선생님이랑 상담을 한 이후에는 심각한 걸 깨달으셨는지 어쩌면 좋을까 고민을 좀 하던 찰나에, 원래 서울에 계시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시골로 이사를 가셨다는 걸 듣고 거기에서 잠깐 생활하는 게 어떠냐고 했어. 부모님이 맞벌이시라 나를 케어해줄 사람이 필요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시골로 내려간 게 작년 여름 중순 쯤 될거야.
처음엔 시골 생활이 영 내키지 않았어. 물론 아주 시골까지는 아니었어. 10분 정도 걸으면 편의점도 있었고, 동네에 낡은 주택이 꽤 있었지. 자전거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아주 작은 초등, 중등, 고등학교도 있었어.
그치만 제일 좋았던 건, 화실이였어. 동네에 딱 하나 있는 화실. 어쩌다보니 외할아버지랑 친해진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무슨 디자이너를 하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데, 난 디자인을 잘 모르지만 꽤 유명한 사람 같더라고. 주택도 자기가 직접 디자인해서 지은거라고 했어. 물론 내가 디자인을 잘 몰라서 이상해보이긴 했지만.. 그 옆집 아저씨가 특히 성격이 엄청 개방적이고 좋았어. 자기는 혼자 작업하는게 싫어서 항상 자기가 마당에 세운 컨테이너 작업실을 오픈해두는데, 마을 사람들이랑 친분을 쌓다 보니 작업실이 결국 마을 다방처럼 되어버린거야. 사람들이 와서 차도 마시고, 어르신들은 화투도 하고 그러니까 차 내리는 기계도 사고 음식도 두고. 결국 작업실이 없어진 것 같아서 뒷마당에 화실을 하나 만들었대.
그래서 가봤더니 모양새가 좀 조촐했어. 화실이라기엔 엄청 초라했는데, 바닥에 깔판 깔고 나무기둥 세워서 천막이랑 블라인드로 임시벽을 만든 곳이였어. 약간 엄청 큰 텐트 느낌? 그래도 꽤나 튼튼하긴 하더라고. 바람 불어도 벽이 끄떡 없었어.
근데 나는 사람 많은 걸 싫어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컨테이너 작업실을 갈 때, 나는 화실을 자주 갔던 것 같아. 화실에는 사람이 거의 안왔거든.
사실 그때만 해도, 그냥 집에만 있으면 무기력하니까 뭐라도 나와야지 하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갔다가 30분도 되지 않아서 다시 집에 돌아갔었는데, 내가 매일마다 화실을 찾아가게 된 계기가 있었지.
외할머니가 식혜를 만들었으니까 옆집 아저씨한테 식혜 갖다주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옆집 아저씨가 컨테이너 작업실에 있는거야. 그래서 식혜 두고 집 가려던 찰나에, 옆집 아저씨가 나한테 컨테이너에 페인트로 벽화를 그릴건데, 페인트 칠 좀 도와줄 수 있녜서 어쩔 수 없이 돕게 됐지. 아저씨가 그림 테두리를 그리면, 내가 그 안에 색칠을 하는 거였는데 하다보니 시간이 금방금방 가더라고. 근데 생각보다 정말 재밌었어. 원래 학교에서 집에 오면 무기력하게 잠만 자면서 시간을 겨우겨우 보내던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에 열중을 하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낸거야. 그 이후로 학교만 끝나면 아저씨네에 가서 색칠을 도왔지. 어느 날에는, 내가 맨날 학교에 끌고 다니던 낡은 자전거를 옆집 아저씨가 예쁘게 페인트칠 해줬었던 적도 있었어. 그 기세로 결국 화실까지 예쁘게 칠했지.
작년 겨울이 될 즈음에 색칠이 다 됐는데, 진짜 너무 뿌듯해서 눈물이 다 났어. 너무 예쁘기도 예뻤지만 내가 이렇게 무언가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나, 얼마만에 이렇게 열정적인 기분을 느껴보는거지 하면서.
결국 페인트칠이 끝난 이후에도 학교만 끝나면 계속 찾아가 옆집 아저씨의 화실에서 놀았지. 옆집 아저씨한테 처음 배운 그림이 유화였는데, 내 몸만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어. 그러다 옆집 아저씨의 아들을 만나게 된 때가 아마 작년 12월 초.
여느 때랑 같이 그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옆집 아저씨가 오늘 자기 집에 중요한 손님이 오는데 요리 하는 걸 조금 도와달라 하더라구. 당연히 가서 열심히 요리를 돕고 있는데, 요리가 완성되갈 즈음에 누군가가 집에 왔어. 근데 딱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야. 그리고 옆집 아저씨 표정을 보고 딱 알 수 있었지. 가족이구나.
옆집 아저씨는 약간 놀라면서 그 남자애한테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하는데, 남자애는 되게 차갑게 그냥요. 잘 부탁할게요. 이러면서 쌩 하고 방에 들어가더라고. 밥 먹으라는데도 이미 먹었다고 하고. 옆집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면서 결국 준비해둔 요리는 컨테이너 작업실에 들고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이랑 다 같이 먹었어. 나는 눈치보여서 일찍 집에 가고, 다음 날에 화실을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그냥 컨테이너 작업실이나 가려던 찰나에, 옆집 아저씨가 잠깐 시간 있냐고 하는거야.
화실에서 옆집 아저씨랑 단 둘이 얘기를 하는데, 어제 있던 일에 대해 말해주더라고. 사실 그 남자애는 나보다 한살 많은 고1인데, 자기 아들이고 (내용이 좀 긴데 자세한건 생략할게) 어찌저찌해서 아들이 원치 않게 여기로 오게 됐다고 했어. 근데 그럴 법도 하더라고.
근데 얘기를 하고 있자니, 갑자기 아들이 들어와서는 자기 방에 걸려있는 그림 좀 치워달라고 하는거야. 근데 그게 옆집 아저씨가 그린 그림이거든.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저씨는 아 그래 알겠어 하면서 분주하게 그림을 치워주러 가더라고. 나는 또 가시방석이 되어서 어쩌지 하는데 아들이 갑자기 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화실에 들어오더니 "집 어디세요?" 이러길래 쭈뼛쭈뼛 옆집이라 했더니 바람 빠진 웃음? 지으면서 "아ㅎ 그럼 눈에 띄지 좀 말아주세요. 남의 집에서." 이러고 홱 가버려서 순간 울컥하긴 하지만 남의 집인건 맞으니까 뭐라 할 수가 없는거야. 그래서 결국 옆집 아저씨한테 인사하고 급하게 집 왔지.
생각나는거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너무 길다.. 반응 좋으면 이어서 쓸게 미안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