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전해질 수 없는 마지막편지

ㅇㅇ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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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웃는 모습에 반했어. 이름과 얼굴만 알고 있었던 같은 반 친구인 네가 앞에 나가 웃을 때 쏙 들어가는 보조개, 반달 같이 휘어지는 눈에 반했어.

그 뒤로는 모든게 다 좋았어. 원래 그런건지 컨셉인지 모를 과묵함, 잠이 많은지 수업시간에 항상 책상에 엎드려 있는 모습, 여름이면 자주 입고 다니는 남색 반팔티처럼 너의 사소한 것들도 다 좋았어.
같은 반이지만 사는 세계가 다른지라 말 한번 못해봤었는데 체육시간에 짝축구를 할 때 너와 짝이 되어서 같이 뛰고 장난치는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누굴 좋아하는데 있어서 한번도 먼저 다가가본 적이 없어서 두려웠지만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는게 두려워서 널 좋아하는 티를 내기 시작했어.
한번도 먼저 해본 적 없는 연락, 대화를 이어가려는 노력, 생일선물로는 무엇이 적당할지 몰라 서점에 가서 두시간동안 열심히 고른 책, 정성들여서 쓴 편지, 모든게 다 처음이었고 거절당하는게 두려웠지만 열심히 구애했어.

점점 너도 나에게 마음을 여는 것 같다고 느낄 때쯤, 모든게 내 착각이었던 걸 알게됐어.
너가 가끔 날 보는 것 같은 것도, 날 보고 웃는 것 같은 것도, 나와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한 것도, 내 착각이었어.
넌 내가 아니라 내 친구를 좋아했어.
넌 내가 아니라 내 옆의 내 친구를 보고 있었고, 내 친구를 보고 웃었고, 내가 아니라 내 친구와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한거였어.
그런데 나만 모르고 있었어. 내 친구들, 네 친구들, 심지어 네가 좋아하고 있는 내 친구까지 그 사실을 다 아는데 나만 몰랐어. 정말 충격이었지.
내가 너에게 연락을 할 때 넌 내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고, 내가 네 생일을 챙길 때 넌 내 친구의 생일을 챙기고 있었던 거야.

아무래도 슬프긴 무지 슬프더라. 정말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했던 적은 처음이었는데. 몇날 몇일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시도때도 없이 울었어. 나에게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에 나조차도 놀랐어.

며칠을 그렇게 끙끙 앓고 난뒤에 생각해보니 미안했어. 너에게도 내 친구에게도.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아는 내 친구는 너를 거절했어. 네가 싫다면서 연락도 잘 받지 않고 매일 거절하느라 바빴지.
내가 네 사랑까지 망쳐버렸어. 너에게는 내가 장애물이었겠지. 많이 싫었을거야. 왜 난 그걸 이제야 알았을까?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내 친구에게 널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전에 알았더라면, 친구에게 말하지 않고 포기했을텐데. 네 사랑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을텐데.

진심으로 미안해. 내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뜻하지 않았지만 너에게 상처를 줬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널 좋아하는 마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묻을거야. 절대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마음인 것처럼 묻을거야. 그렇게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학창시절에 나에게 다시는 오지 않을 이런 기억을 남겨줘서.
지금은 상처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지만 먼 훗날에는 아마 어여쁜 추억이 되어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다는 걸, 용기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줘서 고마워. 예쁜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나중에, 정말 나중에는 이 이야기를 활짝 웃으면서 할 수 있겠지? 눈물 없이 말이야.
사랑한다는 말, 정말 아껴둔 말인데,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려고 고이 보관해둔 말인데, 나는 널 많이 사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