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대숲에서 퍼 온 썰 ㅈㄴ 슬퍼

ㅇㅇ2020.04.07
조회482
#남송리11849번째외침
2020. 04. 06. 오전 03:31:49
나도 알아. 이렇게 익명 뒤에 숨어서 얘기하는게 얼마나 찌질한건지. 그래도 같은 지역이니까. 이걸 기억하는 나도 싫지만 너 가끔 페북 하는거 같아서 한번 써봐.

항상 반듯한 너가 좋았어. 고3때 애들이 다 너가 실장하겠다고 했어. 그만큼 너는 범생이었지. 아직도 기억난다. 끝까지 잠근 와이셔츠와 아무도 입지 않던 마이를 챙겨입고, 조끼까지 단정하게 입은 너가. 그와 달리 나는 등교만 하면 교복을 벗어던져 사복을 입었지. 처음에는 나와 너무 다르게 참한 너랑 나랑은 안맞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더 신경쓰였나봐. 나랑은 너무 다른 너여서.

아침에 등교할때 너는 복도청소였어. 넌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넸어. 하지만 나는 거의 안 받았지. 쑥스러웠거든. 같이 등교하던 내 룸메가 제발 네 인사 받으라고 할 정도였지. 매일 아침 너가 신경쓰였어. 오늘은 어디서부터 청소할까. 우리반 앞? 중앙복도부터? 어디서부터 고개를 숙여야 안 어색할까? 너는 모를거야. 나는 그때부터 너가 신경쓰였나봐.

너 그거 알아? 나 너때문에 맨날 복도 나갔어. 너 옆에 여자가 앉기만하면 그날은 공부를 하나도 못했어. 맨날 너가 복도에 책 둔 날만 내가 복도에서 공부 한거 알까 너는. 교실에서 너가 스탠딩 책상에 서있기만해도 나는 움직이지도 못했어. 너가 나 처다볼까봐. 졸업하기 전 마지막 자리 바꿀때 기도했어. 너 근처로 해달라고. 짝궁은 너무 떨려서 죽어버릴 수도 있을거같았거든. 그래서 네 근처로 해달라고 기도했어. 기도가 먹혔는지 네 앞자리에 걸렸지. 너가 내 뒤에서 툭 팔을 치면서 아 앞자리 너야? 한 말 나는 아직도 기억해. 너가 밤에 산책가자고 할때 너는 워낙 여자애들한테 상냥하니까 그냥 옆에 있는 애한테 한말이었겠지만 그때 내 심장은 미친듯이 뛰었어. 오해하기 싫었는데도 이정도면 오해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

너랑 사귀는 동안 정말 행복하고 정말 비참했어. 너는 정말 공부를 잘하고 수시 원서도 모두 명문대만 썼으니까. 그에 비해 나는 수시를 쓰면서도 될까말까한 애였으니까. 너 이거는 알까. 나 수시 떨어지고 정시로 그 학과 쓴것도 너때문이었어. 훗날 너랑 그때까지 사귀면 그래도 전문직 여자친구여야 너가 창피해하지 않을거같아서.

나도 알아. 우리 대학 들어가자마자 헤어질거같았어. 너에게 내가 뒷전인거같더라. 근데도 멍청하게. 진짜 자존심상하게 그렇게 착한 너인데, 그렇게 날 아껴주던 너인데 이렇게 할정도면 너는 정말 바쁘구나 생각했어. 근데 그때만해도 인스타나 페북을 안하던 나라 내 동기들이 우연찮게 니 이름을 인스타에 검색했어. 워낙 힘들고 공부 잘하는 대학이라 바쁘겠거니 생각했는데 잘 놀러다니더라. 댓글에는 여자이름도 보이고. 그때 속이 뒤집어지는줄알았어. 애들이 얘기하더라. 너 여자생긴거 같다고.
헤어지자고 한 날. 그 날도 똑같이 그 생각이 들더라. 착한 너가 이렇게 재수없게 말할 정도면 내가 다 잘못했겠다, 나한테 얼마나 정 떨어졌으면 이렇게 얘기할까.

방학때 동창애들도 만나서 너 욕도 많이했어. 재수없다고. 나쁜놈이라고. 그러면 좀 속이 풀릴까 싶어서. 한동안 생각이 안나더라. 근데 짜증나게 네 생각이 안 났다면서 또 너 생각을 했어. 아니 사실 지금까지도 그래. 작년 1년동안 대학 다닐때 기차역만 가면 두리번 거렸어. 혹시 너를 만날까봐. 한번도 못봤어. 다행인건지 아닌건지.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 너 여자친구 생긴거같다고. 사실 이미 여름에 들었어. 너 환승했다고. 친구한테는 이미 안다고, 괜찮다고, 나도 너랑 헤어지고 다른 남자랑 썸도 탔다고. 사실 하나도 안괜찮아. 나 그날 체했어.

헤어지고 네 소식 다 들었어. 너에게는 유감스럽지만 네 친구가 내 친구들이거든. 헤어진 다음날에도 네 동기들이랑 음료수 먹은거 스토리 올렸다더라. 친구는 미친거 아니냐고 어이없다고 말하는데 듣고 있다가 정말 비참하더라. 너에게는 일상으로 돌아가도 문제 없을만큼 시답지 않은 일이었구나. 나는 너랑 헤어진 그 날부터 한학기 종강할때까지 애들이 내 눈치볼정도로 우울해했는데. 매일밤 울었는데.

내가 현역으로 여기를 바로 왔으면 우리는 안헤어졌을까. 의미없는 가정이지만 여기 붙은 날부터 지금까지도 그 생각을 해. 애들한테 나 수시반수 했다고 말도 못하고 있어. 같은 지역인거 너가 알면은 나 스토커 취급할까봐. 너가 나 여기 있는거 싫어할거같아서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있어. 많고 많은 대학중에 여길 온거니까 너 눈치 안봐도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너무나 눈치보여. 너가 정말 싫어할거같거든. 에타에다가도 너네 학교 이름 언급만 되면 놀라. 너가 생각나서인가봐. 너네학교로 학점교류할수도 있다고들 하더라. 나중에라도 할까말까하는데 아마 안할거같아. 거기서 너랑 우연히라도 만나고 싶은데 너는 나 꼴도 보기 싫을거같아서.

내 다른 남자동창한테 연락왔어. 나 보고싶다고. 나야 어차피 마음도 없으니까 장난으로 포항올래? 내가 술사줄까? 그러니까 바로 오겠다네. 근데 별로 연락을 이어가기가 싫더라. 재미도 없어. 주위 친구들한테는 내 이상형이 아니라고 하지만 소용없어. 이미 내 이상형은 너이거든.

좀있으면 헤어진지 1년되겠다. 너랑 사귀는 동안 되게 좋았어. 면접보고 온날 밤에 집 앞에 와주고, 걱정해주고, 먼저 사랑한다고해주고. 많이 기억하는데 1년지났다고 많이 잊었다. 동창인 탓에 인스타 팔로우도 많이 겹쳐서 친구가 게시글 올리면 항상 좋아요 누른 사람 명단 보는거 아니. 혹시 너가 눌렀을까봐. 너 보라고 일부러 친구 게시글에 댓글도 달아. 아직도 너 이름이랑 비슷한 이름만봐도 나는 심장이 마구 뛰어.
혹여 이 글이 너네 학교 에타에 올라간다면 너인거 눈치 못채도 되니까 이 생각 한번만 해줘.

누군지는 몰라도 전애인이 되게 많이 좋아했었네.

바보야 너는 모르겠지만 이거 너 얘기야. 나랑 사귄 기억이 좋은 기억이었으면 좋겠어. 어렵게 전화를 걸어볼까싶다가도 알아 나도. 이미 끝났다는거. 혹시 나중에 여자친구랑 헤어지면 그냥 한번만 나한테 연락해줘. 제발 부탁이야. 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버려도 좋으니까 한번만 연락해줘. 정말 부탁이야. 혹시 내가 너네 학교에 갈 일이 있어 얼굴 마주친다면 동창으로서 예의상 인사한번만 건내줘.
나랑 사귀어줘서 고마워. 잘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