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도 말을 했다. 많은 여자를 만나봤다고. 나 역시 그렇다. 연애를 많이 해 봤다기보단 남녀 사이에 오가는 교류라든가 썸 비슷한 거, 대화 등등일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람에 대해 알고 이성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불편함이 없고.. 그 정도.
물론 나는 연애를 깊이 해 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습관에 물들 만큼 그런 깊은 관계까지는.. 남자친구도 비슷할 것 같다. 긴 연애 기간이 사람의 마음을 필연적으로 열어주는 건 아니니까.
나는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게 해준 신에게 솔직히 너무 감사한데.. 내 삶을 돌이켜봐도 가장 여유로운 시기였고 내 마음도 편안했던 때였다. 물론 우린 .. 많이 싸웠지만. 서로 상처도 많이 남았을텐데,,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된 것도 있다. 남자친구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우리가 싸운 것도 남자친구와 나란 사람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이 아팠지만 더 떨어질 수 없단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많이 미안하고 앞으로는 내가 성격 죽이고 조심해서 혹시라도 마음에 스칠 만한 말이라도, 표현이라도 더 배려해서 할 것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만약 남자친구를 좀 더 어린 시절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고 싶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들을 들춰보고 남자친구와 그 시간들을 함께 보내보고 싶다.
먼저 초등학교 때로 가 볼까.
6학년이다. 나는 많이 조용했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집에서는 놀았지만 학교에 있을 땐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 도서관에 자주 갔고 아주 가끔 친구들하고 놀았다. 그런데 말주변이 별로 없어 재미있는 친구는 아니었다. 그냥 책 좋아하고 공부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들이 편했다.
이 때 남자친구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 때도 잘 생겼겠지..
우린 같은 반이었다. 그렇지만 전혀 얘기해본 적도 없고 눈이 마주치거나 한 적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학교에서 제일 잘생긴 애.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 애는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렸고 크게 웃기도 했다. 친구들을 모아서 게임하러 가기도 했다. 이름은 한태운.
내 이름은 김지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었는데 나는 배운 걸 복습하고 있었다. 그러면 몇몇 남자애들이 와서 놀리곤 했었다. 태운이는 단 한번도 내 이름을 부르거나 가까이 오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반장이어서 선생님이 숙제를 나눠주라고 할 때 빼고는. 그 때도 형식적으로 주고 갔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영화를 보러 감상실로 이동하자고 하셨다. 아이들은 모두 신나서 뛰어나가버렸다. 나는 단짝이던 친구가 다른 친구로 친한 애를 바꾼 뒤로 마땅히 다닐 친구가 없어 붕 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나간 후, 나는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조금 이상하게 무섭기도 하고 좀 두렵고 많이 외롭고 혼자 남겨진 느낌이었다. 혼자 일어나서 감상실로 들어가면 많이 창피할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 때 문이 벌컥 열렸고 태운이가 들어왔다.
"너 왜 안와?"
"어?"
나는 그 말이 반갑기도 하고 날 모두가 완전히 잊은 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여자애가 아닌 반장인 남자애랑 같이 가면 좀 정말 친구 없는 애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날 챙겨주려고 할지도 모를 그 애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조금 퉁명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갈 거였어."
태운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앞장 섰다. 감상실은 복도 끝까지 가서 아래층에 있었다. 태운이는 꽤 천천히 걸었는데 나는 나란히 걷지 않기 위해 더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애가 돌아봐서 깜짝 놀랐다.
"넌 공부 하는 거 좋아해?"
나는 좋아하긴 했지만 좋다고 말하기는 조금 그랬다. 집에서는 전혀 안 했고 태운이가 우리 반 1등이었으니까.
"아니.. 별로 안 좋아해."
"넌 매일 공부하고 있잖아. "
나는 그 말에 조금 놀랐다. 태운이가 날 본 적이 있었나?
말을 돌렸다
"선생님이 나 찾으셨어?"
"아니 .. 그냥 네가 안보여서 왔어."
"어떻게 알았어?"
"됐어."
그리고 그 애는 씩 웃었다.
"보건실 갈래?"
나는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미안하지만 선생님이 너 기억 못하셔. 아프다고 하고 내가 데려다 주는 걸로 해."
나는 사실 정말로 감상실에 인기많은 태운이와 둘이 들어가서 주목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함께 보건실에 들어갔는데 보건 선생님이 태운이를 보자마자 반갑게 말을 거셨다.
"태운아, 또 놀다가 다쳤니?"
"아니에요, 친구가 배가 아파서 데리고 왔어요."
"어머, 그래? 배 어느 부분이 아프니?장염이니? 아니면 소화가 안 돼? 소화제 줄까?"
"네 소화가 안된대요."
태운이는 선생님께 약을 받고 정수기 앞으로 나를 데려가서 약을 건네주는 척 하더니 손에 숨겨 버려버렸다. 나는 눈치채고 약을 먹는 시늉을 했다.
"쌤, 지윤이 침대에서 좀 쉬다 가도 되죠?"
"그래라."
"그리고 얘가 말을 잘 못해서 제가 같이 있어줘도 되죠? 저 반장이라 선생님께서 같이 있으라고 하셨어요."
"그래 알았다."
나는 태운이의 능청스러움에 웃기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침대에 누웠는데 태운이가 의자를 가져와서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처음으로 학교 안에서 편안하고 안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운이는 침대 가에 팔을 괴었다.
"너 오늘 좀 힘들었지?"
나는 이때쯤 태운이가 많이 편해져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여자애들이 많이 시끄러워서 너랑 별로 안 맞지 않아?"
나는 살짝 웃었다.
"태운아 쌤 잠깐 교무실에 다녀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라."
"와.. 하늘이 도와주시네"
"응? 무슨 뜻이야?"
"너랑 둘이있게."
나는 이 때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너 머리카락 만져봐도 돼?"
나와 태운이 얼굴은 꽤 가까웠고 태운이는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다음에 나랑 피시방 갈래? 내가 게임 알려줄게. 그리고 공 차는 법도 알려줄게. 공 던지는 거랑. 너 공부도 도와줄게. 나한테 물어봐."
"왜?"
"너 심심할까봐. 앞으로 나랑 같이 놀자. 여자애들이랑 노는 것보다 더 재밌게 해줄게."
"그래도 돼?"
"응. 나랑 친구하자."
"좋아."
그 때 종이 울렸고 보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지금 영화 중반쯤 흘렀겠다. 가서 볼래?"
나는 이제 태운이랑 같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나서 보건 선생님께 인사하고 나왔다. 감상실 앞까지 갔을 때 조금 떨렸는데 태운이가 괜찮다며 내 손을 살짝 잡더니 문을 열고 놀란 아이들의 시선을 당당히 받으며 들어가서 나를 앉혔다. 그리고 선생님께 가서 뭐라고 말씀드리더니 내 옆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귓속말로 내게 '괜찮아'라고 말했다.
여자애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고 '쟤네 뭐야?'라는 작은 소리도 들렸다.
영화는 라따뚜이였고 중반부터 봤어도 재미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태운이와 같이 나왔는데 더 직접적으로 애들의 소리가 들렸다.
'쟤네 언제 친해진거야?' '한태운 쟤 뭐야?' 갑자기 태운이는 내 손을 꽉 잡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태운이를 열심히 따라갔고 우리는 1등으로 교실에 도착했다.
"신경쓰지마."
"뭘?"
"애들 말하는거. 네편 아니야. 나만 믿어."
나는 당당하게 말하는 태운이에게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웃으니까 예쁘네."
지금은 점심시간 이었고 우리는 같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 하다가 급식을 받고 같이 마주보며 밥을 먹었다.
"지윤이 너 되게 천천히 먹는다."
"응.."
"야 한태운 너 축구하러 안 가?"
"어 나 지윤이랑 놀거야."
"그래라."
이상하게도 남자애들은 우리 둘이 같이 있는 상황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우리는 밥을 다 먹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점심시간이면 모든 아이들은 이렇게 놀러 나왔는데 나도 나와보는 건 처음이었다. 태운이는 나를 철봉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철봉에 쉽게 올라가더니 앉았다. 올라와 볼래? 여기 말고 저기 낮은 데 먼저 해봐. 태운이는 내려와서 내가 올라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철봉 위에 앉으니 조금 무섭기도 하고 옆에 나무대를 놓을 수가 없었다.
태운이는 내 옆에 훌쩍 앉더니 웃었다.
"저기 높은 데 앉으면 날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늘에 구름이 떠 가고 아름다웠다.
"앞으로 이렇게 매일 나오자. 공부는 학교 끝나고 같이 하면 되잖아."
나는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게 너무 행복해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같이 도서관에 들렀다. 태운이는 내게 판타지소설 하나를 꺼내주었다.
"이거 봐봐. 재밌어. "
나는 작은 사람들이 나오는 소설 하나를 꺼내서 태운이에게 건넸다.
우리는 같이 책을 꺼냈고 오늘 배운 걸 복습하기 시작했다. 사회랑 역사책을 다 읽고 노트에 정리한 뒤, 수학 문제집을 꺼냈다. 태운이는 올림피아드 문제집을 꺼냈다.
"이거 같이 생각해볼래? 잘 안 풀리는 게 있어서."
나와 태운이는 함께 한 문제를 바라보며 같이 골똘히 생각했다. 내가 여러 의견을 냈고 태운이는 내 의견대로 여러가지 적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예전에 배운 도형 푸는 법을 떠올렸고 중간 계산 쯤에 그걸 넣어보자 태운이 눈이 반짝 빛났다. 우리는 결국 그 문제를 풀어냈고 같이 웃었다.
나머지 과학 공부를 더 하고 태운이에게 예전부터 이해 안 가던 부분을 물어보자 태운이는 금방 쉽게 설명해주었다.
같이 공부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고 너무 좋은 친한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한달동안 우린 매일 붙어다녔고 내 생일에 태운이는 인형 하나와 편지를 주며 고백했다.
우리는 예쁘게 사귀었고 각자 힘든 입시를 치른 뒤 같은 대학교에 들어와서 계속 만나고 있다.
남친 보고 싶어서 쓰는 소설2
우리는 어른이 된 뒤 만났지만..
남자친구도 말을 했다. 많은 여자를 만나봤다고. 나 역시 그렇다. 연애를 많이 해 봤다기보단 남녀 사이에 오가는 교류라든가 썸 비슷한 거, 대화 등등일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람에 대해 알고 이성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불편함이 없고.. 그 정도.
물론 나는 연애를 깊이 해 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습관에 물들 만큼 그런 깊은 관계까지는.. 남자친구도 비슷할 것 같다. 긴 연애 기간이 사람의 마음을 필연적으로 열어주는 건 아니니까.
나는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게 해준 신에게 솔직히 너무 감사한데.. 내 삶을 돌이켜봐도 가장 여유로운 시기였고 내 마음도 편안했던 때였다. 물론 우린 .. 많이 싸웠지만. 서로 상처도 많이 남았을텐데,,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된 것도 있다. 남자친구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우리가 싸운 것도 남자친구와 나란 사람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이 아팠지만 더 떨어질 수 없단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많이 미안하고 앞으로는 내가 성격 죽이고 조심해서 혹시라도 마음에 스칠 만한 말이라도, 표현이라도 더 배려해서 할 것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만약 남자친구를 좀 더 어린 시절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고 싶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들을 들춰보고 남자친구와 그 시간들을 함께 보내보고 싶다.
먼저 초등학교 때로 가 볼까.
6학년이다. 나는 많이 조용했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집에서는 놀았지만 학교에 있을 땐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 도서관에 자주 갔고 아주 가끔 친구들하고 놀았다. 그런데 말주변이 별로 없어 재미있는 친구는 아니었다. 그냥 책 좋아하고 공부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들이 편했다.
이 때 남자친구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 때도 잘 생겼겠지..
우린 같은 반이었다. 그렇지만 전혀 얘기해본 적도 없고 눈이 마주치거나 한 적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학교에서 제일 잘생긴 애.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 애는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렸고 크게 웃기도 했다. 친구들을 모아서 게임하러 가기도 했다. 이름은 한태운.
내 이름은 김지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었는데 나는 배운 걸 복습하고 있었다. 그러면 몇몇 남자애들이 와서 놀리곤 했었다. 태운이는 단 한번도 내 이름을 부르거나 가까이 오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반장이어서 선생님이 숙제를 나눠주라고 할 때 빼고는. 그 때도 형식적으로 주고 갔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영화를 보러 감상실로 이동하자고 하셨다. 아이들은 모두 신나서 뛰어나가버렸다. 나는 단짝이던 친구가 다른 친구로 친한 애를 바꾼 뒤로 마땅히 다닐 친구가 없어 붕 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나간 후, 나는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조금 이상하게 무섭기도 하고 좀 두렵고 많이 외롭고 혼자 남겨진 느낌이었다. 혼자 일어나서 감상실로 들어가면 많이 창피할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 때 문이 벌컥 열렸고 태운이가 들어왔다.
"너 왜 안와?"
"어?"
나는 그 말이 반갑기도 하고 날 모두가 완전히 잊은 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여자애가 아닌 반장인 남자애랑 같이 가면 좀 정말 친구 없는 애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날 챙겨주려고 할지도 모를 그 애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조금 퉁명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갈 거였어."
태운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앞장 섰다. 감상실은 복도 끝까지 가서 아래층에 있었다. 태운이는 꽤 천천히 걸었는데 나는 나란히 걷지 않기 위해 더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애가 돌아봐서 깜짝 놀랐다.
"넌 공부 하는 거 좋아해?"
나는 좋아하긴 했지만 좋다고 말하기는 조금 그랬다. 집에서는 전혀 안 했고 태운이가 우리 반 1등이었으니까.
"아니.. 별로 안 좋아해."
"넌 매일 공부하고 있잖아. "
나는 그 말에 조금 놀랐다. 태운이가 날 본 적이 있었나?
말을 돌렸다
"선생님이 나 찾으셨어?"
"아니 .. 그냥 네가 안보여서 왔어."
"어떻게 알았어?"
"됐어."
그리고 그 애는 씩 웃었다.
"보건실 갈래?"
나는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미안하지만 선생님이 너 기억 못하셔. 아프다고 하고 내가 데려다 주는 걸로 해."
나는 사실 정말로 감상실에 인기많은 태운이와 둘이 들어가서 주목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함께 보건실에 들어갔는데 보건 선생님이 태운이를 보자마자 반갑게 말을 거셨다.
"태운아, 또 놀다가 다쳤니?"
"아니에요, 친구가 배가 아파서 데리고 왔어요."
"어머, 그래? 배 어느 부분이 아프니?장염이니? 아니면 소화가 안 돼? 소화제 줄까?"
"네 소화가 안된대요."
태운이는 선생님께 약을 받고 정수기 앞으로 나를 데려가서 약을 건네주는 척 하더니 손에 숨겨 버려버렸다. 나는 눈치채고 약을 먹는 시늉을 했다.
"쌤, 지윤이 침대에서 좀 쉬다 가도 되죠?"
"그래라."
"그리고 얘가 말을 잘 못해서 제가 같이 있어줘도 되죠? 저 반장이라 선생님께서 같이 있으라고 하셨어요."
"그래 알았다."
나는 태운이의 능청스러움에 웃기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침대에 누웠는데 태운이가 의자를 가져와서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처음으로 학교 안에서 편안하고 안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운이는 침대 가에 팔을 괴었다.
"너 오늘 좀 힘들었지?"
나는 이때쯤 태운이가 많이 편해져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여자애들이 많이 시끄러워서 너랑 별로 안 맞지 않아?"
나는 살짝 웃었다.
"태운아 쌤 잠깐 교무실에 다녀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라."
"와.. 하늘이 도와주시네"
"응? 무슨 뜻이야?"
"너랑 둘이있게."
나는 이 때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너 머리카락 만져봐도 돼?"
나와 태운이 얼굴은 꽤 가까웠고 태운이는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다음에 나랑 피시방 갈래? 내가 게임 알려줄게. 그리고 공 차는 법도 알려줄게. 공 던지는 거랑. 너 공부도 도와줄게. 나한테 물어봐."
"왜?"
"너 심심할까봐. 앞으로 나랑 같이 놀자. 여자애들이랑 노는 것보다 더 재밌게 해줄게."
"그래도 돼?"
"응. 나랑 친구하자."
"좋아."
그 때 종이 울렸고 보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지금 영화 중반쯤 흘렀겠다. 가서 볼래?"
나는 이제 태운이랑 같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나서 보건 선생님께 인사하고 나왔다. 감상실 앞까지 갔을 때 조금 떨렸는데 태운이가 괜찮다며 내 손을 살짝 잡더니 문을 열고 놀란 아이들의 시선을 당당히 받으며 들어가서 나를 앉혔다. 그리고 선생님께 가서 뭐라고 말씀드리더니 내 옆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귓속말로 내게 '괜찮아'라고 말했다.
여자애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고 '쟤네 뭐야?'라는 작은 소리도 들렸다.
영화는 라따뚜이였고 중반부터 봤어도 재미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태운이와 같이 나왔는데 더 직접적으로 애들의 소리가 들렸다.
'쟤네 언제 친해진거야?' '한태운 쟤 뭐야?' 갑자기 태운이는 내 손을 꽉 잡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태운이를 열심히 따라갔고 우리는 1등으로 교실에 도착했다.
"신경쓰지마."
"뭘?"
"애들 말하는거. 네편 아니야. 나만 믿어."
나는 당당하게 말하는 태운이에게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웃으니까 예쁘네."
지금은 점심시간 이었고 우리는 같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 하다가 급식을 받고 같이 마주보며 밥을 먹었다.
"지윤이 너 되게 천천히 먹는다."
"응.."
"야 한태운 너 축구하러 안 가?"
"어 나 지윤이랑 놀거야."
"그래라."
이상하게도 남자애들은 우리 둘이 같이 있는 상황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우리는 밥을 다 먹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점심시간이면 모든 아이들은 이렇게 놀러 나왔는데 나도 나와보는 건 처음이었다. 태운이는 나를 철봉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철봉에 쉽게 올라가더니 앉았다. 올라와 볼래? 여기 말고 저기 낮은 데 먼저 해봐. 태운이는 내려와서 내가 올라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철봉 위에 앉으니 조금 무섭기도 하고 옆에 나무대를 놓을 수가 없었다.
태운이는 내 옆에 훌쩍 앉더니 웃었다.
"저기 높은 데 앉으면 날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늘에 구름이 떠 가고 아름다웠다.
"앞으로 이렇게 매일 나오자. 공부는 학교 끝나고 같이 하면 되잖아."
나는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게 너무 행복해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같이 도서관에 들렀다. 태운이는 내게 판타지소설 하나를 꺼내주었다.
"이거 봐봐. 재밌어. "
나는 작은 사람들이 나오는 소설 하나를 꺼내서 태운이에게 건넸다.
우리는 같이 책을 꺼냈고 오늘 배운 걸 복습하기 시작했다. 사회랑 역사책을 다 읽고 노트에 정리한 뒤, 수학 문제집을 꺼냈다. 태운이는 올림피아드 문제집을 꺼냈다.
"이거 같이 생각해볼래? 잘 안 풀리는 게 있어서."
나와 태운이는 함께 한 문제를 바라보며 같이 골똘히 생각했다. 내가 여러 의견을 냈고 태운이는 내 의견대로 여러가지 적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예전에 배운 도형 푸는 법을 떠올렸고 중간 계산 쯤에 그걸 넣어보자 태운이 눈이 반짝 빛났다. 우리는 결국 그 문제를 풀어냈고 같이 웃었다.
나머지 과학 공부를 더 하고 태운이에게 예전부터 이해 안 가던 부분을 물어보자 태운이는 금방 쉽게 설명해주었다.
같이 공부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고 너무 좋은 친한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한달동안 우린 매일 붙어다녔고 내 생일에 태운이는 인형 하나와 편지를 주며 고백했다.
우리는 예쁘게 사귀었고 각자 힘든 입시를 치른 뒤 같은 대학교에 들어와서 계속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