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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탠딩 가이즈’로 연기자 데뷔한 배구선수 한지연
한지연
전 배구선수
출생 : 1983년 11월 19일
소속사 : tulip엔터프라이즈 & 엔터테인먼트
학력 :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
경력 : 2005년 엘리트 모델 룩 대회 본선 참가 2003년 슈퍼모델대회 1차 심사 통과 배구 주니어 국가대표
배구선수 한지연 한지연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연극배우로 데뷔하는 배구 선수라는 정보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두 가지였다. ‘몸짱’과 ‘얼짱’이 그것이다. 기사에 실린 사진들은 비치발리볼 대회에 나갔을 때의 것이었다. 카메라 앵글은 하나같이 그녀의 몸을 훑고 있었다.
“외국에서 비치발리볼은 익숙한 종목이에요. 보수적인 한국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종목이죠. 경기 자체보다는 선수들의 유니폼에 흥미를 가지는 것 같았어요.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만 보는 경향이 있죠.”
한국에는 비치발리볼 전문 선수가 없다. 경기 자체가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배구를 하던 선수들이 비치발리볼 대회에도 출전한다. 배구 선수들은 비키니 유니폼 때문에 비치발리볼을 꺼린다. 선수는 항상 차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타이트한 셔츠나 스키니진은 입지 않는다. 한지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합을 위한 유니폼이라고 생각하니 비치발리볼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몸매와 얼굴에 집중하는 언론 속에서 그녀는 진심으로 경기를 즐겼다.
배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싫었다. 부모님이 시키니까 막연하게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재미가 붙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배구를 계속 했다. 공을 가지고 논다는 느낌으로 운동했다. 익숙해진 후에는 즐기게 됐다. 국가 대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무렵,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선택했다. 실업팀에는 가지 않았다. 당시의 드래프트 순위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했고, 규율이 엄한 실업팀은 가기 싫었다.
“못 갔다고 할 수도 있고, 안 갔다고 할 수도 있어요. 저보다 실력이 처지는 친구가 오히려 지명 순위가 더 높았죠. 자존심도 상하고, 실업팀에 가서 눈물 흘릴 생각을 하니 가기 싫어졌어요.”
이대에 들어가서 운동을 하면서 운이 트였다. 연예 활동에는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모델이 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비치발리볼 대회에 출전한 그녀의 외모는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 연예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어쩌다가 좀 뜨니까 연예계 생활 하려고 한다’는 말씀은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거든요. 원래 모델이 하고 싶었어요. 그러자면 더 말라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이제 막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녀가 밝히는 포부는 당차다. 강병규나 강호동처럼 방송인으로 성공하고 싶다. 여자 운동선수로서는 처음이다.
처음 경험하는 연극무대 2월 23일부터는 본격적인 연극 무대에 서고 있다. 전창걸이 연출하는 ‘스탠딩 가이즈’의 ‘유라’역이다. ‘유라’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일반적인 판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배우 현영이 연기해 유명해진 역할이기도 하다.
“연극 연습 때문에 지금은 문명과 철저히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어요. 대구에서 공연을 하고 연습도 하다 보니 노래를 듣거나 tv를 볼 시간도 없고요, 인터넷을 할 시간도 없어요.”
그녀는 현재 mbc드라마넷의 ‘천하무적 스파이크왕’에 고정패널로 출연중이다. kbsn의 ‘v’에서는 진행을 맡고 있다. 두 고정 프로그램의 녹화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상을 연극에 집중하고 있다. 공연은 월요일일 제외한 일주일 내내 계속된다. ‘유라’역을 맡고 있는 배우는 총 3명이다. 한지연은 일주일에 2번 정도 무대에 선다. 아직 연기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라’역으로 무대에 오르지 않을 때는 단역으로라도 무대를 밟는다. 한 번이라도 무대에 서는 게 경험을 쌓는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 연기에 도전할 때는 두려웠다. 잘 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처음에는 무대가 무서웠어요. 그런데 자꾸 (무대에) 서보니까 한 번 서는 것과 두 번 서는 것이 다르더라고요. 매번 떨리기는 하지만 조금씩 알아가면서 재미가 났어요. 조금만 더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기는 모든 연예 활동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아직 서툴러 고민이 많다. 연기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조차 꺼려진다. 하지만 처음 배구를 시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꾸준히 경험을 쌓다보면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꾸준한 선수 생활은 한지연에게 자립심을 길러줬다. 한 번 결심한 일은 끈질기게 매달린다. 하지만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일은 냉정하게 끊는다.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진 절제력이다. 술과 담배 등은 일체 하지 않는다.
시원한 외모와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그녀를 털털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말투와 미소에서는 여린 소녀의 모습이 엿보인다.
“의외로 여성스러운 면이 많아요. 그리고 자신에 관한 일에 있어서는 아주 까탈스럽죠. 제가 알고, 할 수 있는 일은 완벽하려고 노력합니다.”
본격적인 연예 생활을 연극 무대에서 시작한 것은 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몇 번이고 깨지면서, 솔직한 한지연의 모습 그대로 대중 앞에 서고 싶다.
속 깊은 그녀 한지연의 아버지도 운동선수였다. 대학 시절에는 유도 국가대표였던 한영수씨(56)가 그녀의 아버지다. “아버지가 운이 없으세요. 선발전같은 큰 대회 나가시면 부상을 당하세요. 국가 대표도 하셨는데, 그 해에는 우리나라가 올림픽에 참가를 안했어요. 이 후에는 경찰로 근무하셨죠. 그러다 대통령 경호원으로 발령이 나셨는데 발령 한 달 전에 큰 교통사고가 났어요. 지금도 거동이 불편하세요.”
1980년 올림픽은 당시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미국과 서독을 비롯한 서방국과 한국, 일본이 올림픽에 불참했다. 국제 정세 때문에 한영수씨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잃었다. 그리고 대통령 경호원 발령 전의 교통사고는 한씨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큰 아픔이었다. 한씨는 40일간 식물인간 상태였다.
“어머니께서 모든 것을 감수하셨어요. 저를 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를 돌보셨죠. 항상 어머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려고 해요.”
그녀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께서 너무나 고생을 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지금도 허리를 똑바로 펴지 못하신다. 그리고 뇌에 가해진 충격으로 기억력에도 문제가 있어 금방 했던 말도 곧 잊어버린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이다.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역할은 한지연의 몫이다. 10만원이 생기면 자신에게 쓰는 돈은 2,3만원. 나머지는 살림에 보탠다. 성공해서 집안에 더 큰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 고생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부족한 면을 채워드리고 싶은 마음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이제 시작점에 선 그녀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다만 한지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기억해줬으면 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토크쇼에서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다.
“반짝 스타가 되기는 싫어요. 한 번 비춰졌으니 영원이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지연은 이런 점이 좋았어’하고 기억이 나는 사람.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연극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감도 생겼다. 관객은 꾸준히 들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 있는 모습으로 서고 싶다.
“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을 봐주시고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연극 ‘스탠딩 가이즈’로 연기자 데뷔한 배구선수 한지연
한지연 전 배구선수 출생 : 1983년 11월 19일 소속사 : tulip엔터프라이즈 & 엔터테인먼트 학력 :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 경력 : 2005년 엘리트 모델 룩 대회 본선 참가
2003년 슈퍼모델대회 1차 심사 통과
배구 주니어 국가대표
한지연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연극배우로 데뷔하는 배구 선수라는 정보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두 가지였다. ‘몸짱’과 ‘얼짱’이 그것이다. 기사에 실린 사진들은 비치발리볼 대회에 나갔을 때의 것이었다. 카메라 앵글은 하나같이 그녀의 몸을 훑고 있었다. “외국에서 비치발리볼은 익숙한 종목이에요. 보수적인 한국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종목이죠. 경기 자체보다는 선수들의 유니폼에 흥미를 가지는 것 같았어요.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만 보는 경향이 있죠.” 한국에는 비치발리볼 전문 선수가 없다. 경기 자체가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배구를 하던 선수들이 비치발리볼 대회에도 출전한다. 배구 선수들은 비키니 유니폼 때문에 비치발리볼을 꺼린다. 선수는 항상 차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타이트한 셔츠나 스키니진은 입지 않는다. 한지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합을 위한 유니폼이라고 생각하니 비치발리볼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몸매와 얼굴에 집중하는 언론 속에서 그녀는 진심으로 경기를 즐겼다. 배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싫었다. 부모님이 시키니까 막연하게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재미가 붙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배구를 계속 했다. 공을 가지고 논다는 느낌으로 운동했다. 익숙해진 후에는 즐기게 됐다. 국가 대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무렵,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선택했다. 실업팀에는 가지 않았다. 당시의 드래프트 순위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했고, 규율이 엄한 실업팀은 가기 싫었다. “못 갔다고 할 수도 있고, 안 갔다고 할 수도 있어요. 저보다 실력이 처지는 친구가 오히려 지명 순위가 더 높았죠. 자존심도 상하고, 실업팀에 가서 눈물 흘릴 생각을 하니 가기 싫어졌어요.” 이대에 들어가서 운동을 하면서 운이 트였다. 연예 활동에는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모델이 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비치발리볼 대회에 출전한 그녀의 외모는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 연예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어쩌다가 좀 뜨니까 연예계 생활 하려고 한다’는 말씀은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거든요. 원래 모델이 하고 싶었어요. 그러자면 더 말라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이제 막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녀가 밝히는 포부는 당차다. 강병규나 강호동처럼 방송인으로 성공하고 싶다. 여자 운동선수로서는 처음이다.
처음 경험하는 연극무대
2월 23일부터는 본격적인 연극 무대에 서고 있다. 전창걸이 연출하는 ‘스탠딩 가이즈’의 ‘유라’역이다. ‘유라’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일반적인 판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배우 현영이 연기해 유명해진 역할이기도 하다. “연극 연습 때문에 지금은 문명과 철저히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어요. 대구에서 공연을 하고 연습도 하다 보니 노래를 듣거나 tv를 볼 시간도 없고요, 인터넷을 할 시간도 없어요.” 그녀는 현재 mbc드라마넷의 ‘천하무적 스파이크왕’에 고정패널로 출연중이다. kbsn의 ‘v’에서는 진행을 맡고 있다. 두 고정 프로그램의 녹화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상을 연극에 집중하고 있다. 공연은 월요일일 제외한 일주일 내내 계속된다. ‘유라’역을 맡고 있는 배우는 총 3명이다. 한지연은 일주일에 2번 정도 무대에 선다. 아직 연기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라’역으로 무대에 오르지 않을 때는 단역으로라도 무대를 밟는다. 한 번이라도 무대에 서는 게 경험을 쌓는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 연기에 도전할 때는 두려웠다. 잘 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처음에는 무대가 무서웠어요. 그런데 자꾸 (무대에) 서보니까 한 번 서는 것과 두 번 서는 것이 다르더라고요. 매번 떨리기는 하지만 조금씩 알아가면서 재미가 났어요. 조금만 더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기는 모든 연예 활동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아직 서툴러 고민이 많다. 연기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조차 꺼려진다. 하지만 처음 배구를 시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꾸준히 경험을 쌓다보면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꾸준한 선수 생활은 한지연에게 자립심을 길러줬다. 한 번 결심한 일은 끈질기게 매달린다. 하지만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일은 냉정하게 끊는다.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진 절제력이다. 술과 담배 등은 일체 하지 않는다. 시원한 외모와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그녀를 털털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말투와 미소에서는 여린 소녀의 모습이 엿보인다. “의외로 여성스러운 면이 많아요. 그리고 자신에 관한 일에 있어서는 아주 까탈스럽죠. 제가 알고, 할 수 있는 일은 완벽하려고 노력합니다.” 본격적인 연예 생활을 연극 무대에서 시작한 것은 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몇 번이고 깨지면서, 솔직한 한지연의 모습 그대로 대중 앞에 서고 싶다.
속 깊은 그녀
한지연의 아버지도 운동선수였다. 대학 시절에는 유도 국가대표였던 한영수씨(56)가 그녀의 아버지다.
“아버지가 운이 없으세요. 선발전같은 큰 대회 나가시면 부상을 당하세요. 국가 대표도 하셨는데, 그 해에는 우리나라가 올림픽에 참가를 안했어요. 이 후에는 경찰로 근무하셨죠. 그러다 대통령 경호원으로 발령이 나셨는데 발령 한 달 전에 큰 교통사고가 났어요. 지금도 거동이 불편하세요.” 1980년 올림픽은 당시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미국과 서독을 비롯한 서방국과 한국, 일본이 올림픽에 불참했다. 국제 정세 때문에 한영수씨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잃었다. 그리고 대통령 경호원 발령 전의 교통사고는 한씨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큰 아픔이었다. 한씨는 40일간 식물인간 상태였다. “어머니께서 모든 것을 감수하셨어요. 저를 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를 돌보셨죠. 항상 어머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려고 해요.” 그녀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께서 너무나 고생을 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지금도 허리를 똑바로 펴지 못하신다. 그리고 뇌에 가해진 충격으로 기억력에도 문제가 있어 금방 했던 말도 곧 잊어버린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이다.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역할은 한지연의 몫이다. 10만원이 생기면 자신에게 쓰는 돈은 2,3만원. 나머지는 살림에 보탠다. 성공해서 집안에 더 큰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 고생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부족한 면을 채워드리고 싶은 마음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이제 시작점에 선 그녀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다만 한지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기억해줬으면 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토크쇼에서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다. “반짝 스타가 되기는 싫어요. 한 번 비춰졌으니 영원이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지연은 이런 점이 좋았어’하고 기억이 나는 사람.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연극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감도 생겼다. 관객은 꾸준히 들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 있는 모습으로 서고 싶다. “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을 봐주시고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