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죄송하다 해야할까요 이대로 인연을 끊어야 할까요

울고싶다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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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는 마음으로 일기형식으로 써내려가는 제 이야기입니다. 혹여나 누군가가 제 글을 읽어주시고 한 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가슴 속에 새기겠습니다.

나는 부모님의 늦둥이 딸로 태어나 금전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내 위 오빠들에 비해 많은 투자를 받고 자랐다. 부모님 두 분 다 나를 과잉보호한다고 느낄 정도로 물질적이든 사랑으로든 많은 것을 주셨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서로에게는 사랑을 주지 않았다. 오직 내게만 사랑을 주었으며 한달 30일중 28일정도는 서로 으르렁대고 욕을 하고 죽일듯이 싸웠다.
그 덕에 일찍 철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말을 잘 들었고, 내가 잘하면 우리 집이 화목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기억 못하는 결혼기념일을 기어코 알아내 문방구에서 산 천원짜리 반지로 이벤트를 연다거나 하는 우스꽝스러운 이벤트들도 많이 벌였다. 거의 매일 밤마다 자기 전에 '오늘은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했다. 어쩌다 싸우지 않고 하루가 조용히 넘어갔을 때는 한달에 하루이틀이어도 내 기도가 통했나하고 기뻤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산다하였고, 아빠 흉을 보았다.
아빠도 나 때문에 산다하였고, 엄마 흉을 보았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엄마 아빠가 혹시나 이혼을 할까봐 서로를 할퀴고 밀치고 물건을 깨부술 때 무릎을 꿇고 내가 더 잘하겠다며 엄마 아빠 제발 싸우지 말라고 빌 때도 있었다.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그 사이에서 울부짖으며 두 사람이 서로 때리지 못하게 작은 몸으로 막아섰다.

초등학생 시절 난 혹시나 싸우다가 엄마 아빠가 칼로 서로 죽일까봐 매일 밤이 무서웠다. 엄마는 다리 안쪽에 난 흉터를 내게 보여주며 아빠가 칼로 찔렀던 적이 있다고 했고, 아빠는 엄마가 할퀸 상처를 내게 보여주며 엄마가 얼마나 독한X인지 보라고 했다. 학교마치고 집에 갈 땐 늘 심장이 뛰었다. 제발 싸우고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 들어갈꺼라고 들떠있던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서 엄마는 빨간 미키 가방과 흰색 곰인형을 사주었다. 그러면서 학교 잘 다니라고, 아빠와 잘 지내라는 말을 했다. 어렸어도 눈치가 빠삭했던 나는 엄마가 아빠와 집을 나가거나 죽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또다시 내가 잘못했다고 빌며 엄마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가지말라고 빌고 또 빌었다.

1학년 입학 후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같은 동네 아주머니가 차를 끌고 나를 데리러왔다. 아줌마, 엄마는요? 라고 묻자 일단 집에 가자고 하는 그 아줌마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알았다. 아, 집이 또 난장판이 되었겠구나. 아니나다를까 집에가니 모든게 부숴져 있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고 아줌마가 토닥였다. 엄마는 나에게 살기 싫다라고 말하며 화장실에 가서 아기 변기? 아무튼 플라스틱으로 된 요강을 들고 오라고 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엄마가 혹시 그 요강으로 자살을 하려나 싶어 엄마 죽지마 하고 소리치며 또 무릎을 꿇었다. 저학년 때까지는 난 내가 잘못해서 엄마 아빠가 싸운다고 생각했고, 초등학교 고학년~고등학생때까지는 아빠가 화를 잘내고 술을 많이 마시며 욕을 하고 엄마를 때리고 못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집이 이렇게 지옥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쭉 주부였는데, 내가 초등학생 3학년쯤 되었을 때 화투에 빠져 아빠가 회사에 가고 나면 같은 아파트 아줌마들과 화투를 쳤다. 아빠가 출장 등으로 집에 안 들어오시는 날이 한달에 며칠은 되었는데 그럴 땐 다른 집에 나를 데려가서 쳤고 그럴 때면 엄마는 나에게 거짓말을 시켰다.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지독히도 의심을 하는 사이라 밤에 뭘하고 있는지 꼭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그땐 내가 전화를 받아서 집에 있다고, 잘거라고 말하는게 내 임무였다. 화투치는 아줌마들 중엔 담배 피우는 아줌마들이 많았는데 난 정말 그게 싫었다.
그러다가 아빠에게 들킨 적이있다. 내가 일찍 잠들자 엄마는 나를 집에 혼자 두고 화투를 치러 간 것이었다. 어쩌다 잠에서 깬 나는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는 없자 놀라서 울다 아빠에게 전화하여 집에 아무도 없고 깜깜하다고 무섭다고 전화를 했고 아빠는 서울에서 새벽같이 집에 돌아와 엄마와 서로 죽일듯이 때리고 부수며 싸웠다.

아빠는 바람을 폈다. 종종 그랬다고 한다. 엄마에게 들은 것만 해도 몇 번이다. 그리고 아빠가 바람을 피우다 보니 엄마를 의심한다. 아빠는 나에게 엄마가 뭐하는지, 어디나갔는지를 묻곤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답해야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말을 더듬곤 했다. 진짜 엄마가 집 앞 슈퍼에 빵 사러 간건데도, 빵 사러 갔다하면 믿지 않을거란 생각에 어버버 거리다 싸우게 된 적도 있으니.

아빠는 거짓말을 잘했다. 동네사람들과 있으면 항상 누가 들어도 거짓말인 것 같은 말을 잘도 했다. 집에 엄청난 뱀술이 있다고 언제 한 잔하러 오라고 한다던지 하는 시덥잖은 거짓말에서부터 엄마가 바람을 피우는데 본인이 용서하고 사는거라고 한다던지. 사실 바람은 아빠가 피우면서. 주로 아빠의 거짓말은 바람과 관련된 게 많다. 옆집 아줌마가 바람을 피우는 걸 목격해서 남편한테 그러면 벌 받는다고 훈계하려다 참았다라던지. 전부 아빠가 지어낸 말인데. 지금 생각하면 아빠가 허언증이고 남에게 관심을 끌고자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난 30대가 된 지금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싸우고 서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던 것, 그 때 부모님이 입고 있던 옷, 한바탕 육탄전 후 서로 등돌리고 앉아있던 거실에서의 위치까지도 다 기억이 난다. 아빠가 술마시며 내게 했던 엄마를 욕보이는 말들, 싸우고 엄마가 며칠 집 나갔던 일, 부숴진 집안 물건들을 치울 때의 공기, 참다못한 오빠가 애 보는 앞에서 그만 싸우라며 유리창으로 주먹으로 깨고, 그걸 본 아빠가 머리로 유리창을 깨고 둘이서 멱살 잡고 싸우던 모습.

나는 소리 내어 울지를 못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밤마다 들리는 서로 싸우는 소리에 이불을 덮어쓰고 숨죽여 울던 날이 많았는데 그 습관이 남아서 그런건지 이상하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내 인생의 트라우마는 부모님이다. 반대로 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공부시키고 제일 좋은 옷 입혀가며 금이야 옥이야 키워주신 것도 부모님이다. 참 어렵다.

어느덧 30대가 되었다.
나름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장도 가졌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양가 축복 속 결혼했다. 그러면서 나의 고질적인 불안함이 정말 많이 사라졌다. 집은 언제나 전쟁통이었고 살얼음판이었고 내 심장을 불규칙하게 뛰게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니 집이 집처럼 느껴졌다. 정말 편하고 힘들면 빨리 들어가고 싶은 집.

그런데 다시 나는 정말 미치기 일보직전이다. 매일 불쾌한 심장 두근거림을 느낀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불안을 유발하는 두근거림. 엄마 아빠 전화를 받고난 다음부터다.

결혼하고 나서 이 두근거림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결혼 후 부모님 집에서 나오면서 잠도 푹 자고 안대 없이도 잠들 수 있게 되었는데 또 내 일상이 망가지고 있다.

엄마 아빠와 마지막 통화를 했던 몇 주 전의 그 날부터 난 다시 꼬마가 되었다. 규칙적으로 하던 운동도 멈추고, 자기계발을 위해 꾸준히 지켜오던 루틴들이 모두 망가졌다. 조금만 방심하면 지옥같던 부모님과 살던 집이 떠오르고 불안하고 걱정된다.

얼마 전 엄마가 밤늦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동네 지인들에게 엄마가 바람피웠었다며 험담을 한 것을 건너건너 들었단다. 그러면서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뭐라고 해달란다. 피가 차게 식는 느낌이었다. 일단 끊으라고 하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 말을 했냐고 하니 안했다고 한다. 그건 거짓말이다. 아빠는 엄마 험담을 했다. 거짓말하지 말고 뱉은 말을 최대한 주워담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는데 끝까지 안했다고 하면서 옛날 일을 들먹였다. 내가 울면서 아빠에게 엄마가 집에 없다고, 나를 놔두고 갔다고 아빠에게 전화했던 그 날의 기억을 끄집어 냈다. 엄마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아빠에게 아빠가 내 아빠인게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더 대못박는 말들을 하며 미친X처럼 소리를 뱉어냈다. 허언증이 심각하니 정신병원에가서 상담도 받아보라고 했다. 제발 이혼하라고도 했다.

그렇게 정신병자처럼 아빠에게 대못박는 말들을 하고 엄마에게 문자를 남겼다.

아주 긴 문자를 남겼는데 어쨌든 엄마 아빠 둘 다 똑같고, 어린 시절 엄마아빠가 매일 싸우는 게 고통이었고 지금까지도 고통스러우니 제발 이혼해달라는게 내 뜻이었다.

엄마는 너만은 내 마음을 알아줄줄 알았는데 어쩌고 하면서 나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했다. 자식이 말하면 알아들을 수도 있으니 아빠에게 뭐라고 해달라고 해서 원하는대로 해줬고, 이혼하라고도 해줬는데 뭐가 실망이란건지. 제발 엄마 인생에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 앞에서 못볼 꼴 보이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지금 비련의 주인공 같겠지만 곁에 있던 난 더 지옥이었다고 속에 있는 말들을 모조리 해버렸다.

나는 변호사에게 황혼이혼 상담을 신청한 뒤 엄마에게 번호를 넘겼고 그 연락을 끝으로 연락을 끊었다.

내가 엄마였다면 내 가정의 문제로 내 딸에게 밤11시에 전화해서 아빠욕을 해대며 아빠에게 한소리를 하라고 시켰을까? 절대 아니다. 사실 행복한 척 가면을 쓰고 있었다라고 엄마는 말하던데.. 한 번도 집이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무슨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건지?

대학생 때는 엄마가 갑자기 자취방에 와서 아빠가 때렸다며 같이 병원에 가자고 해서 갔던 적이 있다. 난 엄마가 의사선생님께 사실대로 말하고 이혼을 했으면 했는데 엄마는 어디에 좀 부딪혔다는 이상한 거짓말을 하더라. 왜일까. 이해가 안됐다.

어렸을 땐 나도 엄마아빠가 이혼하면 세상이 끝나는 줄알고 이혼하지 말라 싹싹 빌었지만 어느정도 머리가 커지고 나서부턴 꾸준히 이혼하라고 했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아빠가 이혼을 안해준다고 하고 아빠는 자식이 이혼을 말려야지 부추긴다며 화를내고 나가 술을 마셨다. 참 엿같은 집구석.

지금 생각해보면 난 꽤 오랜시간 야뇨증을 겪었다. 거의 중1때도 가끔 실수하곤 했으니까. 그리고 밤에 방문을 닫으면 숨이 막혀 잠을 못자는 증상도 있었다. 그리고 엄마 젖을 8살 때까지 떼지 못했다. 그땐 그런가보다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도 다 부모님 불화 때문인 것 같고 원망스러워진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부모 탓으로 돌리고 있는 나 스스로를 보면서 또 역겹다. 나약하고. 이러다 정신분열이 올 것 같다고 생각이 들면서 속이 메스껍다.

우리 집은 비정상이다.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이제는 끊어내고 싶다. 내 가정이 생기면서 명절 때나 어쩌다 한 번씩 친정에 가니 참 좋았다. 엄마아빠는 싸우지 않았고 사위 앞이라고 한껏 고상을 떨었으며 함께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어 참 좋았다. 아 이걸 엄마는 가면이라고 생각했나보구나.
그리고 그 모습이 우리 집, 우리 친정이라고 믿고 싶었는데.
아니다. 이게 본 모습이다. 아니 실상은 더 추악하다.

끊어내고 싶다. 정말 나를 때리지 않고 사랑으로 키워주셨지만 가정불화로 언제나 나를 아프게 했던 부모님. 공포영화보다 더한 공포를 20년 넘게 체험하게 해주신 분들. 하지만 나를 금지옥엽 키워주신 나날들 때문에 내가 내뱉은 패륜적인 말들이 죄송해서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부모가 부끄럽고 내가 부모라면 아이들 앞에서 절대 싸우지 않을거라고 외쳤던 내 말들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말려 죽이고 있다. 시들해지는 게 느껴진다.

내가 살기위해서라도 죄송하다고 하고 연락을 드려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죽을 때까지 인연을 끊게 되는 걸까. 그래야 내가 제대로 사는걸까. 그러면 이때까지 부모님께 받았던 것은 어떻게 갚아야할까.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