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남 분리된 공간이 태초부터 있었거나 원래 의미가 ‘남녀칠세부동석’같은 데서 유래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이 주로 ‘성해방’을 외치며 여남 분리공간을 철폐하고 합치고 섞어서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건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가 만들어낸 착각이다.
사랑채와 분리된 안채는 남자들만 출입 가능한 외부-사회와 여자들이 들어앉아 있는 내부-규방의 구분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들은 각 가정에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 숨어지내며 장터에 나가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시장은 남자들만의 공간이고 거래도 남자끼리 네트워킹도 남자끼리 했다. 여자는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집안의 남자에게 부탁해서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공간 구분은 그 자체로 남성 지배와 여성억압을 상징하며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이자 노예임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 남녀칠세부동석은 여남이 성적으로 자유롭게 교류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1차적 목적이 아니라 지배계급인 남자가 피지배계급인 여자에게 친밀함을 형성하거나 공감대를 갖게 되는 것을 막는 것이 주 목적이었던 것이다. 남자로부터 여자를 분리하는 것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남자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남자끼리 사회 모든 기반과 구조를 독점하며 남자끼리 소통하기 위해서이고 여자들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의 공간이 길거리에는 아예 없고, 시장에도 없고, 관공서에도 없었다. 여자가 갈 수 있는 곳은 높은 계급이면 안방, 보통은 부엌 부뚜막 옆 가축들과 함께 지내거나 남자의 성적 도구가 되는 조건으로 남자의 방에 기거하는 것, 혹은 남자를 접대하고 기쁘게 하기 위한 기생들의 공간이 전부다. 옛날에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여자는 기생, 주모, 혹은 언제 강간 당해도 이상할 것 없다 여겨지는 낮은 계급 여자들 뿐이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사극)에서 묘사하는 거랑은 천양지차다. 이런 분리에 관한 묘사는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 조정래의 아리랑을 비롯한 역사 소설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런 역사 소설은 세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쓰까들은 책을 좀 많이 읽기를 바란다.) 이게 여남 분리 공간의 시초다.
그런데 여자들이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에 나가기로 했고 나가서 남자 없이 거래하고 네트워킹하고 배워서 엄연한 사회 집단이 되고자 했다. 남자를 통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거리로 나왔다. 서당-학교라는 곳은 본디 남자만 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여자들만을 위한 학교를 세워야만 했다. 최초 여성 교육기관을 세운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다. 여자가 배워야 힘을 키울 수 있고 인간 취급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모두 여자다. 여자가 여자를 돕고 여자가 여자를 위해 싸워온 역사가 곧 페미니즘이다.
학교를 세웠으니 여자들이 거리로 나왔는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보면 “여학생은 곧 논다니”라고 묘사한다. 거리에 나와 돌아다니는 여자는 모두 기생, __, 논다니로 취급하며 사회 가장 하층민인 남자조차도 우습게 보고 언제든 맘만 먹으면 강간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여자들은 안전하게 공부하고 사회생활할 수 있도록 성폭력을 고발하고 싸우고 여자만의 공간을 늘려 나가면서 이런 천박한 의식에도 맞서 싸웠다.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에서 여자만의 공간을 만든 건, 가부장제가 아니라 여자들이었다. 여자가 모이고 관계를 맺고 힘을 키우고 싸울 수 있는 바탕을 만든 건 여자들이다. 여중고와 여대가 다 마찬가지다. 교육받은 여자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사용할 마땅한 (안전한) 화장실이 없어서 거리에 여자 화장실을 만든 것도 여자들이다. 남자들만 운동선수할 때 여자들이 싸워서 여자 종목 만들고 여자들도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자들만 법관, 의사, 교수, 과학자, 엔지니어 할 때 여자들이 싸워서 여자들도 해당분야에 진입할 길을 열었다. 여군도 여경도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여자가 얌전히 남자를 뒷바라지 하는 역할을 거부하고 규방을 뛰쳐나왔을 때, 여자들이 사회에서 자기 몫을 차지하겠다고 나섰을 때, 남자들이 이를 방해하고 여자 공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도했던 것은 역사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 공격은 최초의 여자화장실을 마차로 들이받아 부숴버리거나, 여자 학생을 기생이나 논다니 취급하고 실제로 강간해 버리거나, 강간해서 ‘더럽힌 후’ 자기 여자로 만들어 들어앉히거나 하는 방식이었다. 이후에는 시험 전날에 여자학교에 집단으로 들어가 자위하고 방석을 훔쳐 나오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여자대학에 난입하여 성폭력을 저지르고, 공공 영역의 거의 모든 여자 화장실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여자들이 사회생활에 불편을 느끼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변해왔다.
여자공간을 지키겠다고 하는 말을 가부장제가 만든 여남구분을 지키겠단 선언으로 왜곡하고, 여남 구분이 없어야 평등해진다고 주장하는 데다가, 이화여대 총장조차도 이대는 없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대학이라고 말할 정도로 페미니즘 역사의식이 부재한 사람들이 여성을 대표하고 있다. 집 밖에 있는 여자 공간은 여자가 싸워서 얻은 공간이며 집 밖에 여자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여성의 힘을 보여주는 것인데도 말이다.
아직도 남자들만 출입 가능한 공간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남자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을 깨부수고 여자가 진입 가능한 곳을 늘리기 위해 우리 선배들이 싸웠고 새 세대가 싸우고 있다. 저쪽 분들은 트젠이 여자라고 하면서 받으라고 했다가, 남교수나 남직원도 있으니 그냥 받으라고 하는 논리까지 가고 나아가 여대가 왜 필요하냐 다 없애라는 주장까지 막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 여성단체며 여성학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는 걸 생각하면 분노보다도 치욕스럽단 생각이 든다. 여자공간 파괴가 여성운동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여성이라는 개념을 파괴하고 여자 공간을 파괴하고 여남 구분을 파괴하잔 주장을 ‘페미니스트’들이 남자로 태어난 남자를 위해서 하고 있으니 지하에 누우신 서프러제트가 벌떡 일어날 일이다.
여성차별 시대에 만들어진 유산인 여자만의 공간이 그럼 언제까지 있어야 하냐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없어지고 강간이 없어지고 유리천장이 없어지고 임신 출산 육아에 따른 여남역할 구분이 없어지고 상업적 성착취-룸싸롱이 전부 폐쇄되고 여자는 돈 없으면 몸팔면되지 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여자에 대한 성적대상화가 사라지고 여자를 거부하는 모든 남자공간이 여성들에 의해 파괴되고 다 뚫리고 형제애니 부자유친이니 같은 단어들이 사라지고 여신이 다시 남신을 대체할 때.
여자만의 공간에 대하여
여남 분리된 공간이 태초부터 있었거나 원래 의미가 ‘남녀칠세부동석’같은 데서 유래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이 주로 ‘성해방’을 외치며 여남 분리공간을 철폐하고 합치고 섞어서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건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가 만들어낸 착각이다.
사랑채와 분리된 안채는 남자들만 출입 가능한 외부-사회와 여자들이 들어앉아 있는 내부-규방의 구분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들은 각 가정에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 숨어지내며 장터에 나가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시장은 남자들만의 공간이고 거래도 남자끼리 네트워킹도 남자끼리 했다. 여자는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집안의 남자에게 부탁해서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공간 구분은 그 자체로 남성 지배와 여성억압을 상징하며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이자 노예임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 남녀칠세부동석은 여남이 성적으로 자유롭게 교류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1차적 목적이 아니라 지배계급인 남자가 피지배계급인 여자에게 친밀함을 형성하거나 공감대를 갖게 되는 것을 막는 것이 주 목적이었던 것이다. 남자로부터 여자를 분리하는 것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남자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남자끼리 사회 모든 기반과 구조를 독점하며 남자끼리 소통하기 위해서이고 여자들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의 공간이 길거리에는 아예 없고, 시장에도 없고, 관공서에도 없었다. 여자가 갈 수 있는 곳은 높은 계급이면 안방, 보통은 부엌 부뚜막 옆 가축들과 함께 지내거나 남자의 성적 도구가 되는 조건으로 남자의 방에 기거하는 것, 혹은 남자를 접대하고 기쁘게 하기 위한 기생들의 공간이 전부다. 옛날에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여자는 기생, 주모, 혹은 언제 강간 당해도 이상할 것 없다 여겨지는 낮은 계급 여자들 뿐이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사극)에서 묘사하는 거랑은 천양지차다. 이런 분리에 관한 묘사는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 조정래의 아리랑을 비롯한 역사 소설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런 역사 소설은 세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쓰까들은 책을 좀 많이 읽기를 바란다.) 이게 여남 분리 공간의 시초다.
그런데 여자들이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에 나가기로 했고 나가서 남자 없이 거래하고 네트워킹하고 배워서 엄연한 사회 집단이 되고자 했다. 남자를 통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거리로 나왔다. 서당-학교라는 곳은 본디 남자만 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여자들만을 위한 학교를 세워야만 했다. 최초 여성 교육기관을 세운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다. 여자가 배워야 힘을 키울 수 있고 인간 취급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모두 여자다. 여자가 여자를 돕고 여자가 여자를 위해 싸워온 역사가 곧 페미니즘이다.
학교를 세웠으니 여자들이 거리로 나왔는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보면 “여학생은 곧 논다니”라고 묘사한다. 거리에 나와 돌아다니는 여자는 모두 기생, __, 논다니로 취급하며 사회 가장 하층민인 남자조차도 우습게 보고 언제든 맘만 먹으면 강간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여자들은 안전하게 공부하고 사회생활할 수 있도록 성폭력을 고발하고 싸우고 여자만의 공간을 늘려 나가면서 이런 천박한 의식에도 맞서 싸웠다.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에서 여자만의 공간을 만든 건, 가부장제가 아니라 여자들이었다. 여자가 모이고 관계를 맺고 힘을 키우고 싸울 수 있는 바탕을 만든 건 여자들이다. 여중고와 여대가 다 마찬가지다. 교육받은 여자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사용할 마땅한 (안전한) 화장실이 없어서 거리에 여자 화장실을 만든 것도 여자들이다. 남자들만 운동선수할 때 여자들이 싸워서 여자 종목 만들고 여자들도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자들만 법관, 의사, 교수, 과학자, 엔지니어 할 때 여자들이 싸워서 여자들도 해당분야에 진입할 길을 열었다. 여군도 여경도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여자가 얌전히 남자를 뒷바라지 하는 역할을 거부하고 규방을 뛰쳐나왔을 때, 여자들이 사회에서 자기 몫을 차지하겠다고 나섰을 때, 남자들이 이를 방해하고 여자 공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도했던 것은 역사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 공격은 최초의 여자화장실을 마차로 들이받아 부숴버리거나, 여자 학생을 기생이나 논다니 취급하고 실제로 강간해 버리거나, 강간해서 ‘더럽힌 후’ 자기 여자로 만들어 들어앉히거나 하는 방식이었다. 이후에는 시험 전날에 여자학교에 집단으로 들어가 자위하고 방석을 훔쳐 나오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여자대학에 난입하여 성폭력을 저지르고, 공공 영역의 거의 모든 여자 화장실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여자들이 사회생활에 불편을 느끼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변해왔다.
여자공간을 지키겠다고 하는 말을 가부장제가 만든 여남구분을 지키겠단 선언으로 왜곡하고, 여남 구분이 없어야 평등해진다고 주장하는 데다가, 이화여대 총장조차도 이대는 없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대학이라고 말할 정도로 페미니즘 역사의식이 부재한 사람들이 여성을 대표하고 있다. 집 밖에 있는 여자 공간은 여자가 싸워서 얻은 공간이며 집 밖에 여자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여성의 힘을 보여주는 것인데도 말이다.
아직도 남자들만 출입 가능한 공간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남자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을 깨부수고 여자가 진입 가능한 곳을 늘리기 위해 우리 선배들이 싸웠고 새 세대가 싸우고 있다. 저쪽 분들은 트젠이 여자라고 하면서 받으라고 했다가, 남교수나 남직원도 있으니 그냥 받으라고 하는 논리까지 가고 나아가 여대가 왜 필요하냐 다 없애라는 주장까지 막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 여성단체며 여성학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는 걸 생각하면 분노보다도 치욕스럽단 생각이 든다. 여자공간 파괴가 여성운동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여성이라는 개념을 파괴하고 여자 공간을 파괴하고 여남 구분을 파괴하잔 주장을 ‘페미니스트’들이 남자로 태어난 남자를 위해서 하고 있으니 지하에 누우신 서프러제트가 벌떡 일어날 일이다.
여성차별 시대에 만들어진 유산인 여자만의 공간이 그럼 언제까지 있어야 하냐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없어지고 강간이 없어지고 유리천장이 없어지고 임신 출산 육아에 따른 여남역할 구분이 없어지고 상업적 성착취-룸싸롱이 전부 폐쇄되고 여자는 돈 없으면 몸팔면되지 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여자에 대한 성적대상화가 사라지고 여자를 거부하는 모든 남자공간이 여성들에 의해 파괴되고 다 뚫리고 형제애니 부자유친이니 같은 단어들이 사라지고 여신이 다시 남신을 대체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