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창원LG는 23일 오후 조성원 명지대 감독과 3년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현주엽 감독 사의 표명 이후 공석이었던 수장 자리를 과거의 영웅에게 내준 것이다.
조성원 감독은은 KBL을 대표하는 슈터로서 180cm의 작은 신장에도 특유의 타이밍, 정확한 슈팅 능력 등을 뽐냈다. 과거 이상민, 추승균 감독과 함께 ‘이·조·추’ 트리오를 결성, 대전 현대 왕조를 건설했던 조성원 감독은 이후 LG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1999-2000시즌 종료 후, 2000년 8월 8일은 KBL의 대형 빅딜 중 하나인 조성원-양희승 트레이드가 발생한 날이다. 당시 LG는 조성원 감독을 받는 대신 양희승과 현금 3억원을 내주며 우승을 향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다.
새로운 유니폼을 입게 된 조성원 감독은 LG에서의 첫 시즌부터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우현과 함께 ‘조·조 쌍포’를 이뤄 LG의 정규경기 2위,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조성원 감독은 45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35분 49초 동안 25.7득점 2.1리바운드 4.0어시스트 1.4스틸을 기록했다. 국내선수 득점 1위는 물론 자유투 성공률 역시 85.4%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LG의 화끈한 농구는 조성원 감독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었다. 중앙대를 대학 최강으로 이끈 후 LG에서 공격 농구를 선보였던 김태환 전 감독은 “조성원이라는 확실한 슈터가 있었기 때문에 공격적인 농구가 빛을 볼 수 있었다. 조우현, 에릭 이버츠 등 다른 선수들도 다 잘해줬지만 에이스는 조성원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조성원 감독의 실력 과시는 여전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청주 SK는 1999-2000시즌 정상에 선 디펜딩 챔피언. 그러나 조성원은 5경기 출전, 평균 22.2득점 2.2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LG의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뤄냈다.
아쉽게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에 1승 4패로 무너졌지만 LG의 2000-2001시즌은 여전히 막강했던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프로 원년 시절을 제외, 유일하게 시즌 평균 100득점(103.3)을 넘길 정도로 화끈한 농구를 펼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성원 감독이 있었다.
조성원 감독은 2000-2001시즌 LG 최초의 정규경기 MVP에 선정된다. 이후 2013-2014시즌 문태종이 LG 소속으로 두 번째 MVP에 선정되지만 토종 선수로는 조성원 감독이 유일하다.
아쉽게도 조성원 감독의 LG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1-2002시즌 52경기에 출전한 그는 평균 16.0득점 1.3리바운드 2.1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했다. 모든 기록이 전 시즌 대비 하락세를 보였다. LG 역시 6위로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진출, 조성원 감독은 4쿼터의 사나이로 불리며 인천 전자랜드를 격파했지만 대구 동양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팀의 핵심 공격수 역할을 도맡아왔던 조성원 감독도 약점은 있었다. 작은 신장으로 인한 수비 부담 분명했고 무릎 부상 역시 발목을 잡았다. 출전 시간 역시 점점 줄어들면서 LG와의 갈등도 조금씩 커졌다.
2002-2003시즌은 조성원 감독이 선수 시절 LG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이었다. 24경기 동안 평균 22분 30초에 불과했던 출전 시간은 이별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평균 12.6득점 1.3리바운드 1.6어시스트의 기록도 ‘조성원’이라는 이름값에 어울리지 못했다.
끝내 LG는 조성원 감독과 이별을 알리게 된다. SK가 먼저 관심을 보인 상황에서 조성원 감독 역시 트레이드에 대한 의사를 표현한 것. 현재 김영만 코치와 유니폼을 맞바꾸게 된 조성원 감독은 자신의 세 번째 팀인 SK로 향하게 된다.
짧지만 굵었던 조성원 감독과 LG의 인연. 여러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끝내 그들은 18년 만에 재회하게 됐다. 과연 조성원 감독과 LG는 성공적인 3년을 보낼 수 있을까? 그들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창원LG 조성원 18년만에 친정팀 감독으로 복귀
한때 송골매 군단의 에이스였던 조성원이 18년 만에 창원으로 돌아왔다.
프로농구창원LG는 23일 오후 조성원 명지대 감독과 3년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현주엽 감독 사의 표명 이후 공석이었던 수장 자리를 과거의 영웅에게 내준 것이다.
조성원 감독은은 KBL을 대표하는 슈터로서 180cm의 작은 신장에도 특유의 타이밍, 정확한 슈팅 능력 등을 뽐냈다. 과거 이상민, 추승균 감독과 함께 ‘이·조·추’ 트리오를 결성, 대전 현대 왕조를 건설했던 조성원 감독은 이후 LG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1999-2000시즌 종료 후, 2000년 8월 8일은 KBL의 대형 빅딜 중 하나인 조성원-양희승 트레이드가 발생한 날이다. 당시 LG는 조성원 감독을 받는 대신 양희승과 현금 3억원을 내주며 우승을 향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다.
새로운 유니폼을 입게 된 조성원 감독은 LG에서의 첫 시즌부터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우현과 함께 ‘조·조 쌍포’를 이뤄 LG의 정규경기 2위,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조성원 감독은 45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35분 49초 동안 25.7득점 2.1리바운드 4.0어시스트 1.4스틸을 기록했다. 국내선수 득점 1위는 물론 자유투 성공률 역시 85.4%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LG의 화끈한 농구는 조성원 감독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었다. 중앙대를 대학 최강으로 이끈 후 LG에서 공격 농구를 선보였던 김태환 전 감독은 “조성원이라는 확실한 슈터가 있었기 때문에 공격적인 농구가 빛을 볼 수 있었다. 조우현, 에릭 이버츠 등 다른 선수들도 다 잘해줬지만 에이스는 조성원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조성원 감독의 실력 과시는 여전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청주 SK는 1999-2000시즌 정상에 선 디펜딩 챔피언. 그러나 조성원은 5경기 출전, 평균 22.2득점 2.2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LG의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뤄냈다.
아쉽게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에 1승 4패로 무너졌지만 LG의 2000-2001시즌은 여전히 막강했던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프로 원년 시절을 제외, 유일하게 시즌 평균 100득점(103.3)을 넘길 정도로 화끈한 농구를 펼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성원 감독이 있었다.
조성원 감독은 2000-2001시즌 LG 최초의 정규경기 MVP에 선정된다. 이후 2013-2014시즌 문태종이 LG 소속으로 두 번째 MVP에 선정되지만 토종 선수로는 조성원 감독이 유일하다.
아쉽게도 조성원 감독의 LG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1-2002시즌 52경기에 출전한 그는 평균 16.0득점 1.3리바운드 2.1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했다. 모든 기록이 전 시즌 대비 하락세를 보였다. LG 역시 6위로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진출, 조성원 감독은 4쿼터의 사나이로 불리며 인천 전자랜드를 격파했지만 대구 동양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팀의 핵심 공격수 역할을 도맡아왔던 조성원 감독도 약점은 있었다. 작은 신장으로 인한 수비 부담 분명했고 무릎 부상 역시 발목을 잡았다. 출전 시간 역시 점점 줄어들면서 LG와의 갈등도 조금씩 커졌다.
2002-2003시즌은 조성원 감독이 선수 시절 LG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이었다. 24경기 동안 평균 22분 30초에 불과했던 출전 시간은 이별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평균 12.6득점 1.3리바운드 1.6어시스트의 기록도 ‘조성원’이라는 이름값에 어울리지 못했다.
끝내 LG는 조성원 감독과 이별을 알리게 된다. SK가 먼저 관심을 보인 상황에서 조성원 감독 역시 트레이드에 대한 의사를 표현한 것. 현재 김영만 코치와 유니폼을 맞바꾸게 된 조성원 감독은 자신의 세 번째 팀인 SK로 향하게 된다.
짧지만 굵었던 조성원 감독과 LG의 인연. 여러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끝내 그들은 18년 만에 재회하게 됐다. 과연 조성원 감독과 LG는 성공적인 3년을 보낼 수 있을까? 그들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조성원 감독의 창원 LG 시절 기록
2000-2001시즌_45G 35:49/25.7득점 2.1리바운드 4.0어시스트 1.4스틸
2001-2002시즌_52G 29:22/16.0득점 1.3리바운드 2.1어시스트 1.2스틸
2002-2003시즌_24G 22:30/12.6득점 1.3리바운드 1.6어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