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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眞 궁선영씨, 대학 2곳서 사회학 강의 “평생 잘할수 있는 일 아니기에 활동 중단 대학원 진학했죠”
‘93년 미스코리아 진(眞), 키 170㎝, 몸무게 50㎏, 취미 수영’.
서울시립대에서 ‘사회학 개론’ 을 가르치는 시간강사 궁선영(34)씨. 그를 만나 “당신 이름을 검색했더니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이 93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힐 당시 키와 몸무게”라고 하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그게 남아 있어요? 난 인터넷 세상이 오기 전에 방송 일을 모두 그만뒀는데…. 인터넷은 정말 별걸 다 기억하는군요, 하하하.”
93년 미스코리아의 흔적은 그녀의 얼굴과 인터넷에만 남아있었다. 학생들의 기말 리포트 평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각종 대학원 프로젝트 마감일…. 궁씨의 일상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논문 준비로 바쁜 여느 강사와 다를 게 없었다.
93년 5월 22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두 달 전 미장원에 들렀다가 ‘너 미스코리아대회에 한 번 나가 볼래’라는 제안을 받고 대회에 참가했던 궁씨에게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었다. “그날 저녁 왕관을 쓴 제 머리 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일이 너무 커지네…’라는 거였어요.”
당시 대학 3학년. ‘대학 졸업하면 뭐하지?’라는 고민을 하던 여대생은 ‘미스코리아 진’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93년 5월 23일부터는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 거리를 걷기도, 식당에 가기도 부담스러울 지경이 됐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는 ‘미스코리아’가 되면 정해진 코스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판단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어요. tv에 출연하고, mc자리도 맡고, 어설프지만 탤런트도 하고….”
하지만 5년 만인 1998년 가을,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을 중단했다. 20대 중반이었다. 궁씨는 “환멸이나 뭐 그런 것은 아니었다”며 “내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기회가 싫진 않았지만 (연예인 활동은) 내가 평생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컸다”고 했다.
“공식행사장에서 내가 소개될 때 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때는 ‘탤런트 궁선영’이라고 소개되고 어떤 때는 ‘mc 궁선영’이고 이도저도 아닐 때는 결국 ‘93년 미스코리아 진 궁선영’이었죠. 어찌나 어색했는지…. 도저히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이제 됐다.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결심을 했죠.”
98년 가을 이화여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에 등록하면서 방송, 아니 ‘연예인’ 생활을 완전히 접었다. 없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나오는 ‘인터넷’에서조차 그의 흔적이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03년에 고려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지난해부터 시간강사로 서울시립대와 동국대에서 사회학개론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2년째다. “문화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준비 중입니다. 물론 지금은 수업 준비하고, 학생들 리포트 평가하느라 시간이 잘 안나요. 요즘 학생들은 리포트 평점이 안 좋으면 전화로 이메일로 당당하게 항의를 하더라고요. 좋은 평점이 나올 때까지 몇 번씩이나 고쳐서 보내는 학생도 있는데, 저는 일일이 다 봐줘요. 근데, 이거 소문나면 일이 왕창 늘어날 텐데….(웃음)”
궁씨는 아직 미혼이다. 궁씨는 “떠도는 소문으로는 제가 미국에 유학도 가고 돈 많은 시댁 만나서 시댁의 도움으로 대학원까지 다니고 있다더라”며 웃었다. “요즘 제 또래는 남녀를 불문하고 미혼이 흔하잖아요.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말하고 보니 대답이 좀 진부하네요. 하하하….” 시간강사 궁선영은 내년 계획은 “죽어라고 논문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미스코리아 眞 출신 대학 강사 궁선영
“평생 잘할수 있는 일 아니기에 활동 중단 대학원 진학했죠”
‘93년 미스코리아 진(眞), 키 170㎝, 몸무게 50㎏, 취미 수영’.
서울시립대에서 ‘사회학 개론’ 을 가르치는 시간강사 궁선영(34)씨. 그를 만나 “당신 이름을 검색했더니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이 93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힐 당시 키와 몸무게”라고 하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그게 남아 있어요? 난 인터넷 세상이 오기 전에 방송 일을 모두 그만뒀는데…. 인터넷은 정말 별걸 다 기억하는군요, 하하하.”
93년 미스코리아의 흔적은 그녀의 얼굴과 인터넷에만 남아있었다. 학생들의 기말 리포트 평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각종 대학원 프로젝트 마감일…. 궁씨의 일상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논문 준비로 바쁜 여느 강사와 다를 게 없었다.
93년 5월 22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두 달 전 미장원에 들렀다가 ‘너 미스코리아대회에 한 번 나가 볼래’라는 제안을 받고 대회에 참가했던 궁씨에게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었다. “그날 저녁 왕관을 쓴 제 머리 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일이 너무 커지네…’라는 거였어요.”
당시 대학 3학년. ‘대학 졸업하면 뭐하지?’라는 고민을 하던 여대생은 ‘미스코리아 진’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93년 5월 23일부터는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 거리를 걷기도, 식당에 가기도 부담스러울 지경이 됐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는 ‘미스코리아’가 되면 정해진 코스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판단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어요. tv에 출연하고, mc자리도 맡고, 어설프지만 탤런트도 하고….”
하지만 5년 만인 1998년 가을,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을 중단했다. 20대 중반이었다. 궁씨는 “환멸이나 뭐 그런 것은 아니었다”며 “내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기회가 싫진 않았지만 (연예인 활동은) 내가 평생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컸다”고 했다.
“공식행사장에서 내가 소개될 때 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때는 ‘탤런트 궁선영’이라고 소개되고 어떤 때는 ‘mc 궁선영’이고 이도저도 아닐 때는 결국 ‘93년 미스코리아 진 궁선영’이었죠. 어찌나 어색했는지…. 도저히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이제 됐다.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결심을 했죠.”
98년 가을 이화여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에 등록하면서 방송, 아니 ‘연예인’ 생활을 완전히 접었다. 없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나오는 ‘인터넷’에서조차 그의 흔적이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03년에 고려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지난해부터 시간강사로 서울시립대와 동국대에서 사회학개론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2년째다. “문화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준비 중입니다. 물론 지금은 수업 준비하고, 학생들 리포트 평가하느라 시간이 잘 안나요. 요즘 학생들은 리포트 평점이 안 좋으면 전화로 이메일로 당당하게 항의를 하더라고요. 좋은 평점이 나올 때까지 몇 번씩이나 고쳐서 보내는 학생도 있는데, 저는 일일이 다 봐줘요. 근데, 이거 소문나면 일이 왕창 늘어날 텐데….(웃음)”
궁씨는 아직 미혼이다. 궁씨는 “떠도는 소문으로는 제가 미국에 유학도 가고 돈 많은 시댁 만나서 시댁의 도움으로 대학원까지 다니고 있다더라”며 웃었다. “요즘 제 또래는 남녀를 불문하고 미혼이 흔하잖아요.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말하고 보니 대답이 좀 진부하네요. 하하하….” 시간강사 궁선영은 내년 계획은 “죽어라고 논문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