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 # 54-55

독백2004.02.14
조회477

귓가에 새벽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청 껏 울어대는 닭울음 소리. 눈은 뜰 수 없었지만
제자리에서 뒤치락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

 

난 너무 놀라 그것을 더듬기 시작했고, 곧 그게 녀석의 가슴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왜... 내가
여기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심청이네 아빠 심봉사아저씨가 눈을 뜰때 이렇게 떴을까 싶게 번쩍
뜨였다. 난 녀석의 품에 안겨 자고 있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녀석이 한쪽팔을 벌리고 있
었고 난 그아래에서 고이 누어 있었으며 내 팔은 녀석을 휘감고 있었다. 하...할머니는 어딜 가
신 거야?

 

얼른 그 자릴 피해야 할 것 같았다. 혹시라도 녀석이 깬다던가 아니면 할머니가 들어오신다면
하는 생각에 부랴부랴 내가 잠들었던 자리로 돌아가 누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 아직도 자나? 새벽닭이 울었는데... 하긴... 잠이 많을 때지..."

 

할머니들은 새벽잠이 없으시다는데... 그말이 맞는 듯 했다. 그럼 난 얼마나 녀석에게 안겨 잔
거야? 잠도 다시 오지 않았고 화장실은 급해져만 갔다. 지금 일어나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음..."

 

난 실눈을 뜨고 녀석을 보았다. 잠든 모습이 순한 양과 같았다. 뭐야? 해우가 아닌데... 왜 이녀
석을 보고 귀엽다는 생각이 든거야!! 난 녀석에게서 등을 돌린채 웅크리고 조용히 숨만 쉬고
있었다.

 

" 이젠 일어나야 할텐데... 태양아- 일어나야지? 오늘은 학교가는 거 아니야?"
" 음...쪼끔만..."
" 우리나라에서 학교다닌다면서 학교가야하는거 아니야?"
" ......."

 

나라도...일어나서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오늘은 토요일이기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는 말씀을... 할머니는 다시금 방문을 닫고 나가셨다. 할머니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졌다. 멀리
가신건가?

 

난 다시 뒤를 돌아 녀석을 보았다. 잠들어 있는 녀석. 그...근데... 왜 내 머리끈이 저기에...
평소 잘 묶지 않던 머리. 어제 저녁을 한답시고 머리를 묶고 했는데 묶은 채로 잠이 들었었나
보다. 근데 왜 머리끈이 저녀석 손 밑에 있는 거야...

 

조심스레 방바닥에 달라붙어 기어갔다. 녀석이 깨지 않기를...그리고 녀석의 손을 살며시 들었
다. 깨지말아라... 계속 자야돼...

 

녀석의 손을 들고 머리끈을 잡았을 즈음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녀석은 잠에서 깨어
났다. 내손은 녀석의 손을 지그시 잡고 있었고, 무엇보다 자세자체가 마치 내가 녀석의 손을
관찰하는 양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뭐...해?"
" 어?"
" 뭐해?"
" 아니 그게... 있지. 이거...때문에..."

 

난 재빨리 끈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 놔 줄래?"
" 뭐...뭘?"
" 내 손."

 

난...그때까지도 녀석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난 다시금 녀석에게 변태로 낙인 찍혔다.

 


# 해와 달 55


집으로 올라오는 내 차안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녀석의 손을 잡고 있던 것. 그때가 자꾸만
떠올라서... 녀석도 그생각을 하는건지 무슨 생각에 빠져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말이
없다고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봐. 오태양. 아무말이라도 해. 제발...

 

" 좋았어?"
" ...어? 뭐, 뭐가?"

 

녀석은 꼭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앞뒤 다 잘라먹고 자기 편한 한 단어만. 도대체 뭐가 좋았다는
건지 앞뒤로 자세히 길게 붙여 말해줘야 할꺼 아냐!

 

" 할머니..."
" 아. 응. 좋았어. 너무너무 좋았어."

 

녀석은 할머니와 함께 지낸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를 묻고 있는 듯 했다.

 

" 그래...?"

 

헌데 녀석은 또 알수없는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무슨 꿍꿍이야? 또 잘못 대답 한건가?!

 

" 으응..."
" 나도. 나도 좋았어..."

 

녀석은 약간의 미소와 함께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근데 뭐가 너도 좋다는거야? 너네 할머니 만
나러 온거였는데 당연히 넌 좋았어야지.

 

" 뭐, 뭐가? 뭐가 너도 좋아?"
" 너 좋았다며. 나도 좋았다고."
" 응. 근데 그게..."
" 왜? 넌 뭐가 좋았다고 대답한건데?"
" 나? 할...머니랑 같이 있어서... 조...ㅎ았다구..."
" ...난 아닌데..."

 

녀석은 역시 무슨 꿍꿍이가 있었다. 그럼 넌 뭐가 좋았다는 거야?

 

" 그럼 넌...뭐가 좋았는데?"
" 너."
" 어?!"
" 너랑 있어서 좋았다구."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황당했다. 녀석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생각지도 못했던 녀석
의 말에 내 볼이 달아 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근데 어떻게 그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야.

 

" 노, 농담두..."
" 농담아닌데?"

 

녀석은 진심인 듯 했다. 갑자기 내게 왜 이러는거야... 난...해우 밖에 없다구...

 

" 왜,왜...그래?
" 뭘?"
" 그런...말을...어떻게...그렇게...아무렇지 않게..."
" 왜? 그럼 넌 나랑있는게 싫었어?"
" 어? 아...니 그런건...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얘기하면... 내가..."
" 푸훗. 푸후훗."
" ...?"
" 반달곰! 너 진짜 생각하는거 독특하다. 할머니네 너랑 있었던거 좋다. 싫다. 둘중 하나 뽑으라
면 싫다 아니면 좋단데 그나마 다행히 좋다라는건데 왜 오바야? 단순히 싫다가 아닌 좋다를 뽑
은거 뿐인데."
" ......."

 

할말을 잃었다. 아니 말하기 조차 싫었다. 어쩜 말을 해도 꼭 사람 무안한 쪽으로 하는지... 차
라리 이럴줄 알았으면 아무말도 않고 조용히 집에 가는게 나을 뻔 했다. 제발 아무말이라도 하
라고 했던거 취소다. 뭐!

 

그리고 우린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집앞까지 도착했다.

 

" 들어가."

 

췌. 내가 대답하나 봐라. 대답도 하지 않고 우리집 대문앞에 멈춰섰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아.
아빠는 없으시겠지만 엄마는... 있겠지? 난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 누구세요-"
" 엄마 나, 저예요."
" 야! 어딨다가 지금 오는거야. 너 당장 들어와!"

 

엄마는 역시 화가 단단히 나 있으셨다. 당연했다. 나 자고 들어가. 한마디만을 남긴채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에... 일단은 저지르고 죄값을 달게 받게 생각했다.
헌데 그게 실수였던거 같다. 아무래도 난 사형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