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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잔 하고 있는 이하늬~눈화장이 너무 화보!!
"실례지만 손 좀 볼 수 있을까요?" 예상대로 이하늬(24)의 손마디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야금을 뜯었다는 이 국악과 대학원생은 "직업병"이라며 배시시 웃었다. 인생은 결국 어디에 가중치를 두고 사느냐의 문제다.
돈과 지위, 명예, 양심…. 이제 이하늬는 서울대 대학원생 보다 미스 유니버스 4위로 기준점이 옮겨졌다. "신명나게 북과 장구를 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게 있었다"는 이하늬는 무대의 환희를 맛보고 싶어서 미스코리아에 도전했다고 털어놨다.
한국의 비욘세 놀스가 되려고 6개월간 한 가요 기획사에서 연습생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그의 지향점은 연예인인 걸까. 이번주 취중토크의 주인공 이하늬를 14일 밤 서울 청담동의 한 와인바에서 만났다. ●"엄마가 이제 시집은 알아서 가래요"
이하늬를 만난 날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공교롭게 그의 이름 하늬는 서쪽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뜻. 바람과 함께 그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시절 별명이 '달려야 하니' '코끼리'였다는 이하늬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비행기 기내식일 정도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 장래희망은 배추장수라고 했다. "확성기 달린 트럭 몰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장사하는 게 되게 멋있어 보였어요. 아무래도 바람처럼 떠도는 역마살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세 시간 동안 이하늬는 미스코리아의 트레이드 마크인 접대성 멘트 보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노력했다. 적당히 자신을 꾸밀 줄 알면서도 어느 순간 무장해제 하는, 진솔한 면모가 인상적이었다.
-와인 좋아해요?
"네. 가족들끼리 종종 마셔요. 크리스천이라 술과 친하진 않지만 와인은 예외에요. 신의 물방울이라고 하잖아요. 오늘처럼 드라이(dry)한 것 보다 스윗(sweet)한 걸 좋아해요." 첫 잔을 들이켠 뒤 "달달하다"며 함박웃음을 지은 이하늬는 "이러다 복분자 cf 들어오는 거 아니냐"며 웃은 뒤 머쓱해 했다.
-주량은 어떻게 되죠?
"와인 두 세 잔 정도요 그런데 주량이란 게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날은 살짝 한도가 넘어가기도 하죠. 헤헤."
-미스 유니버스 대회 끝나고 어머니가 '이제 시집은 네가 돈 벌어서 가라'고 했다면서요? 지출이 많았나 봐요.
"(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네. 아쉬운 게 나라의 지원이 전혀 없었어요. 베네수엘라나 일본은 전폭적이진 않더라도 내셔널 디렉터가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겨주거든요.
멕시코시티에 한 달간 있었는데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코리아 견장을 차고 날마다 전쟁 치르듯 대회에 임했는데 막상 나라에선 아무런 지원이 없으니까 좀 서운하더라구요."
-개인적인 스폰서십도 전혀 없었나요?
"처음에 두 분 정도 나서서 도와주셨는데 멕시코 가기 전에 모두 그만 두셨어요. 게다가 한 분은 '지금까지 들어간 돈 다 토해내라'며 영수증을 보내셔서 곤혹스러웠어요. 멕시코 도착한 날 가장 중요한 드레스가 든 가방을 못 찾게 클레임까지 걸어놓아서 그거 해결하느라고 정신 없었어요. 지금은 다 추억이 됐네요."
-결선에 오른 최종 다섯 명 중 두 번째로 이름이 호명됐죠. 4위, 아쉬웠겠어요.
"말로 다 못하죠. 77개국에서 15개국이 본선에 오르고 5위까지 발표하는 거였잖아요. 헤어와 의상 모두 제가 담당해야 돼 하루에 세 시간 넘게 자본 날이 거의 없어요. 수면제 먹고 잔 날도 많았어요."
-출전자들끼리 미묘한 신경전이 치열했을 것 같아요.
"장난 아니죠. 하하. 화려한 드레스나 화장이 잘 받은 날은 아무리 친구라도 위에서 아래를 좍 훑어보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시험 보는 날 밤새운 티 역력한 친구 얼굴 보면 덜컥 겁이 나는 심리 있잖아요. 그런 게 스트레스였어요. 그래도 룸메이트였던 미스 헝가리와 중국, 일본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냈어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배고픈 복근'
-트렁크는 몇 개나 가져갔나요?
"19개요. 대한항공에서도 놀라더라구요. 행사에서 한번 입은 옷은 또 못 입게 돼 있거든요. 협찬 받은 드레스 30벌은 지춘희·김영세 선생님 등 거의 다 개인 부티크 제품이었는데 명품 보다 인기가 더 좋았어요. 유럽 친구들이 '이게 진짜 한국 디자이너 옷이냐'며 놀랬고, 미스차이나도 '옷 사러 한국 가야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어깨가 좀 으쓱했죠."
-일본한테 1위를 빼앗겨 좀 서운했겠어요.
"대회 기간 내내 알파벳 순서 때문에 일본 다음이 항상 제 차례였어요. 분장할 때나 버스 탈 때 늘 미스재팬 친구와 함께 다녔죠. 감동적이었던 건 시상식 끝나자마자 친한 후보들이 모두 제 주위로 몰려와 위로해줬다는 사실이에요. 미스 차이나처럼 영어 못하는 친구들은 그냥 제 얼굴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울기만 하고…. 그때 친구들의 '쌩얼'을 처음 봤어요. 하하."
-부모님이 같은 호텔에 묵었다면서요.
"네. 그런데 거의 못 만났어요. 보안이 워낙 철저해서 거의 감금 생활이었거든요. 3층에 묵었는데 개별 행동을 철저하게 막았어요. 생각해 보세요. 출전자 중 누가 보쌈이라도 당하면 대회가 완전히 망가지는 거잖아요.
한번은 복도에서 마주친 어머니가 한복을 건네주셨는데 열어보니까 편지 한장이 있더라구요. 황진이 컨셉의 옷이었는데 입는 순서와 성경 말씀, 그리고 '하늬야 너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글이 적혀 있더라구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인터넷에서 하늬씨의 복근이 화제가 됐어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석 달에 15만원 하는 동네 헬스클럽에 다녔어요. 처음엔 우락부락한 아저씨 사진이 많이 걸려 있어서 성인용품 파는 곳인줄 알았어요. 하하. 복근은 작년 미스코리아 되기 전 가수 연습생으로 있을 때 저절로 만들어졌어요. 그때 하도 춤을 격렬하게 춰서요. 다들 '배고픈 복근'이라고 불렀어요."
●"저희가 잘못하면 아버지 청문회 불려가요"
-가수에 도전한 늦깎이 대학원생? 좀 느닷없는데요.
"제가 원래 흑인음악 마니아에요. 국악으로 해결되지 않는 갈증 같은 게 있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죠. 마침 부모님도 대학원만 들어가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허락해 주셨어요. 6개월간 가요 기획사에서 중딩들하고 실컷 어울렸죠."
-기획사에는 직접 찾아갔나요?
"그럼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죠. 데모 cd도 없이 다짜고짜 사장님 만나서 사무실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장혜진씨 노래를 포함해서 여러 곡 불렀는데 황당하고 용감하게 보신 것 같아요."
이하늬는 이 기간이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때"라고 회상했다. 대학원 수업과 병행하느라 매일 별을 보고 귀가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오전 수업 마치고 기획사에서 연습한 뒤 날마다 새벽 1~2시에 귀가했다.
-완벽한 이중 생활이었네요.
"네. 그때 정말 뜨겁게 살았어요. 서울대입구역에서 6호선 상수역, 집 근처인 2호선 교대역까지 지하철 타고 뱅글뱅글 돌았지만 행복했어요. 용돈이 빠듯해 매일 밤 지하철 끊길까봐 역까지 뛰어가고 그랬어요. 그때 택시 타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부모님이 국정원 간부 출신에 무형문화재인 대학교수이신데 풍족하지 않았나요?
"전혀요. 아버지가 원래 행정고시 패스하고 경찰로 시작하셨어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첫 월급이 18만원이었대요. 어릴 땐 지방 근무 오래 하셔서 저희랑 떨어져 살았고요. 국정원에 들어가신 뒤엔 나라에 가족들 신용카드 갯수까지 신고해야 했어요. 저희가 잘못하면 아버지 청문회 불려간다고 엄마가 신신당부 하셨거든요."
-아버지를 존경하나요?
"네. 저희 아버지라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청렴하세요. 요즘도 '네 삶 책임 못질 거면 밥도 먹지 말라'며 불호령이세요. 아버지 무서워서 중·고등학교 때 미팅, 소개팅 한번도 못했어요.
대학교 1~2학년 때는 국악 레슨해서 제가 학비 벌었는데, yg 다닐 때는 부모님한테 차마 손을 못 벌리겠더라구요. 한평생 국가를 위해 일하셨는데 은퇴하신 뒤엔 좀 허무하신가 봐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세요."
●엄마한테 물려받은 '소나타2' 96만원에 팔아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나요?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친구한테 사기 당해서 집이 쫄딱 망했어요. 진짜 길거리에 나앉기 일보직전이었어요. 그때 언니가 학원비를 못내고 학원 다녔는데 도강한 게 걸려서 쫓겨나 가족들이 다 울고 그랬어요.
갑자기 학원증 검사를 한 거죠. 그때 언니가 전국에서 1~2등 할 때였거든요. 아버지가 학원에 가서 집안 사정 얘기한 뒤에야 겨우 다닐 수 있었어요. 그 사건 때문에 아버지와 한국학원 사장님이 친구가 되셨대요."
-외삼촌이 문희상 의원이시죠?
"네. 원래 외갓집이 의정부쪽에서 꽤 잘 살았대요. 그런데 외삼촌이 야당 생활 오래 하셨잖아요. 정치 하시면서 가산을 거의 탕진했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요즘도 저희 3남매한테 '너희들 낳고 파마할 돈도 없었다'고 하세요. 가난한 경찰 공무원한테 시집오셔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자동차는 언제 처음 몰았죠?
"작년 가을 미스 서울 된 뒤 어머니 차를 물려 받았어요. 소나타2였는데 최근에 중고로 팔았어요. 하도 상처가 많아서 범퍼카라고 불렸어요. 하하.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까 딱 96만원 남던데요."
-학창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덩치가 커서 가끔 일진으로 오해 받았어요. 나쁜 친구들 꾀임에는 안 빠졌는데 반골 기질이 좀 있어서 중학교 때 선생님들과 긴장 관계였어요. 맞기도 엄청 맞았죠. 그러다가 고2때부터 서울대 국악과를 목표로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고, 수학까지 문제와 답을 달달 외워서 공부하는 타입이었어요. 수능 등급은 1등급이었어요."
-실기가 더 중요하죠?
"서울대는 실기·이론 다 중요해요. 1주일만 악기 안 만져도 손이 금세 굳거든요. 한 달 동안 악기 앞에 안 앉으면 음악 포기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유학을 포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상금 95만원은 뜻 깊은 곳에 쓸 예정
-비욘세 놀스의 꿈은 접은 건가요?
"미스코리아 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수 도전은 그만뒀는데 솔직히 미련이 좀 남아요. 그때 사장님도 '하늬,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생각해보라'고 하셨어요.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가 있다면 그걸 갖고 한국을 알리는데 쓰고 싶어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나가보니까 정말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더라구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어요.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엔터테이너가 되는 게 제 꿈이에요."
-자신이 엔터테이너가 될 운명이라고 생각하나요?
"막연히 연예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저는 한복과 한옥이 정말 좋거든요. 차타고 가다가도 예쁜 한옥 나오면 꼭 들어가봐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황진이' 같은 영화에 출연해서 가야금도 직접 퉁기고 한복의 맵시도 마음껏 자랑하고 싶어요. 운 좋게 국제영화제에 나가면 그게 국위선양 아닌가요? 전도연씨도 훈장을 받았잖아요."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생각에 잠겼다가) 미스 유니버스 본선날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쉬운 것 같아요. 인터뷰도 잘 못한 것 같고."
-참, 상금 1000달러(95만원)는 어떻게 썼나요?
"어머니 드렸는데 아직 쓰지 못했어요. 얼마 전 부모님과 상의했는데 정말 뜻 깊은 곳에 쓰기로 했어요."
와인 한잔 하고 있는 이하늬~눈화장이 너무 화보!!
"실례지만 손 좀 볼 수 있을까요?" 예상대로 이하늬(24)의 손마디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야금을 뜯었다는 이 국악과 대학원생은 "직업병"이라며 배시시 웃었다. 인생은 결국 어디에 가중치를 두고 사느냐의 문제다.
돈과 지위, 명예, 양심…. 이제 이하늬는 서울대 대학원생 보다 미스 유니버스 4위로 기준점이 옮겨졌다. "신명나게 북과 장구를 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게 있었다"는 이하늬는 무대의 환희를 맛보고 싶어서 미스코리아에 도전했다고 털어놨다.
한국의 비욘세 놀스가 되려고 6개월간 한 가요 기획사에서 연습생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그의 지향점은 연예인인 걸까. 이번주 취중토크의 주인공 이하늬를 14일 밤 서울 청담동의 한 와인바에서 만났다.
●"엄마가 이제 시집은 알아서 가래요"
이하늬를 만난 날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공교롭게 그의 이름 하늬는 서쪽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뜻. 바람과 함께 그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시절 별명이 '달려야 하니' '코끼리'였다는 이하늬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비행기 기내식일 정도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 장래희망은 배추장수라고 했다. "확성기 달린 트럭 몰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장사하는 게 되게 멋있어 보였어요. 아무래도 바람처럼 떠도는 역마살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세 시간 동안 이하늬는 미스코리아의 트레이드 마크인 접대성 멘트 보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노력했다. 적당히 자신을 꾸밀 줄 알면서도 어느 순간 무장해제 하는, 진솔한 면모가 인상적이었다.
-와인 좋아해요?
"네. 가족들끼리 종종 마셔요. 크리스천이라 술과 친하진 않지만 와인은 예외에요. 신의 물방울이라고 하잖아요. 오늘처럼 드라이(dry)한 것 보다 스윗(sweet)한 걸 좋아해요." 첫 잔을 들이켠 뒤 "달달하다"며 함박웃음을 지은 이하늬는 "이러다 복분자 cf 들어오는 거 아니냐"며 웃은 뒤 머쓱해 했다.
-주량은 어떻게 되죠?
"와인 두 세 잔 정도요 그런데 주량이란 게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날은 살짝 한도가 넘어가기도 하죠. 헤헤."
-미스 유니버스 대회 끝나고 어머니가 '이제 시집은 네가 돈 벌어서 가라'고 했다면서요? 지출이 많았나 봐요.
"(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네. 아쉬운 게 나라의 지원이 전혀 없었어요. 베네수엘라나 일본은 전폭적이진 않더라도 내셔널 디렉터가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겨주거든요.
멕시코시티에 한 달간 있었는데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코리아 견장을 차고 날마다 전쟁 치르듯 대회에 임했는데 막상 나라에선 아무런 지원이 없으니까 좀 서운하더라구요." -개인적인 스폰서십도 전혀 없었나요?
"처음에 두 분 정도 나서서 도와주셨는데 멕시코 가기 전에 모두 그만 두셨어요. 게다가 한 분은 '지금까지 들어간 돈 다 토해내라'며 영수증을 보내셔서 곤혹스러웠어요. 멕시코 도착한 날 가장 중요한 드레스가 든 가방을 못 찾게 클레임까지 걸어놓아서 그거 해결하느라고 정신 없었어요. 지금은 다 추억이 됐네요."
-결선에 오른 최종 다섯 명 중 두 번째로 이름이 호명됐죠. 4위, 아쉬웠겠어요.
"말로 다 못하죠. 77개국에서 15개국이 본선에 오르고 5위까지 발표하는 거였잖아요. 헤어와 의상 모두 제가 담당해야 돼 하루에 세 시간 넘게 자본 날이 거의 없어요. 수면제 먹고 잔 날도 많았어요."
-출전자들끼리 미묘한 신경전이 치열했을 것 같아요.
"장난 아니죠. 하하. 화려한 드레스나 화장이 잘 받은 날은 아무리 친구라도 위에서 아래를 좍 훑어보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시험 보는 날 밤새운 티 역력한 친구 얼굴 보면 덜컥 겁이 나는 심리 있잖아요. 그런 게 스트레스였어요. 그래도 룸메이트였던 미스 헝가리와 중국, 일본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냈어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배고픈 복근'
-트렁크는 몇 개나 가져갔나요?
"19개요. 대한항공에서도 놀라더라구요. 행사에서 한번 입은 옷은 또 못 입게 돼 있거든요. 협찬 받은 드레스 30벌은 지춘희·김영세 선생님 등 거의 다 개인 부티크 제품이었는데 명품 보다 인기가 더 좋았어요. 유럽 친구들이 '이게 진짜 한국 디자이너 옷이냐'며 놀랬고, 미스차이나도 '옷 사러 한국 가야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어깨가 좀 으쓱했죠."
-일본한테 1위를 빼앗겨 좀 서운했겠어요.
"대회 기간 내내 알파벳 순서 때문에 일본 다음이 항상 제 차례였어요. 분장할 때나 버스 탈 때 늘 미스재팬 친구와 함께 다녔죠. 감동적이었던 건 시상식 끝나자마자 친한 후보들이 모두 제 주위로 몰려와 위로해줬다는 사실이에요. 미스 차이나처럼 영어 못하는 친구들은 그냥 제 얼굴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울기만 하고…. 그때 친구들의 '쌩얼'을 처음 봤어요. 하하."
-부모님이 같은 호텔에 묵었다면서요.
"네. 그런데 거의 못 만났어요. 보안이 워낙 철저해서 거의 감금 생활이었거든요. 3층에 묵었는데 개별 행동을 철저하게 막았어요. 생각해 보세요. 출전자 중 누가 보쌈이라도 당하면 대회가 완전히 망가지는 거잖아요.
한번은 복도에서 마주친 어머니가 한복을 건네주셨는데 열어보니까 편지 한장이 있더라구요. 황진이 컨셉의 옷이었는데 입는 순서와 성경 말씀, 그리고 '하늬야 너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글이 적혀 있더라구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인터넷에서 하늬씨의 복근이 화제가 됐어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석 달에 15만원 하는 동네 헬스클럽에 다녔어요. 처음엔 우락부락한 아저씨 사진이 많이 걸려 있어서 성인용품 파는 곳인줄 알았어요. 하하. 복근은 작년 미스코리아 되기 전 가수 연습생으로 있을 때 저절로 만들어졌어요. 그때 하도 춤을 격렬하게 춰서요. 다들 '배고픈 복근'이라고 불렀어요."
●"저희가 잘못하면 아버지 청문회 불려가요"
-가수에 도전한 늦깎이 대학원생? 좀 느닷없는데요.
"제가 원래 흑인음악 마니아에요. 국악으로 해결되지 않는 갈증 같은 게 있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죠. 마침 부모님도 대학원만 들어가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허락해 주셨어요. 6개월간 가요 기획사에서 중딩들하고 실컷 어울렸죠."
-기획사에는 직접 찾아갔나요?
"그럼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죠. 데모 cd도 없이 다짜고짜 사장님 만나서 사무실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장혜진씨 노래를 포함해서 여러 곡 불렀는데 황당하고 용감하게 보신 것 같아요."
이하늬는 이 기간이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때"라고 회상했다. 대학원 수업과 병행하느라 매일 별을 보고 귀가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오전 수업 마치고 기획사에서 연습한 뒤 날마다 새벽 1~2시에 귀가했다.
-완벽한 이중 생활이었네요.
"네. 그때 정말 뜨겁게 살았어요. 서울대입구역에서 6호선 상수역, 집 근처인 2호선 교대역까지 지하철 타고 뱅글뱅글 돌았지만 행복했어요. 용돈이 빠듯해 매일 밤 지하철 끊길까봐 역까지 뛰어가고 그랬어요. 그때 택시 타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부모님이 국정원 간부 출신에 무형문화재인 대학교수이신데 풍족하지 않았나요?
"전혀요. 아버지가 원래 행정고시 패스하고 경찰로 시작하셨어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첫 월급이 18만원이었대요. 어릴 땐 지방 근무 오래 하셔서 저희랑 떨어져 살았고요. 국정원에 들어가신 뒤엔 나라에 가족들 신용카드 갯수까지 신고해야 했어요. 저희가 잘못하면 아버지 청문회 불려간다고 엄마가 신신당부 하셨거든요."
-아버지를 존경하나요?
"네. 저희 아버지라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청렴하세요. 요즘도 '네 삶 책임 못질 거면 밥도 먹지 말라'며 불호령이세요. 아버지 무서워서 중·고등학교 때 미팅, 소개팅 한번도 못했어요.
대학교 1~2학년 때는 국악 레슨해서 제가 학비 벌었는데, yg 다닐 때는 부모님한테 차마 손을 못 벌리겠더라구요. 한평생 국가를 위해 일하셨는데 은퇴하신 뒤엔 좀 허무하신가 봐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세요."
●엄마한테 물려받은 '소나타2' 96만원에 팔아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나요?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친구한테 사기 당해서 집이 쫄딱 망했어요. 진짜 길거리에 나앉기 일보직전이었어요. 그때 언니가 학원비를 못내고 학원 다녔는데 도강한 게 걸려서 쫓겨나 가족들이 다 울고 그랬어요.
갑자기 학원증 검사를 한 거죠. 그때 언니가 전국에서 1~2등 할 때였거든요. 아버지가 학원에 가서 집안 사정 얘기한 뒤에야 겨우 다닐 수 있었어요. 그 사건 때문에 아버지와 한국학원 사장님이 친구가 되셨대요."
-외삼촌이 문희상 의원이시죠?
"네. 원래 외갓집이 의정부쪽에서 꽤 잘 살았대요. 그런데 외삼촌이 야당 생활 오래 하셨잖아요. 정치 하시면서 가산을 거의 탕진했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요즘도 저희 3남매한테 '너희들 낳고 파마할 돈도 없었다'고 하세요. 가난한 경찰 공무원한테 시집오셔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자동차는 언제 처음 몰았죠?
"작년 가을 미스 서울 된 뒤 어머니 차를 물려 받았어요. 소나타2였는데 최근에 중고로 팔았어요. 하도 상처가 많아서 범퍼카라고 불렸어요. 하하.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까 딱 96만원 남던데요."
-학창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덩치가 커서 가끔 일진으로 오해 받았어요. 나쁜 친구들 꾀임에는 안 빠졌는데 반골 기질이 좀 있어서 중학교 때 선생님들과 긴장 관계였어요. 맞기도 엄청 맞았죠. 그러다가 고2때부터 서울대 국악과를 목표로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고, 수학까지 문제와 답을 달달 외워서 공부하는 타입이었어요. 수능 등급은 1등급이었어요."
-실기가 더 중요하죠?
"서울대는 실기·이론 다 중요해요. 1주일만 악기 안 만져도 손이 금세 굳거든요. 한 달 동안 악기 앞에 안 앉으면 음악 포기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유학을 포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상금 95만원은 뜻 깊은 곳에 쓸 예정
-비욘세 놀스의 꿈은 접은 건가요?
"미스코리아 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수 도전은 그만뒀는데 솔직히 미련이 좀 남아요. 그때 사장님도 '하늬,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생각해보라'고 하셨어요.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가 있다면 그걸 갖고 한국을 알리는데 쓰고 싶어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나가보니까 정말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더라구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어요.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엔터테이너가 되는 게 제 꿈이에요."
-자신이 엔터테이너가 될 운명이라고 생각하나요?
"막연히 연예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저는 한복과 한옥이 정말 좋거든요. 차타고 가다가도 예쁜 한옥 나오면 꼭 들어가봐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황진이' 같은 영화에 출연해서 가야금도 직접 퉁기고 한복의 맵시도 마음껏 자랑하고 싶어요. 운 좋게 국제영화제에 나가면 그게 국위선양 아닌가요? 전도연씨도 훈장을 받았잖아요."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생각에 잠겼다가) 미스 유니버스 본선날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쉬운 것 같아요. 인터뷰도 잘 못한 것 같고."
-참, 상금 1000달러(95만원)는 어떻게 썼나요?
"어머니 드렸는데 아직 쓰지 못했어요. 얼마 전 부모님과 상의했는데 정말 뜻 깊은 곳에 쓰기로 했어요."
-끝으로 10년 후 당신은 어떤 사람이 돼 있을까요?
"공부하는 사람이요. 공부, 참 지겨운데 안 하면 사람이 교만해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