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다시 갈수 있을까? (긴글주의)

163520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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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3살 남자입니다

4월 14일 사랑하는 사람과 1635일만에 연애생활의 끝맺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9월에서 10월로 넘어가는 스물여덟 스물하나

저희는 온라인 보컬 동아리를 통해 알고 지내다 실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생 서울에 거주했고, 그 사람은 아랫지방이라 저희 집에서 왕복 406km 거리에 살았었습니다. (그 사람과 지역은 정확히 말씀드리기 힘든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당시 저는 리스차량이 있었고(물론 제 명의였지만 아버지께서 출퇴근용으로 사용하셔서 야간에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에 살고있었던 당시 동아리 장 (저보다 한살 어린 남동생입니다.)과

식사를 하기위에 경기도에 놀러갔었습니다.

맛있는 식당을 찾기위해 동네를 한바퀴 돌았음에도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했습니다.

 

나 : "야 그냥 그 사람 보러 그 지방 갈까? 거긴 맛집이 많겠지 유명하니까"

동아리장 : "이시간에? 일단 전화해봄"

 

한번의 통화와 저의 "지금 가겠다" 는 말과 함께

동아리장은 "그래 가" (나중에 동아리장에게 듣게된 건 '설마 가겠어?' 라는 생각이었답니다)

라는 답변과 함께 제 핸들은 그사람을 향해 돌아가고있었고, 가속페달을 밟는 제 발은 너무 가벼웠습니다.

 

첫만남.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을때의 긴장과 설렘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입니다.

여기계신 톡커분들도 어렸을 때 부터 느껴보았을 그 느낌 그대로였습니다.

우리는 203km의 거리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즐겼고, 동아리 장도 제 성격을 알기에

진작에 포기하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집 앞에 도착했고, 24시 콩나물국밥집에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어깨 밑까지 내려오는 탈색한 노란 머리카락, 크고 예쁜 눈에 상대로하여금 활력을 갖게하는

귀엽고 쾌할한 웃음소리.

첫눈에 반하지 않을 남자가 있었을까요?

그 사람을 만나기 전의 저의 연애의 끝은 상대방의 환승이별 이었음에도 후폭풍이 꽤 길었습니다.

많이 무뎌졌던 그 당시에 그 사람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식당에서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203km의 거리를 즐기면서 달려온 시간의 배로 빨리 흘렀습니다.

동아리 장은 술을 많이 마셨고 피곤했음에 근처 여관에서 자고 다음날 서울로 올라오겠다 했습니다.

저는 술이 몸에 맞지않아 술자리를 즐기지만 3잔 이상은 잘 먹지 않았기에 시간이 많이흐른 새벽에는 이미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였고, 아침에 아버지께서 차량을 이용하셔야 하기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었는데 동아리 장과 그사람은 그 날로부터 몇년 전 사귀었던 관계였다고 들었습니다.)

 

아쉽죠. 너무 아쉬웠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로 핸들을 돌리는 손은 무겁다 못해 저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첫 만남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와 일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2015년 10월 10일 비오는 남산

당시 저는 노래연습장을 운영했고, 오픈부터 아버지께서 오시는 시간 (대략 7시 ~ 11시 대중없었어요) 이후에는 아버지의 단골손님들이 많아 아버지께 바톤터치를 하고 여가생활을 즐겼습니다.

10월 10일 그 사람은 10월 11일 군대 휴가나온 남사친과 롯데월드를 가기 위해 겸사 겸사 상경하였습니다. 토요일 밤에 그 사람과 동아리장, 그리고 저는 같이 만나게 되었고.

저의 주도하에 남산에 가게됩니다.

 

늦은 밤의 남산의 차량 출입구는 통제되어 있었고 걸어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그 사람은 발목을 다친지 얼마 되지 않아 힘들어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셋은 전망대가 있는 팔각정 까지 올라갔고

새벽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동아리 장과 그 사람은 울타리쪽에서 산 밑을 바라보면 무언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더군요.

의아했고, 불안했고, 질투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봤고, 그 사람은 말해주었습니다.

"산 아래 저 수 많은 불빛들이 관중이고 너가 여기서 노래부른다 생각해봐"

저는 고개를 끄덕였고.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새벽에 내리는 가랑비에 그 사람의 옷이 젖을까 제 겉옷을 벗어 걸쳐주고

우리 셋은 팔각정에서 하하호호 하며 재미있는 사진도 실컷 찍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셋은 차를 타고 저의 가게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동트는 길 그 사람은 멀미와 두통을 호소했고 비에 맞아서 그런지 춥다고 했습니다.

편의점에 들러 그 사람 먹을 감기물약을 샀고, 가게에 도착하여 저는 잠이 들었습니다.

 

11일 아침.

그 사람은 남사친과의 약속을 위해 분주히 준비했고, 잠이 많은 저는 동아리 장이 깨워

그 사람 나가는 김에 본인도 집에 가겠다는 말을 듣고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니 알아서 가라는 말과 함께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나보니 저녁 오픈시간이 되었고, 휴대전화를 급히 충전하며 그 사람에게 연락했습니다.

잘 놀았는지, 오늘 집으로 내려가는지를 물어봤고

 

그 사람 : "영등포역에 무궁화호 막차가 있어서 그쪽으로 가는중이야"

나 : "가기 전에 밥이나 먹을까?"

그 사람 : "그래"

 

그렇게 그 사람을 이틀 연속 보게 되었습니다.

저를 보게되면 막차를 놓치게 되는데 말이죠.

 

나 : "용산에 KTX 막차가 훨씬 늦게까지 하니까 일단 용산역으로 가자"

 

영등포역에서 그 사람을 태우고 용산역에 도착했고,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집으로 가야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용산역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돌아와 그사람이 타고 갈 기차 시간을 기다리면서 쉬고있었습니다.

'같이 있고싶다.'

저는 같이 있고싶은 마음에

 

나 : "기차 타고 가면 불편할 거 같은데 내가 데려다 줄게"

 

그렇게 우리는 차를 타고 그 사람의 지역으로 향했고

저는 여느날 처럼 동이 트기 전 차량을 써야하는 아버지를 위해 왕복 406km의 거리를 운전 했습니다.

 

그 날 이후 운영하는 가게의 수익은 점점 줄었고, 저는 아버지와 교대하는 시간 이후에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수입을 챙기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빚도 생겼고, 우울함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습니다.

한가지 달라진 건

그 사람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되었다는 것.

그 사람을 생각하며 삶이 아름답게 보였단 것.

'내 삶에 한줄기 빛을 기대 해 봐도 될까? 내가 그런 자격이 될까?' 라는 희망.

그 사람은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야간에 일하는 저와 밤새 통화로 수 많은 이야기들을 하며 친해졌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삶에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도 저의 방황을 몰랐던 그 때에 말입니다.

 

하루는 제가 일하고 있는데 무턱대고 그 사람이 놀러오게 됩니다.

근무 하는동안 카운터를 비울 수 없기에 테이블에서 제 근무가 끝나기까지 기다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배고파서 밥도 먹이고, 제가 일하느라 심심할까봐 손님 없을 때 테이블로 가서 대화도 나누고.

동이트고 퇴근하려면 서너시간이 더 남은 시간에 그 사람은 피곤을 참지 못하고 테이블에 엎드려 졸고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나머지 제 카드를 주며

 

나 : "퇴근하고 깨워주러 갈테니, 근처에 방 잡고 누워서 자고 있어"

(당시 일하던 편의점 주변엔 숙박시설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이 잠들기 전 숙박시설 이름과 호수를 알려줬고

퇴근하고 깨워주러 가게 됩니다.

배고프다고 해서 근처 백반집에서 음식을 포장해 같이 밥을 먹었고,

우리 둘은 배가 불러 침대에 누웠습니다.

 

나 : "저.. 나랑 진지하게 만나볼래"

그 사람 : "ㅎㅎㅎㅎ 생각 해 보고! 두달 뒤에 말해줄게 ㅎㅎㅎㅎ"

 

그렇게 그 사람은

'너는 내 손바닥 안에 있다' 라는 표정과 장난기 넘치는 웃음으로

저의 애를 태우며 인내심을 시험하게 했습니다.

당연히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잦은 만남. 그리고 잦은 연락과 함께 그 사람과의 사이는 깊어졌고

지하상가에서 충동구매한 싸구려 각인 커플링.

탑텐에서 처음 산 노란색 빨간색 커플 패딩조끼.

엠엘비에서 처음 산 노란색 검은색 커플 모자.

...

 

그리고 10월 24일 같이 맞춘 제대로 된 첫 커플링.

비록 은반지 였지만 그 날을 기념해 저희는 정식으로 기념일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계속 되었다면 1659일째인 오늘이지만

제 시간은 4월 14일 1635일에 멈춰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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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두서없이 그 사람과 시작했던 기억을 적어 내려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사람은 잘못이 없습니다.

이런 말도안되게 고통스럽고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질 만큼의 후회를 체감하고 있는 저는

이별의 원인 제공자이며 쓰레기 일지도 모릅니다.

5년 전 극단적인 생각을 가졌던 저의 멘탈로 점점 돌아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언제가 되었든

그 사람도 이 글을 보게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보게 된다면, 그럴 수 있다면.

아직까지 그 사람 아니면 안될 것 같다는 제 마음이,

직접 전달해도 닿지 못하는 내 기억과 생각들이

기록에 남아있기를.

그 사람과의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