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적이 누구인가

왕밤빵2020.05.18
조회38
오늘 겪을 일입니다. 술 먹고 써서 논리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다만 풀어내지 않으면 안에서 더 곪을 것 같아서 토해내듯 써냈습니다.



나의 적이 누구인가

어릴 적 나는 나의 적이란, 나보다 예쁘고 어린 여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학창시절이든 사회생활에서든 나에게 눈으로 보이는, 직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어린 여자들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말이지. 공부를 하면서든 일을 하면서든 겪는 그런 기싸움들은 사실 나의 일신상에 그닥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느꼈다.
그녀들이 나에게 갖는 적의든 뭐든 그런 것들은 결국 사회적으로 나에게 요구되는 어떤 것들과 연관이 있다. 가령 나에게 주어진 일.
하지만. 불시에 받는 기습들은 내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어느날은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차 문 앞에 서 있었다. 태그 기계는 내 기준 오른쪽에 있었고, 나 역시 누군가 태그기계를 막고 있으면 짜증이 났기에 일부러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옆에 사람이 서있어도 태그를 어렵지 않게 하기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누군가 그 사이를 들어와 태그를 했다. 그리고 손을 빼며 내 엉덩이를 툭 쳤다. 엉덩이를. 툭. 나는 생각했다. 분명 충분한 거리를 두고 서있었는데, 그 공간이 충분하지 못했나? 혹은 태그 하고 손을 회수하는데 버스가 많이 흔들렸나? 그래서 어쩔 수 없었던 접촉이었나? 기분이 나빴지만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힐끗 쳐다보고 인상만 썼다. 상대는 5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 또 누군가 태그를 했고 다시 한 번 엉덩이에 툭! 하는 접촉이 느껴졌다. 툭. 툭.
상황이 두 번이나 반복되자 나는 화가 났다. 첫 번째 접속 후에 나는 공간이 부족했나 하고 자리를 옆으로 더 이동했기 때문이다. 태그기기와 나 사이에는 충분한 거리가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태그를 한들 부득이하게 터치되는 부분은 골반 옆이나 옆구리여야 했다. 엉덩이가 아니고. 엉덩이가 아니라고 __.
그런데도 나는 참았다. 이건 곰탕집 사건처럼 누군가 엉덩이를 쥐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툭’ 하고 쳤을 뿐이다. 이게 고의였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가?(애초에 내가 증명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간다. 병신처럼) 내가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대중교통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네가 예민하다’라고 반응한다. 그렇다면 내 기분은? 누군가 내 몸을 만졌고 그걸로 인해 불쾌하며, 이 불쾌함을 어디에도 터 놓을수 없는 내 마음은???? 이 쓰레기같은, 어디에도 소비되지 못하는 이 감정은 어떻개 해야하는데? 쌓이고 쌓여서, 내 마음 깊은 곳애 검디 검은 굴을 만든다. 이 날은 무척 운이 안 좋았나보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기후로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강풍과 비가 몰아쳤다. 나는 버스를 타야 했기에 그 비바람을 맞아가며 정류장에 서있었다.
그런 내 옆으로 웬 노숙자가 다가왔다. 뭐라고 말을 했으나 나는 나에게 말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 정신은 이미 엉덩이를 만진 그들에 대한 오갈 길 없는 분노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부는 비바람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 나에게 그 노숙자가 소리쳤다.
“비키라고 이___아!!!!”
버스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벙쪘다. 이건 또 뭐야? ___? 얼굴과 몸으로 비를 쳐 맞으면서,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노숙자는 내 뒤의 벤치에서 방석을 가져갔다. 나는 졸지에 엉덩이를 두번이나 만져진 ___이 되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 노숙자는 아무렇지 않게 바로 옆 지하철 출구쪽으로 가서 비를 피헸다. 노숙자의 오른 손에는 먹다 남은 소주병이 들려있었다.노숙자의 손에서 주둥이를 잡힌 소주병이 흔들렸다. 나는 그 노숙자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저 사람을 계단에서 밀면 어떻게 될까? 잡혀갈까? 하지만 저 사람은 어떤 보호지도 없어보인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저사람을 계단에서 밀면 과연 쉽게 죽을까? 다시 올라와서 내게 덤벼들면 어떻게 하지? 저 병으로 나를 때리면 어떻게 하지? 만약 죽는다해도 씨씨티비가 있을텐데
내가 감옥에 가거나 하지는 않을까? 살아남으면, 나는 계속 여기서 버스를 타야하는데 내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그 럼 과 연 내 가 지 금 여 기 서 어 떤 행 동 을 할 수 있 을 까?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가? 쓰레기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니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참아야 하는가?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왜 고통당하며
이 고통을 준 당사자에게 되갚을 수도 없는가? 내가 만만한가? 작은 여자라, 그렇게 해도 되겠다 생각됐는가?
내가 만약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남자였으면 과연 그들은 나에게 그렇게 행동했는가???????????????
버스에서 내려서 집에 오는 길에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뭐지? 라고 벙찐 마음이었다. 두번째로는 왜 나에게 이런일이 생기는가?
세 번째로는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네번째로는 왜 이 일로 인한 스트레스외 고통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가?
나는 피해자다. 가만히 있다가 돌을 맞은 피해자. 그런데 왜 혼자 이 고통과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가?
내가 느낀 이 모욕감과 고통을 그들에게 똑같이 갚아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나도 당하는 입장이 아니고 싶다. 성폭력이 든 성희롱이든 당하는 입장이 아닌 무고죄를 두려워하는 입장이고 싶다. 만져졌지만 사람이 많아서, 증거가 없어서 혼자 감내하는 입장이 아닌,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만지고 떳떳할 수 있는 그 입장이고 싶다. 내가 가는 길에 거추장스럽다고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는 역할이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 상처를 주고 피해를 주는 역할이고 싶다고. 당하고 수치심과 분노에 우는 역할이 아니고 이 __새끼들아. 디져버릴 쓰레기같은 것들아.
절망적이게도 없다. 내 엉덩이를 만진 그들에게 똑같은 수치를 느끼게 할 방법이 없다. 내가 카드를 찍으며 그들의 엉덩이를 만진다 해도 그들이 나만큼 괴로울 것인가? 오히려 좋아서 히히덕 거릴수도 있겠지. 소주병을 들고 위협하는 노숙자에게 내가 어찌 대응해야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없다. 없다고.
나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알콜 도수에 비헤 배가 너무 부르니까. 먹는 양에 비해 효율이 좋지 않다. 그런데 집에서 술을 먹을 땐 어쩔 수 없이 맥주를 먹는다.
소주를 먹으면 엄마가 무슨 일이 있냐며 말을 걸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마음속에 응어리 진 이 오갈 곳 없는 분노를 엄마에게 풀지 않기위해 입을 다물고 방에 들어간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기 위해 맥주를 산다. 네 캔에 만원인 외국맥주. 보통은 한 캔이면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럴 때는 네 캔을 전부 먹어버린다.
두 캔을 먹고 세 캔을 딸 때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배가 찢어질 것 같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는다. 이건 일종의 자학이다.
겉 껍질을 상처내지 않는 혼자만의 자학. 맥주를 먹으며 온갖 먹을 것들을 다 먹는다. 음식물이 위에 가득 차고 식도까지 차오른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는다.
토 할 것 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더 이상은 들어찰 곳이 없다고 항의한다. 하지만 그래도 음식물을 처 넣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자학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자. 그저 운이 안좋 았을 뿐이야. 하필이면 그게 그냥 나였을 뿐인데. ..근데 그게 왜 나여야 했나? 왜?
이 대상을 잃은 스트레스와 분노는 왜? 명백하게 내 몸을 망치는 이 자학은 왜? 피해자인 내가? 왜 내가 상처받고 내가 망가져야 하는가? 가해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오갈길 없는 분노는 마음 속에 시꺼면 재로 남아서 계속 문드러진다. 비슷한 일을 계속 일어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
나는 총기소 지를 지지한다, 무차별 살인이 생기든 뭐든 겉모습에 관계없이 총기를 소지하게 되면 모두가 하나의 총기로 보일 것이다.
왕따도, 불합리한 폭력도, 성폭력도 나아질 것이다.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상대이기에 막 대해도 된다는 그런 단세포적 사고가 줄어들 것이다.
과연 나와 같은 경험은 가진 사람이 없을까? 아니. 그녀들은 산재해 있고 숨어서 나처럼 어디에도 풀 수 없는 분노를 혼자 삭히고 있는 것이다.
여성 상위시대? 평등?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이 어디가 여성 상위냐? 이 어디가 평등이냐?
내 능력 혹은 인격과는 전혀 별개로 내 인생을 이따위로 시궁창에 처박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