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의 역사와 누드

김경숙200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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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는 치욕의 역사가 있다.
어느 나라도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 망정
나름대로 다 잊고 싶은,
가능하다면 말끔이 지워버리고 새로 쓰고 싶은 역사의 오점들이 있다.

한 연예인이 위안부를 주제로 해서 누드를 찍었다고 온 나라가 뒤집혔다.
한개인이 자신의 영리를 위해서 합법적으로 역사속의 치욕을 팔아먹을려는 것
이 한 정치인이 자신의 영리를 위해서 불법적으로 권력남용 한 것보다 더 잘
못되었다고 매도하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치욕의 역사는 그녀가 나기도 전에 만들어졌는데
왜 그녀가 책임을 져야하는가?
애국이 개인의 영달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애국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 사회지도급인사,
즉, 높은 도덕성, 윤리성이 요구되는 직업인 소위 높은 사람들 대다수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불법행위를 밥먹듯 했다.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직업정신은 대체 무엇인가?
왜 그녀는 돈이 될 수 있는 재료를
시대의 재물이 된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해서 포기를
했어야 했는 걸까?
그랬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돈의 유혹은 너무나 대단했다.
당신은 돈을 뿌리칠 수 있는가?

그 시대, 치욕의 시대를 만들어 가는 지도 몰랐을 그 시대 이 땅의 남자들은
이 땅의 어머니와 누이와 아내를 지켜주지 못했다.
우리의 할머니들은 영문도 모른채 정신대로 끌려가 말로 다 할수 없는 동물취급을 받았다.
차라리 이것도 저것도 모르는 짐승이었으면 좋았으니라. 그네들이 짐승이었으니.
인간으로서 견딜수 없는 수모는 개인적으로 한으로 남아있고
역사적으로는 치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 비난하고
개인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이는 체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작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직도 두 눈 부릅뜨고 살아 있는 산 증인앞에,
그리고 결코 고쳐질 수 없는 역사앞에
잘못을 사죄하지 않는 짐승보다 못한 뻔뻔스런 일본정부이고
그것에 합당하게 체계적으로 문제해결을 하지 않는
한국정부의 짐승같은 무지함이다.

이 시대의 남자들은 이제 여자들을 지켜줄 필요가 없다.
여자들 스스로 알아서 벗는다. 돈은 대단한 힘을 지녔다.
불같이 들끓는 것은 한국인의 열등의식일 뿐이다.
이 혼란된 가치관으로 지금 한국 사회는 분노를 가득 품고 있다.
분출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
그 대상이 힘없는 연예인의 위안부누드가 된 것 뿐이다.
한국인의 역사를 운운하는 분노는 한국인의 자기 기만이다.

망각병이 깊은 한국인에게 그녀의 누드는 남자들의 성욕을 자극하기 보다는
잊혀져가는 치욕의 역사를 되살리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보일 듯 말듯 감춰진 유방을 상상하고 동물적인 거친 호흡으로
사진 속의 여자를 은밀하게 희롱하기보다는
힘없어 죽지못해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속의 가련한 여인으로 보라.
그리고 일제의 잔혹함에 분노하라.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을 지혜를 배우라.
그런데 왜 우리는 한 개인을 매국으로 이지매하면서 숨겨져 있는 분노를
내지르고 있는가. 이건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역사의 이름으로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일등국민이 된다고 해서 그 치욕의 역사를 아닌 듯 새로 쓸 수
있겠는가? 없다. 역사는 왜곡되는 순간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이 순간 우리는 더러운 역사를 만들 수도 있고
자랑스런 역사를 만들수도 있다.
그 다시는 고쳐쓸 수 없는 역사를 만들고 있는 지금 한국인은 어떠하고 있는가?

거짓과 불법, 적대감과 모멸심, 근거없는 우월감,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잃은 한국인의 정신이 만들어 내고 있는
지금 역사는 어떤 모습으로 후대에 전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