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햅번에 대해 새로 알게된 몇 가지

ㅇㅇ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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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햅번에 대해 새로 알게된 몇 가지





 



1. 오드리의 출세작인 로마의 휴일은 <지지>로 이름알려지기 전에 캐스팅되었다.






 



2. 브로드웨이 성공작들은 장기 공연이 관례니 로마의 휴일 계약 없었음 

오드리도 <지지> 장기 공연 참여하고 영화 버전에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3. <사브리나> 역시 로마의 휴일 개봉 전에 캐스팅되었다. 

훗날의 탑스타 위치에서 캐스팅된게 아니기에 대우가 박했다.






 



4. <사브리나>의 상대역인 험프리 보가트와 사이가 좋지않았다. 

험프리가 일방적으로 오드리를 싫어하고 무시했기때문. 험프리 보가트는 감독과도 불화가 있었다.






 



5. <화니 페이스>의 프레드 아스테어는 20세기 최고의 댄서이자 

뮤지컬 스타로 오드리 햅번도 그의 팬이었다. 

하지만 워낙 전설과 함께 한단 생각에 부담이 심했는데, 프레드가 배려를 많이 해줬다고.






 



6. 오드리 최초의 망작인 <녹색의 장원>은 남편인 멜 퍼러가 총지휘한 작품이다. 

촬영 전에도 평이 별로였음에도 남편의 꿈을 이뤄주려고 출연.


7. <수녀 이야기>와 <녹색의 장원>은 촬영 시점과 개봉 시기가 비슷했는데(녹이 먼저, 수가 나중),

<수녀 이야기>가 엄청난 흥행과 호평 받으면서 <녹색의 장원> 실패가 묻혔다.






 



8. <티파니에서 아침을> 오프닝씬은 이른 새벽에 촬영되었는데 

이른 시간에도 불구 구경 온 수천명이 둘러싸서 힘들게 촬영했다.


9. 오드리는 티파니 앞에서 먹는 음식으로 아이스크림콘을 추천했으나 무시당함.


10. <티파니에서 아침을> 총괄 디자이너는 에디스 헤드고 지방시는 오드리 개인 의상만 담당했다.






 



11. <마이 페어 레이디> 당시 오드리 햅번은 영화 안팎 문제로 굉장히 스트레스받았다. 

평소에 굉장히 겸손하고 성격 좋은걸로 유명했지만, 이때는 약간 까칠한 상태였다고.






 



12. 80년대 말 오드리는 유니세프를 찾아가 홍보대사를 자청했다.


13. 아프리카 방문 당시, 암의 전조 증상에 따른 통증으로 힘들어했으나 

내색않고 대사로서 주어진 책무를 다 마친 후에야 병원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