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너무 일찍 찾아들었다 길나선 달빛보다 먼저 옷 갈아입고 야생의 영혼들 마른 옷깃 흔드니 갱년기 앓던 민들레의 봄꿈이 홀씨처럼 피어난다 남몰래 아픈 이들, 저녁은 길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나무에서 나무로 얼었던 내 혈관을 타고 흘러 말랐던 감각의 관다발을 흔든다 살아야겠다 다짐하는 안개바람 속 도둑고양이 한 마리 쓰레기 뒤적이고 전선 없는 전봇대에 바람이 매달린다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자동차의 행렬 꼬리가 길다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왔다
저녁으로의 산책
저녁으로의 산책
정병숙
저녁은 너무 일찍 찾아들었다
길나선 달빛보다 먼저 옷 갈아입고
야생의 영혼들 마른 옷깃 흔드니
갱년기 앓던 민들레의 봄꿈이
홀씨처럼 피어난다
남몰래 아픈 이들,
저녁은 길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나무에서 나무로
얼었던 내 혈관을 타고 흘러
말랐던 감각의 관다발을 흔든다
살아야겠다 다짐하는 안개바람 속
도둑고양이 한 마리 쓰레기 뒤적이고
전선 없는 전봇대에 바람이 매달린다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자동차의 행렬
꼬리가 길다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