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누드사진에 관하여 조경수 내가 어렸을 적 만해도 정신대문제는 부끄럽고 창피해서 말도 못 꺼내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일제의 전쟁보상”문제와 연관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밝혀진 것은 얼마 전부터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대할머니들도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하여 취재에 응하려 하지 않다가 계속된 설득으로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분명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과거에 그치지 않고, 역사로, 역사로 인식하려는, 역사로 인식시키려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역사로 인식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과 철저한 분석과 대응이 뒷받침 될 때 그것은 역사로서의 가치와 효용을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말하려 하지 않으려 할 때, 왜 그 할머니들을 설득했습니까? 그 사실이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렇게 했습니까? 왜 우리는 일제의 보상을 요구합니까? 우리의 요구조건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왜 지금도 끈질기게 요구합니까? 우리는 다른 나라 수상이 자기네나라 전몰장성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것을 왜 반대합니까? 남의나라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역사 때문입니다. 그만큼 역사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자기네 장성들을 생각하는 것의 몇 십 분의 일이라도 피해당사국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것을 잊고 방심하면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지 않을 것 같아도 몇 백 년 후에 다시 쳐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 당시도 화친은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와 문화는 계속 개방되어야하고, 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인이 되기 전후까지만 해도, 극장에서 키스씬이 나오면 휘파람불고 소리 지르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초등학생에게도 성교육을 시켜야한다, 영화도 등급제로 해야 한다, 등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사실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발을 하지 말라고 규제하던 시절에 장발이 전국적으로 유행했습니다. 때를 맞춰 초미니 스카트가 유행했는데, 경찰아저씨들이 단속을 하신다고 무릎 위 몇 센치를 재기위해 대나무 자를 갖고 다니기도 했고, 또 그것으로 측정하여 단속했습니다. 이것의 기원은 당시 유명가수 윤00여가수가 미국 갔다 돌아오면서 미니스카트를 입었는데 각선미가 돋보였다나, 그래서 유행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통금의 해제를 앞두고, 통행금지가 없어지면 찬반양론 속에 무슨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그러더니 통금 없어도 아직까지 잘살고 있습니다. 또 대중가수 이00씨가 최신 시설을 갖춘 무슨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하려했는데, 토속적인 대중가수는 이렇게 고상하고 예의를 갖춘 장소에서 공연할 수 없다하여 말들이 많았습니다. 클레식이고 운치 있는 사람만이 공연하던 장소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것이 예술 공연의 장소도 많이 변했습니다. 무슨 강변가요제, 길거리공연, 그 넓은 잠실운동장, 올림픽구장을 통째로 사용하는 공연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문화가 대형화 대중화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포츠는 어떻습니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스포츠에 외국선수가 없으면 경기가 안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또 해방이후 처음으로 일본 씨름의 서울 공연이 열린다고 합니다. 거기다 가라오케가 유행하는 시점에서 일본노래 한 두곡 모르면 왕따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릅니다. 정치얘기를 꺼내자면, 얼마 전까지 정치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는 엄격히 금지해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의 정치인 풍자는 과장이라고 느낄 만큼 너무 노골적이고 사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총선자금공개, 낙천낙선운동까지, 그만큼 대중화 개방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점에서 정신대누드사건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술이다, 역사적 아픔을 상품화하지마라, 모두 이해합니다. 저도 정신대 할머니들이 분노하는 것을 뉴스에서 봤습니다. 저는 두 가지를 모두 수용했으면 합니다. 예술은 예술로, 역사적 아픔은 역사적 아픔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왜 그렇게 분개했겠습니까? 저는 이것으로 예술작품의 요소를 충분히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진실 되고, 사실적이 아니라면, 왜 그렇게 분개합니까? 그때의 기억이 그대로 살아나니까, 분노하고 분개하고 욕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이것을 철저하게 기록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할머니들이 여자로서의 최소한의 수치심 뒤에 감춰진 그 말까지 하니 얼마나 충격적이고 사실적입니까? 저는 예술로서의 사명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충격과 감동 이것은 예술의 기초여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호가 생존시절 사실적인 그림만 그리던 당시의 화풍에서는 이단자요, 천박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망 후 그의 그림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작가가 표현하고자하는 의도가 그대로 담겨있었고, 고호는 그것을 좀더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려 했고, 그것을 그대로 화폭에 담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충격은 충격대로, 예술은 예술대로 살렸으면 합니다.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누드가 사실이 아니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유엔에서 일본의 보상을 요구할 때, 그 누드사진과 정신대할머니들이 욕하고 분노하는 화면을 공개한다면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것입니다. 그 생생한 역사적 진실을. 참고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대동여지도를 불태운 것과 같은 그런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도는 땅 모앙을 그대로 그려내면 되고, 예술은 사람 내면의 그 깊은 감성을 그대로 끌어낼 수 있으면 그 소임을 다했다고 봅니다. 2004.02.16 조경수 올림chok.pe.kr
정신대 누드사진에 관하여
정신대 누드사진에 관하여
조경수
내가 어렸을 적 만해도 정신대문제는 부끄럽고 창피해서 말도 못 꺼내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일제의 전쟁보상”문제와 연관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밝혀진 것은 얼마 전부터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대할머니들도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하여 취재에 응하려 하지 않다가 계속된 설득으로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분명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과거에 그치지 않고, 역사로, 역사로 인식하려는, 역사로 인식시키려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역사로 인식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과 철저한 분석과 대응이 뒷받침 될 때 그것은 역사로서의 가치와 효용을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말하려 하지 않으려 할 때, 왜 그 할머니들을 설득했습니까?
그 사실이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렇게 했습니까?
왜 우리는 일제의 보상을 요구합니까?
우리의 요구조건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왜 지금도 끈질기게 요구합니까?
우리는 다른 나라 수상이 자기네나라 전몰장성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것을 왜 반대합니까?
남의나라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역사 때문입니다. 그만큼 역사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자기네 장성들을 생각하는 것의 몇 십 분의 일이라도 피해당사국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것을 잊고 방심하면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지 않을 것 같아도 몇 백 년 후에 다시 쳐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 당시도 화친은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와 문화는 계속 개방되어야하고, 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인이 되기 전후까지만 해도, 극장에서 키스씬이 나오면 휘파람불고 소리 지르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초등학생에게도 성교육을 시켜야한다, 영화도 등급제로 해야 한다, 등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사실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발을 하지 말라고 규제하던 시절에 장발이 전국적으로 유행했습니다.
때를 맞춰 초미니 스카트가 유행했는데, 경찰아저씨들이 단속을 하신다고 무릎 위 몇 센치를 재기위해 대나무 자를 갖고 다니기도 했고, 또 그것으로 측정하여 단속했습니다.
이것의 기원은 당시 유명가수 윤00여가수가 미국 갔다 돌아오면서 미니스카트를 입었는데 각선미가 돋보였다나, 그래서 유행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통금의 해제를 앞두고, 통행금지가 없어지면 찬반양론 속에 무슨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그러더니 통금 없어도 아직까지 잘살고 있습니다.
또 대중가수 이00씨가 최신 시설을 갖춘 무슨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하려했는데, 토속적인 대중가수는 이렇게 고상하고 예의를 갖춘 장소에서 공연할 수 없다하여 말들이 많았습니다.
클레식이고 운치 있는 사람만이 공연하던 장소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것이 예술 공연의 장소도 많이 변했습니다.
무슨 강변가요제, 길거리공연, 그 넓은 잠실운동장, 올림픽구장을 통째로 사용하는 공연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문화가 대형화 대중화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포츠는 어떻습니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스포츠에 외국선수가 없으면 경기가 안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또 해방이후 처음으로 일본 씨름의 서울 공연이 열린다고 합니다.
거기다 가라오케가 유행하는 시점에서 일본노래 한 두곡 모르면 왕따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릅니다.
정치얘기를 꺼내자면, 얼마 전까지 정치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는 엄격히 금지해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의 정치인 풍자는 과장이라고 느낄 만큼 너무 노골적이고 사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총선자금공개, 낙천낙선운동까지, 그만큼 대중화 개방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점에서 정신대누드사건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술이다, 역사적 아픔을 상품화하지마라, 모두 이해합니다.
저도 정신대 할머니들이 분노하는 것을 뉴스에서 봤습니다.
저는 두 가지를 모두 수용했으면 합니다.
예술은 예술로, 역사적 아픔은 역사적 아픔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왜 그렇게 분개했겠습니까?
저는 이것으로 예술작품의 요소를 충분히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진실 되고, 사실적이 아니라면, 왜 그렇게 분개합니까?
그때의 기억이 그대로 살아나니까, 분노하고 분개하고 욕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이것을 철저하게 기록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할머니들이 여자로서의 최소한의 수치심 뒤에 감춰진 그 말까지 하니 얼마나 충격적이고
사실적입니까?
저는 예술로서의 사명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충격과 감동 이것은 예술의 기초여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호가 생존시절 사실적인 그림만 그리던 당시의 화풍에서는 이단자요, 천박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망 후 그의 그림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작가가 표현하고자하는 의도가 그대로 담겨있었고, 고호는 그것을 좀더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려 했고, 그것을 그대로 화폭에 담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충격은 충격대로, 예술은 예술대로 살렸으면 합니다.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누드가 사실이 아니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유엔에서 일본의 보상을 요구할 때, 그 누드사진과 정신대할머니들이 욕하고
분노하는 화면을 공개한다면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것입니다.
그 생생한 역사적 진실을.
참고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대동여지도를 불태운 것과 같은 그런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도는 땅 모앙을 그대로 그려내면 되고, 예술은 사람 내면의 그 깊은 감성을 그대로 끌어낼 수 있으면 그 소임을 다했다고 봅니다.
2004.02.16
조경수 올림chok.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