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아부지 어머니 누나 동생 5명이서 살았고그때 아부지 음식 장사가 잘되서 2층집에서 부유하게 잘살다가아부지가 사업 욕심 부려다 망해서 빛쟁이한테 쫓겨서국민학교 2학년때 방항때 친구들과 작별인사도 못하고 야반도주해서다른지역으로 이사를 갔는데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이사가는데 엄마한테 그랬지왜 자꾸 산으로 올라가? 여기 집있어?달동네 중턱에 단칸방(내 기억으로 5명 누우면 꽉 찼지)에 들어가는데펑펑 울었지.. ㅋ 2층집 살다가 단칸방이라니 참 신선한 충격이였어그래도 어렸으니깐 누나랑 옆에서 자도 그땐 상관없었어 사춘기 전이였으니깐누나 엄마 아빠 동생 나 이렇게 섞어서 잠잤지 ㅋㅋ그리고 이사간게 부엌에 방 2개 짜리 옥탑방비오면 빗소리가 우두두두두두두 여름은 정말 더웠지참 친구들한테 옥탑방 사는거 들키기 싫어서 초4때 계단을 항상 네발로 기어서 올라갔어거기서 1년 살다가 비밀하우스에 살았어 초6까지밭 한가운데 비닐하우스 였는데 여름에는 쩌죽고 겨울은 겁나 추웠지수도시설은 없어서 주말에 20리터 말통10개 정도에 약수물 받아왔지1998년 그때 전화기도 없고 냉장고도 없이 살았어.. 참.. 매일 울었지그때 학교 갔다가 집에 왔는데 우리집에 어떤 무서운 아저씨들이 대여섯 있는거야빛쟁이들이 찾아왔어 ㅋ 아부지 어딨냐고.. 그때 막노동 하시고 계셧는데모른다고 집에 안들어오신다고 거짓말했는데우리사는 꼬라지 모니 돈도 못받을거 같으니깐나한테 5000원 주면서 다들 나가더라 그때 한 3시간은 그냥 이불 속에서 펑펑 운거 같아 (사실 2틀에 한번꼴로 맨날 울었지 )그리고 철도길 옆에 판자집으로 이사 갔어 중2 때애들집 놀러댕기다가 애들이 이제 우리집 구경할 차례라고 했을때 정말 도망댕겼어 애들이 우리집 올까봐판자집에 산다고 소문 나는게 정말 싫었거든 2000년때 집전화도 없었어 전화도 없이 살았어이제 고1 때부터 알바를 하기 시작했지 아무것도 모르고 시급 천원 받고 전단지 돌리다마트에서 카트 끌고 정리하는 일하면서 시급 2800원 받고 학교 끝나고 일다니고옷 만드는 지하실에서 씨다(포장하고 실밥따고)일 하면서 3000원첫 월급 25만원 받았는데 동생이 이제 고등학교 올라오는거야내가 젤 서러웠던건 그때 신발이 만원짜리 시장 짝퉁신발 이였거든 비오는날이면 양말이 다 젖어도신발 사달라는 말이 않나왔어 그때 나이때는 교복을 입으니깐 신발과 가방으로 평가 하잔아내동생도 새학기 새친구들 사귀어야하는데 꿀리는거 싫더라고그래서 그돈으로 나이키 신발하고 디키즈? 가방 사줬어 뭔가 뿌듯하더라고대학은 일직이 포기 했고 누나가 미술쪽에 재능이 있는거야 그래서 누나는 대학을 보내야겟다고 해서열심히 알바해서 대학자금 대줬지 (그때까지도 아부지는 사업에 미련을 못버려서 투자자 구하고 댕기고 돈벌면 그쪽에 투자만 했어. 엄마는 식당일 하면서 우리 학비랑 월세 생활비 쓰고)그렇게 어렵게 누나 대학 보내고 난 군대를 갔지전역하고 23살사촌형이 땡처리 옷장사를 하는데 120준다고 같이 일좀 하자고 해서 따라댕겼는데 1년을 돈을 못받았어 남보다 더 무섭다.ㅋ그렇게 폰 3달 밀려서 정지 당하고 안되겟다 싶어서 수산물 시장에 일하러 갔지생선 대가리 치고 물건 실어주고 호객하고 ㅋ 빨간날 .명절.주말 29살 까지 공휴일 쉰적이 없어 그때가 대목이니깐 그때 200만원 받으면 집에 생활비 100만원씩 주고 나머지는 친구들이랑 술먹는데 쓴거 같아 저축계념이 없었어 이대로 일만 하다 20대 끝내긴 싫더라고 그래서 떠났지 호주워킹홀리데이 . 영어 한마디 못하는데 그냥 뱅기 탔어소공장에서 도축했지 금토일 정말 평생 못논거 2년 동안 다 놀았어연애도 하고 형 동생 누나 들 사귀고 행복했어31살 한국 왔는데 잿빛하늘이 너무 싫어서통장에 20만원 있는거 가지고(호주에서 돈은 많이 벌었는데 다 노는데 썻어 그때 내 목표는 오로지 즐지는거였거든)무작정 제주도 가는 배 탓어다시 수산물시장 갈려니 더이상 저울속이고 썩은 물건 좋은물건이다 하면서 양심팔기 싫었어.. 수산시장은 아직도 그래...옷 3벌 신발 하나게스트 하우스 2만원 ... 일주일은 버틸라나피시방 가서 일자리 검색하니 노가다 나오드라.. 일당 10만이라는데그옆에 비계공(아시바)라고 12만원이더라..숙식제공에뭔지도 모르고 갔어 한 2주만 일하고 돈받고 튈라고근데 일당을 한달을 깔아논다는거야말하자면 1일 부터 31까지 일한걸 다음달 31일 날 준다는거지.... 더럽(비계가 뭐냐면 건물 지을때 겉에 서 작업할수있게 쇠파이프 세우고 발판 깔아주는거야)첫날 가서 한일이 아무 보호 장비 없이 30m 파이프 위에서 발판 해체 하는 일이였지등줄기에 땀이 워우... 미끌리면 뒤지는구나.. 별에별 생각이 막 들더라고그래도 2만원 더 주자나 띠발 하면서 일했어발판 잘못 밟아서 떨어져 죽을번한게 4번 정도 있고6m 파이프 5개 어깨에 짊어 지면 어깨가 함몰될정도로 아파 한 75키로 될거야그렇게 두달 지나니깐 돈이 모이더라고그러다 팀장이 파주 디스플레이단지에서 일하자고 하더라고13 준대 그리고 햇빛 안본데.. ㅋ 콜해서 같이 올라갔지근데 통장을 달래.. 일명 불법임급체불이지 내 단가가 월래 25만원인데 나한테는 13주고 나머지를 숙식 제공 기술 알려주는 명목으로 일명 똥띠기를 한다는걸 알게됬지통장에 600들어왔는데 300 띠가면 열받잔아그래서 그때부터 어떻게는 기술공이 되야겟다 결심했어남들은 기술공 될려면 5년은 걸린다고 했는데난 남들 쉴때도 안쉬고 연습하고 머리 쓰고 도면도 보고 정말 노력했어5개월 뒤 15만원 1년 뒤 17만원그다음 그 팀장 밑에서 나와서 보니 여기 저기서 전화가 오는거야.. 같이 일하자고그때 당당하게 25만 달라했지딱 1년 걸렸어 12만원 짜리에서 25만 기술공으로돈도 많이 벌었어 벌땐 600- 700놀때는 필리핀 도 가고 낚지 여행도 가고 외제차도 끌고그래도 노가다 꼬리표는 항상따라다녔지... 여자 만날라해두여기 저기 타지 생활에 아저씨들이랑 술 당구 여자 담배 도박그렇게 5년 결국 통장엔 잔고 5200원35살 이렇게 살면 안되겟더라고진짜 배는 고픈데 일도 안잡히고 통장에 5천원 있어가지고 울면서 서울탁주 2병 사서 원샷 때리고 옥상에서 뛰 내릴려고도 해봤어죽기 너무 억울해서 자살방지 센터에 전화라도 해보자 했는데 30분 기다려도 전화 연결이 안되더라억울해서 못죽겠고 죽더라도 뭐라도 해보고 뒈지자 라는 맘으로 버티고 버텼어 일하며 공부했어 사실 공부도 아니야9급 공무원중에 찾아보면 필기시험 없이 면접만으로 할수있는게 있어나는 집배원(우체부)를 선택했어 면접일 떴길래 일 그만 두고 기다리다근데 뭐지? 원래 면접일이 2월22일 이였는데코로나 신천지 터지면서 면접일정이 추후공개한다고만 올라오고 무소식이야...그래서 급한대로 친구한테 일자리 소개 받고 삼성 반도체 건설현장 안전관리자로 경력 뻥튀기해서 들어갔는데 왠걸... 월급이 550이 넘네..그러다 5월2일 날 9일에 면접보러 오라는거야.. 7주일 시간만 주고그동안 면접 공부했던거 다 까먹고 그리고 여기 대우가 너무 좋은거 같아서공부도 안하고 몇접 전날까지 술먹고 나갔어..부모님한테 진지하게 지금 월 500벌이가 좋으냐 공무원이 좋으냐 물으니철밥통이 최고라고 하더라고면접보는 동안 긴장 1도 안되더라고..면접을 보는 동안 살아가면서 있었던일 그냥 편안하게 말했어자신의 장점을 이야기 해보래서내방에 가면 상장 3개 있다고 했어6년 개근상3년 개근상3년 개근상다른 일에 비해 보수가 적을텐데 부모님 생각은 어떠시냐고 묻길래뭐니 뭐니 해도 철밥통이 최고더라... 했더니박장대소 하면서 웃더라고면접 20년 하는동안 면접관 앞에서 철밥통 얘기하는 사람 처음 봤다고우체국 업무 영어 한자 다 대답 못했어떨어진줄 알았는데 합격 통보 왔드라서류 더 준비해 오라길래 갔더니 그 인사팀장이 그러더라 어떻게 면접을 그렇게 잘봤냐고350명 중에 1등으로 면접 우수자라고 하더라고이제 일주일 뒤면 임용 된다35살 나이에 9급공무원 일단 부모님이 너무 좋아 하시더라고참 돌아 보면 인생 밑바닥부터 꾸역꾸역 살아남았네..그때 만약 옥상에서 뛰어 내렸으면 이런 날이 없었겠지.. 그때가 갑자기 생각나서 오늘 이렇게 글을 한번 써봤어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돈도 좀 모아보고 연애도 하면서 살아가 볼려고노력중이야 아직도 통장 잔고 보면 눈물 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란 마음가짐으로 버텨 볼려고요이 긴글 읽어준 형 누나 동생 들 저좀 응원해주세요 쓴소리도 갠찮아요긴글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4
내 인생 그래도 살아 볼만 하지?
내 인생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
아부지 어머니 누나 동생 5명이서 살았고
그때 아부지 음식 장사가 잘되서 2층집에서 부유하게 잘살다가
아부지가 사업 욕심 부려다 망해서 빛쟁이한테 쫓겨서
국민학교 2학년때 방항때 친구들과 작별인사도 못하고 야반도주해서
다른지역으로 이사를 갔는데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이사가는데 엄마한테 그랬지
왜 자꾸 산으로 올라가? 여기 집있어?
달동네 중턱에 단칸방(내 기억으로 5명 누우면 꽉 찼지)에 들어가는데
펑펑 울었지.. ㅋ 2층집 살다가 단칸방이라니 참 신선한 충격이였어
그래도 어렸으니깐 누나랑 옆에서 자도 그땐 상관없었어 사춘기 전이였으니깐
누나 엄마 아빠 동생 나 이렇게 섞어서 잠잤지 ㅋㅋ
그리고 이사간게 부엌에 방 2개 짜리 옥탑방
비오면 빗소리가 우두두두두두두 여름은 정말 더웠지
참 친구들한테 옥탑방 사는거 들키기 싫어서 초4
때 계단을 항상 네발로 기어서 올라갔어
거기서 1년 살다가 비밀하우스에 살았어 초6까지
밭 한가운데 비닐하우스 였는데 여름에는 쩌죽고 겨울은 겁나 추웠지
수도시설은 없어서 주말에 20리터 말통10개 정도에 약수물 받아왔지
1998년 그때 전화기도 없고 냉장고도 없이 살았어.. 참.. 매일 울었지
그때 학교 갔다가 집에 왔는데 우리집에 어떤 무서운 아저씨들이 대여섯 있는거야
빛쟁이들이 찾아왔어 ㅋ 아부지 어딨냐고.. 그때 막노동 하시고 계셧는데
모른다고 집에 안들어오신다고 거짓말했는데
우리사는 꼬라지 모니 돈도 못받을거 같으니깐
나한테 5000원 주면서 다들 나가더라 그때 한 3시간은 그냥 이불 속에서 펑펑 운거 같아 (사실 2틀에 한번꼴로 맨날 울었지 )
그리고 철도길 옆에 판자집으로 이사 갔어 중2 때
애들집 놀러댕기다가 애들이 이제 우리집 구경할 차례라고 했을때 정말 도망댕겼어 애들이 우리집 올까봐
판자집에 산다고 소문 나는게 정말 싫었거든 2000년때 집전화도 없었어 전화도 없이 살았어
이제 고1 때부터 알바를 하기 시작했지 아무것도 모르고 시급 천원 받고 전단지 돌리다
마트에서 카트 끌고 정리하는 일하면서 시급 2800원 받고 학교 끝나고 일다니고
옷 만드는 지하실에서 씨다(포장하고 실밥따고)일 하면서 3000원
첫 월급 25만원 받았는데 동생이 이제 고등학교 올라오는거야
내가 젤 서러웠던건 그때 신발이 만원짜리 시장 짝퉁신발 이였거든 비오는날이면 양말이 다 젖어도
신발 사달라는 말이 않나왔어 그때 나이때는 교복을 입으니깐 신발과 가방으로 평가 하잔아
내동생도 새학기 새친구들 사귀어야하는데 꿀리는거 싫더라고
그래서 그돈으로 나이키 신발하고 디키즈? 가방 사줬어 뭔가 뿌듯하더라고
대학은 일직이 포기 했고 누나가 미술쪽에 재능이 있는거야 그래서 누나는 대학을 보내야겟다고 해서
열심히 알바해서 대학자금 대줬지 (그때까지도 아부지는 사업에 미련을 못버려서 투자자 구하고 댕기고 돈벌면 그쪽에 투자만 했어. 엄마는 식당일 하면서 우리 학비랑 월세 생활비 쓰고)
그렇게 어렵게 누나 대학 보내고 난 군대를 갔지
전역하고 23살
사촌형이 땡처리 옷장사를 하는데 120준다고 같이 일좀 하자고 해서 따라댕겼는데 1년을 돈을 못받았어 남보다 더 무섭다.ㅋ
그렇게 폰 3달 밀려서 정지 당하고 안되겟다 싶어서 수산물 시장에 일하러 갔지
생선 대가리 치고 물건 실어주고 호객하고 ㅋ 빨간날 .명절.주말
29살 까지 공휴일 쉰적이 없어 그때가 대목이니깐 그때 200만원 받으면 집에 생활비 100만원씩 주고 나머지는 친구들이랑 술먹는데 쓴거 같아 저축계념이 없었어 이대로 일만 하다 20대 끝내긴 싫더라고
그래서 떠났지 호주워킹홀리데이 . 영어 한마디 못하는데 그냥 뱅기 탔어
소공장에서 도축했지 금토일 정말 평생 못논거 2년 동안 다 놀았어
연애도 하고 형 동생 누나 들 사귀고 행복했어
31살 한국 왔는데 잿빛하늘이 너무 싫어서
통장에 20만원 있는거 가지고
(호주에서 돈은 많이 벌었는데 다 노는데 썻어 그때 내 목표는 오로지 즐지는거였거든)
무작정 제주도 가는 배 탓어
다시 수산물시장 갈려니 더이상 저울속이고 썩은 물건 좋은물건이다 하면서 양심팔기 싫었어.. 수산시장은 아직도 그래...
옷 3벌 신발 하나
게스트 하우스 2만원 ... 일주일은 버틸라나
피시방 가서 일자리 검색하니 노가다 나오드라.. 일당 10만이라는데
그옆에 비계공(아시바)라고 12만원이더라..숙식제공에
뭔지도 모르고 갔어 한 2주만 일하고 돈받고 튈라고
근데 일당을 한달을 깔아논다는거야
말하자면 1일 부터 31까지 일한걸 다음달 31일 날 준다는거지.... 더럽
(비계가 뭐냐면 건물 지을때 겉에 서 작업할수있게 쇠파이프 세우고 발판 깔아주는거야)
첫날 가서 한일이 아무 보호 장비 없이 30m 파이프 위에서 발판 해체 하는 일이였지
등줄기에 땀이 워우... 미끌리면 뒤지는구나.. 별에별 생각이 막 들더라고
그래도 2만원 더 주자나 띠발 하면서 일했어
발판 잘못 밟아서 떨어져 죽을번한게 4번 정도 있고
6m 파이프 5개 어깨에 짊어 지면 어깨가 함몰될정도로 아파 한 75키로 될거야
그렇게 두달 지나니깐 돈이 모이더라고
그러다 팀장이 파주 디스플레이단지에서 일하자고 하더라고
13 준대 그리고 햇빛 안본데.. ㅋ 콜해서 같이 올라갔지
근데 통장을 달래.. 일명 불법임급체불이지 내 단가가 월래 25만원인데 나한테는 13주고 나머지를 숙식 제공 기술 알려주는 명목으로 일명 똥띠기를 한다는걸 알게됬지
통장에 600들어왔는데 300 띠가면 열받잔아
그래서 그때부터 어떻게는 기술공이 되야겟다 결심했어
남들은 기술공 될려면 5년은 걸린다고 했는데
난 남들 쉴때도 안쉬고 연습하고 머리 쓰고 도면도 보고 정말 노력했어
5개월 뒤 15만원 1년 뒤 17만원
그다음 그 팀장 밑에서 나와서 보니 여기 저기서 전화가 오는거야.. 같이 일하자고
그때 당당하게 25만 달라했지
딱 1년 걸렸어 12만원 짜리에서 25만 기술공으로
돈도 많이 벌었어 벌땐 600- 700
놀때는 필리핀 도 가고 낚지 여행도 가고 외제차도 끌고
그래도 노가다 꼬리표는 항상따라다녔지... 여자 만날라해두
여기 저기 타지 생활에 아저씨들이랑 술 당구 여자 담배 도박
그렇게 5년 결국 통장엔 잔고 5200원
35살 이렇게 살면 안되겟더라고
진짜 배는 고픈데 일도 안잡히고 통장에 5천원 있어가지고 울면서 서울탁주 2병 사서
원샷 때리고 옥상에서 뛰 내릴려고도 해봤어
죽기 너무 억울해서 자살방지 센터에 전화라도 해보자 했는데 30분 기다려도 전화 연결이 안되더라
억울해서 못죽겠고 죽더라도 뭐라도 해보고 뒈지자 라는 맘으로 버티고 버텼어
일하며 공부했어 사실 공부도 아니야
9급 공무원중에 찾아보면 필기시험 없이 면접만으로 할수있는게 있어
나는 집배원(우체부)를 선택했어 면접일 떴길래 일 그만 두고 기다리다
근데 뭐지? 원래 면접일이 2월22일 이였는데
코로나 신천지 터지면서 면접일정이 추후공개한다고만 올라오고 무소식이야...
그래서 급한대로 친구한테 일자리 소개 받고 삼성 반도체 건설현장 안전관리자로 경력 뻥튀기해서 들어갔는데 왠걸... 월급이 550이 넘네..
그러다 5월2일 날 9일에 면접보러 오라는거야.. 7주일 시간만 주고
그동안 면접 공부했던거 다 까먹고 그리고 여기 대우가 너무 좋은거 같아서
공부도 안하고 몇접 전날까지 술먹고 나갔어..
부모님한테 진지하게 지금 월 500벌이가 좋으냐 공무원이 좋으냐 물으니
철밥통이 최고라고 하더라고
면접보는 동안 긴장 1도 안되더라고..
면접을 보는 동안 살아가면서 있었던일 그냥 편안하게 말했어
자신의 장점을 이야기 해보래서
내방에 가면 상장 3개 있다고 했어
6년 개근상
3년 개근상
3년 개근상
다른 일에 비해 보수가 적을텐데 부모님 생각은 어떠시냐고 묻길래
뭐니 뭐니 해도 철밥통이 최고더라... 했더니
박장대소 하면서 웃더라고
면접 20년 하는동안 면접관 앞에서 철밥통 얘기하는 사람 처음 봤다고
우체국 업무 영어 한자 다 대답 못했어
떨어진줄 알았는데 합격 통보 왔드라
서류 더 준비해 오라길래 갔더니 그 인사팀장이 그러더라 어떻게 면접을 그렇게 잘봤냐고
350명 중에 1등으로 면접 우수자라고 하더라고
이제 일주일 뒤면 임용 된다
35살 나이에 9급공무원 일단 부모님이 너무 좋아 하시더라고
참 돌아 보면 인생 밑바닥부터 꾸역꾸역 살아남았네..
그때 만약 옥상에서 뛰어 내렸으면 이런 날이 없었겠지.. 그때가 갑자기 생각
나서 오늘 이렇게 글을 한번 써봤어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돈도 좀 모아보고 연애도 하면서 살아가 볼려고
노력중이야 아직도 통장 잔고 보면 눈물 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란
마음가짐으로 버텨 볼려고요
이 긴글 읽어준 형 누나 동생 들 저좀 응원해주세요 쓴소리도 갠찮아요
긴글 읽어줘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