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성 들여 지상에 지은 집이 가벼운 비바람에 불려 간다 그 동안 나는 둑 위로 걸어나온 달팽이처럼 마른 자국을 길게 남기며 잠 속을 드나들지 않았던가 잠결에 대문을 바라보니 흙탕물이 벌써 어린 대추나무를 붉은 포대처럼 덮어씌우고 있다 배수구가 없는 집의, 편안한 잠이 굴뚝을 빠져나간다 마당가에 심어 둔 키 작은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 강둑에서 떨어진 조약돌 몇 개 매미가 울던 뒤뜰의 감나무의 그림자가 이제 서서히 물 아래 집들을 짓는다 물 속의 집이 물 위의 집을 간신히 떠받치고 있다
눈앞의 안개가 강을 건너가고 대추나무 햇볕으로 몸을 씻는다 겨드랑이, 등줄기를 씻어 낸다 지붕은 서까래 몇 개만이 성냥개비처럼 말라 있다 기둥을 박지 못한 주춧돌은 부러진 못처럼 대문 밖에 나가 앉아 있다 아궁이에서 물을 퍼내면서 지하 상상의 공간으로 내려간 나는, 그 날 오후 내내 떠내려온 돌멩이들로 물 위의 집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다
물 위의 집
물 위의 집
문정영
내가 정성 들여 지상에 지은 집이
가벼운 비바람에 불려 간다
그 동안 나는 둑 위로 걸어나온 달팽이처럼
마른 자국을 길게 남기며 잠 속을 드나들지 않았던가
잠결에 대문을 바라보니
흙탕물이 벌써 어린 대추나무를
붉은 포대처럼 덮어씌우고 있다
배수구가 없는 집의, 편안한 잠이 굴뚝을 빠져나간다
마당가에 심어 둔 키 작은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
강둑에서 떨어진 조약돌 몇 개
매미가 울던 뒤뜰의 감나무의 그림자가
이제 서서히 물 아래 집들을 짓는다
물 속의 집이 물 위의 집을 간신히 떠받치고 있다
눈앞의 안개가 강을 건너가고
대추나무 햇볕으로 몸을 씻는다
겨드랑이, 등줄기를 씻어 낸다
지붕은 서까래 몇 개만이 성냥개비처럼 말라 있다
기둥을 박지 못한 주춧돌은
부러진 못처럼 대문 밖에 나가 앉아 있다
아궁이에서 물을 퍼내면서
지하 상상의 공간으로 내려간 나는, 그 날 오후 내내
떠내려온 돌멩이들로 물 위의 집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