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의 친구가 되려면, 그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반대로 누구와 절교하려면, 상대방과 절교하려는 타당한 이유도 있어야 한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는 마키아벨리즘, 오직 국가이익만 쫓아야 하는 국제관계에서는 변절이란 없다. 배신이라는 개념도 없다. 상대방이 나에게 이익을 주면 친구고, 불이익을 주면 적이다. 따라서 국제관계는 우정과 배신의 역사가 아니라 오직 국익을 위한 줄다리기와 선명한 애국의 역사일 뿐이다.
1996, 9. 18. 강릉시 안인진리 앞바다에서 바위에 걸린 괴물체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택시를 운전하던 기사는 새벽빛에 드러나는 괴물체가 정체불명의 잠수함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국가기관에 신고했다. 출동한 군인과 경찰은 대간첩작전에 돌입했고 국방부는 경악했다. 당시에 국방부는 원산 송전에 있는 북한해군 잠수함기지에서 상어급 잠수함 두 척이 삼 일전에 출동하여 한 척만 돌아온 것을 알고 있었고, 나머지 한 척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나머지 한 척이 바로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으로 침투하였고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된 채로 발견된 것이었다.
삼일 후, 미국 워싱턴 D.C.에서 두 명의 한국인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한 명은 한국대사관에서 정보수집 담당관으로 있던 한국장교 백동일대령이었으며, 또 한 명은 미해군정보분석관인 로버트김(김채곤)이었다.
한국장교: 미국은 잠수함의 이동경로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로버트김: 미국이라면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알아보겠습니다.
당시에 미연방수사국인 FBI가 은밀하게 설치한 녹음기에 이 대화가 도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미해군정보국에서 일급기밀만 다루던 로버트김은 한국에 침투한 잠수함에 대한 모든 미군정보를 검색한 결과 좌초하기 전까지 잠수함의 이동경로와 동태를 이미 미정보국에서 파악하고 있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 사실을 한국장교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9월 하순에 로버트김은 국가기밀누설죄로 FBI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로버트김은 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후에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체류하던 중, 미항공우주국 NASA에 입사하였던 엘리트였다. 당시에 NASA에서는 외국인유학생이라 하더라도 우수한 과학인재를 모집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입사시켰으며, 얼마 후에 계속적인 근무를 위하여 미국시민권도 취득시켜 주었다. 유학 온 미국에서 4년 만에 엘리트 우주과학자로서 일하게 되었으며 12년 만에 그의 능력이 인정되어 미해군정보국에서 일급군사비밀까지 다루는 컴퓨터 정보분석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유학생 출신에게 이런 자리를 맡긴다는 것은 대단히 파격적이 일이었다. 그 당시에 미해군정보국에서 일하던 외국인은 필리핀인이 딱 한 명만 있었지만, 그도 역시 미국에서 출생한 사람이었으니, 유학생출신인 로버트김의 능력이 어느 정도로 출중했는지 짐작케 한다.
주미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백동일대령과 로버트김은 한미해군정보교류회의에서 만났던 인연으로 이미 알던 사이었다. 당시에 통역을 맡았던 로버트김에게 백동일대령은 C4I라는 것에 대하여 질문했었다. 당시에 미해군에서는 C4I(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and Intelligence, 지휘통제 통신 컴퓨터 및 정보)와 관련된 장비를 팔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에 로버트김은 관계된 분야에 정통한 한국인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고, 얼마 후에 한국에서 온 몇 명의 장교를 쉐라톤호텔에서 만나게 된다. 물론 이때에도 FBI에서는 호텔방에 도청장치를 해 놓고 있었다. 호텔관계자와 연결하여 도청장치가 된 방으로 한국인을 유인한 것이었다.
로버트김은 이 자리에서 C4I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을 보였다. 아직도 덜 완성된 시스템이며, 미국지역에 적합하게 고안된 것을 비싼 돈 들여가며 한국에서 사 보았자 쓰레기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표했다. 오히려 한국에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여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의견도 보였다.
우리는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의 특수한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교포는 두 개의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 특히 시민권을 취득한 교포는 더 그렇다. 자신의 생활과 미래를 펼치는 외국에 충성해야 하며, 핏줄이 연결된 조국에도 충성해야 한다. 조국과 자신이 거주하는 나라가 동맹관계에 있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적대국으로 바뀐다면 비극적인 입장에 처하게 된다. 선명하게 대립되는 두 개의 위치, 이쪽에서는 애국자지만 저쪽에서는 매국노라는 국경지대에서 시달리게 되며, 이쪽이나 저쪽에서 모두 보내는 의혹적인 눈초리에 위축되기 마련이다.
로버트김은 가장 현명한 처신으로 조국에 이익을 주었으며, 미국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역적으로 몰렸고 조국인 한국에서는 외면당했다. 50여 건의 정보유출은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이미 알려진 정보였으며, 미국의 안보에도 하등의 영향이 없었던 것이었다.
영국과 호주,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미국에서 일등급 우방국으로서 우리나라와는 별다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을 혈맹관계라고 칭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등을 돌릴 수도 있는 회색분자로 분류하고 있었다. 한국을 북한과 별다르게 취급하지 않았던 미국의 시선에 로버트김은 의혹을 느꼈고, 우리도 다른 우방국처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당당한 조국애가 불행을 불러왔던 것이다.
스파이라고 본다면 “삼류 스파이”라고 모두 말했다.
평범한 우편물로 보내진 서류봉투, 도청될 지도 모르는 집무실이나 집에서 한 평범한 전화통화, 모두의 시선에 띄는 호텔에서의 만남, 이것을 보고 누가 스파이간의 접촉이라고 볼 수는 있는가,
미국의 저명한 기밀분류전문가들도 로버트김이 넘긴 정보가 미국으로서는 중요하지 않거나 기밀도 아니며, 대부분 우호적이며 협조적인 공식채널을 통하여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재판과정에서 꼭 필요한 미해군당국의 “피해평가보고서”조차도 재판정에 제출되지 않았다. 국가의 일급비밀을 다루던 로버트김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만한 정보를 일체 제공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이 거주하는 미국땅에 충성했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겨우 자신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던 초라한 한국정보수집능력을 보고 조국에 충성했다.
한미군사동맹관계에 비추어 꼭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관행에 충실하여, 한반도와 그 주변에 관한 정보만 넘겼으며 백동일대령은 이 정보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정보조차도 한국은 몰랐던 일도 있었으니, 얼마나 미국이 한국에 대하여만 차별하여 정보를 제공했는지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미국이 한미동맹관계에 비추어보아서 우리에게 꼭 제공해야 할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는 동맹관계에서 지켜야 할 의무위반으로서 우리는 판단해도 좋을 문제가 아닌가 한다.
로버트김은 간첩음모죄로 징역 9년과 3년의 보호관찰을 선고받고 현재 펜실베니아 알렌우드 연방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로버트김의 부친인 김상영 옹은 며칠 전에 녹음된 아들의 음성을 들으며 작고했다. 한국은행 부총재로 재직했으며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상영 옹은 장남의 사면을 위하여 미국과 한국을 오가다가 목소리 하나만으로 아들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로버트김은 5개월 후에 석방된다. 그러나 3년간의 보호관찰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귀국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우리는...... 홍익인간의 염원을 가지고 건국된 고조선의 후예들은 동족이 고단한 교포라는 위치에서, 또한 조국에 충성한 로버트김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골리앗의 거구 앞에서 몸부림치는 순간에도 우리는 한보비리사건에 휘말렸고 김영삼정부의 비리에 전전긍긍했다. IMF에 사분오열되었고 구조조정에 몸서리쳤다. 그래서 로버트김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여유가 그만큼 없다고 스스로 자위해 보기로 하자. 또한 국익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냉엄한 미국의 행동에 무력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사면을 청했지만 미국은 모른 체 했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의구심은 든다. 정말로 우리가 그만큼 어려웠던가?
골프관광과 해외관광으로 공항은 밀려 터지는데, 조국을 위하여 앞장섰던 로버트김에게 어려웠기 때문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제 신문에는 필리핀에서 무뢰한으로 횡행하는 한국골퍼에 관한 기사가 났다. 오죽하면 술집에서 칼 맞아 죽는 일까지 생기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필리핀 매스컴에서는 “한국인의 침략”이라는 극한의 울분을 보였다.
우리는...... 관광이라면 어불성설이겠지만 로버트김이 수감된 교도소를 관광코스로 개발하여 그를 위로해야 했다. 그가 갇힌 높은 교도소 담벼락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어야 했다. 저 안에는 의로운 한국인이 우리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고 자식에게 말해야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들을 잊으면 안 된다. 지구 구석구석 어디에 거주하는 교포라고 해도 우리 민족이 아닌 사람은 없으며, 죽는 순간에도 조국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로버트김과 필리핀관광
로버트김과 필리핀 관광
내가 누구의 친구가 되려면, 그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반대로 누구와 절교하려면, 상대방과 절교하려는 타당한 이유도 있어야 한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는 마키아벨리즘, 오직 국가이익만 쫓아야 하는 국제관계에서는 변절이란 없다. 배신이라는 개념도 없다. 상대방이 나에게 이익을 주면 친구고, 불이익을 주면 적이다. 따라서 국제관계는 우정과 배신의 역사가 아니라 오직 국익을 위한 줄다리기와 선명한 애국의 역사일 뿐이다.
1996, 9. 18. 강릉시 안인진리 앞바다에서 바위에 걸린 괴물체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택시를 운전하던 기사는 새벽빛에 드러나는 괴물체가 정체불명의 잠수함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국가기관에 신고했다. 출동한 군인과 경찰은 대간첩작전에 돌입했고 국방부는 경악했다. 당시에 국방부는 원산 송전에 있는 북한해군 잠수함기지에서 상어급 잠수함 두 척이 삼 일전에 출동하여 한 척만 돌아온 것을 알고 있었고, 나머지 한 척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나머지 한 척이 바로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으로 침투하였고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된 채로 발견된 것이었다.
삼일 후, 미국 워싱턴 D.C.에서 두 명의 한국인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한 명은 한국대사관에서 정보수집 담당관으로 있던 한국장교 백동일대령이었으며, 또 한 명은 미해군정보분석관인 로버트김(김채곤)이었다.
한국장교: 미국은 잠수함의 이동경로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로버트김: 미국이라면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알아보겠습니다.
당시에 미연방수사국인 FBI가 은밀하게 설치한 녹음기에 이 대화가 도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미해군정보국에서 일급기밀만 다루던 로버트김은 한국에 침투한 잠수함에 대한 모든 미군정보를 검색한 결과 좌초하기 전까지 잠수함의 이동경로와 동태를 이미 미정보국에서 파악하고 있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 사실을 한국장교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9월 하순에 로버트김은 국가기밀누설죄로 FBI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로버트김은 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후에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체류하던 중, 미항공우주국 NASA에 입사하였던 엘리트였다. 당시에 NASA에서는 외국인유학생이라 하더라도 우수한 과학인재를 모집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입사시켰으며, 얼마 후에 계속적인 근무를 위하여 미국시민권도 취득시켜 주었다. 유학 온 미국에서 4년 만에 엘리트 우주과학자로서 일하게 되었으며 12년 만에 그의 능력이 인정되어 미해군정보국에서 일급군사비밀까지 다루는 컴퓨터 정보분석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유학생 출신에게 이런 자리를 맡긴다는 것은 대단히 파격적이 일이었다. 그 당시에 미해군정보국에서 일하던 외국인은 필리핀인이 딱 한 명만 있었지만, 그도 역시 미국에서 출생한 사람이었으니, 유학생출신인 로버트김의 능력이 어느 정도로 출중했는지 짐작케 한다.
주미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백동일대령과 로버트김은 한미해군정보교류회의에서 만났던 인연으로 이미 알던 사이었다. 당시에 통역을 맡았던 로버트김에게 백동일대령은 C4I라는 것에 대하여 질문했었다. 당시에 미해군에서는 C4I(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and Intelligence, 지휘통제 통신 컴퓨터 및 정보)와 관련된 장비를 팔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에 로버트김은 관계된 분야에 정통한 한국인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고, 얼마 후에 한국에서 온 몇 명의 장교를 쉐라톤호텔에서 만나게 된다. 물론 이때에도 FBI에서는 호텔방에 도청장치를 해 놓고 있었다. 호텔관계자와 연결하여 도청장치가 된 방으로 한국인을 유인한 것이었다.
로버트김은 이 자리에서 C4I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을 보였다. 아직도 덜 완성된 시스템이며, 미국지역에 적합하게 고안된 것을 비싼 돈 들여가며 한국에서 사 보았자 쓰레기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표했다. 오히려 한국에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여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의견도 보였다.
우리는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의 특수한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교포는 두 개의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 특히 시민권을 취득한 교포는 더 그렇다. 자신의 생활과 미래를 펼치는 외국에 충성해야 하며, 핏줄이 연결된 조국에도 충성해야 한다. 조국과 자신이 거주하는 나라가 동맹관계에 있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적대국으로 바뀐다면 비극적인 입장에 처하게 된다. 선명하게 대립되는 두 개의 위치, 이쪽에서는 애국자지만 저쪽에서는 매국노라는 국경지대에서 시달리게 되며, 이쪽이나 저쪽에서 모두 보내는 의혹적인 눈초리에 위축되기 마련이다.
로버트김은 가장 현명한 처신으로 조국에 이익을 주었으며, 미국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역적으로 몰렸고 조국인 한국에서는 외면당했다. 50여 건의 정보유출은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이미 알려진 정보였으며, 미국의 안보에도 하등의 영향이 없었던 것이었다.
영국과 호주,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미국에서 일등급 우방국으로서 우리나라와는 별다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을 혈맹관계라고 칭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등을 돌릴 수도 있는 회색분자로 분류하고 있었다. 한국을 북한과 별다르게 취급하지 않았던 미국의 시선에 로버트김은 의혹을 느꼈고, 우리도 다른 우방국처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당당한 조국애가 불행을 불러왔던 것이다.
스파이라고 본다면 “삼류 스파이”라고 모두 말했다.
평범한 우편물로 보내진 서류봉투, 도청될 지도 모르는 집무실이나 집에서 한 평범한 전화통화, 모두의 시선에 띄는 호텔에서의 만남, 이것을 보고 누가 스파이간의 접촉이라고 볼 수는 있는가,
미국의 저명한 기밀분류전문가들도 로버트김이 넘긴 정보가 미국으로서는 중요하지 않거나 기밀도 아니며, 대부분 우호적이며 협조적인 공식채널을 통하여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재판과정에서 꼭 필요한 미해군당국의 “피해평가보고서”조차도 재판정에 제출되지 않았다. 국가의 일급비밀을 다루던 로버트김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만한 정보를 일체 제공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이 거주하는 미국땅에 충성했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겨우 자신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던 초라한 한국정보수집능력을 보고 조국에 충성했다.
한미군사동맹관계에 비추어 꼭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관행에 충실하여, 한반도와 그 주변에 관한 정보만 넘겼으며 백동일대령은 이 정보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정보조차도 한국은 몰랐던 일도 있었으니, 얼마나 미국이 한국에 대하여만 차별하여 정보를 제공했는지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미국이 한미동맹관계에 비추어보아서 우리에게 꼭 제공해야 할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는 동맹관계에서 지켜야 할 의무위반으로서 우리는 판단해도 좋을 문제가 아닌가 한다.
로버트김은 간첩음모죄로 징역 9년과 3년의 보호관찰을 선고받고 현재 펜실베니아 알렌우드 연방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로버트김의 부친인 김상영 옹은 며칠 전에 녹음된 아들의 음성을 들으며 작고했다. 한국은행 부총재로 재직했으며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상영 옹은 장남의 사면을 위하여 미국과 한국을 오가다가 목소리 하나만으로 아들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로버트김은 5개월 후에 석방된다. 그러나 3년간의 보호관찰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귀국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우리는...... 홍익인간의 염원을 가지고 건국된 고조선의 후예들은 동족이 고단한 교포라는 위치에서, 또한 조국에 충성한 로버트김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골리앗의 거구 앞에서 몸부림치는 순간에도 우리는 한보비리사건에 휘말렸고 김영삼정부의 비리에 전전긍긍했다. IMF에 사분오열되었고 구조조정에 몸서리쳤다. 그래서 로버트김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여유가 그만큼 없다고 스스로 자위해 보기로 하자. 또한 국익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냉엄한 미국의 행동에 무력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사면을 청했지만 미국은 모른 체 했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의구심은 든다. 정말로 우리가 그만큼 어려웠던가?
골프관광과 해외관광으로 공항은 밀려 터지는데, 조국을 위하여 앞장섰던 로버트김에게 어려웠기 때문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제 신문에는 필리핀에서 무뢰한으로 횡행하는 한국골퍼에 관한 기사가 났다. 오죽하면 술집에서 칼 맞아 죽는 일까지 생기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필리핀 매스컴에서는 “한국인의 침략”이라는 극한의 울분을 보였다.
우리는...... 관광이라면 어불성설이겠지만 로버트김이 수감된 교도소를 관광코스로 개발하여 그를 위로해야 했다. 그가 갇힌 높은 교도소 담벼락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어야 했다. 저 안에는 의로운 한국인이 우리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고 자식에게 말해야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들을 잊으면 안 된다. 지구 구석구석 어디에 거주하는 교포라고 해도 우리 민족이 아닌 사람은 없으며, 죽는 순간에도 조국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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