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지역 방송국 PD가 자살했다. 그는 14년 동안 비정규 프리랜서로 일했으며 정규직보다 더 강도 높은 업무량을 소화했다. 그러나 그가 인건비 증액, 인권보강 등 처우개선을 요구하자, 그 방송국은 그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했다. 이에 부당해고라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고, 1심에서 패소한 뒤, 마지막으로 기댄 법원조차 외면했다. 결국 그는 ‘억울해 미치겠다’ 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기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접하자 전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7년 전 그 방송국의 방송작가로 1년 정도 일하다가 그 회사의 부조리에 질려 나왔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위에 상사가 위선 엄청 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질 나르시시스트였기 때문에 나왔다고 보는 게 낫겠다. 처음 입사할 때는 좋았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무조건 ‘작가’를 지향해서 그 방송사에서 ‘방송작가’로 말로 다 표현 못 할 정도의 기쁨을 느끼며 일했다. 힘들기도 했다. 외곬이라 사람 상대하기 힘든 나로서는 기사를 접하고 지역 이슈 관계자를 섭외하는 게 장난 아니게 어려웠다. 게다가 평소에는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하는데, 주말 방송 편집하는 수, 목요일에는 무조건 밤 11시 넘게 있다가 퇴근해야 했다. 심지어 형식상 이 일도 프리랜서 직이라 4대 보험은 없었고, 월급도 최저수준에 밑도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초반에는 행복했다. 내 입장에서는 꿈을 이룬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제일 최악인 건 총괄하고 있는 정규직 PD였다. 지금껏 여기 나와서 다른 곳 이직도 몇 번 하면서 별별 더러운 인간들을 다 만나봤지만 이보다 더러운 인간은 없다고 자부한다. 이 인간은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로, 본인이 제일 잘난 줄 착각하며 남의 행동에 지적질 하길 좋아하는 인간이다. 곁에서 김xx라고 옆에서 X꼬 빨기 좋아하는 인간과 지 같은 부류의 몇몇 간부들, 그리고 지가 수준 높다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듣보잡 기관들의 위선적인 인간들 빼고 주변 사람들 다 싫어했는데, 그중에서 내가 담당했던 프로그램 진행자와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다. 틈만 나면 아침에 회의랍치고 내 앞에서 그 진행자 흉보기 급급했고, 나보다 더 많이 방송 많이 한 사람인데, 내가 쥐고 흔들어야 된다고 나와 그 진행자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이 방송하면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사람은 그 인간이 아니라 그 진행자라 친해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나까지 폄하하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중 꼽을 수 있는 게 ‘나’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거다. 아침에 급히 어디 갈 때 있다고 내가 꼭 필요하다고 데려갔는데, 가고 보니 자기 부인이 일하고 있는 한 식당에서 설거지 시키고 커피 뽑는 일 시키는 것이다. 내가 방송작가로 취직했지, 식당 잡일하려고 취직한 게 아닌데도 말이다. 또, 주말에 급한 일 있다고 불러내고 근처 타 도시까지 이동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자기 부인이 일하는 식당에 놓을 슬러시 기계 들을 인력 필요해서 나를 쓴 거였다. 나중에 이게 문제가 돼서 어떻게든 그를 저지하려는 간부에 의해 징계를 받을 위기에 몰리니, 당시 도중에 나한테 순대국밥 사준 거 가지고 충분히 보상했다며 말 같지도 않은 말 해서 모면하려고도 했다. 이렇듯 나를 비롯해 타 사람들한테는 개차반도 못할 짓을 하지만 자기 가족한테는 좋은 가장 노릇하는 데 지극정성이다. 협찬으로 온 문화상품권 다 빼돌려서 아들 참고서 살 돈으로 주고, 제작비 빼돌려서 VIPS에 데려가 오봇한 저녁을 함께했다. 주말에 행사가 있어 나와 타 작가들 대본 준비하고 현장 점검하고 일정 제대로 돌아가는지 바삐 움직이는 와중에, 자기는 솔선수범해 감독하는 게 아니라 자기 마누라 손에 물 덜 뭍히게 하려고 설거지 해주는 게 더 급한 사람이다. 이 인간이 이렇게 날 괴롭혀 일은 더 힘들어졌지만 어떻게든 버텼다. 왜냐하면 이 일을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자부심이 강했고, 언젠가 관두더라도 최소 2년 정도는 해야 다른 곳에서 인정받기 때문이었다. 또, 내가 맡은 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보다 인기도 높았고 계속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때가 되면 내 이후 희생자 작가한테 인수인계를 하고 이 미친 놈이 지배하는 지옥에서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 퇴사 계기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이 미친 놈이 결국은 프로그램을 폐지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방송 프로그램은 구식이었다. 그러나 신식으로 바꾸게 되고 그 와중에 방송도 같이 송출하느라 방송사고가 잦았다. 당연히 내 담당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고, 이 때문에 수도권에 있는 방송징계위원회에 그 인간이 출두했는데, 변호하기는커녕, 이를 빌미로 위원회 병신들과 지 부류의 인간들과 합심해서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더 최악인 건 앞서 언급한 김XX라는, 지 X꼬 빨던 놈을 후속 프로그램 진행자로 낙점했다는 거였다.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나와 진행자는 울었지만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두며 마지막 프로그램을 마쳤다. 이후 난 그 후속 18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게 될 예정이라고 들었지만, 그런 놈이 X꼬를 빨아 연명하는 놈이라 제정신인 놈일 리가 있으랴, 예상한 대로 말 같지도 않은 행패를 부려 괴롭히자 어차피 정규직 근무도 아니라 문자로 해고 통보를 하고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 후 7년이 지나고 다른 분야에 몸을 담으며 활동했지만, 가끔씩 그 때 일이 생각나 분함에 이를 갈곤 했다. 당시 뭣도 모를 사회초년생이라 그딴 갑질을 했다는 증거들도 모으지 못해 뭐 어찌할 바가 없다. 결국, 새로운 길을 가면서 다 잊으려고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되질 않는다. 아직도 그 방송국은 ‘자신들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방송국’이라는 개소리를 문구로 걸고 버젓이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 방송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PD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에 온 신경이 집중됐다. 그 방송사에서 썩은 그것이 그동안 모였다가 결국은 터져버린 것이다, 그 썩은 PD 같은 것들이 졸렬한 방식으로 숨 쉬고 먹고 싸재낀 그것들이 말이다. 정부가 이 코로나 사태에서 적폐 청산이라는 과제를 계속 이어가고 있고, 그 PD의 유족들과 관계자들이 모여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정의를 수호한다는 법원이 결국 적폐 방송사 손을 들어주어 그 PD의 14년이라는 수고를 말짱도로묵으로 만들어 결국 자살로 끝내게 만든 것도 그렇다. 끼리끼리 논다고 그 방송국이 속한 이 지역 언론사들은 어쩔 때에는 거창한 문구로 지역 발전 선봉을 자처하지만 이런 사태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해 언론으로써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아직도 이 사회는 개X 같은 부조리 사회로 보인다. 분명 자살한 그 PD나 나처럼 피해 받은 인간들 음지에 많을 거라 생각한다. 이 글이 당장 사회를 바꾸지는 않겠지만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방송국 프리랜서 PD 자살, 난 그 방송국 방송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