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개 징글징글

ㅇㅇ2020.06.14
조회793
다단계랑 인연없는 인생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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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단계를 하다가 탈출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인생에 끊임없이 다단계가 출몰하는 사람이에요

여기서 조용히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냥 신세타령 하고 싶어서 글을 써 봅니다.


제 인생 첫 다단계는 어릴 때 다니던 동네 소아과 원장이었어요
정말 상냥하시고 잘 봐주시고 아기 때 다니다가 중고등학교 학생이 되어서도 다니는 그런 병원이요
어려서부터 심장, 기관지가 약하고 빈혈, 천식도 있고 해서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거든요

원장님이 어느날 이렇게 약한 애는 비타민이라도 좀 먹여 보래요
엄마가 뭐가 좋은지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좀 비싸긴 한데 효과가 좋은 비타민이 있대요
엄마는 원장님이 추천하시니까 믿고 그걸 저한테 사주셨어요.
20년도 전 일인데 그 때 거의 십만원 가까이 했던 거 같아요.
암웨이는 그 때부터 비타민을 팔았어요.

그 시절엔 의사도 주화입마에 걸리면 
귀여워하면서 갈 때마다 사탕을 주던 꼬마에게
암웨이 제품을 현금받고 팔았어요

제가 그 비싼 비타민을 두 통쯤 먹었을 때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병원이 사라졌어요
원장님은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엄마는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이모네 놀러가셨다가 그 비타민을 보셨어요.
이모가 엄마한테 좋은 거 잘 사먹였다며 치약과 세제와 그 외 기타 등등을 주셨어요.
다행히 엄마가 더 깊게 발을 담그기 전에 이모부가 집을 한 번 뒤집어 엎으셨던 것 같아요.

체중미달에 허약하던 저는 그동안 먹은 영양제와 녹용 등 한약의 악영향인지
중학생이 되어서부터 부쩍부쩍 살이 찌기 시작했어요.
그 때는 비만은 아니고 과체중 정도.
하지만 원래 엄마는 애가 마르면 말라서 걱정하고
살이 찌면 살이 쪄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잘못 보낼까 걱정하시는 분 아니겠어요?

어느 날 엄마가 살 빠지는 영양 쉐이크라며, 이거 아주 맛있다며
색깔도 괴랄하고 맛도 괴랄한 음료수를 먹이기 시작하셨어요
허벌라이프의 마수였어요.
저는 먹고 토할 것 같다고, 이거 먹어도 살 안 빠질거 같다고
차라리 운동장을 한 바퀴 뛰고 오겠다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어요.
이모부가 장기출장이 잦아지신 사이에 이모가 이번엔 허벌라이프를 시작하신 거였어요.
이모네 집엔 아주 잘생기고 똑똑하고 돈도 잘벌지만 살이 쪄서 고민인 오빠가 있었는데
오빠가 그걸 먹고 효과를 봤던 거에요...
사실 저는 오빠가 운동을 열심히 해서 날씬해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해요.

저는 그냥 과체중인 상태로 고등학생이 되었어요.
엄마가 싸주시는 허벌쉐이크를 맨날 변기에다 버렸거든요
엄마는 나중에 제가 허벌라이프 해서 돈 많이 날렸어? 했을 때 그래도 니들 학비(?)는 저걸로 댔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무상교육인 공립중학교를 나왔는데 말이지요.

이모가 우리 집에서 가슴을 치면서 우시던 기억이 있어서 공립 중학생도 학비가 있었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어요. 아무튼 빚쟁이에게 쫓기진 않았으니까요.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 발효 열풍, 효모, 효소 열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호밀빵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렸어요.

제가 통신을 거쳐 인터넷에서 친구를 만들며 밤새 채팅을 하던 시절에 생긴 건 사과주스처럼 생겨서 썩은 맥주 맛이 나는 건강음료가 베란다에 박스째로 쌓이기 시작했어요.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끔찍한 맛이었어요.

독일에서 수입하는 호밀 효모 건강음료... 부르트 뭐였는데 이름도 기억이 안나요.
이번엔 고모가 사업에 뛰어드신 것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그냥 엄마가 부업을 하시나보다 하던 저는 슬슬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이게 뭐에 좋고 어디에 좋고 미국에서 독일에서 꼭 챙겨먹고 어쩌고 하는데
그렇게 좋은 물건이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팔아야 하는 거 아니야?란 생각을 했거든요.

저는 독일에 유학을 가서 있던 지인분에게 메일을 보내서
정말 이 음료가 그렇게 핀란드의 자일리톨처럼 모든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제품인지 물었어요.

아니래요. 처음 듣는대요.
저는 엄마에게 잔소리만 듣다가 이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제가 그랬듯 엄마는 제 말을 잘 들어 주시지 않으셨어요.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크게 아프셔서 이번에도 우리 집은 다단계의 늪에 발을 담그다 말았어요.

저는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모았어요.
동아리에서 제일 친하게 지내던 동기가 요새 고생 많다며 차 한잔 사겠대요.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데 걔가 갑자기 자기가 저 만난 다음에 만날 사람이 있대요.
지금 헤어지기 아쉬운데 그 언니 사람 참 괜찮고 재밌다며 같이 보면 안되겠냐고 해요.

.다단계는 아니었어요. 도쟁이였어요.
살면서 엄마랑 남자친구에게만 모질게 굴어봤던 저는 
실전으로 전날 탄 알바비 30만원을 제사비라고 뜯기고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어요.
세상은 정말 너무나 무섭고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모르는 그런 곳이란 걸 알았죠.
가르침이 너무 고마워서 그X은 동아리에서 내쫓아 버렸어요.

그리고 그 때 걔가 마수를 뻗치고 있을 때 제가 구해준 후배는
먼 훗날 제 앞에서 암웨이 약통을 꺼내 요새 밥 대신 비타민을 먹는다며 좋은 곳에 저를 데려가고 싶어했어요.
잘 지내니?


문사철 출신으로 정규직도 못 되고 늘 계약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았으며
수학과 과학 선택과목 합산점수가 문학 점수만도 못한 삶을 살았지만
천만 다행으로 주위에 이성적인 친구가 많아서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어요.
던전오브다단계와 유사과학탐구영역은 지금도 제 바이블이에요.

그런데 정말 끊임없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꼬여요.
어지간하면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기고, 싫은 소리 잘 못하고, 이젠 고도비만이고,
저는 눈도 처지고 제가 봐도 정말 순둥순둥 만만하게 생겼거든요. 

그리고 사실 비만 빼고 제 성격과 외모는 정말 엄마를 많이 닮았어요.
엄마를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꼬드기려고 시도를 했다는 소리에요.

엄마에게 몇 년에 걸쳐
엄마는 환자니까 아무 약이나 먹으면 안 돼, 
병원에서 처방하고 약국에서 판매하지 않는 약은 약이 아니야.
비타민, 영양제라고 파는 것들의 성분이 더 위험한 경우가 많아! 라고
세뇌하고 세뇌하고 세뇌해서

환자한테 이게 좋대, 라고 누가 꺼내들면
아냐 그런 거 함부로 먹으면 우리 딸한테 혼나, 라고 엄마가 말을 하시게 되었을 때

저는 한국에 화장품도 다단계로 파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갑자기 사촌언니가! 메리케이를! 시작했더라고요
제가 대학생도 아니니 언니가 주민번호를 털어갔어요

빡세게 돈 벌어 에스티로더 갈색병도 질러보고 했었는데
제 화장대에 제가 산 화장품은 없고 엄마가 사다두는 화장품이 자꾸만 쌓여갔어요.

그런데 어느샌가 제 동생이 다 커서 이제 화장품 성분을 눈에 불을 켜고 읽더라구요.
화해 어플 나오기 전에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이었던가, 그 책을 감명깊게 읽었대요.
그리고 제가 약과 영양제로 엄마를 볶아친 만큼 화장품으로 엄마를 볶아치기 시작했어요.

그 때만큼 동생이 뿌듯하게 느껴졌던건 첫월급타서 저한테도 선물사준 날과 동생이 결혼하던 날 정도?

사촌언니는 드레스 입고 파티도 가고 크루즈도 타고 해외여행도 다녔는데
제가 화장을 안해도 되고 편하게 입고 다녀도 되는 일을 하는 동안 파산신청을 했더라고요.

남편이랑 연애할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둘 다 다단계를 할 사람은 아니란 걸 알고 서로 안심했었어요.
남편이 다단계를 극혐하는 건 좋은데 보험까지 극혐을 하더라고요.
실손보험 하나 가입하게 설득하는 데 2년 걸렸어요
실손보험 암보험은 그래도 하나씩은 있어야 좋지 않나요.

아무튼 저는 결혼하고 보험대리점에서 사무직 알바를 시작했는데
남편 실손보험도 대리점에서 안하고 직접 전화로 가입하게 하는 바람에 뒤에서 독한 X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보험하시는 분들은 다단계를 겸업하는 분들과 다단계는 극혐하는 분으로 나뉘시더라구요.
다행히 상사분이 제게 보험은 팔려고 하실지언정 다단계는 권유하지 않는 분이라서
적당히 조심하며 살고 있었는데 사촌오빠가 알바를 해달래요.
...허벌라이프를 먹이던 그 오빠에요. 한동안 보험 권유만 피하며 살아서 촉이 무뎌졌어요.

요새 공부하는 게 있는데 공개강의를 같이 듣고 옆에서 내용 정리를 좀 해달라는 거에요.
제가 원래 성적은 안좋아도 필기는 잘 했거든요.
어차피 알바이고 시간도 여유가 있고, 겸업금지도 아니라서 좋다고 오케이를 했어요.

강의라길래 오빠네 대학 평생교육원 같은 데서 하나? 했는데 영등포로 오래요.
밥을 사준대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같이 수업듣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요.

쎄함은 science라는 말은 정말 명언이에요.
낡은 건물 입구에서부터 아 내가 속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막 서럽더라구요.
그런데 오빠가 아니래요. 진짜 그런 거 아니래요. 너 싫어하는 거 안대요.
자기는 강의 들으면서 조모임? 해야 해서 정리를 좀 하고 싶어서 부른거라고
A4 한 장당 5만원씩 주겠대요. 그냥 뭐 용돈도 주고 싶고 그런거라고.
그냥 딱 강의만 듣고 바로 가라, 정리해서 주면 나중에 입금해준다 그러더라구요.

그렇게 유니시티에서 개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정리를 했어요.
어차피 할 거면 오빠가 빚은 안 내고, 돈은 좀 벌면 좋겠다 라고 간절히 바랬어요.

강의 끝나고 너무 붐비고 정신없는데 잠깐 같은 조 사람들이랑 인사시켜주더니 가라고 하더라구요.
두 장 정리해서 보내주고 10만원 받았어요. 그리고 한 번 더 갔어요. 
그 날은 전에 인사도 했는데 마무리만 같이 하자고, 끝나고 밥먹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뭐 돌아가면서 오늘 강의 어땠고 제 목표는 뭐고 하는 거 들어주고 화이팅콜 같이 하고...
어차피 같은 개소리 반복인데 내용 늘려쓰기도 뭐하고 해서 1장 정리 깔끔하게 해주고 5만원 받았어요.
다음에는 뭐 더 중요한 사람이 온다 하면서 이번 강의가 제일 중요하다고, 한 번만 더 와달래요.
OK하고 출근을 했는데 상사분이 요새 알바는 잘 하고 있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데요, 라고 하니까 막 웃으시는 거에요.
사람이 왜 이렇게 순진하냐고, 그것도 수법이래요.
아마 세번째로 가면 조모임 하는 사람들이 다 둘러치고, 특별 강의 한다고 직급 높은 사람이 1:1 마크를 할거고...

머리에서 뎅 소리가 울리더라구요. 와 나는 내가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어릴 때부터 사촌오빠한테 귀여움 많이 받고, 용돈도 가끔 받고,
명절 때 아니더라도 가끔 오빠가 밥도 사주고 그랬거든요.
친남매처럼 막 그러진 않았어도 내가 그동안 학을 뗀 거 아니까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다단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실 막 그렇게 악의에 가득차서 내 노예가 되어 수당을 바쳐라! 이러는 건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이게 좋은 거고, 이 좋은 걸 같이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긴 개뿔,

솔직히 사람이 한 번 당해봤으면
그리고 또 주위에 가족들 친척들 그걸로 난리나는 거 계속 봤으면
이게 그거랑 같은 건지, 좋은 건지 아닌 건지, 꼭 자기가 다시 해봐야 알아요? 머리 어디가 막혀있나?

엄마는 좀 속상해하시는 거 같지만 이제는 안보고 살래요 그랬어요.

그 때 엄마한테도 뭐가 좋네
이게 뭐 무슨 축구 구단에 들어가고
가수 누구가 하고 어쩌고 저쩌고.
진짜 빡쳐가지고 막 인터넷 뒤지다가 이 카페 알고 엄마한테 설명드렸거든요.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는 이제 이런 걸로 속 좀 그만 썩겠지, 하고 백수가 된 고로
알바 자리 어디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고 있는데 일거리가 없네요
요새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머리가 좀 전보다 휑해진 거 같고 그랬거든요.

엄마가 갑자기 엄청 좋은 탈모샴푸가 있다고, 생일 선물을 그걸로 해주시겠다는 거에요.
인터넷에 리뷰 찾아보라고, 엄마도 사서 쓰고 있는데 좋은 거 같다고.

또 촉이 서길래 그냥 여기 들어와서 바로 찾았어요. 인셀덤이네요.

이번엔 친척이 아니라 어머니 친구분이시네요.
코로나 때문에 친정 방문이 뜸했는데, 그 사이에 화장품도 다 그걸로 바꾸셨대요.
엄마가 파는 게 아니고 그냥 회원 가입을 하면 회원가로 싸게 사는 거라며,
어쩜 그렇게 변화도 없는 레퍼토리에 계속 넘어가시는 지 모르겠어요

주위 친구들은 이제 슬슬 부모님 늙어가시는데 싸워봤자 속상하시기밖에 더 하냐며,
적당히 소일거리 하시는 셈 치자고 넘어가는 애들도 있더라구요.

그러다 터지는 게 리치웨이 코로나 사태 이런 거잖아요...

바퀴벌레도 이것보다 끔찍하고 지긋지긋하진 않을 거 같아요.

엄마가 아직도 일을 하시느라 뭐 활동을 하시거나 회원을 모으거나 하시진 않을 거 같은데,
그래도 그런 뻔뻔한 족속들이 만드는 제품을 힘들게 번 돈으로 사주시는 게 너무 싫어요.

피부에 바르시는 것도 걱정되고


언제까지 이런 쳇바퀴를 계속 돌려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속상한 마음은 이렇게 풀고,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생각해야죠.

이보다 더 무한한 노력을 계속하시며 정보를 주시는 카페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다단계 정말 싫어요.
노리고 하는 나쁜 놈들도 싫지만
순진하게 좋은 거 나누자는 분들도 이젠 싫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