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몸을 풀어 노랗게 팬 나락의 들녘과 여물어 터지는 알밤과 잘 익은 사과를 낳았다 들길에 낭창(朗暢)한 풀벌레들의 울음도 낳았다 산야에 지핀 불! 불! 다 연소하고 그을음 시커멓게 나무 그림자 우는 숲으로 산고의 아픈 몸이 신음한다 쌓이는 낙엽 속에서 알, 생명의 태동을 멈추고 깜박 잠 속으로 빠진다 대지의 더운 숨 속에서 씨앗, 가까운 전생을 잊어버린다 짐승들의 긴 울음소리 잠의 허방 속으로 잠기면 사위 그지없이 조용해 뿌리에서 나뭇가지 끝 흙에서 하늘로 오르는 나무 속, 감춰진 길이 환하다
가을의 안쪽
가을의 안쪽
남유정
만삭의 몸을 풀어
노랗게 팬 나락의 들녘과
여물어 터지는 알밤과
잘 익은 사과를 낳았다
들길에 낭창(朗暢)한 풀벌레들의 울음도 낳았다
산야에 지핀 불! 불!
다 연소하고
그을음 시커멓게 나무 그림자 우는 숲으로
산고의 아픈 몸이 신음한다
쌓이는 낙엽 속에서
알, 생명의 태동을 멈추고 깜박
잠 속으로 빠진다
대지의 더운 숨 속에서
씨앗, 가까운 전생을 잊어버린다
짐승들의 긴 울음소리 잠의 허방 속으로 잠기면
사위 그지없이 조용해
뿌리에서 나뭇가지 끝
흙에서 하늘로 오르는
나무 속, 감춰진 길이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