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랑하는데 헤어졌어요.

어느여자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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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랑하지만 헤어지자고 했다.

다들 말리고 말렸었던 우리의 인연은 피시방에서 시작되었지.

찰나의 용기로 오빠에게 번호를 묻고 만난지 이틀만에 연애 시작했던 우리.

오빠만 사랑하느라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그 동안에는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고 매일 봐서 그런가, 얼굴만 봐도 발그레 해지던 내가 지금, 설렘이 없어졌지만 하나 확실한 건 아직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오빠도 마찬가지겠지, 사랑하지만 너무 무뎌져있다는 게 내 눈에 보였다. 어쩌면 그 때부터 내가 서서히 혼자 마음을 정리해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부쩍 짜증을 내던 오빠,

처음과 달리 나와 데이트 하는 것을 귀찮아했던 오빠,

게임을 하느라 연락이 늦었던 오빠,

나는 그래도 이해했다. '꽤 오래 만났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자기 합리화를 했고 그렇게 나는 쥐 죽은 듯이 하루 하루를 보냈다.

이제 이별을 고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을 때 오빠는 짐작했는지 나에게 불안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러게 진작에 잘 해줬어야지. 왜 그랬어.

나는 그 눈빛을 보고 마음이 무너져내버렸지만 오빠가 다음 여자 만날 때 나보다 더 잘 해줄거라 믿고 있기에 이별을 말해야만 했다.

눈물을 머금고

"할 말 있는데 얼굴 보고 얘기해야 될 것 같아."

라고 카톡을 했다.

뭔 지 알 것 같으니까 그냥 카톡으로 얘기 하라던 오빠.

끝까지 나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던 오빠.

게임을 좋아하는 오빠를 위해 매일 같이 피시방에 가줬던 사람이 나였고,

기념일을 챙길 줄 몰랐던 오빠를 위해 매 기념일마다 감동을 줬던 나였고,

집에 같이 있자는 말이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었던 나였다.

두 번의 봄이 지나 여름이 다시 오기 전,

같이 있기만 해도 큰 행복이라 말했던 내가

이별을 고했다.

부족한 나를 만나서 고생이 많았다고,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했던 오빠.

아니야. 내가 많이 부족했어.

타자를 치던 손을 꼭 멈추게 했다.

이제 어느 덧 헤어진지 한 달을 넘었다.

나는 호구였다고, 그 오빠는 나쁜 놈이였다고, 주변 사람들도 수긍한 듯 차라리 잘 됐다고,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다고, 잘 걸렀다며 속시원하게 욕을 해줬지만

나는 마음 속의 어딘가가 불편했다. 이게 맞는 걸까, 문득 오빠를 떠올리곤 한다

오빠도 나처럼 잊을려고 바쁘게 지낼려고 하고 있는지,
일은 잘 하고 있는지, 내 생각은 했는지.

가끔 그렇게 생각이 든다.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도,

오빠는 오빠라면 잘 하겠다고, 그렁 그렁 맺힌 눈물로 나에게 다시 만나자고 한다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렇게나 미천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렇게나 순해 빠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