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자칭)소녀가장의 신세한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사설매우김)

ㅇㅇ2020.06.30
조회529

안녕하세요. 네이트판은 항상 짤로만 접하다가 이렇게 들어와보네요.

익명에 힘입어 신세한탄 하러 왔습니다.

 

제목 그대로 저는 (자칭)소녀 가장이에요.

그런데 제 가족은 엄마도 있고 4살 위에 언니도 있어요.

그런데 일을 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먼저는 엄마 얘기부터 할게요.

(너무 길어서 회색처리 해요. 아래에 요약 있어요. 읽으실 때는 드래그 하세요!)

제가 7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엄마 혼자서 저와 언니를 힘들게 키우셨어요.

아버지가 양육비도 안 보내주고 이혼하자마자 잠수탔거든요.

엄마는 일을하시면서 시댁에도 친정에도 수차례 경제적 도움을 요청했지만 잘 안됐어요.

시댁은 이혼했으니 엄마와는 남이라는 태도였고,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했어요.

친정, 저의 외가에서는 외할아버지가 편찮으신 중이었고(제가 9살 때 돌아가셨어요),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신 외할머니는 엄마를 많이 미워하셔서 도와주지를 않았어요. (엄마는 맏이고, 외삼촌 1-2-3-이모가 있어요.) 엄마가 눈엣가시인 마냥... 저의 기억 속에 외할머니는 항상 엄마에게 소리치고 욕하면서 외삼촌들에게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다정하게 나긋하게 부르시는 모습이에요. 이건 현재도 마찬가지고요.

엄마는 외할머니 몰래 삼촌들에게 몇 번인가 금전적 도움을 받으셨지만 결국에는 갚지 못하니 삼촌들과도 사이가 틀어졌어요. 명절이 되면 우리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집에만 있죠.

 

이렇게 오갈 곳이 없는 엄마는 많은 일자리를 전전하셨어요.

학습지 방문 교사, 식음료 자영업, 여기저기 알바.....

엄마 성격상 누구 밑에서 일하지를 못하셔서 제일 오랫동안 했던 일이 붕어빵 장사였어요. 제가 중3~고1 올라갈 시기였죠. 언니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 사금융 대출을 하며 외할아버지 유품이었던 금반지까지 팔아서 붕어빵 장사를 할 만큼 어려운 시기였어요. 제가 아직 학생이니 목돈보다 푼돈이 더 필요하다 생각하셨거든요. 하지만 그것도 겨울 한철 장사이니... 일수 찍고 남은 돈이 없으면 다음날 학교 갈 차비가 없어, 엄마는 친한 슈퍼마켓 사장님한테 만원씩 꿔다가 주셨던 기억이 나요. 여름은 파트타임을 전전 하셨어요.

 

엄마는 방임육아(?)를 하셨어요. 저는 엄마랑 살면서 방 좀 치우라는 잔소리는 딱지가 앉게 들었어도 공부좀 해라, 알바라도 해라 하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공부야 뭐 잔소리 안 해도 알아서 전교 1등 해왔으니 그렇다 칠까요. 수포자였지만 엄마는 더하기 빼기만 할 줄 알면 된다고 넘어가는 쿨한 성격이셨죠.

엄마는 고졸이신데, 그것도 삼촌들 뒷바라지 하느라 유급해가며 할머니가 안 보내려던걸 아득바득 우겨서 겨우 다녔던 한恨이 있어서, 언니랑 제가 공부할 때 만큼은 마음껏 할 수 있기를 바라셨어요.

그래도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학교 보내주는 걸 알면은 좀, 알아서 알바도 하고 제 용돈은 제가 벌어 썼으면 좋으련만, 고딩 때의 저는 좀 이기적이었어요. 엄마의 그늘 아래에 있는 이 유예를 누리고 싶었거든요.

알고 있었던 거예요. 이 10대가 지나면 이 집안을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는걸.

 

 

여기서 언니 얘기를 좀 할까요.

(역시 회색처리합니다)

저에게는 좀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언니가 있지만 음... 언니에 대한 기대는 일찍 접었어요.

언니와 저는 여느 자매들 같이 쥐어뜯고 싸우고, 그러다가 또 잘 지내고. 나름 좋다고 볼 수 있는 사이였어요.

어릴 때부터 없는 살림에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그 나이때의 어리광을 부리는 언니가 못마땅하면서도 조숙했던 저와는 달리 감정에 솔직하고 하고싶은거 하면서 사는 언니가 부럽기도 했죠.

언니는 공부는 중위권 정도 했지만 사는 곳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의 4년제 대학에 붙었어요. 이때부터가 청산되지 않는 빚더미의 시작이었어요.

 

신용이 낮은 엄마가 사금융까지 끌어다가 어렵사리 보낸 대학. 아침잠이 많아 스쿨버스를 놓친 언니의 1학년 성적표에는 F.... 언니가 조르고 졸라 자취방을 얻어줬지만(기숙사는 성적 안돼서) 매달 엄마는 이집 저집 생활비는 두배로 나갔는데도 돌아온건 출석 일수 미달로 인한 제적 통지서.

그 뒤로 언니는 가정에서 이탈했습니다.

 

자취방이 있는 그 지역에서 알바를 구했다는 언니는 점점 연락이 뜸해지더니 아예 소식이 끊겼고, 몇 년 뒤에 집으로 돌아와서 집근처 알바를 전전하다가 그마저 그만두고 친구집에 얹혀살기 시작.또 다시 연락이 끊긴채로 잠수타면서 간간히 생존신고 같은 카톡만 올리다가 제작년 즈음인가부터 명절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명절이 아닐 때는 생존신고 같은 카톡만 하지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떤 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언니가 잠수타는 동안 빡.. 화가 나신 엄마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해서야 겨우 연락을 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언니의 잠수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

언니가 집으로 돌아와 알바를 다니던 시기에 엄마는 언니에게 경제활동을 닦달하셨으니까요.

언제까지 알바만 할거냐, 직장은 갈 생각이 없냐, 친구들 좀 그만 만나라... 하는게 주 내용이었습니다. 친구 만나러 나갔다가 출근 안 해서 짤리곤 했으니 엄마의 잔소리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당시 고3의 저는... 그저... 거친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었죠.

 

 

 

 

위에는 가정사를 한탄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엄마-아빠랑 이혼 후 혼자서 두 딸을 키우심. 시댁/친정 도움 x, 사고로 허리와 발뒤꿈치 철심 박으심, 남 밑에서 일을 못함, 현재 일을 전혀 못함(할 말 다 하고 사는 성격+못 참는 성격=직장내불화,

활동이 없음으로 인한 체력저하)

 

언니-집안은 나몰라라 하고 잠수탐, 자기 앞+엄마 앞으로 수백만원 빚 만듦, 10년이 지나도록 1원도 안 갚고 연락두절

 

 

 

이제 제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이런 가정 상황 속에서 저는 어른이 되는 것이 너무 무서웠어요.

어른이 되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를 지레짐작하고 겁 먹었죠.

엄마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것 같았어요. 그게 키워준 몫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학교 생활 열심히 했어요.

중학교 졸업 성적 상위 12%. 전교생 300명 안팎의 따라지 학교였어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일부러 특성화고로 갔어요. 인문계가면 야자도 하고 석식도 있으니 학비 비쌀까봐. 그래도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골랐고, 후회는 없어요.

 

고등학교 갔더니 전교 1등했어요. 같은 학년이라도 학과별 경쟁이니 등수에 의미없다 해도 성적표에 과목들 100.00이면 자랑스럽게 내밀 정도라고 생각해요.

 

성적은 좋았지만 취업반 들어갔어요. 한 번에 7, 8만원 나가는 대학 원서비 달라고 하기가 겁나서요. 언니 고3 때 원서비로 고생했던거 떠올라서. 엄마 붕어빵 장사 하시면서 일수 찍느라 차비 1만원 없을 수도 있는데 돈 없을까봐. 언니는 잠수타고.

 

고3 담임쌤이랑 진로 상담하면서도

취업하게?

네 집이 어려워서 취업해야할 것 같아요.

그래라.

 

이게 끝이었어요.

 

근데 우리 학교 특성화고인데 취업쪽으로는 영 아니었어요. 공장 생산직 아니면 어디에 판매직. 그것도 지원 제대로 안돼서 취업반 애들 원서 쓰는거 한번도 안 도와주고. 그냥 수업중에 내려와서 자소서 쓰라고 컴퓨터 앞에 앉혀놓는 정도만 하면서 취업반이었어요.

 

제가 최초로 금융권 면접 갔어요. 자소서 말도 안되게 썼죠. 면접 전에 모의 면접 같은거 한 번도 안했고, 저는 등신같이 담당쌤한테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지역에서 알아주는 여상 애들이랑 면접 들어갔는데 그냥 쭈구리가 됐죠. 당연히 떨어졌어요. 억울하거나 그렇진 않고 아 면접이란게 이런거구나 했어요.

 

생산직 가서 몇 년 바짝 벌고 공부할까 생각하는데 고등학교랑 같은 재단인 대학에서 입학 설명회 하러 반에 들어오더라구요. 학생들이 들으러 가면 갔지, 학급에 들어와서 설명회 하는 학교는 처음이라 설명회 처음 들었어요.  학교 안내 책자 보는데 대학을 가고싶긴 하더라고요. 성적도 아깝고... 그때는 (등신같이22222)재수라는 선택지를 아예 생각 못했었어요. 원서비 공짜라고 일단 쓰라 그래서 써서 냈어요.

 

결국에는 취업 못 했고, 면접도 안 본 대학에는 덜렁 붙었어요.

전액 장학금에 학식 지원. 거리는 멀었지만 버스 세번 갈아타고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

네. 문 닫을 위기에 처한 대학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지원을 후하게 해주더라고요.

언니 때문에 맘 고생 많이 하던 때였는데 엄마는 그래도 공부 할때 해야된다고, 가면 좋지 않겠냐고 했어요.

엄마와 언니의 불화로 돈 나올 구멍이 없는 집안은 풍비박산.

 

20살 되자마자 저도 집을 나왔어요. 엄마 혼자 있으면 좀 작고 싼 집으로 이사 가도 되니까.

친한 언니가 월세 10만원으로 공과금이며 식비 다 퉁쳐줘서 거기 얹혀 살았어요.

엄마가 한달에 10만원은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기대는 안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한 달 보내주시더니 그 후로는 힘들더라고요.

이 무렵에 엄마는 일을 거의 못하셨어요. 언니 때문에 신경 쓰면서 신경질적이 되고, 일하시는 곳마다 트러블이 나더라고요.. 엄마 돈 없으니까 장학재단에 생활비 대출 받아서 꼬박꼬박 집에다 바쳤어요. 저는 자급자족 했죠.

 

전문대라 한학기에 2n 학점 들으면서 주말 알바해서 월세, 통신비, 차비, 책값 다 알아서 해결했어요. 지잡대지만 올A+도 받아봤고 최종 성적 4.3/4.5로 졸업했어요. 외국어학과라서 교환학생 갈 수 있었는데 학비는 지원해줘도 생활비가 없으니까 못 가겠더라고요. 좀 욕심 냈으면 대출받아서라도 갔을 텐데 (등신같이33333) 안 갔어요.

 

엄마가 대출 때문에 신불자 되셔서 스마트폰도 이 때 겨우 개통했어요. 그전까지는 피처폰에 공기계 생활... (미성년자는 법적보호자 있어야 휴대폰 개통 되는데 보호자가 신불이라 불가. 언니도 신불이라 언니 명의로도 개통 안됨)

졸업할 때 되니 교수님들이 편입하라고 아깝다고.. 같은 과 있는 다른지역 국립대도 추천해주셨는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자취생활+학교 생활 못할 것 같더라고요. 또 지레 겁먹고 포기했어요.

 

 

제 얘기 요약

-중, 고 성적 좋았음

-근데 취업반 ㄱ

-취업 말아먹음

-전문대 전액 장학금 받고 들어가서 과탑함

-돈 없어서 교환학생 엎고 편입 포기

 

 

졸업장 받기도 전에 마지막 방학 때 취직 먼저 했어요.

(스펙 없고 돈 급하면 취업은 쉽습니다...)

작은 법조 사무실에 정규직이었지만 임금은 적었어요. 6시 퇴근인데 9시, 10시까지 야근하고 월급 120.... 그나마도 수습 때는 90, 100 받았죠.

그거 쪼개고 쪼개서 엄마 생활비 보내주고, 50씩 모아서 생활비 대출한거 절반 갚았어요.

이때쯤 되니까 현타 오더라고요.

제가 이 집을 책임져야 된다고 각오했었던 일인데. 다 예상했던 일인데 짜증나고 화났어요.

뭔가 허탈하고...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고.

22살 때였어요.

 

 

 

5년이 더 지났지만 상황이 나아지진 않네요.

좁은 집 싫다고 월50 쓰리룸으로 이사 갔던 엄마는 월세를 제 때 못 내 보증금 다 까먹고 나오셨고,

새로 이사가려니 보증금이 없어 결국 저는 또 대출 받고.

주택청약 안됨. 청년주택 안됨. 놀라울 정도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는 청년 우대 되는 적금이고 청약이고 전부 조건 미달(WOW!)

언니는 여전히 명절 때 외에는 잠수...... 그래도 아마 엄마한테 수없이 독촉(?) 받고 있겠죠

 

저는 혼자 벌어 본인 생활비+엄마의 생활비를 대고 있습니다.

한달 전에 (코로나로) 실직한 직장에서 받은 임금은 딱 최저.

 

이제라도 스펙 쌓으려니 막막하고,

원금의 몇배가 되어버린 엄마의 빚을 갚을 길은 없고.

엄마는 자꾸 할머니/할아버지한테 가서 돈 좀 달라고 해보라는데

(며느리는 이혼하면 남이지만 자식은 아니라고...)

??? 저는 1n년동안 연락 한 번 없이 남 같이 살았는데요...?

너무 당황스럽고요..

 

인생 현타와요.

역시 로또 밖에는 답이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