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의 짝사랑 마무리함(긴글 주의!!)

쓰니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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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런 글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안다. 나조차도 여기에 근 3개월 만에 들어왔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갈등과 고뇌를 했다. 그래도 좀 이기적이지만 내 맘 편해 보자고 한번 써본다. 나의 11년의 끝맺음을 위해서. 


너랑 내가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대부분 여학생과 좀 달랐다. 소위 남자애들을 패고 다녔던 괴팍하고 폭력적인 초등학생이었다. 남자애들은 나의 반응이 재밌다며 자주 놀렸고, 그런 남자애들을 쫓으면서 “야!! 너 죽는다!!” 늘 입에 달고 산 초등학생이었다. 그러다 너무 심하게 놀림을 받을 때면 학교에서는 꾹 참다가 집에 와서 엄마 품에 펑펑 우는 마음만은 여린 초등학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때 너는 다른 남자애들과 좀 달랐다. 말이 없었고, 수업시간에는 집중했으며, 항상 자세가 올곧고,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다. 난 그런 너와 짝이 되었었다. 11년이 지났지만 그 기억만은 생생히 살아있다. 밥 먹고 5교시, 3분단으로 나뉜 책상 중 창가 쪽 분단 앞에서 2번째 자리에 너와 내가 앉아있었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은 내가 나온 초등학교 이름뿐이지만, 너와의 기억이 9살 때로 뒤 흘러가는 걸 보면 난 그때부터 널 좋아했었나보다. 말이 없는 너를 놀릴 때면 얼굴이 빨개지던 네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부터 난 너를 만나면 먼저 “안녕? 잘 지냈어?” 라고 인사했고, 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 안녕”이라고 나한테 말했었다. 넌 말을 자주 하지 않아서 옆에서 쫑알대는 건 항상 나였고, 넌 내가 하는 말에 “음…. 그랬구나” 라고 하는 게 전부였지만, 난 그게 참 행복했었다. 말도 안 하고, 목소리도 작고, 다가오는 애들한테 본의 아니게 철벽을 치고 있었던 너한테 항상 먼저 말을 걸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쫑알거리는 나는 신기한 애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너의 몇 안 되는 여자 사람 친구, 소위 여자인 친구가 되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붙어있어 우리 초등학교 학생들은 무조건 그 중학교에 가야 했고, 그건 너랑 나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나는 층이 달랐고, 중1 때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한 나는 너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중2가 되었고, 학기 첫날, 친구가 없던 나는 제일 먼저 학교에 가 있기로 하고 학교에 갔다. 근데 우리 교실 앞에 네가 머뭇거리며 서 있었고, 애들이 무서웠던 나는 너를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 “안녕? 너도 이 반이야?” 라고 했다. 사실 너랑 같은 반이었던 것만 기억이 나고 몇 반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너랑 같은 반이라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해 주었고, 너의 남자인 친구들이 나의 남자인 친구가 되어 난 참 행복한 2학년을 보냈다. 


다행히 3학년 때도 너와 같은 반을 배정받았고, 그 날 너에게는 “어휴!! 지겨워. 너랑 나는 몇 년을 보냐”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집에 와서는 너무 기뻐서 방방 뛰었다. 나는 너의 ‘몇 안 되는 여자인 친구’ 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좋았고, 그 타이틀은 내가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2학년 때도 3학년 때도 너에게 예전의 나처럼 다가오는 여자애들을 경계했다. 너에게 나와 같은 친구들이 생기는 게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질투였을 텐데 내가 참 어렸다고 생각한다. 


너는 나에게 남자인 친구자 편한 동생 같았고, 애들이 너 쟤 좋아하냐? 라고 하면 친동생 같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난 막내딸인데 무슨 친동생…. 


어찌 되었든 난 그때 내가 널 좋아하는지 모르고, 그때 내 딴에는 첫사랑? 을 시작했다. 상대는 물론 다른 남자애였다. 그 아이는 너보다 말이 많았고, 당당했으며 키가 컸다. 근데 그 아이는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는지 나에게 철벽을 쳐댔고, 나는 하나하나에 상처를 받았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너와 같은 모습을 바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 아이에게 너와 같은 저음 동굴 목소리를 원했고, 나에게 공감해주기를 바랐으며, 너처럼 나에게 친절해 줬으면 했다. 너는 나에게 가장 의지가 되고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에 너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았다. 너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남들 다하는 짝사랑은 고1 때까지 이어졌고, 너와 그때 당시의 내 짝남과는 고등학교를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너와 그리고 너의 친구들과 함께한 중학교 3학년은 나의 학창 시절 중에 가장 행복한 1년으로 기억되어있다. 


난 너와 같은 남녀공학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난 여고, 넌 다른 남녀공학에 가게 되었다. 둘 다 3지망인 학교였다. 고1 4월 만우절 날 난 3년간 짝사랑하던 너의 친구와 연애를 하기 시작했지만 얼마 안돼서 헤어졌다. 그때는 연인보다 친구가 편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그 아이는 네가 아니었다. 너의 모습을 바랐던 그 아이는 네가 아니었고, 난 실망했었다. 고등학생 연애에 환상이 있었던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남자소개를 부탁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처음 보는 남자애와의 카톡보다 너와의 전화 한 통이 나를 더 즐겁게 해주었고 처음 보는 남자애와의 대화는 어색함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네가 전화할 때 엄청나게 웃긴 것도 아니다. 원래의 우리 모습이랑 똑같았다. 난 쫑알대고 넌 공감해주고…. 그래도 네 목소리를 들으면 행복했었다. 그대 친구들이 이상형이 뭐냐고 그랬을 때 나의 대답은 말이 없고 과묵하지만 자기 할 일 똑바로 하고 동굴 목소리에 키가 컸으면 좋겠다고 그랬었다. 너무 구체적인 요구에 친구들은 누구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난 잠시 널 생각했지만 아니라고 애써 부인을 했다. 


10년 친구를 좋아한다는 건 세상에 없을 일이라 생각했고, 내 갤러리 속 네가 맘에 든다던 친구와 너를 주선시켜주었다. 맘 한쪽이 아팠지만 애써 모르는 척하고, 너의 연애를 응원하는 친구가 되었다. 


결국 둘이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내 동생 드디어 연애하는구나. 하며 이모티콘을 몇십 개를 날리며 축하해줬다. 그리곤 그날 밤 심장을 쥐어 짜며 몇 시간을 울었다. 그 날은 학원에서 본 시험점수가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에 잘 나오지 않은 시험점수 때문이라고 나 자신에서 변명을 하며 펑펑 울었었다. 너의 연애가 시작되었으니 난 너와의 모든 대화를 그만했고, 자주 하던 전화도 일절 하지 않았다. 우리가 대화하는 건 중3 제일 친했던 친구들과의 단톡방이 전부였고 안 그래도 단답형을 하는 너에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너와 그 아이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에게 전화를 했고, 울고 있는 널 목소리로 듣게 되었다. 난 너에게 첫사랑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 첫사랑은 너에게 아픔을 주었고 우는 널 들으며 난 “야!! 너 우냐??” 이러면서 밝게 말했지만 그 후 3일간 기분이 우울하면서도 기뻤다. 그때 나에게는 저 기분을 변명할 변명거리가 있었고 그것 때문이라며 치부했다. 


고2가 되자 학업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졌고, 1학년 때도 반친구들과 말썽이 있었던 나는 일부러 용건을 만들어 하는 너와의 대화를 더 좋아했다. 학업 스트레스에서 불안하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나에게 가장 좋은 약은 너와의 통화였다. 너와 통화를 하다보면, 내가 안정되어가는 게 느껴졌고, 그런 내가 좋았다. 


하지만 안다. 넌 날 좋아하지 않는다. 전활 하는 것도 대부분 내가 먼저, 용건을 만들어서 하는 게 대부분, 아니 전부였고 그런 내가 싫으면서도 항상 너에게 먼저 문자를 하고 전화를 했다. 그때도 난 너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냥 친한 친구와의 전화가 날 행복하게 하니까 네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널 좋아하는 게 주변에 다 티가 났나보다. 우리 가족이 다 너를 알았고 나에게 항상 “너 걔 좋아하지? 맨날 아니라고 하는데 이 언니는 나중에 네가 결혼한다고 걔 데려올까 봐 걱정이다.”라고 언니가 말했다. 그럼 나는 언니의 남자인 친구를 소환해서 나도 언니가 00 오빠랑 결혼하는 게 아닐까 무서워ㅎㅎㅎ라며 언니를 놀렸다. 그럼 언니는 어휴…. 이러면서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언니한테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튜브 알고리즘에 남사친-여사친 관계 정리해드림 이나 이번 달에 커플 되는 초성 알려드림 같은 게시글을 보면 나도 모르게 너와 나의 이름을 적용해보곤 했다. 그러고 정말 초성에 너와 내가 있으면 좋아요를 누르고, 피식 웃으며 넘어갔다. 지금 보니 되게 사이코 같지만 말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계속 뜨는 고백설과 설렘썰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상대역에 너를 생각했고, 내가 너에게 여자로 보이긴 할까 하며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항상 너와 만날 때는 쌩얼로 간다고 말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화장을 다 했고, 평소라면 30분을 준비할걸 1시간, 아니 2시간씩 준비를 하곤 했다. 그렇게 준빌 하고 너의 앞에 가서는 쿨한 척, 유튜브나 인스타에서 배운 여우 짓을 했었고, 그러고 집에 오면 참…. 가지가지도 한다…. 라며 자책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더는 널 짝사랑하고 싶지 않다. 너를 짝사랑하는 게 나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려서 널 짝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바로 안 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런데 내가 좀 많이 지쳤다. 더는 희망도, 가망도 없는 짝사랑은 그만하고 싶다. 너는 정말 나에게 하나뿐인 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는 친구이다. 너와의 전화는 정말 나를 행복하게 했었다 네 덕분에 지금까지 힘들었던 게 기억이 안 날 정도이니까. 


너를 더는 짝사랑하고 싶지 않은 건 지쳤다는 이유도 있지만 너를 짝사랑하는 내가 너무 추해 보이기도 해서이다. 일주일 전에 평소와 같이 난 너에게 왜 전화를 안 받느냐며 닦달하고 있었다. 


그때 너는 원래 전화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머리가 띵 울렸다. 너는 힘들거나 하면 전화하라고 했지만 난 더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원래 이런 내가 아닌데 너를 짝사랑하는 내가 싫다. 하필 정말 좋은 친구인 너를 짝사랑해서 이렇게 맘고생 하는 내가 싫다. 그래서 저런 별것도 아닌 일이 상처받는 내가 너무 싫다. 왜 하필 가장 친한 친구를 짝사랑해서 이러는 건지. 그냥 마음이 아프다.


 이제 내 11년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한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이게 내 흑역사가 될 수도 있다. 사실 내일의 내가 그려진다. 아마 이불 킥을 하고 있겠지. 근데 이 글을 쓴 이유는 내가 추하고 바보같이 보여도 11년간 너를 좋아한 마음. 그게 내가 봐도 너무 소중하고 예뻐서이다. 그 마음때문에 그만두기를 결심했지만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그냥 두기가 아쉬워졌다. 이 글이 화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화제가 된다면, 네가 이 글을 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래줬으면 한다. 보고 자신감을 좀 가져라. 나와의 추억을 이렇게 소중하게, 예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나 매력있구나를 좀 알아라.

그리고 너!!

놀랐냐? 놀랐겠지. 나도 내가 이렇게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어. 내가 네 반응 예상해볼까? 어…. 좋아해줘서 고마워…. 이게 다겠지. 안 봐도 비디오야. 맞아 고마워해. 그리고 좀 자신감을 가져. 난 나를 11년씩이나 짝사랑한 여자가 있다. 내 매력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고 살아.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겠지만 난 그 시간 동안 널 짝사랑했어. 좀 깊게, 이런 내가 널 짝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 근데 나 이제 짝사랑 좀 쉴래. 너무 오래 달려왔잖아? 좀 쉬고 싶네. 이때까지 고마웠어. 전화 싫어하는데 내 전화 받느라 고생했고. 앞으로 그럴 일 없을 거야 파업이야!! 내 학창시절에 예쁜 짝사랑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고 널 짝사랑해서 다행이야. 내 친구 해줘서 고맙고 나 받아줘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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