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녕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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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헤어 진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내가 먼저 너에게 이별을 고했어. 사실 너랑 만나면서 좋았던 일도 많았고, 너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도 많이 했어. 너와 나는 관심사가 너무 잘 맞았으니까. 술을 좋아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먹는 것도 사랑했지. 나는 또 잘 맞추는 편이잖아.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만나기 전에, 내가 너에게 매력을 어필할 때, ‘나는 상대방에게 잘 맞추는 편이야.’라고 했잖아. 나는 정말 너라는 사람의 생활 패턴에 잘 맞춰 왔던 것 같아.

  사실 맞추기 보다는 너에게 스며들었던 게 맞는 것 같아. 술은 안마시면 그만인데 네가 좋아하니까. 그러다 보니 술이 좋아지고, 둘이 함께 할 때 술을 빼놓으면 서운하기도 했었어. 옷도 마찬가지야. 나는 그냥 깔끔하고 평범하게 입는 걸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너의 옷 스타일을 점점 닮아가더라. 그리고 서울을 좋아하게 됐어. 나는 은근 촌놈이라서, 서울 별로 안 좋아했어. 막연한 동경은 있었지만 놀 때 꼭 서울에 가야한다? 그런 건 없었거든. 대학 동기들이랑 가끔씩 가는 서울의 번화가, 그 정도로 만족했었어. 근데 너는 서울 태생이어서 그런가, 약간의 허세 때문인가 꼭 서울에서 놀고 싶어 하더라. 근데 난 다 좋았어.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서울이든 인천이든 위치가 중요하겠어? 그냥 이 시간을 너라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좋았거든. 그래. 난 너한테 완전히 빠져들었고, 너에게 나를 소개 할 때 했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던 것 같아서 괜히 뿌듯하기도 하네. 나 거짓말 안했지?

  근데 함께 늙어가자는 것. 서울에 터를 잡고 함께 살자는 것. 평생 사랑하는 것. 그건 거짓말을 하게 됐어. 본의 아니게. 너를 한 번 놓아야겠다고 생각한건, 내 마음이 식었기 보다는, 너와 더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너한테 잘 맞춰왔고, 나의 색깔이 너와 섞여서 새로운 색깔로 빛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지만, 결국에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거든. 근데, 우리의 미래에서는 그것들마저 우리의 일상이잖아. 지금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 했어.

  사실, 너에게 이별을 고할 때 사랑받고 싶었어. 네가 나한테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약간의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헤어지자고 했었어. 근데 다들 주변에서 말하자나. 절대, 헤어지자는 말 함부로 하는 것 아니다. 근데, 나는 믿음이 있었어. 너랑 나는 헤어질 수 없는 사이이고, 평생 함께 할 거라는 것. 근데 너는 아니었나봐. 내가 헤어지자고 하니까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미안하다고? 그럼 돌아와야지. 나랑 헤어지고 나면 자기를 원망할 거라는 걸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럼 붙잡아야지. 왜 말은 힘들어 하면서 나를 쉽게 놔버렸어? 이해가 안 된다.

  일하면서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부업으로 또 일을 해야 하고, 나도 만나려고 하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 근데 그 많은 선택지에서 나를 제일 먼저 빼버릴 수 있다는 게 너무 서운하다. 다른 것들은 포기 못한다 치자, 친구들 보다는 나를 더 신경 써줄 순 없었어? 아예 만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 친구들 만나서 밤늦게 까지 놀고 심지어 술도 마시니까 다음 날 힘들어 하고, 그러니까 적당히 놀라는 거였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었니?

너는 하나도 안 힘들어 보여. 나와 헤어지고 나서부터 안하던 운동도 하고 내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일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할 것 같아. 카톡 하는 거 별로 안 좋아 했었는데, 이제 나한테 카톡 안 해도 돼서 얼마나 편하겠어. 다른 남자도 만나고 싶으면 신나게 만날 수 있고. 서울에서.

  마지막에 너무도 쿨한 척 하면서 네 행복을 빌면서 떠났던 내가 너무 바보 같다. 나는 네가 더 힘들었으면 좋겠는데, 이 모든 상황들의 끝은 너의 해방과 자유로 이어질 것 만 같아서 힘들다. 너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공유할 수 없는 상황보다, 네가 나로부터 해방감을 느낄 것 이라는 게 더 슬퍼. 너도 충분히 아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후회했으면 좋겠다. 나라는 사람을 놓친 것. ‘이런 사랑 처음 받아 봐’라고 말 했던 것처럼, 내가 줬던 애정들을 다른 남자에게서 받지 못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