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공책을 사서 연필로 볼펜으로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가 결국엔 한장도 온전히 쓰지 못한 채로 버려버렸다. 그렇게 수십권의 공책들의 첫페이지를 찢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 때(?) 였나 친척오빠가 내 몸을 만지는게 나쁜짓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무서웠다. 앞으로 친척남자라고 하겠음. (어릴때 우리집에서 친가사람들이 모일 때 친척남자가 컴퓨터를 독점해서 사용하길래 찡찡 댄 적이 있다.그때 나에게 화를 냈는데 정말 그 어릴때였지만 너무 무서웠고 살기를 느꼈었다. 그 뒤로는 친척남자에게 대들거나 뭐라고 한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우리집인데 병신이) 그리고 어릴땐 용기도 없었다. 나는 집안에서 공부는 안하지만 혼자서 척척해내는 딸이어야만 했다. 친오빠는 우울증이 심했다.(최근에야 안 사실)어릴 땐 오빠가 그저 이상하고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있는 줄로만 알았으니,,오빠의 일상이 무너지면서 부모님은 항상 한숨과 눈물을 달고 살았고, 그래서 난 항상 신경쓰지않아도 혼자 잘하는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 괜찮다며 거짓말을 늘어놓긴 일쑤고 그저 가벼운 얘기들만, 부모님께 조잘대며 걱정없고 스트레스없는, 겉보여지기에 무거운 생각없이 사는 딸이 되었다. 성인이 된 후 내 몸을 지켜야 한다는 걸 깨닫고 성범죄 관련한 책들도 정말 많이 찾아봤다. 나 혼자만 겪는 괴로운 진실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적어 내려간 사실들. 내가 당한 수치스러운 일들. 하지만 그 다짐은 항상 무너져버렸다. 나의 피해사실을 글로 자세하게 써내려가기 어려웠다. 알고도 당한 날들, 언젠가는 날 만지는 더러운 손이었겠지만 6살, 7살때는 그게 나를 좋아해주는거라고 비밀이라고 생각했던 날들. 내가 크고 언제부터인가 잠들었을때 날 만졌지만 어릴땐 내가 깨어있을 때 날 만졌다. 잊고살자고 다짐했지만 일상 속에 트라우마들이 이미 자리잡았기에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었다. 잊고싶다. 다 잊고싶다. 죽고싶다. 더럽다. 그래 그럴거면 적자. 하지만 잊고싶었던 모든 날들을 떠올려야했고, 기억이 안나는 부분도 많았다. 지속적인 성추행으로 기억을 지워버린 부분도 많았고, 저 어두운 깊은 곳에서 갑자기 떠오른 일들은 내 스스로를 자책하기에 충분했다. 내 잘못이 아니고 날 만지는 친척남자가 잘못한건데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더럽게 취급해버렸다. 언제였더라 15년도인가 친척남자의 친여동생이 결혼을 했다. 성추행은 본인의 친동생이 결혼했던 그날 저녁에도 계속 되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내 몸을 또 만졌다. 나만 비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는 죽음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언젠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거라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었다.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살거다. 친척남자의 가정을 못 살게 두고 싶다. 본인 친동생이 결혼식을 한 날에도 내 몸을 만지는 남자친척은 자식을 낳았다. 아빠가 종종 전해주는 친척들의 소식을 귓등으로도 안들었다. 막내고모의 자매들은 나와 똑같은 범죄를 당하진 않았을까. 혹시나 둘째고모의 또 다른 남자친척은 내가 성추행을 당한걸 알고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남자친척의 자식 성별도 난 알지 못한다. 알고싶지도 않다. 평소 나는 남성 성범죄자들에게도 딸이 있다고 기사가 뜨면, 저 범죄자의 딸도 똑같이 당해봐야 해!! 라는 인터넷 기사 댓글들에 기함을 하며. 왜 또 피해자가 여성이 되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자식이 딸이라고 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할까봐.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너처럼 똑같은 범죄자새끼를 키우네. 라고 생각할까봐. 그 모든 소식을 듣지 않기로 했다. 그의 친동생이 결혼한지 얼마 안지나서 그가 결혼을 했다. 동생보다 늦게 결혼한 케이스, 결혼식에도 갔다. 하지만 제대로 쳐다는 못보겠더라. 저 범죄자 새끼가 행복해하네. 매번 큰고모는 자식들 (친척남자. 친척언니) 결혼 다 시키고 손주들도 있어서 다 키웠지~하며 주변 고모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그 꼴을 보고있자니 시ㅂ스러워서 내가 제명에 못 살겠다. 나는 현재 20대 중반이 되었다. 시누이 3명과 할머니, 며느리가 혼자인 우리 집안에 나는 항상 엄마가 힘들어보였다. 친할머니가 우리 엄마보다 건강해보인다. 항상 친오빠한테 하는 말이지만 엄마가 친할머니보다 먼저 하늘에 가면 이 집 식구들 내가 가만히 안둔다고. 뭐 무튼 2년전인가부터 부모님께 우리집이 큰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사를 지내는 건 그만하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본인의 몫이라고 하며 며느리 혼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한다. 몸이 힘든건 엄마몫이지만. 역겨운 사람들 사이에서 견뎌야하는 건 내 몫이야..너무 말하고 싶었다. 미친년이라 해도 좋으니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께 걱정시키는 딸이라고 생각들게 하고 싶지않았다. 나를 갉아먹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다. 친척들이 모이는 친할아버지 제사에 어느 순간부터 안가게되었다. 우리집인데 매번 내 방 문을 닫고 나가며, 친구와 약속을 핑계로 친척들이 모두 돌아간 저녁 늦은 시간에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할아버지 미안해요. 친손주라곤 나하고 오빠뿐인데. 나 진짜 이뻐했는데 할아버지가. 친가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싫다. 이제는 그 생각까지 한다. 저 (친)할머니만 아니었으면, 내가 저 사람들(친가 친척들)을 만날 일도 없었을텐데. 혹시 막내고모네 여자친척들(자매)도 나와 같은 걸 겪었을까?하며.
피해사실을 알리고자 적어내려가며 내 기분을 다시 상기시키는 괴로움은 꽤 컸다. 스트레스로 잠도 못자고 한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아서 먹었고 지금도 여전히 먹고있다. 얼마전까지도 계속 이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고 싶어서..엄마가 이 집안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온 몸을 바쳐서 일하고 음식을 내놓는 걸 보기가 힘들어서..큰집인 우리집에서 친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면서 친가쪽 사람들을 더이상 볼 수 없었기에 성추행 당한 얘기들을 적었다. 공책에 적어내려가길 반복하고 또 다시 찢어버렸다고 해서 그 공책을 다른 용도로 다시 재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냥 다 잊고 싶은 마음이 또 다시 커져서. 이 글을 메모장에다가 쓰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올린다. 이 글을 계기로 난 뒤이어서 계속 써내려가려고 한다. 그리고 2020년도를 넘기지 않고 꼭 이번해에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횡설수설이고 제목에서도 얘기했듯이 내가 이 사실을 알릴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왜 이제와서 알리냐는 사람들에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2N년간 친척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했어. 언젠가 내가 얘기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공책을 사서 연필로 볼펜으로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가 결국엔 한장도 온전히 쓰지 못한 채로 버려버렸다. 그렇게 수십권의 공책들의 첫페이지를 찢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 때(?) 였나 친척오빠가 내 몸을 만지는게 나쁜짓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무서웠다. 앞으로 친척남자라고 하겠음. (어릴때 우리집에서 친가사람들이 모일 때 친척남자가 컴퓨터를 독점해서 사용하길래 찡찡 댄 적이 있다.그때 나에게 화를 냈는데 정말 그 어릴때였지만 너무 무서웠고 살기를 느꼈었다. 그 뒤로는 친척남자에게 대들거나 뭐라고 한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우리집인데 병신이) 그리고 어릴땐 용기도 없었다. 나는 집안에서 공부는 안하지만 혼자서 척척해내는 딸이어야만 했다. 친오빠는 우울증이 심했다.(최근에야 안 사실)어릴 땐 오빠가 그저 이상하고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있는 줄로만 알았으니,,오빠의 일상이 무너지면서 부모님은 항상 한숨과 눈물을 달고 살았고, 그래서 난 항상 신경쓰지않아도 혼자 잘하는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 괜찮다며 거짓말을 늘어놓긴 일쑤고 그저 가벼운 얘기들만, 부모님께 조잘대며 걱정없고 스트레스없는, 겉보여지기에 무거운 생각없이 사는 딸이 되었다. 성인이 된 후 내 몸을 지켜야 한다는 걸 깨닫고 성범죄 관련한 책들도 정말 많이 찾아봤다. 나 혼자만 겪는 괴로운 진실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적어 내려간 사실들. 내가 당한 수치스러운 일들. 하지만 그 다짐은 항상 무너져버렸다. 나의 피해사실을 글로 자세하게 써내려가기 어려웠다. 알고도 당한 날들, 언젠가는 날 만지는 더러운 손이었겠지만 6살, 7살때는 그게 나를 좋아해주는거라고 비밀이라고 생각했던 날들. 내가 크고 언제부터인가 잠들었을때 날 만졌지만 어릴땐 내가 깨어있을 때 날 만졌다. 잊고살자고 다짐했지만 일상 속에 트라우마들이 이미 자리잡았기에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었다. 잊고싶다. 다 잊고싶다. 죽고싶다. 더럽다. 그래 그럴거면 적자. 하지만 잊고싶었던 모든 날들을 떠올려야했고, 기억이 안나는 부분도 많았다. 지속적인 성추행으로 기억을 지워버린 부분도 많았고, 저 어두운 깊은 곳에서 갑자기 떠오른 일들은 내 스스로를 자책하기에 충분했다. 내 잘못이 아니고 날 만지는 친척남자가 잘못한건데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더럽게 취급해버렸다. 언제였더라 15년도인가 친척남자의 친여동생이 결혼을 했다. 성추행은 본인의 친동생이 결혼했던 그날 저녁에도 계속 되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내 몸을 또 만졌다. 나만 비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는 죽음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언젠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거라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었다.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살거다. 친척남자의 가정을 못 살게 두고 싶다. 본인 친동생이 결혼식을 한 날에도 내 몸을 만지는 남자친척은 자식을 낳았다. 아빠가 종종 전해주는 친척들의 소식을 귓등으로도 안들었다. 막내고모의 자매들은 나와 똑같은 범죄를 당하진 않았을까. 혹시나 둘째고모의 또 다른 남자친척은 내가 성추행을 당한걸 알고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남자친척의 자식 성별도 난 알지 못한다. 알고싶지도 않다. 평소 나는 남성 성범죄자들에게도 딸이 있다고 기사가 뜨면, 저 범죄자의 딸도 똑같이 당해봐야 해!! 라는 인터넷 기사 댓글들에 기함을 하며. 왜 또 피해자가 여성이 되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자식이 딸이라고 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할까봐.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너처럼 똑같은 범죄자새끼를 키우네. 라고 생각할까봐. 그 모든 소식을 듣지 않기로 했다. 그의 친동생이 결혼한지 얼마 안지나서 그가 결혼을 했다. 동생보다 늦게 결혼한 케이스, 결혼식에도 갔다. 하지만 제대로 쳐다는 못보겠더라. 저 범죄자 새끼가 행복해하네. 매번 큰고모는 자식들 (친척남자. 친척언니) 결혼 다 시키고 손주들도 있어서 다 키웠지~하며 주변 고모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그 꼴을 보고있자니 시ㅂ스러워서 내가 제명에 못 살겠다. 나는 현재 20대 중반이 되었다. 시누이 3명과 할머니, 며느리가 혼자인 우리 집안에 나는 항상 엄마가 힘들어보였다. 친할머니가 우리 엄마보다 건강해보인다. 항상 친오빠한테 하는 말이지만 엄마가 친할머니보다 먼저 하늘에 가면 이 집 식구들 내가 가만히 안둔다고. 뭐 무튼 2년전인가부터 부모님께 우리집이 큰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사를 지내는 건 그만하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본인의 몫이라고 하며 며느리 혼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한다. 몸이 힘든건 엄마몫이지만. 역겨운 사람들 사이에서 견뎌야하는 건 내 몫이야..너무 말하고 싶었다. 미친년이라 해도 좋으니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께 걱정시키는 딸이라고 생각들게 하고 싶지않았다. 나를 갉아먹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다. 친척들이 모이는 친할아버지 제사에 어느 순간부터 안가게되었다. 우리집인데 매번 내 방 문을 닫고 나가며, 친구와 약속을 핑계로 친척들이 모두 돌아간 저녁 늦은 시간에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할아버지 미안해요. 친손주라곤 나하고 오빠뿐인데. 나 진짜 이뻐했는데 할아버지가. 친가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싫다. 이제는 그 생각까지 한다. 저 (친)할머니만 아니었으면, 내가 저 사람들(친가 친척들)을 만날 일도 없었을텐데. 혹시 막내고모네 여자친척들(자매)도 나와 같은 걸 겪었을까?하며.
피해사실을 알리고자 적어내려가며 내 기분을 다시 상기시키는 괴로움은 꽤 컸다. 스트레스로 잠도 못자고 한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아서 먹었고 지금도 여전히 먹고있다. 얼마전까지도 계속 이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고 싶어서..엄마가 이 집안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온 몸을 바쳐서 일하고 음식을 내놓는 걸 보기가 힘들어서..큰집인 우리집에서 친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면서 친가쪽 사람들을 더이상 볼 수 없었기에 성추행 당한 얘기들을 적었다. 공책에 적어내려가길 반복하고 또 다시 찢어버렸다고 해서 그 공책을 다른 용도로 다시 재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냥 다 잊고 싶은 마음이 또 다시 커져서. 이 글을 메모장에다가 쓰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올린다. 이 글을 계기로 난 뒤이어서 계속 써내려가려고 한다. 그리고 2020년도를 넘기지 않고 꼭 이번해에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횡설수설이고 제목에서도 얘기했듯이 내가 이 사실을 알릴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왜 이제와서 알리냐는 사람들에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