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페이스란 개념이 있다 이는 과거 19세기 무렵부터 흑인을 비하하고 그 문화적, 인종적 특징을 웃음거리로 삼기위해 백인들이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코미디쇼를 한 것에서 온 행위이며 이러한 블랙페이스는 대표적인 인종차별적 행위라고 비판받고 있다.
최근 의정부고 학생들이 졸업사진에서 소위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하면서 얼굴을 까맣게 칠해 논란이다. 패러디하는 것은 좋지만 얼굴을 까맣게 칠했으니 이는 블랙페이스란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들을 비판하는 와중에 정작 관짝소년단의 리더는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그들을 따라한 어느 사람에게 그 동영상이 좋다며 고맙다는 글을 남겼다.
의정부고 학생들의 까만 얼굴은 흑인을 조롱하기 위해 칠하던 까만 얼굴과 동일선상에 놓일 수는 없다. 모든 행위에는 의도가 있으며 그 행위의 이전에 의도가 먼저 존재한다. 먼저 의도가 있고 그 의도가 반영되어 행동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인과를 잘못 파악하여 행동이 의도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블랙페이스는 흑인을 조롱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하나의 수단적 행위일 뿐이며 이미 의도가 확립된 이상 흑인을 비하하기 위한 행위는 얼굴을 까맣게 칠하는 것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그 인과가 역전되어 얼굴을 까맣게 칠하기만 해도 그 의도에 상관없이 흑인 비하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비슷한 사례로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흑형이란 표현이 인종차별이라고 비판받는 것이 있다. 흑형이란 단어는 물론 비하적목적으로 쓰인 사례가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지만 대체로는 흑인의 그 경이로운 신체적 우월성에 경외감을 느껴 순수하게 감탄하는 목적, 그리고 흑인들에게 친근감을 느끼려는 의도에서 사용된다.
어느 흑인의 스탠딩 코미디가 떠오른다 미국기준 새벽 3시에 콜오브듀티에 접속하면 8살짜리 한국인이 당신네들을 쓸어버린다며 웃는 쇼였다. 흑형이 인종차별이라면 이 코미디쇼도 교육이 과열되어 시간이 부족한 한국 아이들이 게임으로 몰리는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문화적 특징을 웃음거리로 삼은 인종차별이 아닌가. 하지만 글쎄, 많은 한국인들은 이에 분노하기 보단 캬 역시 게임은 한국이지라며 웃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위의 쇼가 한국인은 게임만 해서 몸이 멸치같다거나, 성격이 찐따라서 게임에서만 강한척할 수밖에서 없다는 등의 비하의 의도가 없이 게임 실력의 순수한 경외심이 반영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를 포함해서 전세계의 사람들이 관짝소년단을 좋아하는 이유는 침울하기 마련인 장례식에서 춤을 춘다는 문화적 특징이 흥미롭고 신기해서이지 흑인이 관을 매고 춤을 춰서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를 순수한 목적에서 따라하며, 더군다나 얼굴을 까맣게 칠하는 것은 결코 비하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문화를 온전히 흑인의 문화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행위이다.
현대적 스타일의 프라이드 치킨은 흑인이 원조다. 하지만 현재 프라이드 치킨의 상징은 "하얀색" 할아버지이다. 이는 백인이 흑인의 문화를 흑인만 빼고 알맹이만 쏙 빼먹은 것이 첫번째 이유요, 흑인하고 치킨을 결부시키기만 하면 비하의 의도가 없어도 화를 내는 사람들의 존재가 두번째 이유다. 전세계에서 널리 팔리는 요리를 만들어낸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스스로의 영향력을 자랑스럽게 강조했다면 어느 평행 세계에서는 치킨의 상징이 검정색 할아버지가 아니었을까.
흑인을 비롯해서 의정부고의 학생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흑인들의 문화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의정부고 학생들이 얼굴을 하얗게 한 채로 관짝 소년단을 패러디했다면 흑인의 문화도 같이 하얗게 탈색되어 버리는 화이트 워싱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는 치킨처럼 관짝소년단에서 정작 흑인의 존재는 사라지고 관짝만 남을 것이다.
흑인들의 피해의식 과잉
최근 의정부고 학생들이 졸업사진에서 소위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하면서 얼굴을 까맣게 칠해 논란이다. 패러디하는 것은 좋지만 얼굴을 까맣게 칠했으니 이는 블랙페이스란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들을 비판하는 와중에 정작 관짝소년단의 리더는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그들을 따라한 어느 사람에게 그 동영상이 좋다며 고맙다는 글을 남겼다.
의정부고 학생들의 까만 얼굴은 흑인을 조롱하기 위해 칠하던 까만 얼굴과 동일선상에 놓일 수는 없다. 모든 행위에는 의도가 있으며 그 행위의 이전에 의도가 먼저 존재한다. 먼저 의도가 있고 그 의도가 반영되어 행동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인과를 잘못 파악하여 행동이 의도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블랙페이스는 흑인을 조롱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하나의 수단적 행위일 뿐이며 이미 의도가 확립된 이상 흑인을 비하하기 위한 행위는 얼굴을 까맣게 칠하는 것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그 인과가 역전되어 얼굴을 까맣게 칠하기만 해도 그 의도에 상관없이 흑인 비하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비슷한 사례로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흑형이란 표현이 인종차별이라고 비판받는 것이 있다. 흑형이란 단어는 물론 비하적목적으로 쓰인 사례가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지만 대체로는 흑인의 그 경이로운 신체적 우월성에 경외감을 느껴 순수하게 감탄하는 목적, 그리고 흑인들에게 친근감을 느끼려는 의도에서 사용된다.
어느 흑인의 스탠딩 코미디가 떠오른다 미국기준 새벽 3시에 콜오브듀티에 접속하면 8살짜리 한국인이 당신네들을 쓸어버린다며 웃는 쇼였다. 흑형이 인종차별이라면 이 코미디쇼도 교육이 과열되어 시간이 부족한 한국 아이들이 게임으로 몰리는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문화적 특징을 웃음거리로 삼은 인종차별이 아닌가. 하지만 글쎄, 많은 한국인들은 이에 분노하기 보단 캬 역시 게임은 한국이지라며 웃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위의 쇼가 한국인은 게임만 해서 몸이 멸치같다거나, 성격이 찐따라서 게임에서만 강한척할 수밖에서 없다는 등의 비하의 의도가 없이 게임 실력의 순수한 경외심이 반영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를 포함해서 전세계의 사람들이 관짝소년단을 좋아하는 이유는 침울하기 마련인 장례식에서 춤을 춘다는 문화적 특징이 흥미롭고 신기해서이지 흑인이 관을 매고 춤을 춰서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를 순수한 목적에서 따라하며, 더군다나 얼굴을 까맣게 칠하는 것은 결코 비하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문화를 온전히 흑인의 문화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행위이다.
현대적 스타일의 프라이드 치킨은 흑인이 원조다. 하지만 현재 프라이드 치킨의 상징은 "하얀색" 할아버지이다. 이는 백인이 흑인의 문화를 흑인만 빼고 알맹이만 쏙 빼먹은 것이 첫번째 이유요, 흑인하고 치킨을 결부시키기만 하면 비하의 의도가 없어도 화를 내는 사람들의 존재가 두번째 이유다. 전세계에서 널리 팔리는 요리를 만들어낸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스스로의 영향력을 자랑스럽게 강조했다면 어느 평행 세계에서는 치킨의 상징이 검정색 할아버지가 아니었을까.
흑인을 비롯해서 의정부고의 학생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흑인들의 문화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의정부고 학생들이 얼굴을 하얗게 한 채로 관짝 소년단을 패러디했다면 흑인의 문화도 같이 하얗게 탈색되어 버리는 화이트 워싱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는 치킨처럼 관짝소년단에서 정작 흑인의 존재는 사라지고 관짝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