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좀 멍청한 소리를 내면서. 권교수가 들고 있던 지시봉으로 내 책상을 딱! 소리가 나게 내려치자 그제서야 집 나간 정신이 완전하게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아……. 망했다. 권교수는 강의시간에 집중 안 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이승현.”
“네!”
“강의시간에 정신을 딴 나라로 관광 시킨 걸로 보아, 내 수업이 우습게 보이나 본데. 어디 실력 점검이나 해보지. 당장 공책 펴보게.”
“…….”
이 사람이 평소에는 스무스하게 잘 넘어가면서 오늘은 왜 이렇게 날을 세우지? 오늘 뭐 안 좋은 일 있었나? 공책 맨 뒷장을 펴는 순간에도 날 쳐다보는 권교수의 이글거리는 눈빛 때문에 정수리가 따끔따끔했다.
“폈는데요…….”
“원소 기호 87번.”
“네?”
“원소 기호 87번을 적으라고.”
뭐야. 수업 내용하고는 전혀 관계 없는 거잖아……? 원소 기호 받아쓰기인가? 아, 고등학교 때는 거의 다 외웠었는데……. 지금도 기억하려나? 87번이라니. 처음부터 너무 난이도가 높잖아!!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 원소기호 표를 떠올리기 위해 눈을 꼭 감았다. 87, 87, 87…….
“Francium.”
“말하지 말고 공책에 적으란 말이다. 저, 저, 저거 봐라. 내가 기호를 쓰랬지 풀네임을 적으랬나?”
시끄러워 죽겠네. 애들만 없었어도 말대꾸 공격 했었을 텐데……. 이승현 이제 이미지 관리 해야지. 참자 참아. 머릿속에 참을 인(忍)자를 그리며 공책에 francium의 원소기호인 Fr을 썼다.
“다 썼는데요.”
“53번.”
아씨. 조카 난해한 것들만 고르네. 아무리 강의 시간에 정신을 팔았다 한들, 일부러 시간까지 깎아먹으면서 내게 이런 벌을 내리는 이유가 뭐야?
“Oxygen(산소)과 Znic(아연)의 원소 번호.”
이제는 원소 번호까지……. 이번에는 앞에 두 문제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권교수니임…….
“원소 기호 61번, 16번, 73번, 37번, 92…….”
“잠깐만요! 너무 빠르잖아요!!”
“그냥 부르는 대로 다 적고 나중에 강의 끝날 때 나한테 보고하도록. 자네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다 낭비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럼 이런걸 시키질 마!!
“다시 불러줘요……. 천천히…….”
“61번. 16번. 73번. 37번. 92번. 6번. 19번. 16번.”
“16번은 왜 두 번이나…….”
“그냥 시키는 대로 좀 해.”
아놔. 어이가 없다. 오늘 왜 저래? 내가 넋 나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야비한 웃음으로 화답한 후 바로 냉정하게 등을 돌려 강단 쪽으로 내려갔다. 권교수가 떠나자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대성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우리를 쳐다보던 아이들도 모두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공책에 줄지어 써져 있는 숫자들을 보고 작게 ‘허-‘ 소리를 냈다. 이게 뭔 날벼락인가. 기억력 테스트나 마찬가지여서 그렇게 크게 어려운 문제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골머리 썩는다는 거.
강의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 다행히도 주어진 번호들의 원소 기호들을 모두 찾아냈다. 그렇지만 권교수가 내게 이런 문제를 낸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볼펜을 입에 물고 공책 한 줄을 빼곡히 메운 원소 기호들을 눈으로 훑었다. 뭘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날 고문하고 싶어서? Fr 원소 번호 87번. I 원소 번호 53번……. 그가 불러줬던 걸 차례대로 나열하면 Fr, I, 8, 30, Pm, S, Ta, Rb, U, C, K, S. 어라……. 이거 혹시……?
“아!”
Fri 8 30 pm Starbucks.
“금요일 저녁 8시 반 스타벅스…….”
얼굴이 순식간에 화악 하고 달아올랐다.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인다고 해도 이것보다 더 빨리 달아오를 순 없을 것이다. 내가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한 손으로 입을 살짝 틀어막고 강단 쪽을 쳐다봤다. 곧바로 눈이 마주친 권교수가 내게 입 모양으로 ‘둔한 놈’ 이라고 말했다. 아, 이거 어떻게 받아들여야 돼?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바로 머리를 책상 위에 박아버렸다. 차가운 책상이 뜨거워진 얼굴을 조금이나마 식혀주는 기분이다. 저 사람은 정말……. 대성이가 옆에서 뭐라고 한들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아래로 축 늘어뜨렸던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두근두근……. 생각보다 세게 안 뛰어서 다행이야. 권교수 때문에 요즘 가슴이 아파…….
포타 이전 세기의 명장면 금요일 스타벅스
본의 아니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좀 멍청한 소리를 내면서. 권교수가 들고 있던 지시봉으로 내 책상을 딱! 소리가 나게 내려치자 그제서야 집 나간 정신이 완전하게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아……. 망했다. 권교수는 강의시간에 집중 안 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이승현.”
“네!”
“강의시간에 정신을 딴 나라로 관광 시킨 걸로 보아, 내 수업이 우습게 보이나 본데. 어디 실력 점검이나 해보지. 당장 공책 펴보게.”
“…….”
이 사람이 평소에는 스무스하게 잘 넘어가면서 오늘은 왜 이렇게 날을 세우지? 오늘 뭐 안 좋은 일 있었나? 공책 맨 뒷장을 펴는 순간에도 날 쳐다보는 권교수의 이글거리는 눈빛 때문에 정수리가 따끔따끔했다.
“폈는데요…….”
“원소 기호 87번.”
“네?”
“원소 기호 87번을 적으라고.”
뭐야. 수업 내용하고는 전혀 관계 없는 거잖아……? 원소 기호 받아쓰기인가? 아, 고등학교 때는 거의 다 외웠었는데……. 지금도 기억하려나? 87번이라니. 처음부터 너무 난이도가 높잖아!!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 원소기호 표를 떠올리기 위해 눈을 꼭 감았다. 87, 87, 87…….
“Francium.”
“말하지 말고 공책에 적으란 말이다. 저, 저, 저거 봐라. 내가 기호를 쓰랬지 풀네임을 적으랬나?”
시끄러워 죽겠네. 애들만 없었어도 말대꾸 공격 했었을 텐데……. 이승현 이제 이미지 관리 해야지. 참자 참아. 머릿속에 참을 인(忍)자를 그리며 공책에 francium의 원소기호인 Fr을 썼다.
“다 썼는데요.”
“53번.”
아씨. 조카 난해한 것들만 고르네. 아무리 강의 시간에 정신을 팔았다 한들, 일부러 시간까지 깎아먹으면서 내게 이런 벌을 내리는 이유가 뭐야?
“Oxygen(산소)과 Znic(아연)의 원소 번호.”
이제는 원소 번호까지……. 이번에는 앞에 두 문제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권교수니임…….
“원소 기호 61번, 16번, 73번, 37번, 92…….”
“잠깐만요! 너무 빠르잖아요!!”
“그냥 부르는 대로 다 적고 나중에 강의 끝날 때 나한테 보고하도록. 자네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다 낭비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럼 이런걸 시키질 마!!
“다시 불러줘요……. 천천히…….”
“61번. 16번. 73번. 37번. 92번. 6번. 19번. 16번.”
“16번은 왜 두 번이나…….”
“그냥 시키는 대로 좀 해.”
아놔. 어이가 없다. 오늘 왜 저래? 내가 넋 나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야비한 웃음으로 화답한 후 바로 냉정하게 등을 돌려 강단 쪽으로 내려갔다. 권교수가 떠나자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대성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우리를 쳐다보던 아이들도 모두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공책에 줄지어 써져 있는 숫자들을 보고 작게 ‘허-‘ 소리를 냈다. 이게 뭔 날벼락인가. 기억력 테스트나 마찬가지여서 그렇게 크게 어려운 문제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골머리 썩는다는 거.
강의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 다행히도 주어진 번호들의 원소 기호들을 모두 찾아냈다. 그렇지만 권교수가 내게 이런 문제를 낸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볼펜을 입에 물고 공책 한 줄을 빼곡히 메운 원소 기호들을 눈으로 훑었다. 뭘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날 고문하고 싶어서? Fr 원소 번호 87번. I 원소 번호 53번……. 그가 불러줬던 걸 차례대로 나열하면 Fr, I, 8, 30, Pm, S, Ta, Rb, U, C, K, S. 어라……. 이거 혹시……?
“아!”
Fri 8 30 pm Starbucks.
“금요일 저녁 8시 반 스타벅스…….”
얼굴이 순식간에 화악 하고 달아올랐다.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인다고 해도 이것보다 더 빨리 달아오를 순 없을 것이다. 내가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한 손으로 입을 살짝 틀어막고 강단 쪽을 쳐다봤다. 곧바로 눈이 마주친 권교수가 내게 입 모양으로 ‘둔한 놈’ 이라고 말했다. 아, 이거 어떻게 받아들여야 돼?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바로 머리를 책상 위에 박아버렸다. 차가운 책상이 뜨거워진 얼굴을 조금이나마 식혀주는 기분이다. 저 사람은 정말……. 대성이가 옆에서 뭐라고 한들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아래로 축 늘어뜨렸던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두근두근……. 생각보다 세게 안 뛰어서 다행이야. 권교수 때문에 요즘 가슴이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