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는 감정으로 정의할 수 없다. 나 정말 어릴때부터 00아~ 외삼촌이 붕어빵 사줄까? 00아~ 외삼촌이 떡볶이 사줄까? 00아~ 외삼촌이 목마 태워줄까? 이러던 분이 항암치료를 받다가 결국 오늘 돌아가셨다. 어릴때 사진도 다 날아가서 한장도 없어서 외삼촌과 찍은 사진도 없다. 너무 보고싶은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사실 저번주 일요일까지만 해도 00이는 공부잘하니까 서강대가라 거기가 좋다더라 이러시고 %%이 대학 어디? 건국대. @@이 대학 어디? 수원대. ₩₩이 몇살? 16살. 이렇게 대답도 다 하셨다.
그러다가 3일전인가부터 의식이 없으셨다. 의식은 없으시지만 청각은 있다고 하셨다. 다행히 고통은 없다고 하셨다.
이게 가장 슬펐다. 정말 사람의 기운이란게 있는지, 목요일에 엄마가 외삼촌 보고 오면서 오빠 버텨야돼. 00이 고3이라 수능끝나고 올거니까 그때까지 아프지 말고 버텨. 이렇게. 엄마가 나한테도 너무 무서웠다고 하셨다. 나까지 외삼촌 보여드리면 정말 떠나버리실까봐..
그런데 갑자기 오늘 아침 엄마가 외삼촌 보러가자고 하셨고 난 따라갔다. 그렇게 외삼촌을 처음으로 마주했고, 항상 내 편이시던 키도 크신 외삼촌이 항암치료때문에 머리도 다 빠지고 정말 앙상한 몸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숨을 쉬시는데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그냥 주르륵 흘렀다. 할 수 있는건 외삼촌 손 잡고 속으로 제발 할머니 엄마 외숙모 사촌오빠들 힘들지 않게 일어나라는 말밖에 빌고 또 비는 것이었다. 종교는 있지만 신앙심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적을 믿어야했다. 아니 믿었다. 제발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나길.
병원을 갔다가 다시 독서실을 와서 고3의 남은 관문인 자소서를 썼다. 너무 싫었다. 이게 사회인가? 자소서를 쓰면서 정말 많이 생각했다. 세상이 신은 없다고. 신이 있다면 너무나 나쁜놈들을 잡아가지 우리 외삼촌을 데려가지 않을거라고. 하지만 다시 생각을 고쳤다. 세상에 신은 있다고 기적은 일어나야한다고.
몇시간동안 풀집중을 하고 났는데 갑자기 쎄한 기분이 들었다. 폰이 무음인데 그 쎄한 기운에 폰을 보니 엄마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삼촌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정말 날 보기 위해 버티신것 같다고. 난 그래서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믿는다. 동생이 외삼촌께 저 이제 간다고 부디 건강하시라고 할때도 원래는 손만 벌벌 떨고 계셨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손을 번쩍 드셨다고 한다.
내일 아침에 장례식장을 가야한다. 내 삶의 일부를 채워준 사람이 이제 더이상 세상에 없다. 나도 슬프지만 외할머니 외숙모 엄마 사촌오빠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부디 우리의 마음의 상처가 언젠가는 아물고 몇십년 후에는 웃으면서 왜 벌써오냐고 맞이할 외삼촌을 믿는다. 그래서 난 사후세계를 믿는다. 믿어야만 한다.
시련이 온 후에는 꼭 다시 해가 뜬다고 한다. 나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7월과 8월은 악몽의 끝판이었다. 부디 이제부터는 웃는 일만 생기고, 좋은 일만 생기길.
외삼촌 편안히 가신거죠? 제가 서강대는 못가지만 이화여대까지는 도전해볼게요. 하늘에서 지켜봐주실거죠? 수능날도 면접날도 잘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저희 생각 많이는 하지말고 가끔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만 해주세요. 꼭 다시 만나요. 절대 아프지 마세요. 제가 갈때 꼭 붕어빵 사들고, 떡볶이도 사들고 마중나와주세요. 목마도태워주시고 같이 걸어가요. 안녕히가세요.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사실 저번주 일요일까지만 해도 00이는 공부잘하니까 서강대가라 거기가 좋다더라 이러시고 %%이 대학 어디? 건국대. @@이 대학 어디? 수원대. ₩₩이 몇살? 16살. 이렇게 대답도 다 하셨다.
그러다가 3일전인가부터 의식이 없으셨다. 의식은 없으시지만 청각은 있다고 하셨다. 다행히 고통은 없다고 하셨다.
이게 가장 슬펐다. 정말 사람의 기운이란게 있는지, 목요일에 엄마가 외삼촌 보고 오면서 오빠 버텨야돼. 00이 고3이라 수능끝나고 올거니까 그때까지 아프지 말고 버텨. 이렇게. 엄마가 나한테도 너무 무서웠다고 하셨다. 나까지 외삼촌 보여드리면 정말 떠나버리실까봐..
그런데 갑자기 오늘 아침 엄마가 외삼촌 보러가자고 하셨고 난 따라갔다. 그렇게 외삼촌을 처음으로 마주했고, 항상 내 편이시던 키도 크신 외삼촌이 항암치료때문에 머리도 다 빠지고 정말 앙상한 몸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숨을 쉬시는데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그냥 주르륵 흘렀다. 할 수 있는건 외삼촌 손 잡고 속으로 제발 할머니 엄마 외숙모 사촌오빠들 힘들지 않게 일어나라는 말밖에 빌고 또 비는 것이었다. 종교는 있지만 신앙심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적을 믿어야했다. 아니 믿었다. 제발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나길.
병원을 갔다가 다시 독서실을 와서 고3의 남은 관문인 자소서를 썼다. 너무 싫었다. 이게 사회인가? 자소서를 쓰면서 정말 많이 생각했다. 세상이 신은 없다고. 신이 있다면 너무나 나쁜놈들을 잡아가지 우리 외삼촌을 데려가지 않을거라고. 하지만 다시 생각을 고쳤다. 세상에 신은 있다고 기적은 일어나야한다고.
몇시간동안 풀집중을 하고 났는데 갑자기 쎄한 기분이 들었다. 폰이 무음인데 그 쎄한 기운에 폰을 보니 엄마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삼촌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정말 날 보기 위해 버티신것 같다고. 난 그래서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믿는다. 동생이 외삼촌께 저 이제 간다고 부디 건강하시라고 할때도 원래는 손만 벌벌 떨고 계셨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손을 번쩍 드셨다고 한다.
내일 아침에 장례식장을 가야한다. 내 삶의 일부를 채워준 사람이 이제 더이상 세상에 없다. 나도 슬프지만 외할머니 외숙모 엄마 사촌오빠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부디 우리의 마음의 상처가 언젠가는 아물고 몇십년 후에는 웃으면서 왜 벌써오냐고 맞이할 외삼촌을 믿는다. 그래서 난 사후세계를 믿는다. 믿어야만 한다.
시련이 온 후에는 꼭 다시 해가 뜬다고 한다. 나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7월과 8월은 악몽의 끝판이었다. 부디 이제부터는 웃는 일만 생기고, 좋은 일만 생기길.
외삼촌 편안히 가신거죠? 제가 서강대는 못가지만 이화여대까지는 도전해볼게요. 하늘에서 지켜봐주실거죠? 수능날도 면접날도 잘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저희 생각 많이는 하지말고 가끔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만 해주세요. 꼭 다시 만나요. 절대 아프지 마세요. 제가 갈때 꼭 붕어빵 사들고, 떡볶이도 사들고 마중나와주세요. 목마도태워주시고 같이 걸어가요. 안녕히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