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성공 맥아더, 태극무공훈장 ‘1호’ (1)

바다새20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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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무공훈장을 받은 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의 평가를 다시 받아야 함이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미국의 정예화 된 육군 32,800명. 즉, 1개보병사단: 13,500명(미군 기준) + 1개보병사단: 13,500명 + 군단본부: 400명 + 1개보병여단: 5,400명(미군 기준)을 한국에 추가 주둔시킨다면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9,130억원을 증액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현재의 방위비 분담금을 약 10,389억원으로 계상(計上)하고, 정예화된 병력을 기준으로 한국주둔 미군병력을 28,500명으로 추산(推算)하여 환산(換算)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식 : 10389 ÷ 28500 × (13500 + 13500 + (400 + 5400) × 0.09) × (1 - 0.09) = 9130억원.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한국군 6개해병사단 + 1개해병기갑여단을 창설하여 육군사단의 해안방어지역에 교체 투입하고, 주한미군 32,800명 증원에 따른 방위비 분담금 9,130억원을 증액시킨다면 대북한 경제제재 와 북한의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습니다.

  국민정서와는 상관없이, 주식•부동산 투자(투기) 수준이 매우 높은 사람은 전략가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확실한 고급정보를 취득했다 할지라도 전략적인 분석없이 주식•부동산에 과감하게 투자(투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투자가 아닌 부동산투기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항전', '항쟁'은 민간인이 사용하는 단어이고, 군 과 관에서는 '작전', '안건', '사건' 또는 '건'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연습'은 민간인이 학습을 완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이고, 군 과 관에서는 '훈련'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만약에 군 과 관에서 '훈련' 대신에 '연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명예 훼손에 해당합니다. '운동'이라는 단어도 분별없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안됩니다. '3•1운동'은 '3•1항쟁'으로 바꿔야 하며, '5•18광주민주화운동'은 '5•18민주항쟁'으로 바꿔서 표현해야 합니다.

  법률적(法律的) 판단(判斷)이 요구(要求)될 때, 입증(立證)보다는 방증(傍證)이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점을 모르는 법조인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입증자료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이라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지요. 그렇게 방증은 입증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밖에 없었지요. 방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입증자료는 신뢰할 수 없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 방증을 외면하고 입증자료에만 연연한다면 저는 그런 행위를 사법농단(司法壟斷)이라고 정의(定義)해 봅니다.

  성과를 내 줘야 합니다. 성과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키는 대로만 처리해야 하는 정형화된 조직운용체계에서는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늘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job)이라 할지라도 프로젝트화(project化)해서 프로젝트 성격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이때 '프로젝트화(project化)'의 정의(正義)는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단순한 일(job)이라 할지라도 어제 일어난 일과 오늘 일어난 일이 다르다고 여기면서 한번 더 곰곰이 생각하고 궁리(窮理)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집에서는 현관문(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가야지만 도둑 과 강도의 출몰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습니다. 국가안보는 가정집의 현관문(대문)처럼 그렇게 매우 중요합니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도 보면,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대한민국은 국토방위에 매우 취약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안방어 임무에 가장 최적화된 6개해병사단 + 1개해병기갑여단 창설은 불가피합니다. 그 중에 2개해병사단 + 1개해병기갑여단은 강원도 동해안지역을 방어하고 있는 육군 8군단을 대신하여 교체 투입하고, 3개해병사단은 경기도/인천 서해안지역을 방어하고 있는 육군 수도군단을 대신하여 교체 투입한 후 물샐틈없이 방어해야 합니다. 그리고 육군 53보병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부산/울산지역은 해병대가 방어하기에 가장 적합한 해안방어지역이므로 나머지 1개해병사단은 부산/울산지역에 교체 투입한 후 효율적으로 방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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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인천상륙작전 성공 맥아더, 태극무공훈장 ‘1호’ (1) - 국방일보 남정옥 전 전사편찬연군소 연구원 (2018. 05. 16)

{대한민국 태극무공훈장과 6·25 전쟁영웅들}

{환도식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수여}
{6·25전쟁 중 191개… 유엔군 117개}
{손원일 제독, 신현준 해병대사령관 등등 12명은 2개씩 받아}
{최치환 경무관 경찰관으로는 유일}

대한민국 최고의 무공훈장은 태극무공훈장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전쟁영웅들은 거의 모두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태극무공훈장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과감히 목숨을 버렸거나,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할 만큼의 크나큰 전공(戰功) 없이는 받을 수 없는 훈장이다. 그래서 태극무공훈장만큼은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도록 규정돼 있다.

2등급 이하의 무공훈장은 대통령이 수여하지 못할 경우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장관도 어려울 경우에는 각군 총장이 수여하도록 했다.

태극무공훈장은 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대간첩작전을 수행하며 큰 전공을 세운 유공자들의 몫이었다. 태극무공훈장 수훈자(受勳者)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군인들이었다. 그중 병사들이나 위관 및 영관 장교들은 대부분 죽어서만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병사들이 그랬다. 그래서 국가는 그들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며 예우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태극무공훈장 제1호는 국군이 아닌 미군이 받았다. 주인공은 바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였다. 맥아더 장군은 태평양전쟁을 통해 일본을 항복시킴으로써 군신(軍神)의 반열에 오른 미국의 전쟁영웅이다. 미 국민은 그런 맥아더 장군을 자국의 위대한 군인으로 평가했다.

맥아더 원수는 6·25전쟁 때 초대 유엔군사령관에 임명돼 한국전선의 국군과 유엔군을 지휘했다. 맥아더 원수가 태극무공훈장을 받게 된 결정적인 전공은 바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가 미군 수뇌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행해 성공시킨 20세기 최대의 작전이었다. 전사가들은 흔히 인천상륙작전을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비교한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보다 더 어려운 작전이었다. 그것은 인천이 상륙작전을 해서는 안 될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곳이었기 때문이다. 상륙작전을 수행해야 할 해군 수뇌부조차 그 점을 들어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맥아더 장군은 “여러분이 인천은 상륙작전이 어렵다고 생각하듯이 적의 수뇌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며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단행한 것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이었다. 그것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맥아더는 마침내 서울을 탈환해 대한민국에 돌려주게 됐다. 이른바 서울 환도식(還都式)이었다. 그때가 1950년 9월 29일이었다. 중앙청에서 거행된 서울 환도식 행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에게 태극무공훈장(당시는 1등무공훈장) 제1호를 수여했다.

대한민국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된 ‘태극무공훈장부’에 의하면, 6·25전쟁 중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한 태극무공훈장은 총 191개였다. 그중 국군이 73개, 경찰관이 1개, 유엔군이 117개를 받았다. 태극무공훈장을 국군보다 유엔군이 훨씬 더 많이 받은 셈이다. 유엔군이 태극무공훈장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6·25전쟁에서 유엔군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하 2부에서 계속)

(사진 설명) 이승만(오른쪽) 대통령이 1950년 9월 29일 환도 기념식에서 맥아더 장군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자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