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외과전공의 입니다.

쓰니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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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병원 외과전공의 입니다.

저는 이번 파업에 참여 중이나 간이 작아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도 못한 소심한 일개 전공의 로.. 이런 커뮤니티에 글조차 처음으로 남겨봅니다.

저는 일반외과전공의로서 수술에 참관하고 공부하며 수련 받는 수련의로, 평균적으로 20-30 명 가량의 입원환자들의 주치의를 맡았습니다.

제가 한 일은, 제 환자들이 수술을 차질없이 받고 무사히 잘 퇴원할 수 있게 매일 처방을 내고, 환자상태에 대해 콜을 받고 환자에게 설명하고 수술동의서를 받으며 수술 상처 드레싱을 하는 일이었고 이와 동시에 수술참관, 보조로 참여해왔습니다. (병원마다, 과마다 시스템이 달라 여기에 응급실환자까지 추가하여 보는 전공의가 더 많을 겁니다.)

이렇게 12시간의 정규근무(7am-7pm)가 끝나면, 당직인 경우에는 이어 12시간을 그 날 오프인 주치의선생님들의 환자들까지 보며 콜을 받고 해결하였고 이어진 아침부터는 다시 12시간 정규근무를 했습니다.
(주 80시간근무를 지켜야하는 법 대로, 최대한 열심히 퇴근시간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다음 날 수술동의서를 못 받거나 처방이 밀린 날은 밤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고, 아침 출근시간은 환자 많으면 새벽 5시, 그 보다도 일찍 나와서 밤 동안에 별일 없었는지 확인했습니다. 환자상태가 안 좋거나, 급한 검사 어레인지가 생기기라도 하면 끼니 거르는 일은 다반사에, 종일 화장실 한 번을 못간 날도 많았습니다.

주말, 휴일이라고 쉴 수 있는 날 없습니다. 주말 당직이 있지만 환자들 드레싱 하나하나를 당직 혼자 다 할 수 없는 일이라 잠깐이라도 병원에 갑니다. 월요일 수술을 위해 일요일 입원하는 환자들 챙기려면 오프여도 일요일은 늘 나와서 일합니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전공의로 직접 일해보기 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실제로 주어진 일의 로딩은 훨씬 많았고, 환자상태가 안 좋아졌을 때의 부담감도 엄청났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지만, 의사가 환자한테 하는 실수는 용납되지 않으니까요.

내가 이 환자분의 주치의라는 책임감, 아직 배우는 중이라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서 자칫하면 환자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 더 열심히 환자들을 봤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은 솔직히 많이 힘들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버틴다? 그러기엔 제 앞에 보이는 미래는 지금보다 더 감당하기 어려워 보일 뿐입니다. 대학병원 외과 교수로서의 삶은 보람은 넘치겠으나 상상할 수 없이 고단해 제 그릇이 안될 것 같고, 개원의로 수술장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의 실정은 잘 알지도 못합니다. 너무 없어서요.. 외과를 전공하여 배 안을 들여다보여 수련 받았지만 나가서 미용을 하는 분들이 더 많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 몸과 마음이 못 버티겠는 날에는 연차방에서 동기들에게 ‘그만 해야겠다’ 넋두리를 했습니다. 그럼 다들 똑같다며 거들어주고 달래줍니다. 그러다가 각자 울려오는 전화, 일들로 다시 바빠지고 어느새 계속 일을 하고 있죠.. 그렇게 일해왔습니다.

 

이렇게 일하는 게 억울하다? 못해먹겠다?
그런거 아닙니다. 잠시 잠깐씩 그런 생각이 들긴 했어도.. 생명을 다루는 일이 쉬울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제가 원해서 한 선택이니 후회 없었습니다. 외과의사가 되고 싶었고 환자가 수술 잘 받고 무사히 퇴원하는 일에 보람을 느꼈기 때문에. 제가 받는 시급과 셀 수 없는 초과근무시간, 일의 강도는 상관없었습니다. 그저 몸과 마음이 고되서 힘들었다 뿐입니다.
저는 지금도 복귀하여 하던 저 많던 일들을 계속 하고 싶고 조속히 사태가 해결되어 하루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과연.. 저만이 이렇게 일해왔고, 이런 마음으로 환자들을 봤을까요? 제 동기,선.후배들, 제가 본 모든 전공의들은 일이 힘들어 툴툴 거렸을지는 몰라도 결국 환자 옆에서 묵묵히 일했습니다. 환자에 대한 책임감, 두려움을 가지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전공의들입니다. 그저 돈이나 벌겠다는 마음으로 일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희를... 지금의 정부 그리고 언론은 환자를 볼모로 삼아, 이 코로나 시국에 환자를 버리고 제 밥그릇만 챙기려는 의사자격이 없는, 면허를 박탈해야 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습니다...

8/14 처음으로 총파업하던 날의 mbc 뉴스 앵커의 파업보도 첫마디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의사 면허증이 많아지면 그만큼 내가 벌 돈이 줄어들기 때문일까요.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부 정책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의사들이 오늘 하루 집단으로 휴진합니다. 사실상 파업입니다. 파업은 돈 못 받고 부당한 대우 받는 노동자들이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환자를 인질로 삼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서울대 병원에 기자가 있습니다.”

이 문장으로 저희의 파업은 그저 그냥 제 밥그릇 챙기기가 되어 버리고, 환자를 버린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쏟아지는 ‘환자 볼모’ ‘이 시국에 파업 강행’ 이 제목인 기사들.. 왜 의사들이, 전공의들이 나서서 파업을 하는가, 어떤 정책에 문제가 있다 하는가 그 이유가 잘 개제된 기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의사 입장, 대전협의 입장문은 검색을 하고 유튜브를 찾아봐야 겨우 알 수 있는데, SNS에 올라온 어느 전공의라 주장하는 이의 파업중지 기고문, 대전협에서 투표과정이 어땠다더라 하는 근거 없는 찌라시는 너무나 빠르게 기사화되고 화제가 됩니다.

 

이미 기울어져버린 언론 보도들이 쏟아진 마당에 힘없는 저희의 입장이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렵겠죠. 그저 전공의와 의사들을 매도하려는 의도의 기사, 찌라시의 기사화만이라도 만연하지는 않길 바라면서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에.. 이 글을 적습니다. 중립을 지키는, 사실에 기반한 기사들 만이 보도되기를 바랍니다..

이 혼란한 코로나 시국에 의료전문가의 참여 없이 만들어진 정책을 추진을 하려던 보건복지부는 파업 이후, 코로나가 지날 때까지 정책 집행을 중단, 유보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협의하겠다 했습니다만.. 그 '모든 가능성' 안에 원점에서부터 전면 재논의를 문서화하는 것을 포함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동안의 관련법안에 관해 협의해 온 다른 분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안된다고요 (실제 8/31 보건복지부 브리핑 질의내용 및 답변.)

저희는 '철회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전면 재논의' 오직 그 한 줄의 ‘문서화’를 바라는 것 이라...그래서 이렇게 멈추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누구도 굽히지 않는다면 쉽게 안 끝날 겁니다.

상대는 거대 여당이고 문서화하지 못한 약속을 믿기에는 신뢰가 없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멈춰서 막지 않으면, 다시 업무로 돌아가 환자들 돌보기에 여념이 없어지면, 못 막습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면서 왜 이렇게까지 막아야 하는 지가 궁금하시다면 대전협 대통령 호소문이라도 꼭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http://youngmd.org/386/?idx=9549500&page=1&search=

 

너무도 돌아가서 일하고 싶고.. 암환자분들 수술 밀리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이 멈춰 서있을 수 밖에 없는, 이런 전공의의 답답하고 간절한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알아주셨으면 하고 언론이 부디 바른 여론을 만드는데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