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답답한 일상

초당아씨2004.02.18
조회944

한동안 눈팅만 하다가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아직 결혼을 한건 아니지만.. 여기 계신분들은 어찌 고민해주실까 싶어서요..

 

제 이전글을 읽어보신분은 아시겠지만 그저 평범한 집안은 아닌 듯 싶네요.

한번도 재혼 가정인 것을 부끄러워본적없고 재혼하신 엄마를 원망해 본적도 없습니다.

제가 6살되던 겨울에 생부가 돌아가셨고 그후 8년을 혼자 두딸을 키우셨구요.

집에서만 지내셨던 엄마가 본가가 계신 곳으로 내려와 처음엔 명태덕장도 하셨고

화장품판매사원, 전자제품 판매사원, 보험..등등 정말 여자가 할수있는 모든 일을 하셨네여..

본가에선 아빠가 장남인데 아들 자식이 없다고 재산 한푼 남기려 하질 않으셨고

그러면서 딸만 있는 집에 제사는 왜 넘기셨는지... 제사때 찾아 오는 형제가 없더군요..

우리 엄마 나이 28이었을때 혼자되셨으니 혹여 재혼하게되면 우릴 놔두고 갈까봐 그게 겁이 났겠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는 유산 분배문제로 뻔질나게 드나들긴 했어도..

어찌 자기 형님 제사때에도 얼굴을 디밀지 않는지 참 놀라울 뿐입니다..

그렇게 고생하시던 엄마가 제가 중학교에 입학할때쯤 재혼을 했으면 하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쌍수들어 환영한건 아니었지만  엄마가 행복해질수있단 우리 담임선생님의 설득으로 찬성을 하게 됐습니다.

재혼상대는 엄마 처녀적부터 따라다니던 사람.. 지금의 아빠죠..

아빠에겐 엄마가 첫사랑이었다네요.. 그래서 줄창 쫓아다녔는데 엄마 눈길한번 못받아봤다면서..

나중에 각자 결혼을 한후 부인이 알고 지내는 남자랑 바람이 나 이혼을 한 상태였구요..물론 전부인이 바람난 당시 모든 재산은 한푼도 없이 다 탕진한 후고요.. 그당시 연봉 몇천은 받는 직업이었는데 집한칸 마련해 놓은게 없었다네요 그런 사실을 3년이나 모르고 있었다네요. 물론 친구들이나 심지어는 형제들까지 알고 있는 일이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간통으로 집어 넣고 방황을 하던차에 엄마를 다시 만난 거구요..

그후 나중에 안 사실들이지만 사촌이모들이 선자리를 많이 마련햇었답니다.. 그런데 모두들 어느정도 돈도 있고 잘사는 남자들이었는데 우리 자매 놔두고 가야하는 선자리라 엄마가 모두 거들떠도 안봤다구요.. 그래서 집한칸 없는 지금의 아빠를 만나 재혼한다고 했을때 모두들 말렸다고..

하여간에 두분 재혼하셔서 집마련하고 자알 사셨습니다.

재혼하실당시 제 친가 쪽으로부터 조그마한 땅을 받아 놓았구요.. 저희 가르치고 시집보내야하지않겠느냐고..  당시 그것도 저희 두자매 친가에두고 갈까봐 그 땅도 내놓은 걸로 알고있습니다... 물론 유산중에 극히 일부이긴하지만서두...

엄마가 데리고간 저희 두자매 , 그리고 아빠가 데리고 온 딸하나 아들하나..

그래서 6식구가 되었습니다.

두분 사이에 아이 낳으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하셨는데 지금 아이들이나 잘키우자는 합의를 보셨답니다.... 그러다가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해에 늦둥이를 보셧죠.. 그때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 유산도 몇번 하셨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하혈해 쓰러지신걸 몇번 본 기억이 있으니.. 차라리 우리들 눈치보지마시고

일찍 낳아 기르셨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 그렇게 무리해서 몸이 망가지지는 않았을터인데..

그렇게 늦둥이가 태어났고 그 다음해에 우리집 막둥이가 태어난거죠.. 그래서 20살차이나는 동생이 둘이나 생긴겁니다.. 첨엔 참 어이없는 일이라 맨처음 우리 원이를 봤을때 안방을 들여다보곤 애기한테 눈길한번, 심지어는 한번 안아주지도 못했습니다. 전 너무나 핏덩이 애기라 무서워서 였는데 우리엄마는 내눈치가 그리 보이셨나보더라구요.  내가 상처받고 창피해하고 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와서 애기얼굴한번을 안쳐다보니 우리 엄마 그때 무진장 섭섭하셨나보더라구요... 지금이야 너무이뻐 가슴아프지만..

그렇게 바라던 아들도 둘이나 낳으셨고 했으면 행복하게 오래사셔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 아이들 5살 6살 되던해에 엄마가 갑자기 갑상선암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동생 5살 , 저 6살 되던해에 생부가 돌아가셨군요..

서울에서 직장다니던 제동생은 집으로 내려가 동생들 돌봤고 전 연수다녀와서 복학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하다가 그만두고 병원 간호를 했습니다. 입원한지 4개월만이군요..

우리엄마 재혼하고 나시고도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집안 모든 사업을 엄마가 거의 맡아하셨고 사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돈문제로 참 고생하셨습니다. 여장부셨죠.. 반면에 아빠는 그저 사람만 좋은 ... 아빠가 데리고 온 자식중 아들녀석은 지 친엄마가 애들한테 식칼을 들이대면서까지 애들 입단속을 시킨 것이 상처가 된건지 말도 잘 하지 않고 집안에 돈을 들고 나가기도 하고.. 딸아이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그또래의 이성교제를 시작한 것이 조금 엇나가기 시작했고.. 하여간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들을 했죠.. 그래서 아들녀석은 우리집과 작은집, 그리고 친엄마집을 돌아다니면서 살기시작했죠.. 여기서 사고치면 저기로가서 숨고 저기서 사고치면 여기로 가서 숨고.. 그 뒤로는 엄마도 포기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몇해 뒤에 딸아이도 그렇게 엄마집으로 갔고요.. 물론 우리 엄마가 정말 혼신을 다해서 그 아이들을 키운건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 친아들이고 친 딸이었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정신차리게 했겠지만  매한번 들었다 놓으면 할머니집에서 지자식아니라고 저런다고 난리고 작은집에서 난리고... 오죽햇으면 제가 붙들고 울었겠습니까? 왜 이렇게까지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느냐고요..  그렇다고 그 아이들과 못어울리고 했느냐?그것도 아닙니다. 방학때 외가로 여행도 같이 가고 때마다 놀러가기도 하고 학원도 같이 다니고.. 그 아이들 초등학교 5~6학년때만해도 지들 친엄마한테 전화오면 우리 엄마는 부엌에 있다고 할정도로 엄마를 정말 잘 따랐고요.. 어쩌다가 이렇게 까지 됐는지 모르겟습니다.

나중엔 엄마가 고생하신게 너무 억울하셧던지 의사로부터 몇일 못사신단 소리를 듣던날밤 대성통곡을 하시더이다.  그때 우리엄마  겨우 4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날밤 엄마가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쁜놈이라고.. 왜 그렇게까지 맘고생을 하게만들었느냐고.. 그냥 내자식 아닌애들이라고 포기하고 말껄 그랬다고.. 그날밤 아빠는 외갓댁에 가 계셔서 이런 사실을 모르고 계십니다.

아빠를 참 많이 원망하시더이다. 그땐 왜그렇게까지 아빠를 원망하나 싶었습니다.

그 당시엔 정말로 이세상에 내동생과 나 이렇게 남겨지는구나 .. 싶었습니다. 친아빠만큼이나 잘 해주신 아빠지만 솔직히 피 한방울 안섞인 남아닙니까?  남겨진 두 어린 동생들이야 아빠가 잘 돌보시겠지..

가장 불쌍한게 마지막까지 엄마 그렇게 가실거라고 몰랐던 제동생 일꺼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간 엄마보다는 남겨진 사람이 가장 불쌍할거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근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남겨진 사람들이야 어떻게든 잘 살아갑니다.

근데 하늘에 계신 우리엄마만큼 불쌍한 사람은 없는것 같더군요..

지금 엄마가신지 만 3년이 되었는데 ...

제가 복학해서 졸업하는 1년과 엄마 병원에 있던 4개월 간을 동생이 집에 내려와 두 늦동이 아이들을 돌봤고 졸업해서 2년동안 제가 내려와서 애들 돌보고 있습니다. 두 아이 모두 3월 생이라 조기입학을 하였기에 제가 학교 찾아다니며 등록했고 소풍이다 운동회다 제가 쫓아다녔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올해 초등학교 2학년 3학년이 됩니다. 엄마없는 아이들이라 그런 다는 소리 들을까봐 정말이지 깨끗하고 이쁘게 키웠습니다. ..  수학경시대회도 나가서 상타오고 미술대회 상도타오고 아주 똘똘합니다. 영특하고..

정말이지 제자식 낳아도 이렇게까지 이쁠까 싶을 정도로 이쁘고 사랑스럽습니다.

딸이 셋이니 돌아가며 2년씩만 돌봐줘도 6년아닙니까 .. 그쯤이면 이녀석들 혼자 학교갈정도는 챙기겠다 싶엇습니다. 지금도 7시면 스스로 어김없이 깨어나 씻고 학교갈 준비를 합니다. 그런생각으로 정말 최선다해 키웠는데 올해에는 저도 임용고시 준비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서 이번에 졸업하는 여동생 즉 아빠의 딸에게 그런 운을 떼었더니 결혼하면 데리고 가서 키우라는 농담을 하네 요..   물론 어린애 발목잡는거 같아 참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더니 부산에서 지방직공무원을 한다며 주소를 이전하겠다는 전화가 왔네요.. 애들 이뻐죽겠다고 하는 아이라서 별 걱정을 안했는데..  물론 친엄마의 코치도 한몫했겠죠.. 저희 외가어른들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엄마 장례식이 끝나고 뒤도 돌아보지말고 니들 따로 나가서 니들인생찾으라고... 애들 키워주지 말라고.. 괜히 발목잡혀있지말라고... 저도 남얘기라면 그리 말하겠습니다. 근데 애들이 무슨 죕니까? .. 용돈보내달라는 전화도 나를 통해 아빠에게 하던 애가 그 뒤로 전화가 없어서 며칠전 메일을 띄웠습니다. 1년여간 시간을 달라고 .. 그래서 내가 임용을 여기로 보겠노라고.. 그러면 결혼을 하더라도 근처에서 돌봐줄수있겠다고..... 물론 친척집으로 주소이전만해놓고 여기서 지방직 공무원 셤 공부를 할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엄마 돌아가시고난후 정말이지 친 언니처럼 따르던 애가 .. 그러니 친언니처럼이지 친언니는 아니엇겟죠..  그래도 명절이나 방학에 오면 내 옷은 안사입어도 철철이 옷바뀌는 애한테 옷이라도 하나 들려보내고 내 친동생한테 하는 것 보다도 신경썼는데.. 그리고 지 동생도 지금 여기서 알바다니고해서 내가 밥먹여 세탁해 데리고 있는데.. .. 며칠을 답장을 기다렸더니...

오늘에서야 답장이 왔네요.. 미안하긴한데 자기도 더이상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자기도 힘들다고... 자기도 애들 사랑한다고.. 그리고 아빠가 해준게 뭐있냐는 식입니다.

글쎄요.. 난 그렇게 모질게 말할수 있는 그 용기가 부러운 것같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애들 놔두고 나갈 용기가 없나 봅니다.

아님 처음부터 그냥 모른척해야 옳았을까요?

제 친동생도 2년여를 손놓고 지내느라 지 동기들보다 실력도 그렇고 월급도 그렇고 뒤쳐진 상황이라 또다시 내려와 잇어달라고 부탁하기가 입이 안떨어집니다.

제가 요즘 갑상선 치료를 받느라 너무 예민해진건지 조금만 감정이격해져도 눈물부터 납니다.

엄마한테 정말이지 죽을듯이 미안하지만 차라리 아빠더러 새장가를 가시게 하는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빠새장가가시면 저야 편하겠지만 우리 애들 혹여라도 잘못될까 그것도 걱정이고..

이래저래 머리가 아픕니다.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천사입니다.

아빠에 대해선 우리 엄마 얼굴에 침뱉는거 같아 거론 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아빠도 많이 힘드실겁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안되셨습니다. 젊으신 나이에... 그런데 우리 엄마 생각하면 정말이지 가슴아픕니다. 애들 잘 보살펴달라고 한 마지막 말이 ,, 그리고 엠브란스에서 정신을 놓으셧다가도 우리 원이 이야기만 하면 우리 아들 얼굴 봐야한다며 발작을 하시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이런 모습 보이기는 힘들더군요..

이렇게 글쓰면서 한참을 울다갑니다.

속은 조금 후련한듯한데 결론을 내릴수가없어 답답합니다.

그냥 이런 생각해봅니다.

저도 우리 엄마랑 정말이지 자주 싸우면서 큰 딸입니다.

근데 그렇게 일찍 가실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겁니다.

모진말도 안했을거고.. 가슴에 상처를 만들어드리지도 않았을거고...

정말 후회합니다.

여기 글보면 친정부모님들이 짐이 된다는 글 가끔 보이는데

전 부럽습니다.

다시 우리 엄마랑 그렇게 다투면서 지내게 될수만 있다면  너무나 행복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처럼 후회하지마시고 부모님께 정말이지 잘해드리세요..

주제넘지만 ...

답답해서 몇글자 올려봤습니다. (너무 길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