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2장이 성경의 기본 강령인 이웃사랑이라는 측면에서 개인과의 관계에서 신자의 자아문제를 다루었다면 13장은 그리스도인과 정부, 또는 국가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로마서를 집필 할 당시의 네로 황제는 기독교를 엄청나게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반정부적인 마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한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쓴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국민에게는 정부가 필요하고 국민으로서의 성도는 국가에 의무를 다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국가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 번째는 통치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 읽어 보겠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여기서 “권세들”로 번역된 헬라어는 “권위자들”이란 뜻으로 이 권세들은 우리를 다스릴 위치에 있는, 정부 권세를 부여받고 있는 왕 혹은 대통령등 위정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에게 "굴복하라"는 말은 상대방의 권위 아래 자기가 종속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복종하라'는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각 사람은"이란 말은 한 국가에 속한 모든 개인을 가리키며 물론 기독신자도 자동적으로 포함됩니다.
쉽게 말하면 모든 국민은 자기가 속한 국가의 주권을 수호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 위정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굴복하라.”는 표현에는 맹목적인 순종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국가가 정한 보편적인 법안에서 자신을 주장하기보다는 법과 규범 안에서 순종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 이유는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는 말 역시 표현만 다를 뿐 똑같은 의미입니다.
즉 '모든 세상 국가 권력의 출처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내용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의 국가관이 가장 성경적인 관점이라고 봅니다.
칼빈은 오늘 본문 롬 13:1절을 근거로 국가를 하나님이 주신 제도로 보았습니다.
국가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하고자 우리에게 주신 일반 은총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국가는 결국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는데 국민을 보호하려면 질서와 정의 사회가 필요하여 하나님이 세운 보편적인 은총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 역시 벧전 2:13-17절에 보면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했던 것입니다
그럼 권세자들은 국민들과 성도들을 위하여 어떤 정치를 해야 할까요?
국민을 위하여 적극적인 선을 추구하는 기능으로 정치해야 합니다
이사야야 선지자는 22장22절에 보면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 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빵과 공기, 물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국가 없는 우리들을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가난하고 볼품없는 나라사람들의 슬픔을 압니까?
정치인은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을 받드는 사람들입니다.
정부는 정의와 평화 질서 유지등을 위하여 악을 제거하고 선을 추구하는 사명이 부여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이들에게 협력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료들은 질서를 위하여 정의구현을 위하여 우리 잘못하면 법이라는 테두리안에서 우리를 징벌하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권세자와 교회가 잘못하면 어떻게 할까요?
1) 불의한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공평이 아니라 불공평하게 편드는 정의를 책망하십니다. 예) 사회적 약자(고아,과부,나그네,세리,창녀,과부,가난한 자등)2) 교회가 세속화로 불의한 국가와 결탁할 때 책망 하십니다
콘스탄틴의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 하자 교회는 정부와 결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초기교부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과 결탁이 도를 넘었습니다.기독교가 올바른 국가가 건설되기 위하여 이상을 심어 주기보다는 불의한 국가를 지탱하는 요소로서 역할 할 때 책망 하십니다.성경에 보면 히스기야 왕 14년째인 주전 701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대군을 이끌고 두 번씩이나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첫 번째는 은300백 달란트와 금삽십 달란트와 엄청난 공물을 주고 히스기야의 항복을 받고 군대를 철수시켰지만(왕하18:13-16), 두 번째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공 하였습니다.(왕하191-13절).
이때 히스기야는 식음 전폐하고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간섭으로 18만5천명의 대군을 모두 전멸 시킵니다.
그러자 앗수르의 18만5천명 군대가 하룻밤 사이에 죽고 철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즐거워서 소리 지르며 옥상으로 올라가 기뻐했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싸워서 승리를 이룬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책망합니다.
이사야 22장 1-2절에 보면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며, 너의 관원들은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오면서, 유다의 여러 성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 유다의 관원들과 군사들이 보여준 수치스러운 행동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코 명예롭지 못한 치욕적인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거민들은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단지 앗수르 군대가 철수한 것만으로 기뻐하며, 승리의 잔치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비록 앗수르가 물러갔으나, 절대로 즐거워 할 때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예루살렘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슬피 통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22장 3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멸하였음을 인하여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합니다.
성경과 역사에 보면 애굽도 바벨론도 로마도 대영제국도 히틀러의 독일도 수많은 나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져갔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고 존재하는 나라와 지도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십계명의 목적을 가지고 국가와 성도가 공존할 때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도는 국가의 법을 잘 지켜야 한다.
3-4절 읽어 보겠습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권세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와 위정자들에게 순종해야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름이니, 그에 대한 심판을 스스로 자초하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하다면 대통령이 두렵습니까? 경찰이 두렵습니까?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그들은 악을 다스리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법에 따라 선과 악에 대하여 구분하고 징치하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라는 말이 두 번 나타나는데, 그 단어는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는 종을 의미하며, “칼”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주신 권위와 권세를 나타냅니다.
필요하다면 국가는 비행에 대한 형벌로 목숨을 취하는 권한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5절에서부터 그 논리가 아주 단순해지는데,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에 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해야 할 두 가지 이유를 가지게 된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1) 굴복하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양심의 칼 때문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하는 권세들에 대한 예의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권세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6-7절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6절의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이 말씀은 “세금을 납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금을 납부한다는 것은 국가의 권위와 권세를 인식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국가와 기능들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세금을 납부하는데, 왜냐하면 나라를 세우신 이가 우리 하나님이심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7절에서 최종 권면을 하고 있는데,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를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주라”는 단어의 뜻은 실제로 우리가 빚진 어떤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을 뜻하는데, 이 권세들과 우리의 관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금을 바칠 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 “두려움”이라는 말이 나올 때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쓰여진 것입니다.
나라의 권위자들을 두려워하라고 권면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존중하고 굴복하라고는 했지만 두려워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쓸 때에는 왕, 황제, 의회, 행정관, 시 당국자들, 아니면 권세를 잡은 어느 누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는 말을 할 때에는 하나님이 세운 국가의 질서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이 세우신 정부의 목적에 대하여 순종하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법을 어기고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질 때 도로 옆에 표지판을 세워 놓고 “공사장 외 차량은 통행금지” 라고 써놓습니다 만일 들어가서 사고 나면 보상 받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13장 강해 :1-7절 제목:로마서13장 강해 (1)신자와 국가
로마서13장 강해 :1-7절 제목:로마서13장 강해 (1)신자와 국가
로마서12장이 성경의 기본 강령인 이웃사랑이라는 측면에서 개인과의 관계에서 신자의 자아문제를 다루었다면 13장은 그리스도인과 정부, 또는 국가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로마서를 집필 할 당시의 네로 황제는 기독교를 엄청나게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반정부적인 마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한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쓴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국민에게는 정부가 필요하고 국민으로서의 성도는 국가에 의무를 다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국가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 번째는 통치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 읽어 보겠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여기서 “권세들”로 번역된 헬라어는 “권위자들”이란 뜻으로 이 권세들은 우리를 다스릴 위치에 있는, 정부 권세를 부여받고 있는 왕 혹은 대통령등 위정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에게 "굴복하라"는 말은 상대방의 권위 아래 자기가 종속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복종하라'는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각 사람은"이란 말은 한 국가에 속한 모든 개인을 가리키며 물론 기독신자도 자동적으로 포함됩니다.
쉽게 말하면 모든 국민은 자기가 속한 국가의 주권을 수호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 위정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굴복하라.”는 표현에는 맹목적인 순종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국가가 정한 보편적인 법안에서 자신을 주장하기보다는 법과 규범 안에서 순종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 이유는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는 말 역시 표현만 다를 뿐 똑같은 의미입니다.
즉 '모든 세상 국가 권력의 출처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내용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의 국가관이 가장 성경적인 관점이라고 봅니다.
칼빈은 오늘 본문 롬 13:1절을 근거로 국가를 하나님이 주신 제도로 보았습니다.
국가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하고자 우리에게 주신 일반 은총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국가는 결국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는데 국민을 보호하려면 질서와 정의 사회가 필요하여 하나님이 세운 보편적인 은총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 역시 벧전 2:13-17절에 보면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했던 것입니다
그럼 권세자들은 국민들과 성도들을 위하여 어떤 정치를 해야 할까요?
국민을 위하여 적극적인 선을 추구하는 기능으로 정치해야 합니다
이사야야 선지자는 22장22절에 보면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 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빵과 공기, 물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국가 없는 우리들을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가난하고 볼품없는 나라사람들의 슬픔을 압니까?
정치인은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을 받드는 사람들입니다.
정부는 정의와 평화 질서 유지등을 위하여 악을 제거하고 선을 추구하는 사명이 부여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이들에게 협력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료들은 질서를 위하여 정의구현을 위하여 우리 잘못하면 법이라는 테두리안에서 우리를 징벌하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권세자와 교회가 잘못하면 어떻게 할까요?
1) 불의한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공평이 아니라 불공평하게 편드는 정의를 책망하십니다. 예) 사회적 약자(고아,과부,나그네,세리,창녀,과부,가난한 자등)2) 교회가 세속화로 불의한 국가와 결탁할 때 책망 하십니다
콘스탄틴의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 하자 교회는 정부와 결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초기교부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과 결탁이 도를 넘었습니다.기독교가 올바른 국가가 건설되기 위하여 이상을 심어 주기보다는 불의한 국가를 지탱하는 요소로서 역할 할 때 책망 하십니다.성경에 보면 히스기야 왕 14년째인 주전 701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대군을 이끌고 두 번씩이나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첫 번째는 은300백 달란트와 금삽십 달란트와 엄청난 공물을 주고 히스기야의 항복을 받고 군대를 철수시켰지만(왕하18:13-16), 두 번째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공 하였습니다.(왕하191-13절).
이때 히스기야는 식음 전폐하고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간섭으로 18만5천명의 대군을 모두 전멸 시킵니다.
그러자 앗수르의 18만5천명 군대가 하룻밤 사이에 죽고 철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즐거워서 소리 지르며 옥상으로 올라가 기뻐했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싸워서 승리를 이룬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책망합니다.
이사야 22장 1-2절에 보면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며, 너의 관원들은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오면서, 유다의 여러 성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 유다의 관원들과 군사들이 보여준 수치스러운 행동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코 명예롭지 못한 치욕적인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거민들은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단지 앗수르 군대가 철수한 것만으로 기뻐하며, 승리의 잔치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비록 앗수르가 물러갔으나, 절대로 즐거워 할 때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예루살렘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슬피 통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22장 3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멸하였음을 인하여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합니다.
성경과 역사에 보면 애굽도 바벨론도 로마도 대영제국도 히틀러의 독일도 수많은 나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져갔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고 존재하는 나라와 지도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십계명의 목적을 가지고 국가와 성도가 공존할 때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도는 국가의 법을 잘 지켜야 한다.
3-4절 읽어 보겠습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권세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와 위정자들에게 순종해야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름이니, 그에 대한 심판을 스스로 자초하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하다면 대통령이 두렵습니까? 경찰이 두렵습니까?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그들은 악을 다스리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법에 따라 선과 악에 대하여 구분하고 징치하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라는 말이 두 번 나타나는데, 그 단어는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는 종을 의미하며, “칼”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주신 권위와 권세를 나타냅니다.
필요하다면 국가는 비행에 대한 형벌로 목숨을 취하는 권한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5절에서부터 그 논리가 아주 단순해지는데,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에 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해야 할 두 가지 이유를 가지게 된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1) 굴복하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양심의 칼 때문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하는 권세들에 대한 예의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권세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6-7절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6절의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이 말씀은 “세금을 납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금을 납부한다는 것은 국가의 권위와 권세를 인식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국가와 기능들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세금을 납부하는데, 왜냐하면 나라를 세우신 이가 우리 하나님이심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7절에서 최종 권면을 하고 있는데,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를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주라”는 단어의 뜻은 실제로 우리가 빚진 어떤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을 뜻하는데, 이 권세들과 우리의 관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금을 바칠 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 “두려움”이라는 말이 나올 때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쓰여진 것입니다.
나라의 권위자들을 두려워하라고 권면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존중하고 굴복하라고는 했지만 두려워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쓸 때에는 왕, 황제, 의회, 행정관, 시 당국자들, 아니면 권세를 잡은 어느 누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는 말을 할 때에는 하나님이 세운 국가의 질서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이 세우신 정부의 목적에 대하여 순종하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법을 어기고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질 때 도로 옆에 표지판을 세워 놓고 “공사장 외 차량은 통행금지” 라고 써놓습니다 만일 들어가서 사고 나면 보상 받을 수 없습니다.
[출처] 로마서13장 강해 :1-7절 제목:로마서13장 강해 (1)신자와 국가|작성자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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